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검은 연미복에 흑백으로 나누어진 하회탈 반가면.
가면 아래로 드러난 금빛으로 번쩍이는 치아.
그런 ‘광대’가 사용한 성자의 스킬까지.
“오랜만이야. 빡빡이 Bro?”
조커가 씨익 웃음을 지으며 집행자를 향해 말했다.
진심으로 반가운 듯, 손을 흔들며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너! 너 이-!”
조커에게 그간 당한 게 많았던 집행자는.
“이! 광대 새끼! 죽여버리겠다!!”
진심 어린 반가움을 담은 조커의 인사에 격하게 반응했다.
-화르르륵!!
집행자에게서 분출하는 마기가 처용과 싸울 때보다 더욱 격하게 뿜어져 나왔다.
교단의 각 지부에 세워진 야훼의 동상을 부수고 개조(?)한 혐의.
대담하게 교단 본부를 습격하여 세상에 악명을 떨치게 만든 것.
그로 인해 마인들과 헌터들 사이에서 가장 무식하고 저돌적인 마인으로 유명해지게 만든 것.
집행자 본인이 저지르지 않은 근래의 모든 일은 조커에 의해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들이었다.
“산 채로 불살라 버리겠다!!”
-콰아아!
집행자가 디아블로의 힘을 더욱 거세게 끌어내며 격분했다.
헬카이트 디스트로이어 스킬을 사용할 때보다 더욱 강력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밑바닥부터 끓어오르는 격렬한 분노로 인해 스스로의 한계를 넘은 셈이었다.
“…….”
처용은 집행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시선이 조커에게 집중된 틈을 타.
-스르르.
몰래 그림자 속에 몸을 숨겼다.
“조오오오! 커어!!”
집행자는 조금 전까지 싸우던 처용은 완전히 망각한 듯, 분노의 대상을 향해 소리쳤다.
그 모습을 넌지시 바라본 조커는.
“환영 인사가 너무 거친데. Bro?”
뒤로 주춤거리듯 물러나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그리고.
“애들 싸움에 너무 들뜬 거 아닌가? 대악마 Bro?”
집행자의 도끼에 깃든 디아블로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놈은-.]
디아블로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이 건방진 놈이!”
집행자가 조커를 향해 다리를 박차 뛰어올랐다.
-화르륵!!
강렬한 검은 화염이 타오르는 흉악한 도끼날이 쇄도하자.
“오우? 무서워라.”
-샤악.
다리를 가볍게 박차 바닥으로 향하며 도끼날을 피했다.
“도망치지 마라!”
분노에 눈이 뒤집어진 집행자가 그런 조커를 추적했다.
바닥에 착지한 조커를 목표로 집행자가 도끼를 휘두르며 접근할 때.
“이제 퇴근할 시간이야. 대악마 Bro.”
조커가 품속에서 검은 구슬 같은 무언가를 꺼내며 말했다.
동시에.
-파삭!
구슬을 손에 쥐어 깨드리며 허공에 문자를 그리기 시작했다.
‘……대악마의 문자?’
조커가 그리는 검은 문자를 유심히 본 처용이 눈을 가늘게 뜨며 관찰했다.
그 정체불명의 문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대악마를 상징하는 문자와 매우 흡사했으니까.
“샤. 라이도우. 판데모니움…….”
조커가 집행자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며 문자를 그리고 정체불명의 언어를 내뱉자.
-화르르…….
집행자의 도끼에 붙은 검은 화염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네, 네놈이 어떻게 그걸-!]
이변을 느낀 디아블로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토했다.
“돌아가라. 디아블로.”
조커가 평소와는 다른 진지한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
그러자.
-피시시…….
집행자의 도끼에서 서려 있던 검은 화염.
그 화염 속에 일렁이든 찢어진 눈, 코, 입이 점점 희미해졌다.
‘연결을 강제로 끊어버렸다?’
그 광경을 본 처용이 눈을 크게 떴다.
