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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227화 (227/726)

#227화

“언제 이곳에 자리 잡은 거지?”

발전소 내부, 어두운 통로를 걸어 나가는 뤼장첸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도…… 조커에게 신전이 부서진 이후 얼마 안 된 것 같다.”

뤼장첸의 말에 양천이 곰곰이 생각하며 답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이 장소를 미리 눈여겨본 것일 수도 있겠지.”

“신전 관리도 똑바로 하지 못한 것들이! 감히 내 물건을 차지해!?”

양천의 말에 뤼장첸이 분노를 머금으며 외쳤다.

그런 그들의 뒤로.

-스르르.

처용이 어둠을 틈타 대화를 엿들으며 은밀하게 뒤따르고 있었다.

‘……서로 원만한 협력이 되지 않은 건가?’

조금 전 대화를 떠올린 처용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마 예상으로는 이 장소를 미리 점거하고 있는 놈들은 마인들.

그중에서도 아르테미스의 병사들, 제니퍼일 확률이 높았다.

조금 전 나타의 신관, 양천이 한 말 역시 그 증거였다.

조커에게 신전이 부서진 성좌는 단 한 명밖에 없었으니까.

물론, 진짜 조커가 아닌 조커로 변장한 처용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신전을 잃은 제니퍼가 곧장 신전을 재건축한 장소가 바로 이곳이라는 점이었다.

이렇게 빠르게 신전을 재건축한 것 역시 예상하지 못했지만.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다.’

처용은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제니퍼가 이 장소에 신전을 재건축한 덕분에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 놈의 계획이 차질을 빚었다.

바로 이곳에 퍼진 마나와 방사능 에너지를 노리는 뤼장첸.

회귀 전, 그가 다루는 힘은 제니퍼의 암살보다도 위협적이었으니까.

뤼장첸이 회귀 전 다뤘던 가장 강력한 능력은 바로 ‘마나 방사능’이라는 스킬이었다.

적들을 분해하고 그 힘을 일부 흡수하여 강력한 방사능을 만들어내는 스킬.

포식군주라는 이름에 걸맞은 아주 끔찍한 능력이었다.

게다가 그가 마인이 된 이후 그 힘은 더욱 강력하고 흉악하게 변했었다.

200레벨이 넘는 아주 귀중한 헌터들을 대다수 사망하게 만들었으니까.

그의 배신으로 인해 죽은 헌터 중에는.

-하늘 위에는 그 무엇도 필요 없다! 태양조차도 말이지. 크크.

태양신 라의 신관 라진도 포함되어 있었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군.’

뤼장첸과 양천을 추적하는 처용이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직 뤼장첸은 이곳에 퍼진 힘의 근원을 흡수하지 못한 상태였으니까.

처용이 어떻게 할지 계획을 떠올리며 추적을 계속할 때.

“분명히 꺼지라고 했을 텐데?”

뤼장첸과 양천의 앞쪽에서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들의 앞길을 막은 긴 금발에 활을 쥔 벽안의 여성.

제니퍼 로스차일드였다.

그리고.

-화아아!

[감히 신의 말을 허투루 듣는 것이냐?]

제니퍼의 옆에서 달빛이 뭉치더니 아르테미스의 화신체가 강림했다.

성좌가 나타나자 뤼장첸과 양천이 인상을 찌푸리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저 망나니 새끼가 그냥 돌아온 이유가 있었군.’

상황을 지켜보던 처용이 이해가 되었다는 듯 속으로 읊조렸다.

아무리 뤼장첸이 옥황상제의 신관이고 개 같은 성질머리를 가지고 있다지만.

길을 가로막는 이는 그에 못지않은 미친 성격을 자랑하는 이들이었으니까.

제니퍼 혼자였다면 모르겠지만, 성좌인 아르테미스까지 있었다.

‘신전이 있는 건 확실하네. 그리고…….’

아르테미스의 화신체를 노려보던 처용이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밖에 퍼진 기묘한 에너지가 신전의 은폐 역할을 하고 있었던 건가?’

새로 지은 아르테미스의 신전은 발전소 전체를 영역으로 삼고 있었다.

외부에 퍼진, 방사능과 마나가 섞인 안개는 침입자를 배제하고 신전을 감춰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내부에 은밀하게 흐르는 기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신전에서 새어나가는 신전 특유의 기운을 막고 감추어주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

은밀하게 신전을 세우기에는 아주 안성맞춤의 조건이 갖춰져 있었다.

그러나 아르테미스와 제니퍼가 꿈에도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방사능 덕분에 동화경이 더 완벽해진 셈인가?’

자연 그 자체와 동화되는 것으로 스스로의 모습을 숨기는 동화경.

아무리 동화경이라 해도 아르테미스의 화신체 앞에서는 들킬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신전을 감춰주는 방사능 에너지가 동화경을 통해 그림자 속에 숨은 처용도 숨겨주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처용이 방사능 에너지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이불처럼 덮고 있었다.

