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222화 (222/726)

#222화

처용에게 사라진 아마테라스의 소식이 전달되기 조금 전.

스사노오는 도주한 아마테라스를 추적하기 위해 이자나기 성운의 성역 가장 깊은 곳까지 찾아갔다.

[포기하시오. 누님.]

결국, 아마테라스를 찾아낸 스사노오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망친다고 달라질 것은 없소.]

[도망쳐? 아니!]

스사노오의 말에 아마테라스가 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아마테라스가 말함과 동시에 그녀에게서 금빛이 섞인 신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무슨 짓을 한 거요?]

스사노오가 아마테라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신력을 바라보며 표정을 굳혔다.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신력은 태양신의 신력만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테라스는 스사노오의 말에 답변하는 것이 아닌 같은 말을 반복했다.

스사노오는 아마테라스를 관찰하다가 그녀의 오른손에 쥐어져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제정신이오!? 그걸 함부로 쓰면 소멸할 수도-!]

스사노오가 경악한 목소리로 소리치자.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테라스가 격한 감정을 담아 외쳤다.

-화아아!

태양 빛 신력과 금빛의 신력이 섞이며 뿜어져 나왔고.

[위험-!]

그것을 본 스사노오가 말을 다 마치기 전에.

-쿠구구!!

격렬한 폭음과 함께 이자나기 성운의 비역 중 하나가 무너졌다.

***

[……그렇게 된 거요.]

아마테라스를 놓치고 투쟁의 장으로 돌아온 스사노오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본래 계획은 아마테라스가 주신의 권한을 박탈당하는 순간.

스사노오가 그녀를 잡아내고 태초의 조각을 회수하려 했었다.

하지만 아마테라스는 주신의 권한을 사용하여 성역의 힘으로 태초의 조각을 묶어둔 것이 아니었다.

[설마 본인의 힘으로 태초의 조각을 억누르고 있었을 줄이야.]

스사노오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자나기 그 망할 녀석이 괜히 태초의 조각을 넘긴 게 아니었단 말인가?]

미륵이 이자나기 성운의 전 주신을 생각하며 읊조렸다.

[미안하오. 내 잘못이오. 조금 더 면밀하게 파악했어야 했거늘…….]

스사노오가 침통한 표정으로 사과를 전했다.

[미안하구나, 마지막 계획이 어그러졌구나.]

“애초에 모든 것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처용은 스사노오를 질책할 생각이 없었다.

“저희에게 있어서 운 나쁜 변수가 발생한 것은 아쉽지만요.”

모든 일을 대비할 수는 없는 법이고 항상 쉽게 풀리는 것만이 아니었으니까.

“우선, 차후 대책을 생각할 때입니다.”

[옳은 말이다. 제자야.]

여래가 처용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전 주신이 갈 만한 장소를 수색해 보겠습니다.]

이자나기 성운의 성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츠쿠요미가 다가오며 말했다.

아마테라스는 더 이상 주신의 자격이 없으니 그녀를 따를 이유가 없다.

츠쿠요미는 타지카라오노와 같이 스사노오를 돕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그런 츠쿠요미를 향해 다행이라는 듯한 눈빛으로 잠시 바라본 스사노오는.

[이야기는 들었다. 미우를 살려 주어서 고맙구나.]

처용에게 감사를 전달했다.

미우는 츠쿠요미에게 있어 나름 소중한 신관이었고 야스라의 가족이기도 한 존재였으니까.

“전 대가를 받은 이상, 거래는 확실하게 합니다.”

처용은 그런 스사노오의 감사에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짐작 가는 게 있네요.”

동시에 미우에게서 발견된 낙인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아마도 아마테라스는 상위 대악마와 협력하고 있을 겁니다.”

[상위 대악마?]

스사노오가 의문을 담아 묻자.

-화아아.

처용은 조금 전 봉인했었던 낙인을 다시 꺼내 보였다.

아마테라스가 미우에게 찍은 일종의 저주.

“여기서 아스모데우스의 냄새가 진하게 나거든요.”

태양 빛 신성력이 뭉쳐져 만들어진 낙인에는 찐득한 마기가 섞여 있었다.

다른 대악마들보다 유독 불쾌한 기운을 풍기는 마기.

“주어진 명령에 강제로 따르게 하는 고독 같은 저주…… 그 악마의 특기입니다.”

처용이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무엇보다 재앙의 나무, 에블린이라는 소녀를 감염시킨 것은 아스모데우스의 페러사이트 디멘터였다.

재앙의 나무, 아스모데우스, 아마테라스가 가지고 있던 태초의 파편.

회귀 전,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이자나기 성운의 멸망이라는 결과가 나타났을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이번 역시 어떻게든 아스모데우스가 개입되어 있을 것이다.

‘대비할 필요가 있겠어.’

