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성물에 강림한 건가?”
처용이 상황을 파악하고는 표정을 굳히며 중얼거렸다.
지금 디아블로는 집행자의 도끼, 성물에 강림한 상태였다.
성좌가 신관의 몸이 아닌 성물이나 다른 물체에 깃드는 것.
빙의라고도 불리는 권능이었다.
그러나 지금 집행자의 도끼에 강림한 디아블로는 일반적인 빙의체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평범한 빙의로 나타난 존재보다 뿜어져 나오는 힘이 더 강력하게 느껴졌으니까.
도끼에서 감지되는 디아블로의 마기로만 따지면 이전 마수 실험장에서 강림했을 때와 비슷했다.
절대로 빙의만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르테미스…… 판데모니움에도 신전을 세웠군.’
처용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단번에 이해했다.
판데모니움에 세워진 아르테미스의 신전.
아마도 그곳을 통해 디아블로의 힘을 수월하게 끌어와 전송하는 듯 보였다.
지금 이 장소 또한 아르테미스의 신전이었으니까.
양쪽의 신전이 서로 통로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삼천마의 힘을 충분히 전송할 수 있는 듯 보였다.
“젠장.”
일이 수월하게 풀리길 기대했던 처용이 인상을 찌푸렸다.
[내 비록, 성물에 깃드는 것에 불과하지만, 네놈을 다시 마주하니 기쁘구나!!]
-화르르륵!
검은 화염이 더욱 거칠게 타오르며 디아블로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난 별로 보고 싶지 않았는데.”
처용이 집행자와 그의 도끼에 깃든 디아블로를 경계할 때.
“저희 도착했습니다!”
제시카의 목소리가 울리며 올림포스의 정예 헌터들이 현장에 나타났다.
동시에.
-이거 외부도 난리가 났는데?
군단을 소환해 발전소 외부에 다다른 커맨더의 통신도 들려왔다.
지금 데커드의 폭격으로 인해 테러를 당한 듯 파괴된 발전소 외부.
그곳 역시 섀도우 헌터들과 마인, 달의 사냥꾼 길드 헌터들이 뒤섞여 싸우고 있었다.
-섀도우 헌터들과는 마찰을 피하면서 전진할게.
커맨더가 처용에게 추가적인 통신을 보내왔다.
‘놈들의 도주로를 막고 방어를 준비해 주십시오.’
처용은 커맨더에게 ‘방어’ 위주로 진형을 짜며 전진할 것을 부탁했다.
-내가 그곳으로 가는 게 좋지 않아?
커맨더가 궁금한 듯 묻자.
‘그게…… 제가 조금 전에…….’
처용은 자신이 미리 준비해 둔 ‘보험’에 대해 설명했다.
-그건 또 언제!? 아무튼, 알았어! 제시카한테는 내가 따로 전할게.
커맨더가 처용의 말에 작은 경악을 표하며 대답했다.
막 커맨더에게 이야기를 들었는지 제시카가 처용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섀도우 헌터들 중에도 거물이 와 있었군요.”
데커드를 알아보며 말했다.
섀도우 헌터들은 모두 베일에 휩싸인 존재들이었지만, 조커와 더불어 몇몇은 알려져 있었다.
데커드, 그의 이명인 블래스터.
강력한 중화기를 소환하여 폭격을 퍼붓는 독특한 스킬을 지닌 클래스.
그는 조커와 더불어 나름대로 알려진 섀도우 헌터였다.
제시카는 데커드에게서 눈을 돌리고는.
“다시 볼 거라고 했었지…… 제니퍼!”
제니퍼를 싸늘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제시카! 이 빌어먹을 년이!”
[아테나…… 방해를-!]
제니퍼와 아르테미스의 화신체가 인상을 구기며 읊조렸다.
정면에는 섀도우 헌터들.
뒤에는 처용과 올림포스의 병사들.
게다가 그 뒤에는 커맨더의 군단까지 몰려오는 상황이었다.
“이런…… 아무래도 이 아이부터 어서 빼내야겠네요.”
상황이 좋지 않다고 판단한 릴이 아마테라스를 향해 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젠장…… 조금만 더 하면 되거늘!]
아마테라스가 분노를 머금은 목소리로 읊조리듯 말했다.
중요한 순간을 방해한 이들 모두, 당장 쓸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중요한 일부터 해야 했다.
눈앞에 있는 ‘적합자’, 에블린이 잘못되면 모든 게 끝장이었으니까.
-우우웅!
아마테라스가 에블린에게 일렁이며 모여 있던 금빛의 에너지를 조금씩 수거했다.
동시에 릴은 공간 이동을 준비하려는 듯, 복잡한 마법진을 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은.
‘검성류 – 검의 비명!’
역천의 절에 강기를 모아 에블린을 향해 쏘아 보냈다.
-촤자자자자!!
날카로운 강기의 조각들이 에블린을 향해 날아가자.
“어딜!”
-화르르륵!