조커가 저지른 짓은 다름 아닌 대악마와 신관의 연결을 강제로 끊어버린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악마인 디아블로와 신관인 집행자 사이를 연결하는 판데모니움의 통로.
그 통로를 강제로 폐쇄하여 디아블로의 마기를 차단한 것이었다.
더불어 성물에 깃든 디아블로의 의지까지 내쫓아 버렸다.
회귀 전 처용조차도,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처용은 이전 성녀가 성지를 방문할 때, 그녀와 연결되어 있는 성좌들의 연결을 끊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처용의 ‘성지’ 안이었다는 환경적 요소가 있었고.
또 성녀는 정상적인 신관이 아닌 병기, 즉 성좌들과의 연결 자체가 미흡한 존재였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성녀의 연결은 끊을 수 있었지만, 집행자는 이야기가 달랐다.
그는 다른 대악마도 아닌 삼천마, 디아블로의 신관이었다.
심지어 집행자는 디아블로와 상성이 아주 잘 맞는 마인.
그만큼 서로 간의 연결이 견고했다.
그런 연결을…… 조커는 강제로 끊어버린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수로?’
처용이 조커를 보며 당황한 만큼.
[도대체 무슨 짓을-!]
디아블로 역시 크게 당황하며 경악을 토했다.
그리고.
[네, 네놈은 설마-!?]
무언가를 눈치채고는 입을 열었지만.
-파사사…….
말을 다 끝맺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집행자의 도끼에 깃든 디아블로의 빙의가 완전히 해제되었다.
“무슨 짓을!?”
집행자 또한 디아블로와의 연결이 끊겼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경악을 질렀다.
“불타는 대악마 Bro는 내가 퇴근시켰는데?”
조커가 당황하는 집행자를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이 개새끼가!”
-화르륵!
집행자가 마기를 분출하며 줄어든 검은 화염의 몸집을 다시 키웠다.
“뒤져라!”
화염이 일렁이는 도끼날이 조커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찍었다.
조커는 흉악한 도끼날이 위에서 내려오는데도 가만히 웃고만 있었다.
이윽고.
-사각!
도끼날이 조커의 정수리로 떨어지며 조커가 반으로 잘렸다.
누가 봐도 조커가 당한 듯 보였지만.
“어디로 도망간 거냐!”
집행자는 조커가 이리 쉽게 당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난 도망치지 않았다고 Bro.”
반으로 잘린 조커가 실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마술 하나 보여줄까?”
-스르륵.
반으로 잘린 두 쪽의 조커가 스멀스멀 일렁이더니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장난질을-!”
그 모습을 본 집행자가 다시 도끼를 휘둘러 조커를 갈라버리려 하는 순간.
-피이이!
집행자의 발밑에서 푸르게 일렁이는 마법진이 나타났다.
동시에.
-우우웅!
마치 게이트가 열리듯 공간이 갈라지며 집행자가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공간 마법진? 어느 틈에……!?”
집행자가 당황한 순간.
“이번 역은 함정, 함정 역이야 Bro.”
조커가 집행자의 바로 앞에서 실실 웃으며 말했다.
“내리실 문은 ‘교단 본부’라고? 크크크.”
“너 이 개새-!”
놀리는 듯한 조커의 말에 집행자가 마기를 분출하며 저항하려 했지만.
-우웅.
빠르게 게이트가 닫히며 집행자를 다른 공간으로 보내버렸다.
‘몸이 반으로 갈리는 순간…… 집행자의 발밑에 마법진을 그렸다.’
조커의 행동을 면밀하게 지켜본 처용은 그가 무엇을 했는지 대강 알아챘다.
그는 스스로를 미끼 삼아 집행자의 시선을 돌리고 마나를 움직여 그의 발밑에 마법진을 그린 것이었다.
놀라운 건, 마법 중 가장 복잡하고 어렵다는 공간 이동 마법진을 빠르게 그렸다는 것이었다.
“이거. 이거…….”
집행자를 다른 장소로 보내버린 조커는.
“아주 위험한 짓거리들을 하고 있는 건 모르나 봐? Bro들?”
