#239화
처용과 닥터, 마녀, 그리고 살아남은 B급 마인 세 명이 다시 입구로 돌아오자.
“……늦었다!”
만신창이 상태로 앉아 있던 오거가 마녀를 향해 읊조리듯 말했다.
“……열쇠를 모두 찾았나 보군?”
마녀가 오거의 옆에 나열된 세 개의 열쇠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다 어디로 가고 왜 너희들만 있나?”
오거와 같이 바닥에 널브러져 앉아 있는 이들을 보며 말했다.
처음 입구에 남기로 한 이들, 사고를 친 지미를 포함한 B급 마인 셋.
그리고 남은 이들, 오거를 포함한 상급 마인 넷과 B급 마인 여섯은 오른쪽 통로로 갔었다.
그런데 패잔병처럼 입구에 널브러져 있는 이들은 상급 마인 셋과 B급 마인 둘이 고작이었다.
“말스는…… 어디로 간 거냐?”
마녀가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오거와 함께 갔었던 상급 마인의 이름을 언급하며 말하자.
“……심장마비로 뒤졌다.”
오거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
“…….”
그 말에 닥터와 마녀가 멍한 표정을 지으며 침묵했다.
말스라는 이름을 가진 마인은 무려 상급 마인이었다.
오거는 그런 상급 마인이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마녀와 닥터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자.
“왜? 거짓말 같나!?”
오거가 인상을 한껏 찌푸리며 외쳤다.
“한 새끼는 접싯물에 코 박고 죽고! 한 새끼는 뒤로 넘어져서 뒤지고!”
오거가 자신과 함께 갔었던 마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속사포처럼 입을 놀리며 말했다.
“보이지 않는 죽음이 도대체 뭐냐!?”
오거가 분노를 담아 외쳤다.
마인들 대부분 몬스터와 싸워서 죽은 게 아닌 ‘보이지 않는 죽음’에 의해 사망했으니까.
눈에 보이는 적이라면 맞서 싸울 수라도 있지, 이건 막을 수도 없었다.
언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찾아올지 모르니까.
“그나마…… 열쇠를 다 모아서 다행이군요.”
닥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리고.
“마켓이라는 기능이 있습니다.”
오거 일행에게도 ‘마켓’에 대해 설명했다.
닥터가 마켓에 대해 설명할 때.
“우선 열쇠부터 하나씩 끼워보지.”
마녀가 열쇠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딸각. 딸각.
벽에 나 있는 홈에 맞는 도형을 하나둘 끼워 넣기 시작했다.
“비켜라. 지미.”
마녀가 열쇠를 끼워 넣는 벽을 보며 서 있는 마인, 지미를 향해 말했다.
“네, 네.”
지미가 명령을 받고 삐걱거리는 발걸음으로 비켜섰다.
상급 마인 중 하나가 지미가 있던 자리의 벽 홈에 마지막 열쇠를 꽂으려는 순간!
-드르륵.
걸어가던 지미가 밟은 발판이 소리를 내며 움푹 들어갔다.
다른 이들은 바닥이 낡았다고 생각하며 그 소리를 무시했다.
미로를 탐색하기 전에도 그랬었으니까.
그러나.
-차캉!
이번에는 낡은 것이 아닌 진짜 함정.
지미가 발판을 밟는 순간, 열쇠를 꽂는 앞 벽에서 창날이 튀어나왔다.
게다가 하필이면 마지막 열쇠를 꽂는 순간이었다.
“이런!”
열쇠를 쥐던 상급 마인이 급하게 뒤로 물러나 피했다.
그러나.
-탕!
창날이 열쇠의 가장자리 부분을 때려버렸고.
-쩌적!
사각형 모양의 열쇠가 반으로 부러져 버렸다.
하나밖에 없는 열쇠가 부러져 버린 상황.
“…….”
“…….”
“…….”
그 광경에 현장에 있는 모두가 시간이 멈춘 듯,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끝없는 침묵이 이어질 때.
“……조졌네?”
처용의 입에서 꿈도 희망도 없는 듯한 싸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침묵이 깨지자. 결국.
“너! 이 개새끼야!!”
“뒤져! 이 씨발놈아!!”
폭발한 마인들이 지미를 때려눕히고는.
-팍! 퍼벅! 퍽!
마구 짓밟기 시작했다.
“으아아-!”
아티팩트에 의해 전혀 피해를 받지 않음에도 지미는 정말로 고통을 받는 듯 비명을 질러댔다.
“역천군주, 혹시나 해서 묻습니다만…….”
닥터가 처용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이 던전 안에 여분의 열쇠는-.”
“없다.”
처용은 닥터의 질문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이 던전을 아무리 뒤져봐도 여분의 열쇠는 정말로 없었으니까.
“이대로 사이좋게 뒤지자는 거냐? 한처용!”