방사능 에너지가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 에너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접근하는 생명체만 공격할 뿐 자연적인 사물이나 건축물 등은 공격하지 않았다.

처용이 그림자와 동화되어 모습을 감춘 순간, 방사능이 반응하지 않은 이유였다.

“저희는 러시아 정부와 거래를 했습니다. 달의 여신님.”

나타의 신관, 양천이 아르테미스를 향해 정중하게 말했다.

“이곳에 흐르는 에너지를 처리하기로 말입니다.”

양천은 왜 자신들이 이곳에 왔는지 설명했다.

“저희는 이 장소에 신전이 세워진 것을 몰랐습니다. 미리 알리셨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당장 꺼져라! 이 장막은 나에게도 필요하느니라!]

양천의 말에 아르테미스가 문전박대하듯 거칠게 말했다.

그러자.

“……저희 천교가 여신님의 신전 복구에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압니다.”

양천이 진지한 목소리로 ‘사실’을 언급했다.

“저희를 이리 대하시면 곤란하실 겁니다.”

[이 건방진 하계종이!]

아르테미스가 양천을 향해 활을 들어 올리는 순간.

[네 이놈!]

-화르르륵!

양천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화염이 도깨비의 형상을 취하고는 아르테미스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네까짓 년이 감히 내 신관을 해치려 하느냐!]

화염이 뭉쳐지며 만들어진 도깨비.

양천의 스킬을 이용해 잠시 강림한 나타가 아르테미스를 향해 거친 불길을 뿜으며 일갈했다.

[당장 꺼져!]

아르테미스 역시 밀리지 않겠다는 듯 나타를 향해 외쳤다.

그때.

“진정해 주십시오.”

양천이 두 성좌의 마찰을 말리려는 듯 입을 열었다.

“같은 동맹끼리 싸워봐야 좋을 건 없습니다.”

싸움을 말린 양천이 진지한 목소리로 아르테미스를 향해 말했다.

“왜 저희를 막는지, 이유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도 상제님께 보고를 올려야 합니다.”

양천이 천교의 주신, 옥황상제를 언급하자.

[이 건방진 수컷 놈들이……!]

아르테미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세차게 구기고는 활을 내렸다.

[내 신전에서 소란을 피우면 죽여 버릴 것이다.]

-화아아.

뤼장첸과 양천을 노려보며 말한 아르테미스가 화신체를 해제하며 사라졌다.

그리고.

“이곳에서 본 것들은 머릿속에서 빨리 지우는 게 좋을 거야.”

제니퍼가 양천과 뤼장첸을 향해 말하고는 뒤돌아 나아갔다.

그런 제니퍼의 모습을 본 뤼장첸과 양천, 러시아 정부 소속 헌터가 뒤따랐다.

그때.

“그대는 여기까지로군.”

양천이 러시아 정부 소속 헌터를 향해 넌지시 말한 순간.

-푸확!

양천의 창날이 헌터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커-!”

헌터는 갑작스러운 기습에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졌고.

-콰직!

바닥으로 쓰러지는 그의 목을 뤼장첸이 잡아챘다.

“안 그래도 기분 거지 같았는데 잘 되었네.”

뤼장첸이 잔혹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악식(惡食)!”

스킬을 발동했다.

-푸화아아!

뤼장첸의 손이 검게 일렁이더니 검은 가루 같은 오오라를 뿜었다.

그 오오라가 목을 잡힌 헌터를 향해 달라붙었다.

-수르르. 쩌저적!

헌터의 몸에 수분이 빠져나가듯 급격하게 쪼그라들었다.

이윽고.

-푸석.

완전히 말라비틀어져 죽어버린 헌터가 지푸라기가 낼 법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쯧, 고작 B급이라 그런가. 영 만족스럽지가 않군.”

시체를 내던진 뤼장첸이 불만을 토로하며 걸어가자.

-화악! 촤아악!

창을 휘둘러 묻은 피를 덜어낸 양천 역시 그를 따라 이동했다.

“야만스러운 놈들.”

제니퍼가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그 광경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특히, 방금 스킬을 쓴 뤼장첸을 향해 진심으로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요?”

양천이 그런 제니퍼를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신의 검객 길드에서 못한 일을 이곳에서 하고 있다.”

제니퍼가 양천의 말에 대충 대답했다.

“그 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은 건가?”

양천은 대충 대답한 제시카의 말이 무슨 뜻인지 곧장 깨닫고는 말했다.

그리고 그런 제니퍼가 대충 내뱉은 말을 알아들은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이곳에서 데미갓 프로잭트 실험을 이어서 하고 있던 건가?’

바로 그들을 추적하고 있는 처용이었다.

‘지금 바로…….’

아주 중요한 단서를 잡은 처용이 잠시 고민했다.

이쯤에서 추적을 그만두고 커맨더와 제시카에게 연락한 다음, 공격을 해야 하는지를.

하지만.

‘아직, 정보가 더 있을 것 같다.’

처용은 생각을 접고 일단 추적을 계속했다.