처용은 아스모데우스의 신관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잘 알기에 대비할 필요성을 느꼈다.

일반적인 헌터, 아니 같은 신관들도 상대하기 아주 까다로운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처용은 지금의 자신조차도 아스모데우스의 신관은 상대하기 까다롭다고 판단했다.

“헤르메스 님.”

대비할 필요성을 느낀 처용은 이 자리에 있는 올림포스 성좌, 헤르메스를 불렀다.

[응?]

헤르메스가 의문을 표하자.

“올림포스 길드장에게 제 말을 전해 주시겠습니까?”

처용이 헤르메스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들은 헤르메스가 눈을 감고 잠시 침묵하고는.

[마침 메리가 제시카 옆에 있어서 바로 전달할 수 있었네.]

감았던 눈을 뜨며 처용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처용이 부탁들 들어준 헤르메스에게 감사를 전할 때.

[그 바질리스크의 독을 좀 나누어 줄 수 있겠나?]

신의가 처용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바질리스크의 독을요?”

처용이 궁금한 듯 묻자.

[연구 좀 해볼 생각이네.]

신의가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악마들의 세상인 판데모니움.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강력한 맹독 생명체의 독.

신의는 처음 보는 맹독에 흥미를 가진 것이었다.

동시에 그런 독을 해독할 새로운 약을 만들고 싶었다.

[맨입으로 부탁하는 게 아니네, 내가 직접 만든 환단을 몇 개 주지.]

“흠…….”

신의의 말에 잠시 고민한 처용은.

“백독환(百毒丸)을 주십시오.”

마침 ‘독’이라는 말에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무엇에 쓰려고 그러는가?]

신의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백독환은 이로운 환단이 아니었다.

무려 백 가지 독초와 독충을 절묘하게 배합하여 만든 환단, 즉 맹독의 덩어리였다.

[어떻게 백독환을 아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함부로 쓸 물건이 아니네.]

신의가 경고 서린 목소리로 말하자.

“남한테 쓸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처용은 그런 신의의 말에 걱정하지 말라는 듯 진지하게 말했다.

[……네가 먹을 생각인 것이냐?]

신의가 혹시나 싶은 생각에 물었다.

“네.”

그런 신의의 생각이 맞다는 듯 처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아…… 백독환은 백독불침(百毒不侵)을 가진 자도 소화할 수 없는 맹독의 덩어리다.]

신의가 진지하게 경고를 전했다.

[그 바질리스크의 독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지만, 독성만 따지면 그것보다 강력할 것이야.]

“알고 있습니다.”

처용은 신의의 경고를 진지하게 들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 바질리스크보다 강력한 독을 쓰는 적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바질리스크들을 다스리는 대악마 안드로말리우스.

그리고 대악마 중에는 독을 섞어 저주를 내리는 놈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아스모데우스와 바알.

앞으로 싸워나갈 강력한 적들이었다.

[……조건이 있다.]

처용의 말에 잠시 고민한 신의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곳에서, 내가 보는 앞에서 복용하거라.]

“알겠습니다.”

처용은 신의의 부탁을 수락함과 동시에 챙겨 두었던 베놈 소드를 꺼냈다.

-스르르.

그리고 검에서 독을 뽑아내어 빈 포션병에 담아 신의에게 건네자.

[받거라.]

신의가 포션병을 받고는 투명하고 작은 상자를 건넸다.

상자 안에는 보랏빛으로 빛나는 작은 환단이 하나 있었다.

처용은 맨손으로 환단을 꺼내고는 자세히 관찰했다.

동시에.

-스르르.

환단 속에 농축된 독이 손가락을 타고 번지는 것을 느꼈다.

“농도가 짙군요?”

처용이 환단을 관찰하며 말하자.

[내가 직접 만든 것이니까. 그보다도 그걸 맨손으로 만지다니…….]

신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때.

-꿀꺽.

백독환을 보며 미소를 지은 처용이 손에 든 환단을 입으로 가져가 삼켰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걸 함부로-!]

신의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강력한 독을 삼키는 만큼 무언가 준비를 할 줄 알았으니까.

처용은 신의의 말은 무시하고 내면에 의식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스르르.

백독환의 독이 퍼지기 시작한 것인지 처용의 몸에 보랏빛 균열들이 점점 번지기 시작했다.

[……젊은 놈 객기에 넘어간 내가 잘못이지.]

신의가 침통을 꺼내 들며 처용의 상태를 관찰했다.

성좌가 함부로 지상의 존재에게 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장소는 무신전에 소속된 성좌들이 성지.

태무신의 허락을 받고 ‘조건’이 갖추어지면 조금은 개입할 수 있었다.

[백독환을 삼킨 겁니까?]

조금 전부터 이 상황을 지켜보던 태무신이 신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환장할 노릇입니다.]

