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처용이 태양옥을 삼킨 순간.
[무슨 짓이냐!]
아마테라스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고함을 질렀다.
지금 처용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달았으니까.
동시에.
‘아니야. 놈이 제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강하게 부정했다.
그러나 처용은 그런 아마테라스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
“크크, 나쁘지 않네.”
아마테라스를 향해 싸늘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콰아아!
신의 검객 길드의 헌터들처럼 태양 빛의 신성력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고맙게 잘 써 주마. 아마테라스”
처용이 아마테라스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함과 동시에.
-우우웅!
근처에서 부유하고 있는 여덟 개의 무구에도 금색의 태양 빛 신성력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네 이놈!!]
아마테라스는 자신이 전송해주는 에너지를 처용이 무단으로 쓰는 것을 보고 노성을 질렀다.
아티팩트를 통해 전달해주는 에너지를 끊으려 했지만.
“에너지를 끊으면 저놈들에게 가던 힘도 없어질 텐데?”
처용의 말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은 사실이었으니까.
태양옥은 태양신의 신력을 가공하여 전송하는 전송 장치.
그러나 그 전송 장치를 하나하나 조종할 수는 없었다.
즉 처용이 삼킨 태양옥에만 에너지가 전달되는 것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소리였다.
처용은 아마테라스에게 힘을 공급받는 헌터들을 살피고 그들이 삼킨 태양옥을 관찰했었다.
헌터들이 힘을 공급받는 원리를 명확히 파악했기에 태양옥을 삼킨 것이었다.
그 결과.
“가볍게 이것부터 시작해 볼까?”
-화아아!
처용은 태양 빛 신성력을 모아 아마테라스가 사용하는 권능을 재현하기 시작했다.
두 손을 합장하고 신성력을 모은 처용이 손을 떼자.
-지이잉!
마치 작은 태양처럼 일렁이는 구슬이 나타났다.
[네, 네놈 그건! 네놈 설마!]
처용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아챈 아마테라스의 얼굴에 경악이 일렁였다.
[당장! 모두 피해라!]
아마테라스가 다급한 목소리로 헌터들에게 외쳤지만.
“늦었어.”
그 모습을 본 처용이 씨익 웃고는.
“태양 폭파.”
손에 붙들고 있던 태양 에너지를 풀어버렸다.
강렬한 화염을 뿜어 주변을 모조리 태워버릴 만큼 강력한 태양 폭풍을 일으키는 아마테라스의 권능.
처용이 손을 놓는 순간.
-키잉!
허공에 떠오른 작은 태양이 빛을 내뿜더니.
-콰아아아아!!
강렬한 폭음을 내며 사방에 불길을 뿜었다.
마치 불길로 만들어진듯한 화염의 허리케인이 처용을 중심으로 퍼져나가자.
“막아!”
“아니 피해! 피해라 당장!”
“피할 곳이 어딨-!”
헌터들이 우왕좌왕하며 혼비백산에 빠졌다.
“모두 뭉쳐서 버텨라!”
뒤늦게 요키라가 오더를 내리고.
“거울의 정원!”
미우가 태양 폭풍을 막고자 스킬을 발동했다.
-쩌저적!
헌터들이 모여든 곳 위로 거울 조각이 모여들더니, 마치 벙커처럼 작은 돔을 형성했다.
이윽고.
-화아아아!!
태양 폭풍이 투쟁의 장 전체를 휩쓸었다.
-쿠구! 쿠구구!
투쟁의 장 외부에 처진 결계가 지진을 맞이한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무식한 놈! 멍청한 것 같으니라고!]
아마테라스가 태양 폭풍에 휩싸인 투쟁의 장을 보며 소리쳤다.
[다 같이 죽자는 심보인 것이냐!?]
애초에 태양 폭파라는 권능은 아군을 가리지 않고 사방을 초토화시켜 버리는 권능이었다.
처용이 그런 권능을 사용한 탓에 지금 투쟁의 장 전체가 태양 폭풍에 휩싸인 상황이다.
신의 검객 길드 헌터들뿐 아니라 권능을 사용한 처용까지 피해를 입는 것은 분명했다.
모두가 태양 폭풍이 휘몰아치는 투쟁의 장에 집중할 때.
-화아아…….