집행자가 검은 화염을 에블린 앞에 퍼트려 벽처럼 세웠다.
-쿠구구!!
검은 화염의 벽과 처용의 강기가 충돌했다.
“방해할 순 없다! 역천군주!”
-화르르륵!
검은 화염이 타오르는 도끼를 치켜든 집행자가 처용을 향해 달려들었다.
-스릉!
그 모습을 본 처용은 역천의 절을 집어넣고 차륜 도끼를 꺼내 들었다.
동시에.
-화르륵!
화 속성 마나를 모아 도끼날에 화염을 일으켰다.
이윽고.
-콰콰쾅!!
검게 타오르는 집행자의 도끼날과 새빨갛게 타오르는 처용의 도끼날이 충돌했다.
[크하하! 내 힘의 조각이 떨어져 나간 것을 다루는 것인가? 재밌구나!]
집행자의 도끼, 검은 화염 속에 깃든 디아블로가 처용의 도끼를 알아보며 말했다.
“덕분에 자~알 쓰고 있다!”
처용은 그런 디아블로의 말에 답하며 화염의 위력을 키웠다.
-콰아아!
집행자 역시 밀리지 않겠다는 듯 검은 화염의 위력을 더욱 키웠다.
잠시 팽팽하게 맞서나 싶었지만.
[크하하하!!]
디아블로가 본격적으로 마기의 힘을 키우자.
-치이이!
처용의 화염이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네놈이 다루는 나약한 화염이 내 화염을 이길 수 있다 생각하느냐!]
디아블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권능인 검은 화염.
흑염은 화 속성 계열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힘이었다.
아무리 처용이 많은 힘을 회복했다 하지만.
디아블로의 흑염은 처용의 화염보다 ‘상성’상 우위였다.
처용이 점차 밀리려는 때.
-화르륵!
처용의 도끼날에 타오르는 화염이 새하얗게 변하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디아블로가 새하얀 화염을 느끼며 놀람을 표하자.
“나 역시.”
처용이 자신감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상위의 화염을 다룰 수 있게 됐거든.”
-화르르륵!!
처용을 거칠게 밀어붙이던 검은 화염이 순백색의 화염에 가로막혀 밀려났다.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디아블로의 흑염.
그리고 무한한 생명력을 가진 크루마의 백염.
파괴의 화염과 생명의 화염.
같은 화염이라 해도 서로 성향이 확실하게 다른 힘이었다.
하지만 둘 다 일반적인 화염이 아닌, 오랜 세월을 살아온 강력한 존재의 권능이었다.
흑염과 백염 둘 다 서로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 거친 불길을 뿜으며 맞섰다.
[그렇군! 태초의 마수! 네놈과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로구나!]
디아블로가 처용이 발휘하는 백염을 알아보며 외쳤다.
[보면 볼수록 놀랍구나! 크하하!]
디아블로의 웃음소리와 동시에 집행자와 처용이 재차 충돌했다.
-콰아아!!
강렬한 불꽃이 폭발하듯 퍼졌고 그 주변이 흑색과 백색의 불꽃으로 나누어지며 거세게 요동쳤다.
흑염과 백염, 둘 다 밀리지 않겠다는 듯 서로 격렬하게 부딪히며 팽팽하게 맞섰다.
그 모습을.
“…….”
“…….”
섀도우 헌터들과의 싸움을 멈추고 뒤로 물러난 뤼장첸과 양천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특히 뤼장첸은 입꼬리를 꿈틀거리며 비틀린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마치, 원하는 무언가를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둘은 잠시 눈빛을 주고받고는.
“올림포스! 우리는 이 일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다!”
양천이 제시카를 향해 외치며 다리를 박차 물러났다.
뤼장첸 역시 양천을 따라 이 장소를 벗어났다.
“개소리를-!”
제니퍼와 달의 사냥꾼 길드의 헌터들, 아니 마인들과 대치하고 있던 제시카가 소리쳤지만.
“우리는 ‘조사’ 때문에 이곳에 있었을 뿐이다!”
양천이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빠르게 이 장소를 벗어나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제시카가 집행자와 맞서고 있는 처용을 잠시 바라봤다.
그때.
-그냥 무시해.
처용의 전음이 들려왔다.
그 말을 들은 제시카가 다시 싸움에 집중했다.
처용 역시 이 장소를 탈주한 옥황상제의 신관을 무시하기로 했다.
어차피 그가 이곳에서 얻어야 할 힘은 이미 물 건너간 셈이었으니까.
당장 중요한 것은 재앙의 나무, 에블린과 마인들이었다.
“차륜격!”
-화르륵!
처용이 도끼날에 새하얀 화염이 회전시킴과 동시에.
‘천마신공 - 만근격!’
묵직한 무게감을 가득 실어 집행자를 향해 휘둘렀다.
“집행한다!”
-화아아!!
집행자 역시 도끼날에 검은 화염을 회전시키며 앞으로 크게 휘둘렀다.
-콰쾅!!
