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처용이 투쟁의 장에서 승리하고 하루 뒤.
“무라키 요키라는 길드장도! 임시 가주도 아니다!”
무라키 가의 저택 앞에 선 야스라가 모두가 들으라는 듯 크게 외쳤다.
“더 이상 나를 막지 마라.”
야스라가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헌터들을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상 피를 더 흘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야스라의 말에 길을 막아선 헌터들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
그때.
-쾅!
“이 가문의 배신자 녀석이!”
저택의 정문이 거세게 열리며 나이 든 남자가 걸어 나왔다.
“네 형을 배신하고 가문을 배신한 녀석이 무슨 낯짝으로 찾아온 것이냐!”
“……가주님.”
야스라가 자신을 향해 거센 비난을 쏟는 남자.
아버지이자 무라키 가의 가주, 무라키 하시모토를 향해 말했다.
“저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러 왔습니다.”
야스라의 말에 하시모토가 인상을 세차게 구겼다.
“당장 저 배신자를 붙잡아라!”
하시모토의 말에 헌터들과 무기를 들었고.
-샤삭.
열 명의 시노비가 추가로 나타났다.
그때.
“쯧쯧쯧. 다 끝났거늘 아직도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게요?”
야스라의 뒤에서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걸어오는 노인.
요시다가 무라키 가의 가주, 하시모토를 향해 혀를 차며 말했다.
“일본이 아시아를 지배해야 한다는 망상을 아직도 하고 있을 줄이야.”
무라키 가와 일본의 힘을 크게 키워야 한다.
그 힘으로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을 지배하고 일본이 아시아 전체의 맹주가 되어야 한다.
오래전부터 가주들을 통해 내려오던 숙원 같은 말이었다.
물론.
“아무리 인간이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지만…….”
요시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사상을 따르는 이가 아니었다.
“두 번이나 실패한 어리석은 선택을 네놈도 할 줄은 몰랐다.”
지구 역사상 일본이 일으킨 두 번의 큰 전쟁.
그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는지,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권력과 힘에 미친 지배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은 신경 쓰지 않는다.
심지어 같은 나라의 국민들이 고통받는 것조차도…….
요시다는 그런 사상을 용납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멍청하고 바보 같군.”
“네까짓 놈이 무엇을 안다고 지껄이는 것이냐!”
하시모토가 요시다를 향해 거세게 외쳤다.
“쓸모를 다한 낡은 도구 따위가 감히 나서는 것이냐!”
“우매하고 어리석은 놈.”
요시다는 한때 자신이 모셨던, 이제는 권력이라는 괴물에 잡아먹혀 추하게 변한 이를 향해 경멸 어린 시선을 보냈다.
“당장 저것들을 내 앞에서 치워라! 당장!”
하시모토의 명령이 다시 한번 울리고 시노비들이 가장 먼저 움직이려 할 때.
“모두 물러나라!”
-샥!
야스라와 요시다 그리고 헌터들 사이에 가토가 나타났다.
“가토 상!”
시노비들이 가토를 알아보고 행동을 멈추었다.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하다.”
가토가 시노비들을 향해 나지막하게 말하자 시노비들이 뒤로 조금 물러났다.
그러자.
“감히! 버려진 도구 따위가 뭐 하는 짓이냐!”
하시모토가 가토를 보며 거세게 외쳤다.
“당장! 가문의 법에 따라 할복해라! 가토!”
“…….”
“감히! 도구 따위가 내 명령을 거스르는 것이냐!!”
하시모토가 인상을 세차게 구기며 소리를 지를 때.
“뭐야? 아직도 안 끝났어?”
처용이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다가오며 말했다.
“이쪽은 정리된 지가 한참인데 말이야.”
야스라가 있는 곳으로 처용이 걸어오며 나타나자.
“이쪽도 마무리가 되었어.”
“여기도 끝났어.”
커맨더의 파티원들, 그리고 연화를 포함한 여럿이 나타나 야스라의 옆에 섰다.
마지막으로.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츠쿠요미의 신관 미우가 나타나 커맨더와 처용을 포함한 이들이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런 미우의 뒤로 그녀와 야스라를 따르는 신의 검객 길드의 헌터들도 추가로 나타났다.
그들이 한 일은 간단했다.
아직도 요키라와 아마테라스를 따르는 이들을 모두 정리하는 것.
지금 신계에서도 스사노오와 츠쿠요미를 포함한 이들이 이자나기 성운을 정리하고 있었다.
처용 일행이 야스라와 미우를 도와준 이유는 간단했다.
무라키 가의 가주를 포함한 세력들이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고 쓸데없는 짓을 하려 한다는 것.
그리고.
-가주님이 마인들과 작당하여 무언가를 꾸미려는 것 같습니다.