태양 폭풍이 점점 사그라지며 화염이 걷어지기 시작했다.
[이 승부는 무효다! 전부 무사하지 못할-!]
아마테라스가 운장을 향해 소리칠 때.
“뭐가 무효야?”
-화아아.
화염이 걷어졌고 상처 하나 없는 멀쩡한 모습의 처용이 나타났다.
[무…… 무슨?]
아마테라스가 처용의 모습에 당황하며 황급히 다른 이들을 찾았다.
이윽고 화염이 완전히 걷어지고.
-쩌저적!
신의 검객 길드 헌터들을 지키기 위해 미우가 만들었던 돔이 처참하게 박살 난 모습으로 나타났다.
“으…… 으어!”
상당한 신성력을 소진한 듯, 미우가 침음을 토해낸 후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쩌적!
그녀를 갑옷처럼 감싸던 결전기, 거울의 여신상 역시 절반 가까이 부서진 상태였다.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는 미우는 당장 전투에 합류하기엔 힘들어 보였다.
유일하게 결전기를 쓸 수 있는 헌터의 이탈은 큰 전력 손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으…….”
“으어……!”
열일곱 명의 헌터들 중 열 명이 심각한 화상을 입은 채 쓰러져 꿈틀거리고 있었다.
요키라를 포함한 남은 이들 역시 군데군데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화아아!
심각한 화상을 입어 쓰러진 열 명의 헌터들이 금빛에 휩싸이더니 투쟁의 장 밖으로 쫓겨났다.
이제 남은 사람은 일곱.
게다가 태양 폭파를 가장 앞서서 막은 미우는 당장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역천군주……!”
피해 상황을 확인한 요키라가 이를 갈며 읊조렸다.
“왜 네놈은-!”
그 강렬한 태양 폭풍 속에서 왜 처용만 멀쩡한 것인가?
그런 의미가 담긴 요키라의 말에.
-탁. 탁.
처용은 발을 들어 바닥을 두드리는 것으로 대답했다.
요키라가 처용의 발아래, 그가 자리한 곳을 바라보자.
‘……타지 않았다?’
처용의 발밑만 불길이 닿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폭풍의 중심은 고요한 법.”
처용이 미소를 머금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본래 태양 폭파는 피아식별을 하지 않고 사방을 불태워 버리는 권능이었다.
하지만 처용은 그 권능의 묘리를 구현하면서 한 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화염 폭풍을 무작위로 휘몰아치게 만드는 것이 아닌, 허리케인처럼 자신을 중심으로 회전하며 퍼지도록 만든 것이다.
폭풍의 중심 부분에 신성력과 강기를 섞어 벽을 만들고 안정시킨다.
그것이 강력한 화염 폭풍 속에서 처용만이 멀쩡한 이유였다.
패잔병 무리가 따로 없는 헌터들의 모습을 구경하듯 잠시 바라본 처용은.
“잘 썼어. 역시 대신의 권능이라 그런가? 성능 하나는 확실하네. 태양신.”
아마테라스를 향해 진심으로 고맙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이놈!!]
처용의 진심 어린 말 속에 숨은 조롱을 들은 아마테라스가 격노를 뿜었다.
[감히! 신의 권능을 함부로-!]
“크크, 함부로 뭐?”
처용은 분노하는 아마테라스를 한껏 비웃고는.
“태양의 검.”
아마테라스의 또 다른 권능을 발현했다.
-키이잉!
태양 빛이 처용의 손 위에 모여들더니 샛노랗게 불타오르는 검으로 변했다.
불타오르는 태양 에너지를 극한으로 응축시켜 검을 만들어내는 권능이었다.
“잘 봐둬, 네 권능으로 네 병사들이 묵사발 나는 모습을 말이야.”
처용이 말을 마치자.
-우우웅!
태극천체진으로 인해 주변을 떠다니는 열 개의 무기가 처용 앞에 나열되었다.
처용이 아마테라스의 신성력을 모아 만든 태양의 검을 앞으로 세우자.
-화르륵!
열 개의 무구에 태양 빛이 일렁이며 더욱 강화되었다.
[이! 이이!]