에블린, 정확히는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금빛 에너지를 응시하며 말했다.
“안 그래? 멍청한 여신 놈들아. 크크크.”
에블린에게서 시선을 뗀 조커가 아르테미스와 아마테라스를 향해 말하자.
[이 건방진 하계종이!]
[죽여 버리겠다!]
아마테라스와 아르테미스가 격한 반응을 보이며 분노했다.
특히.
[네놈이 내 신전에 저지른 모욕은 죽음으로 갚아라!]
한 번 조커에 의해 신전이 무너졌었던 아르테미스는 더욱 격한 분노를 토했다.
“으응? 나는 비치(bitch) 여신의 신전을 습격한 적이 없는데~?”
그런 아르테미스를 보며 조커가 어깨를 으쓱이며 조롱하듯 말했다.
그의 말한 비치는 많은 의미로 쓰이는 말이었지만.
가장 대표적인 의미는 바로 아르테미스의 상징인 ‘처녀’와는 완전히 반대된다는 것이었다.
[이 개 같은 하계종이…….]
당연히 그 말에 아르테미스의 눈이 뒤집어졌고.
[갈기갈기 찢어 개밥으로 만들어 주마!]
-콰아아아!!
달빛의 신력을 격류처럼 내뿜으며 분노를 표했다.
“오우? 무서워라.”
대놓고 여신을 도발한 조커는.
“오리온이 보면 지리겠는데?”
아르테미스의 과거와 관련된 인물을 언급하며 추가적으로 도발했다.
결국.
[전원! 저 광대 새끼를 죽여버려라!]
완전히 폭발한 아르테미스가 휘하 병사들에게 명령하고는 활을 치켜들었다.
[먼지가 되어 사라져라!]
-위이이!!
아르테미스가 달빛 신력을 화살에 응축시키며 권능을 발동하자.
“결전기 - 심장을 꿰뚫는 화살!”
제니퍼 역시 아르테미스를 따라 자신의 결전기를 발동했다.
이윽고.
-피이! 피이이!!
필사(必死)의 힘이 담긴 두 발의 화살이 조커를 향해 쏘아졌다.
조커는 미소를 지으며 웃기만 할 뿐,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 대신.
“그림자를 위해!”
“그림자들이여 영원하라!”
주변에 있던 섀도우 헌터들이 몸을 날렸다.
제니퍼와 아르테미스가 날린 화살에 섀도우 헌터들이 꼬챙이처럼 꿰뚫렸다.
동시에.
-콰콰쾅!!
목숨을 바친 섀도우 헌터들이 폭발을 일으키며 화살을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두 발의 화살은 각각 신관의 결전기와 신의 권능.
쉽게 저지되는 힘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섀도우 헌터들이 목숨을 버리며 막은 결과 위력이 조금씩 약해졌다.
그리고.
“무장 변환.”
마지막으로 데커드가 조커의 앞에 서며 화살을 막아섰다.
“세븐 베럴 샷건!”
-철컥!
그가 꺼낸 것은 일곱 개의 총구가 달린 두껍고 긴 형태의 샷건이었다.
“슬러그 디스트로이어 샷!”
데커드가 방아쇠를 당기자.
-콰아아!!
일곱 개의 총구에서 강력한 힘을 실은 일곱 개의 샷건 탄환이 발사되었다.
-쾅! 콰콰쾅!
두 발의 화살에 일곱 개의 샷건 탄환이 충돌했고.
-콰앙! 화아아!!
사방에 탄두 조각과 마나, 신성력의 파편을 흩뿌리며 폭발이 일어났다.
화살을 막아낸 데커드가 조커의 앞에서 물러나자.
“호우? 폭죽 좋은데?”
조커가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오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는.
“흐음? 나에게만 신경 쓰는 건 좋지 않아 보이는데 Bro들?”
에블린이 있는 방향을 응시하며 말했다.
“개소리를-!”
[죽여 버리겠다!]
그런 조커를 향해 이를 갈며 제니퍼와 아르테미스가 외친 순간.
-스르르.