야스라가 무언가 수상한 증거를 잡은 것 역시 그 이유였다.
게다가.
-다른 가문, 아마도 로스차일드와도 연결된 듯 보입니다.
야스라가 말하는 로스차일드는 제시카 측이 아니었다.
바로 보수파 세력, 제니퍼 측이었다.
아마테라스가 태초의 조각을 들고 잠적한 것도 신경이 쓰이는 상황.
처용은 더 이상 일본과 무라키 가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에 서둘러 정리하고자 했다.
물론.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
야스라의 입장에서는 아주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야스라! 네놈이 기어코 조센징들에게 이 나라와 가문을 바치려는 것이냐!!”
권력의 정점에서 군림해 온 이들에게는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상황이 좋지 않다고 판단한 하시모토가 품속에서 보패처럼 생긴 아티팩트를 꺼냈다.
“미우! 당장 나를 여기서 탈출시켜라!”
아티팩트에서 마기가 새어 나옴과 동시에 하시모토가 미우를 보며 명령을 내렸다.
본래는 ‘낙인’으로 인해 미우가 하시모토의 명령에 따라야 하지만.
“…….”
미우는 경멸 어린 시선으로 하시모토를 바라볼 뿐, 그 말에 따르지 않았다.
“저 언니에게 찍혔던 낙인이 지워진 걸 모르나 본데요?”
커맨더의 옆에 있던 윤아가 넌지시 말하자.
“와, 저 언니를 또 조종하려고 한 거야? 쓰레기가 따로 없네.”
연아가 하시모토를 향해 경멸을 내뱉었다.
“이이!”
그 말에 분노가 차오른 하시모토가 이를 갈았다.
하시모토는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의 모든 나라를 ‘지배’ 대상으로 여기는 권력자.
“이런 천박한 조센징 년들 따위가 감히 나한테-!”
그가 윤아와 연아를 향해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말에 커맨더를 포함한 이들이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콰쾅!!
처용이 순식간에 하시모토 앞에 나타나 목을 틀어쥐고 들어 올렸다.
“커, 커어……!”
하시모토가 목을 붙잡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발버둥 치기도 전에.
“깔끔하게 죽고 싶지는 않나 봐?”
처용이 살기를 가득 담아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 모습에 주변에 있던, 아직 무라키 가를 따르는 헌터들이 움찔했지만.
“뒤지기 싫거든 그냥 가만히 있어라.”
미우, 야스라와 함께 요시다가 다가오며 말했다.
“멍청한 정도가 아니라 등신이 된 건가? 그깟 권력이 네 목숨을 지켜주더냐?”
하시모토는 이 자리에서 가장 건드리지 말아야 할 이를 생각 없이 자극해 버렸다.
그가 무라키 가의 가주이든 다른 무엇이든 처용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처용은 성좌조차도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존재였으니까.
“이놈한테서 더 얻을 정보는?”
처용이 하시모토의 목을 틀어쥔 채 다가온 이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저 인간 머릿속에 다른 정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하지 않을 테니 그냥 죽여버리는 게 좋을 겁니다.”
미우가 하시모토를 경멸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가족, 아버지를 향하는 시선이라기에는 믿기 힘든, 악감정이 한가득했다.
“미, 미우?”
그런 미우의 거침없는 태도에 야스라가 놀람을 표했다.
그 옆에 있던 요시다도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미우는 그런 이들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고.
“가능한 한 고통스럽게요.”
그간 쌓인 한을 드러내듯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말을 들은 처용은.
“대가리에 정보가 있다면 뽑아 봐야지.”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왼손의 검지를 피며 마나를 둘렀다.
-푸욱!
처용의 검지가 하시모토의 관자놀이에 박혔다.
“으어! 으어억!!”
하시모토는 머릿속이 강제로 헤집어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오자 비명을 질렀다.
이윽고 최근 하시모토의 기억을 처용이 확인하기 시작했다.
-체르노빌 지하 던전? 크크, 아무도 모를 만하군.
기억 속 하시모토가 누군가를 만나며 했었던 말.
“찾았다.”
아주 유용한 정보를 하나 찾은 처용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필요한 것을 찾은 처용은.
“원한이 있으면 직접 푸는 게 가장 좋아.”
미우에게 현실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며 이제 필요 없어진 하시모토를 내던졌다.
“크헉!”
하시모토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미우 앞에 엎어졌다.
“크윽! 네년이 아비의 은혜를 안다면! 당장…… 나를 구하거라!”
바닥에 엎어진 하시모토가 미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런 뻔뻔한 모습을 무표정으로 아주 잠시 응시한 미우는.
“거울의 칼날.”
공격 스킬을 발동하는 것으로 하시모토의 말에 대답했다.
-푸부부북!