지금 발전소 지하로 향하는 제니퍼와 뤼장첸 양천을 봤을 때.

분명 무언가가 더 있다고 느껴졌다.

추적을 계속하자, 처용은 곧 지하 깊숙한 장소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전 북한에 지어진 신전과는 다르게 넓은 지하 공동 형태의 신전이었다.

그리고.

“어머나? 불청객이 찾아온 줄 알았더니, 손님이었어?”

교태 섞인 소름이 끼치는 목소리가 울려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아스모데우스의 신관!’

의회주 중 하나이자 아스모데우스의 신관, 릴이었다.

처용이 릴을 노려보며 속으로 읊조리고는 주변을 더 살펴보았다.

그러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여러 마인들과 찐득한 마기를 내뿜는 상급 마인들이 다수 보였다.

문제는.

-우드드득! 우드득!

공동의 중앙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금빛 에너지에 휩싸여 있는, 로브를 뒤집어쓴 소녀도 함께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 소녀는 바로 처용이 재앙의 나무로 기억하고 있는 마인, 에블린이었다.

그녀 옆에 또 다른 상급 마인, 커맨더의 옛 동료인 라이언이 있는 것으로 봐서 확실했다.

“어때? 반응이 좀 있으려나?”

릴이 에블린에게 다가오며 말한 순간.

-화아아!

에블린의 옆에 밝은 빛이 뭉쳐지더니.

[확실히 가능성이 있다.]

아마테라스의 화신체가 나타나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의 눈이 부릅떠졌다.

‘어디로 튀었나 했더니……! 아르테미스하고 합류했던 건가!’

속으로 이를 갈며 읊조린 처용은 곧장 루나를 통해 커맨더에게 연락을 보냈다.

천교의 확실한 배신.

체르노빌 발전소 지하 자체가 바로 아르테미스의 신전이라는 정보.

의회주에 이어 다수의 상급 마인들까지 체류하고 있는 신전 내부 상황.

게다가 이곳에 나타난 아마테라스의 화신체까지.

정보를 빠르게 전한 처용은 우선 주변을 다시 면밀하게 살폈다.

당장 뛰쳐나가 깽판을 치고 싶었지만, 신전 내부에 있는 이들은 만만한 이들이 아니었다.

‘혹시 모르니…….’

처용은 혹시라도 일이 실패할 것을 대비해 한 가지 ‘보험’을 준비했다.

준비를 마친 처용이 우선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을 때.

-전부 죽여라!!

돌연 큰 외침이 울려왔다.

동시에.

-콰콰콰쾅!!

신전 지하가 거세게 흔들리며 폭음이 울렸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모두가 당황할 때.

“크, 큰일입니다!”

B급 마인 하나가 공동에 들어와 릴에게 보고를 올렸다.

“그림자 놈들이…… 쳐들어 왔습니다!”

“……뭐?”

릴이 부하 마인의 보고에 의문을 표한 순간.

-콰콰쾅!!

재차 강렬한 폭음이 울렸고.

-우르르!

공동의 천장 일부 무너져 내리며 하늘이 드러났다.

“하? 이 무슨 무식한 짓을?”

릴이 드러난 천장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뚫린 천장 사이로 보이는 것은 무너진 발전소의 잔해와 그것들을 태우는 화염뿐이었으니까.

[감히! 또 내 신전을 공격하다니!!]

-화아아!

신전이 공격받자 아르테미스의 화신체가 격노를 내지르며 나타났다.

그때.

-샤악! 탓! 탓!

시커먼 옷에 검은 가면을 쓴, 열 명의 인영이 아르테미스의 화신체에게 달려들었다.

성좌의 화신체를 향해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모습.

목숨을 버리는 행위였다.

[이 쓰레기 같은 놈들이! 어딜 가까이 오느냐!]

-쐐액!!

아르테미스가 손 위로 달빛을 뭉쳐 칼날을 만들고는 달려드는 이들을 향해 휘둘렀다.

-사각!

무모하게 달려들던 열 명의 섀도우 헌터들의 허리가 잘려나갔다.

섀도우 헌터들이 당한 순간.

“그림자들이여 영원하라!”

허공에서 허리가 잘린 열 명의 섀도우 헌터들이 변조된 기계음 같은 목소리로 일제히 외쳤다.

그러자 섀도우 헌터들의 심장 부근과 가면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피이이! 콰콰쾅!!

허리가 잘려나간 채 모두 폭발을 일으켰다.

[이 미친 하계종들이-!]

아르테미스가 달빛으로 빛나는 보호막을 둘러 폭발을 막고는 황당한 표정으로 외쳤다.

그녀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샤샥! 샤샥!

이번엔 열다섯의 섀도우 헌터들이 아마테라스 앞에 나타났다.

그들뿐 아니라.

“전부 죽여라!”

뚫린 공동의 천장 사이로 검은 인영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그리고.

‘…….’

현장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선 처용이 이 상황을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특히, 처용의 눈은 죽는 순간 자폭을 일삼는 섀도우 헌터들을 향해 있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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