마녀가 처용을 향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정말로 여분의 열쇠가 없다면 심각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삑. 삑.
[남은 시간 : 0:26:06]
심지어 남은 시간은 고작 30분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네놈도 뭐라도 좀 해 봐라!”
마녀가 거칠게 소리치자.
“흐음…….”
처용이 무언가를 생각하듯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마켓을 열어서 두 가지 물품을 구해주면 해결해 주지.”
처용이 닥터와 마녀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정말 이걸로 해결할 수 있는 겁니까?”
닥터가 처용이 말한 물품을 검색하고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띠며 물었다.
“그럼 다 같이 죽던가.”
처용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닥터가 마녀와 눈빛을 교환했다.
“……충분히 살 수 있는 물건들이니, 한번 믿어 보죠.”
닥터가 말함과 동시에 마켓에서 물건을 구입하자.
-촤라락.
그의 손에 금속 막대 같은 것이 가득 들어있는 투명한 박스가 떨어졌다.
동시에.
-탁.
마녀의 손에도 투명한 액체가 담긴 통이 나타났다.
처용이 닥터와 마녀가 구매한 물건을 받아 확인했다.
[플래티넘 스틸 박스]
[스톤 슬라임 젤.]
둘이 처용에게 건네준 물건은 그리 대단한 물건이 아닌 듯 보였다.
각각, 100포인트에 구매할 수 있는 물건들.
청색의 금속 막대들이 들어있는 투명한 상자와 젤 비슷한 게 담겨 있는 유리병이었다.
물건을 받은 처용은 우선.
-탁.
부러져 있는 열쇠의 잔해들부터 수습했다.
열쇠 조각들을 모두 모은 처용은.
“철벽부-금속공예.”
-쩌저적!
철벽부 한 장을 소환하여 철제 테이블을 만들고 그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 부수어진 열쇠 조각과 받은 두 물건을 올려놓고는.
“이게 적당해 보이네.”
닥터에게서 받은 상자를 열어 적당한 크기의 쇠 막대기를 꺼냈다.
“화염부, 뇌격부.”
오른손에 화염부와 뇌격부를 쥐고 마나를 끌어 올린 처용은.
-파지직! 파직! 화륵!
전류와 불꽃을 피워올리며 무언가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너 뭐 하냐?”
그런 처용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마녀가 질문하자.
“용접.”
처용이 열쇠 조각에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부러진 열쇠를 용접하겠다고?”
마녀가 자신이 이해한 것이 맞는지 확인차 다시 묻자.
“그래, 부러졌으면 다시 붙여야지.”
처용이 맞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아…… 아아.”
마녀가 얼얼하게 굳어오는 목덜미를 잡아 문지르고는.
“야 이 새끼야! 그걸 용접한다고 되겠냐!?”
처용을 향해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이런 던전에서 작용하는 열쇠가 평범한 열쇠일 리가 없었다.
아마도 이 던전과 무언가 상호작용을 하는 아티팩트가 분명했다.
그런데 부러진 아티팩트를 용접해서 고친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다.
“뭘 대단한 걸 하나 했더니! 한다는 게 고작-!”
마녀가 처용을 향해 소리칠 때.
“우선 지켜보자.”
닥터가 흥분하는 마녀를 말렸다.
“너는 저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마녀가 닥터를 향해 외치듯 묻자.
“어차피 저거 해결 못 하면 다 죽어.”
닥터가 진지하게 처용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역천군주의 방법이 통하길 바라야지.”
“칫!”
마녀는 닥터의 말에 더 소리치지 않고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시스템에 떠오른 남은 시간을 확인하고는.
“아…… 환장하겠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에 목덜미를 잡아 문지르며 말했다.
“이런 상황일수록 흥분하면 안 돼. 고혈압으로 죽을 수-!”
그 모습을 본 닥터가 ‘보이지 않는 죽음’을 떠올리며 말하자.
“조용히 해라.”
마녀가 화를 다스리려는 듯 눈을 감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하아.”
작은 한숨을 내쉰 닥터가 시선을 돌려 열쇠를 용접 중인 처용을 바라봤다.
-치지직! 치직!
처용이 용접 중인 열쇠의 상태를 본 닥터는.
‘……벌써, 저 정도로 복구했다고?’
속으로 작은 놀람을 표했다.
열쇠는 그저 단순히 부러지기만 한 상태가 아니었다.
창날에 맞아 ‘여러 조각으로 깨졌다’가 정확한 표현이었다.
처용은 작게 깨진 열쇠 절단면의 모양을 하나하나 맞춰가며 깔끔하게 복구하고 있었다.
-파직! 파지직!
깨진 조각들을 맞춰 용접시킨 후에는.
-슈륵.
투명한 액체가 담긴 유리병에 붓을 넣어 묻힌 후 외부에 발랐다.