그림자 속에 숨어 은밀하게 에블린의 지척까지 접근한 처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스르릉!
역천의 절을 꺼내 칼날 끝을 에블린을 향해 세웠다.
‘검성류 – 검의 비상(飛上)!’
칼날에 응축된 처용의 강기가 마치 바늘처럼 날카롭게 세워졌다.
찌르기인 검의 비상은 검성의 검술 중 신속함과 정확함을 자랑하는 검술이었다.
모두가 조커에게 이목이 집중된 순간, 처용이 노린 회심의 일격이었다.
[이런!]
아마테라스가 에블린에게 하던 작업을 멈추고 급하게 처용을 막으려 했지만.
[아니 된-!]
막기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이윽고.
-푸욱!
처용이 내지른 칼날이 에블린의 심장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목표를 달성한 처용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아마테라스의 표정이 일그러질 때.
-우우웅!!
에블린에게 모여 있던 금빛의 에너지가 환하게 빛나더니.
-팅!
심장에 박힌 칼날을 밀어내고 처용을 뒤로 밀쳐냈다.
“무슨-?”
금빛의 기운에 뒤로 밀려난 처용이 당황스러운 침음을 냈다.
분명 심장을 정확하게 관통하는 느낌이 있었다.
두 눈으로도 역천의 절의 칼날이 에블린의 심장을 정확하게 관통한 것을 보았다.
그런데 칼날이 뒤로 밀려나며 튕겨 나왔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찬가지로 다 끝났다고 생각했었던 아마테라스 역시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리고.
-우웅! 화아아!
처용을 밀어낸 금빛의 기운이 점점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
동시에 점점 번져나간 금빛의 기운이 처용에게 닿았고.
-살려 줘!
-죽여 줘!
-아니 죽고 싶지 않아!
-아파! 아프단 말이야!
처용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어떤-!”
갑작스럽게 흘러들어온 사념에 처용이 머리를 한 번 흔들었다.
‘저 꼬마가?’
머릿속에 울린 사념이 에블린의 목소리라는 것을 처용이 눈치챈 순간.
-화아아!!
에블린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금빛 에너지에 마기가 뒤섞였다.
그리고.
-우우웅!!
에블린을 중심으로 금색과 흑색이 섞인 블랙홀이 생성되고는.
-슈우우!
순식간에 크기를 키우며 주변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이 무슨 변수가-!?]
그 모습을 본 아마테라스가 자리를 박차 피했다.
“피해라!”
“위험-!”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을 직감한 이들이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으아아!”
“아 안 돼! 빠져나갈 수 없-!”
이미 블랙홀이 퍼진 범위 안에 갇힌 이들은 강력한 인력에 잡혀 빠져나올 수 없었다.
동시에 마치 검은 늪에 가라앉는 듯 서서히 어둠 속에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 중에는.
“이건 뭔……?”
에블린과 가장 가까이 있던 처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건…… 게이트? 던전이 열리는 건가?’
공간이 뒤틀리며 찢어지는, 던전이 생성될 때와 같은 느낌을 받은 처용은.
‘제시카! 그걸 쓸 거다! 당장 커맨더랑 같이 여길 빠져나가!’
제시카를 향해 급하게 전음을 보냈다.
이윽고.
-스르르!
처용을 포함한 블랙홀에 잡혔던 이들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다! 모두 물러난다!”
제시카는 처용의 경고를 허투루 듣지 않고 휘하 헌터들과 함께 빠르게 물러났다.
섀도우 헌터들 역시 싸움을 멈추고 모두 물러났다.
그러나.
“이런. 이런…….”
단 한 명, 조커만은 후퇴하지 않았다.
“하필이면 이딴 게 열리다니…….”
조커는 블랙홀을 바라보며 미묘한 표정을 짓고는.
“멍청하게 말려들면 어쩌자는 거냐…….”
방금 블랙홀에 의해 휘말린 이들 중 하나를 생각하며 말했다.
잠시 고민하는 듯 짧게 침묵한 조커는.
-슈르르르.
스스로 블랙홀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