결국, 더 보다 못한 아마테라스가 에너지 공급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그러자 요키라와 남은 헌터들 몸 위로 피어오르는 태양 빛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아마테라스는 당연히 처용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태양 빛 신성력도 약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늦어도 한참 늦었어.”
처용이 사용하는 태양 빛 신성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아마테라스가 경악을 내질렀다.
분명히 아티팩트를 향한 에너지 공급을 중단했다.
요키라를 포함한 헌터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력이 약해진 것이 증거였다.
그런데 처용은 전혀 영향이 없다?
“멍청하긴, 내가 단순히 네 힘을 받아먹기만 한 줄 알았나?”
[……!!]
처용의 말에 아마테라스가 상황을 파악하고는 소리 없는 경악을 질렀다.
동시에 투쟁의 장을 지켜보는 몇몇 성좌들도 놀란 모습을 보였다.
[저것이 정녕 가능한가?]
천문이 부채를 탁 접으며 놀란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신성력을 ‘강탈’하고 ‘지배’하는 것이 정녕 가능한 것이오?]
처용은 단순히 아마테라스의 신성력을 받아 쓴 것이 아니었다.
태양 빛 신성력의 원래 주인인 아마테라스의 지배권 자체를 빼앗아 버린 것이었다.
지금 처용에게 복속된 태양 빛 신성력은 아마테라스가 더 이상 제어할 수도 간섭할 수도 없게 되었다.
이젠 완전히 처용이 ‘지배’하는 에너지가 되어버렸으니까.
천문은 처용이 한 짓의 원리는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인간이 신의 힘을 빼앗아 역으로 지배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에 대해선 의문이었다.
지금 천문은 머릿속으로 아무리 계산해 봐도 ‘불가능’이라는 답밖에 나오지 않았다.
천문의 말을 들을 운장은.
[저 아이의 스승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시오.]
작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러자.
[그렇군. 역천! 역천의 묘리인가? 과연 훌륭하도다!]
천문이 부채를 탁 피며 미소를 짓고는 감탄을 표했다.
그의 말에 의문을 표하던 다른 성좌들 역시 이해가 되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괴물이로군. 참으로 괴물 같은 인간이다.]
토르가 처용을 향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동시에 먼 과거 신계에 불었던 피바람을 떠올렸다.
[혈선…… 아니 신법의 대신도 역천을 저렇게 다루지는 못했다.]
역천의 신격은 다른 신격을 잡아먹는 포식자의 힘이었다.
여래는 다른 신격을 죽여 그 힘을 흡수하는 것으로 역천을 키웠었지만.
단순히 에너지만을 흡수하여 힘을 늘렸을 뿐, 흡수한 신격의 권능을 발현하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처용은 역천의 묘리를 이용해 태양신의 신성력을 완전히 강탈하고 그 권능을 구현했다.
[단순히 스승을 뛰어넘은 정도가 아니지 않은가?]
토르를 포함한 대부분의 성좌들이 모두 놀람을 표했다.
그리고.
[네년이 준비한 비장의 수가 되려 악수가 되었구나.]
미륵이 아마테라스를 넌지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지배력 하나는 스승을 뛰어넘는 놈인데, 그런 놈한테 신성력을 퍼줬으니. 쯧쯧.]
[도대체 무슨 괴물을 만들어 낸 것이냐!!]
아마테라스가 미륵의 말에 분노를 담아 외쳤다.
[저것이야말로 병기(兵器)가 아니고 무엇이냔 말이야!]
여래와 관리자가 만들어낸 병기.
아마테라스는 처용을 데미갓 프로젝트에 버금가는 실험으로 만들어진 병기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우매한 녀석. 쯧쯧쯧.]
미륵은 더 말할 가치가 없다는 듯 혀를 차고는 투쟁의 장을 바라봤다.
[이제 시간 끌지 말고, 어여 끝내거라.]
“알겠습니다.”
처용이 미륵의 말에 대답하고는 왼손에는 태양의 검을, 오른손에는 역천의 절을 쥐었다.
그리고 역천의 절을 들어 요키라를 포함한 헌터들을 향해 겨누었다.
“극 이기어술(極 以氣馭術).”
처용은 결전기, 태극천체진을 발동한 상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사용했다.
“천체극섬(天體極殲)!”
-스릉! 스르릉! 스릉!