그러자.
-스르륵. 스르륵.
액체가 균열이 진 틈 사이사이로 스며들고는.
-스스스.
깨진 흔적으로 보이는 균열이 점차 없어지기 시작했다.
처용이 바른 것은 마녀에게서 받은 스톤 슬라임 젤.
바위를 먹고 자라는 특수한 슬라임에게서 얻는 소재였다.
스톤 슬라임의 젤은 같은 금속과 금속을 깔끔하게 붙여 주는 특징이 있었다.
그 특성을 이용해 깨진 흔적들을 말끔하게 지운 것이었다.
이윽고 모든 용접이 끝나고.
“음…… 깔끔하게 잘 된 것 같네.”
처용이 복구한 열쇠를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처용이 열쇠를 들고 문으로 향할 때.
“상식적으로 저게 될 리가 없는데…….”
마녀가 처용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읊조렸다.
-딸각.
처용이 복구한 열쇠를 구멍에 끼우자, 다른 열쇠들처럼 깔끔하게 딱 들어맞았다.
“복구는 이상 없네, 딱 들어맞는 거 보니.”
벽에 끼운 열쇠를 바라보던 처용이 작은 미소를 띠며 말하자.
“뭐가 된 거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잖아!”
마녀가 처용을 향해 소리쳤다.
“거 참, 성질머리 하나는 더럽게 급하네.”
처용이 그런 마녀를 향해 혀를 차고는.
“열쇠를 꽂았으면 문을 열어야지.”
벽의 중앙에 서며 말했다.
처용이 벽 중앙에 손을 얹자.
-드르륵.
손을 얹은 부분이 움푹 파이며 새로운 구멍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곳에.
-딸각.
태룡전의 열쇠를 꺼내 끼워 넣었다.
그러자.
[히든 피스를 사용해 악몽을 클리어했습니다.]
[추가 악몽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처용의 앞에 시스템 문구가 떠올랐고.
-쿠구! 쿠구구!
앞에 보이는 벽이 갈라지며 환한 빛이 쏟아졌다.
“뭐야? 그 열쇠는 뭔데?”
마녀가 처용을 향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묻자.
“열쇠를 다 끼우고 가운데에 아무거나 꽂으면 열리는데?”
처용이 태룡전의 열쇠를 집어넣으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젠장.”
마녀의 감에 ‘무언가 당했다’라는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모두 가지.”
어쨌든 문은 열렸고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게 되었기에 더 신경 쓰지 않았다.
“……흐음.”
닥터 역시 처용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곧장 마녀를 따라 이동했다.
‘뭐, 알아채도 상관은 없지.’
처용은 마녀와 닥터의 반응을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사실…… 마지막 열쇠가 부러진 순간,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각각 구멍에 맞는, 단 하나뿐인 열쇠들이 훼손되면 돌이킬 수 없었다.
회귀 전에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기에 처용은 잘 알고 있었다.
-같이 죽는 거다! 한처용! 하하하!
강제로 동료로 묶였었던 ‘적’이 저지른 만행.
배신한 순혈자의 신관이었던 그는 처용과 동료들을 죽이기 위해 제 손으로 열쇠를 부수었다.
그 당시 어떻게든 이 장소를 빠져나가기 위해 부러진 열쇠를 고쳐서 끼워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문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모두가 절망하던 와중, 처용은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찾아낸 것이 바로 문 중앙에 있는 둥근 구멍.
우연의 일치인지 그 구멍의 크기는 태룡전의 열쇠가 딱 들어맞는 크기였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처용이 열쇠를 끼우자, 기적적이게도 문이 열렸었다.
처용이 아무 소용이 없는, 부서진 열쇠를 고친 이유는 벌 것 없었다.
‘덕분에 좋은 걸 얻었네.’
마녀와 닥터에게서 쓸만한 물건을 뜯어낼 수 있었으니까.
그들은 스스로가 처용에게 건네준 것들이 어떤 물건인지를 잘 모르는 눈치였다.
플래티넘 스틸은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희귀 금속이었다.
스톤 슬라임 역시 굉장히 보기 드문 몬스터.
그런 몬스터에게서 얻을 수 있는 소재이기에 상당한 값어치를 가진 물건이었다.
사실, 문을 열어주는 것을 핑계로 마인들에게서 필요한 것들을 더 뜯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있는 이 장소는 다름 아닌 나이트메어 던전.
내키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지만, 정말로 그들과 진심 어린 협력을 해야만 빠져나갈 수 있는 악몽이 나타날 수도 있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었기에, 처용은 크게 비협조적인 태도를 고수하지는 않았다.
다만, 확실하다는 판단이 서는 순간.
‘이 던전 속에서 모두 처리해야겠지.’
결정적인 순간에 마인들을 모두 처리하고 이 던전을 빠져나갈 계획이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