신의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때.

[그냥 지켜보게나.]

미륵이 미소를 짓고는 처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아이는 바보가 아니네, 확신이 있으니 저런 짓을 저지른 것이지.]

미륵의 말이 끝나자.

-화르륵!

처용에게서 새하얀 불꽃이 피어올랐다.

동시에.

-우우웅!

새하얀 불꽃에 황금빛 신력이 섞이기 시작했다.

-스르르.

온몸에 거미줄처럼 번지던 보랏빛 균열들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처용이 백독환을 아무런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다고 확신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바로 자생의 백염.

자생의 백염으로 독으로 받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으니까.

두 번째는 선인의 육체의 적응력.

그간 꾸준한 단련과 잦은 전투 덕분에 레벨이 많이 오른 상태였다.

지금의 선인의 육체라면 무리 없이 백독환을 흡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이유이자 선인의 육체로 흡수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이유.

바로 바질리스크의 독을 아무 무리 없이 흡수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맹독에 대한 저항력까지 늘어난 상황, 백독환을 흡수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한 이유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스르르…….

처용의 몸에 번진 모든 균열이 사라지고 곧장 눈을 떴다.

“오래 안 걸렸죠?”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이런 황당한 녀석을 봤나?]

신의가 얼굴을 쓸며 실소를 짓고는 말했다.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건가?]

“그냥 잘 소화시켰습니다.”

처용은 신의의 말에 대충 대답하고는.

[레벨이 올랐습니다.]

미소를 지으며 시스템을 확인했다.

[체력 스텟이 20 증가합니다.]

[선인의 육체가 성장합니다.]

[선인의 육체에 천독지체(千毒肢體) 특성이 생성됩니다.]

[독을 흡수하는 것으로 생명력과 마나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자연부에 독무(毒霧)부가 생성되었습니다.]

‘독을 다룬 적은 없지만…… 쓸모가 있겠지.’

시스템을 확인한 처용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회귀 전 독에 대한 내성은 있었어도 독을 직접적으로 다룬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좋은 상황이었다.

적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독’이란 아주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으니까.

“다음에 제가 새로운 독을 찾으면 천독환(千毒丸)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에라이! 죽고 싶은 것이냐!?]

신의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의 님.”

처용은 그런 신의에게 감사를 전했다.

덕분에 한층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

[우선 돌아가서 차후를 논해야겠구나.]

처용이 백독환을 흡수하고 신의와 대화하는 동안, 운장과 이야기를 마친 미륵이 처용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우선 다들 돌아가죠.”

미륵의 말에 처용이 대답하고는 같이 왔던 사람들에게 말했다.

***

동방불패 길드의 성지에서 처용이 막 떠났을 무렵.

[아마테라스 그 미련한 년은 실패한 게로군.]

고급스러운 고대 동양식 황궁처럼 꾸며진 공간.

그 공간의 중앙에서 뒷짐을 지고 서 있던 옥황상제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기회를 틈타 저희가 개입하는 것이 좋을까요?”

옥황상제의 뒤에서 부복하고 있던 타친핑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의견을 내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어찌 되었나?]

옥황상제는 타친핑의 말에 대답하는 것이 아닌, 또 다른 질문을 건넸다.

“다행히 러시아 측이 저희와의 거래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군.]

옥황상제가 대답하자.

“러시아에 있어서도 골칫거리를 해결해 준 셈입니다. 저희는…… 힘을 얻는 셈이고요.”

타친핑이 결과 보고를 올리듯 말을 이었다.

[우선은 내 신관이 완성되는 것에 집중하거라.]

옥황상제는 조금 전 타친핑이 했었던 말에 대한 대답을 했다.

“알겠습니다. 상제시여.”

타친핑을 그 말을 알아듣고 대답하고는 곧장 물러났다.

그가 사라지자.

[멍청한 녀석…… 이럴 때 사냥개가 없다니.]

옥황상제가 에덴 측 감옥에 붙잡힌 이랑진군을 생각하며 말했다.

그리고.

[조제군(曹帝君).]

위엄 서린 목소리로 누군가를 불렀다.

-화아아.

옥황상제의 말에 그의 뒤로 누군가의 화신체가 강림했다.

붉은색과 검은색이 섞인 고대 동양식 갑주와 항상 인상을 쓰고 있는 듯한 표정의 성좌.

[부르셨습니까.]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은 조제군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 말에 뒷짐을 지고 서 있던 옥황상제가 고개를 돌렸다.

[할 일이 생겼다.]

옥황상제가 조제군을 내려다보며 말하자.

[무엇이든 하명하십시오.]

조제군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 지옥에서 저를 꺼내 주셨으니, 은혜를 갚겠습니다.]

조제군의 인상이 가득한 얼굴에 야망 어린 미소가 피어났다.

나 홀로 계승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