강렬한 파괴력을 실은 두 도끼날이 충돌하자 사방에 불꽃이 퍼지며 주변을 파괴했다.
강렬한 한 번의 충돌 후 처용과 집행자가 서로 물러났다.
[위력을 올릴 것이다! 버텨라.]
“문제없습니다.”
디아블로의 말이 울리자 집행자가 강하게 대답했다.
-콰아아!
집행자의 도끼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화염이 더욱 커졌고.
“크아아아!!”
검은 화염에서 더욱 강력한 마기를 공급받는 집행자가 괴성을 질렀다.
“……괜히 삼천마의 신관이 아니라는 건가?”
처용이 집행자에게서 흘러나오는 강렬한 마기를 느끼며 넌지시 말했다.
일반적인 마인들은 대악마가 직접 공급하는 마기를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집행자는 대악마 중 가장 강력한 삼천마의 마기를 주입받는데도 버티고 있었다.
[전부 날려 버려라!]
“알겠습니다.”
디아블로의 명령에 집행자가 즉시 대답하고는.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마기를 도끼날에 응축시키며 도끼를 위로 치켜들었다.
“헬카이트 디스트로이어!”
-콰아아!
집행자가 스킬을 발동하며 마기를 모으자.
“야이! 미친놈아!”
그 모습을 본 릴이 기겁하며 외쳤다.
“다 죽일 셈이야!?”
아직, 에블린과 마인들을 대피시킬 이동 마법진이 다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집행자가 가장 파괴력이 강력한 스킬을 쓰려 하고 있었다.
헬카이트 디스트로이어.
집행자의 스킬 중 가장 과격하고 파괴적인 스킬이었다.
“대악마나 그 신관이나……!”
처용이 도끼를 움켜쥐며 대비했다.
“전쟁군주의 방벽!”
제시카 역시 휘하 헌터들과 함께 뒤로 물러나며 방어 스킬을 사용했다.
올림포스 소속 헌터들이 제시카를 중심으로 모임과 동시에.
-쩌저적!
그들 주변으로 녹색의 보호막이 생성되었다.
“전부 부숴 주마!!”
집행자가 도끼를 아래로 내려치며 응축한 힘을 폭발시켰다.
-콰아아!!
강렬한 화염이 사방으로 솟구치며 주변이 모두 파괴되기 시작했다.
“모두 알아서 피해라!”
릴이 에블린을 보호하며 마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디아블로! 감히 내 신전을!]
아르테미스가 디아블로를 향해 이를 아득바득 갈며 외쳤다.
동시에 어떻게든 신전이 무너지는 막기 위해 땅에 신력을 주입하며 주변을 안정시켰다.
아마테라스도 에블린에게 일렁이는 금빛 기운을 회수하며 방어에 힘을 보탰다.
그리고.
“잠시 물러난다.”
데커드 역시 섀도우 헌터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뒤로 물러나고는.
“……오셨습니까?”
누군가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정중하게 말했다.
-콰콰콰!!
집행자의 스킬로 주변이 붕괴되며 검은 불길이 더욱 크게 치솟을 때.
-화아아!
갑작스럽게 새하얀 빛이 하늘에서 내리쳤다.
동시에.
“디바인 생츄어리.”
빛 속에서 한 사람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내며 성자의 스킬을 발동했다.
-우우웅!!
주변을 신성한 보호의 영역으로 만드는 빛의 힘이 집행자의 스킬을 억누르기 시작했다.
“무슨!?”
자신의 스킬이 점차 제압당하는 광경에 집행자가 당황스러운 외침을 토했다.
그리고.
“……설마?”
마치 데자뷰처럼, 이전에도 있었던 듯한 느낌에 위를 올려다보았다.
“성자? 이곳에 온다고는 듣지 못했는데?”
제시카 역시 위를 올려다보며 읊조렸다.
이번 일에 대해서 성자와 의논한 적은 없었으니까.
제시카의 말을 들은 처용은.
“……성자가 아니야.”
빛의 마나 속에 일렁이는 기운이 성자와는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빛을 등지며 허공에 떠 있는 인물을 바라봤다.
“샤이닝 로우!”
빛과 함께 나타난 정체불명의 인물이 두 손을 모으며 재차 스킬을 발동하자.
-화아아!
새하얀 깃털이 비처럼 쏟아지며 집행자가 퍼트린 불꽃을 꺼뜨렸다.
하늘에서 모여든 빛이 깃털로 변하며 모두 떨어지자.
-화아아…….
빛에 휩싸여 있던 정체불명이던 인물의 모습이 점차 드러났다.
가장 먼저 드러난 것은 얼굴.
그것도 흑백으로 나누어진, 웃는 형상의 하회탈 반가면이 보였다.
그리고 가면 아래로 드러난 입이 씨익 웃음을 보이자.
“이거이거…….”
금빛으로 번쩍이는 이빨이 드러났다.
갑작스럽게 난입한 인물의 정체는 다름 아닌.
“아주 오랜만이야. Bro?”
그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조커였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