처용의 주변을 떠다니는 모든 무구들이 헌터들을 향해 쇄도했다.
모두 강기에 더불어 아마테라스에게서 빼앗은 태양 빛 신성력까지 둘러진 상태.
반면에 헌터들은 아마테라스의 에너지 공급도 끊겨 약해지고 부상까지 당한 상태였다.
“정신 차려!”
“마, 막아!”
요키라를 포함한 헌터들은 어떻게든 버텨 보려 했다.
하지만.
-사악!
“크어헉!”
가장 앞장 서 있던 헌터 하나가 대검에 크게 베이며 투쟁의 장 밖으로 튕겨 나갔다.
그것을 시작으로.
“으아악!”
“커허!”
헌터들은 날아오는 무구들을 막지 못하고 빠르게 나가떨어졌다.
동시에.
“뢰신보.”
-파지직!
처용이 요키라를 향해 돌진하며 역천의 절과 태양의 검을 내질렀다.
요키라가 처용이 내지른 검에 찔리기 직전!
“내 앞에 서라. 미우.”
작은 목소리로 요키라가 빠르게 읊조렸다.
그러자.
-우웅!
바닥에 쓰러진 미우의 몸에 순간 검은 기운이 일렁이더니.
-샤삭!
순식간에 처용과 요키라 사이에 나타났다.
“커헉!”
처용이 내지른 검이 미우의 몸을 관통해 지나갔다.
“쓸데없는 장난을.”
처용은 그대로 요키라까지 공격하려 했지만.
요키라가 미우를 방패 삼은 짧은 틈에 몸을 틀어 처용의 칼을 피했다.
동시에.
“죽어라!”
새까만 기운이 일렁이는 새로운 검을 뽑아 내질렀다.
-푸화아!
그 새까만 검이 미우의 등 뒤를 뚫고 처용의 가슴에 닿았다.
[무슨 짓이냐!!]
싸움을 지켜보던 츠쿠요미가 경악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그리고.
“하하하하! 내가 이겼다 역천군주!!”
요키라가 마치 성공했다는 듯 광소를 터트리며 외쳤다.
자신이 뽑아 내지른 칼은 보통 칼이 아니었으니까.
이 칼에 찔린 이상, 해독제 없는 맹독이 빠르게 퍼질 것이고 곧 온몸이 마비될 것이다.
“이제 네놈은 죽을 것이다! 내가 이겼-!”
요키라가 광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소리칠 때.
“뭐 하냐?”
처용이 그런 요키라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의 처용을 넋 나간 표정으로 잠시 바라본 요키라는.
“어…… 왜, 왜! 왜! 멀쩡한 것이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표정을 확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그 말에 요키라가 내지른 새까만 도신을 잠시 바라본 처용은.
“나를 독으로 죽일 생각이었으면 안드로말리우스의 심장이라도 썼어야지.”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요키라가 내지른 칼은 처용의 금강불괴와 호신강기를 조금 긁어내기는 했었다.
그 사이로 칼에 일렁이는 독이 스며들긴 했지만.
[선인의 육체가 바질리스크의 독을 해독, 흡수합니다.]
[선인의 육체의 독 저항력이 증가합니다.]
[마력 스테이터스가 5 증가합니다.]
오히려 선인의 육체는 그 독을 흡수해 에너지로 만들어버렸다.
‘바질리스크의 독이라……?’
시스템을 통해 독의 정체를 파악한 처용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바질리스크의 독이라는 시스템의 문구 때문에 안드로말리우스를 떠올린 것이니까.
잠시 독을 확인하며 생각한 처용은.
“다 끝났다.”
-사각! 푸부부북!
헌터들을 모두 정리하고 곁으로 돌아온 무구들을 조종하여 요키라를 난자했다.
“……커-!”
요키라는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온몸이 꿰뚫리고 난자되며 쓰러졌다.
이제 투쟁의 장 위에 서 있는 사람은 단 하나.
“제 투쟁은…….”
처용이 운장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증명이 되었습니까?”
처용은 회귀 전, 투장의 장에서 승리했을 때와 같은 말을 운장에게 전했다.
그러자.
[허허허…….]
운장이 수염을 쓸며 웃어 보이고는.
[훌륭하도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진심 어린 감탄을 전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