허공에서 생성된 거울 조각이 하시모토의 사지에 틀어박혔다.
“크어억!!”
살을 찢는 날카로운 고통에 하시모토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 모습을 본 미우는.
“내가…… 그리고 내 어머니가! 지금껏 받은 고통에 비하면 한참 부족해!”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격한 감정을 담아 외쳤다.
야스라와 요시다를 포함한 이들은 처음 보는 미우의 모습에 당황한 듯 보였지만.
‘원한은 풀어야지.’
처용은 그런 미우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동시에 낙인이 풀린 그녀가 갑자기 왜 태도를 확 바꾸었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강제로 뽑아낸 하시모토의 기억 속을 봤으니까.
그 기억 속에는 차마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희생 강요와 학대가 가득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쭉.
요키라와 가문의 뜻대로 그녀가 움직이도록, 낙인을 찍게끔 유도한 것 역시 하시모토였다.
게다가 미우의 어머니는 가문들의 싸움 도중 불행하게 희생당한 것이 아니었다.
“왜! 왜! 어머니를 죽인 거야!”
숨겨진 진실은 미우의 어머니가 하시모토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미우가 보는 앞에서 칼로 목이 베인 채 죽었다.
딸을 학대하지 말라는 미우의 어머니의 요구가 건방지다는 것이 이유였다.
“넌 살아있어 봐야 도움이 안 돼. 아니! 살려 둘 가치가 없어!”
하시모토를 내려다보며 경멸 가득한 말을 내뱉은 미우는.
-촤라라! 콰쾅!
크고 날카로운 거울 조각들을 추가로 내리꽂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무라키 가문의 가주가 사망했다.
“아직도 이 쓰레기와 가문의 늙은 노괴들에게 충성할 놈들은 내 앞으로 나와라.”
미우가 주변의 헌터들과 시노비들을 노려보며 말하자.
“…….”
“…….”
모두가 대답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
“잘했어. 아주 훌륭하네.”
처용이 미우 옆을 지나가며 어깨를 툭툭 두들기고는 진심 어린 칭찬을 건넸다.
복수의 길을 걷는 징벌자의 입장에서, 미우의 자비 없는 처단은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으니까.
“제가…… 잘 해낸 건지 모르겠습니다.”
미우가 처용의 말에 공허한 목소리로 작게 말하자.
“사실 중요한 건 네 행동이 잘했냐가 아니야.”
처용이 뒤를 돌아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네게 죄를 저지른 놈은 네 손에 죽었고 지금 지옥으로 떨어졌다.”
그간 죄를 저질러 왔던 무라키 가의 가주 하시모토는 피해자이자 딸인 미우의 손에 죽었다.
“죄에 대한 대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 그런 결과가 중요하지.”
“…….”
“그런 결과를 만든 네 행동은 잘한 거다.”
처용의 말에 미우가 생각이 많아진 듯 잠시 침묵하고는.
“……그렇군요.”
조금은 편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처용은 그런 미우를 향해 옅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현장을 수습하는 야스라를 잠시 바라보고는.
“저희가 할 일은 다 끝난 것 같으니, 슬슬 돌아갈까요?”
일행들을 향해 말했다.
중요한 단서는 얻었고 더 이상 이곳에 있어 봐야 더 얻을 건 없었으니까.
“먼저들 가, 나는 여신님과 할 일이 남았거든.”
커맨더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대화를 나누는 듯 잠시 눈을 감았다 뜨더니 말했다.
그 말에 처용이 고개를 끄덕인 후, 일행들과 함께 성지로 돌아왔다.
처용이 돌아오자.
“왔네. 오버로드.”
메리와 그녀의 성좌인 헤르메스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반가움을 전했다.
“혹시?”
그런 메리를 보며 무언가를 떠올린 듯 처용이 묻자.
“맞아, 찾았어.”
메리가 처용의 말이 맞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새로 지어진 아르테미스 신전의 대략적인 위치를 알아냈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메리가 말하자.
“어디야.”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니퍼가 더미를 이용해 쓸데없는 짓을 벌이기 전에 신전을 부숴버려야 했으니까.
그 이후 더미 능력을 잃은 제니퍼를 확실하게 죽여야 했다.
“아직 정확한 위치는 특정하지 못했지만, 러시아…… 동유럽 쪽이야.”
메리가 처용의 말에 대답하자.
“동유럽 쪽이면…… 혹시?”
처용은 메리의 말에 무언가가 떠오른 듯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방금 막 단서를 얻어 그쪽 부근으로 가야 할 일이 생겼으니까.
“뭔가 짐작 가는 게 있나 본데?”
메리의 말에 처용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침 체르노빌에 볼 일이 생겼는데…… 나름 우연인가 해서.”
일본, 무라키 가의 가주에게서 얻은 단서를 이야기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