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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218화 (218/726)

#218화

[보아하니, 네놈들은 계속 과욕을 부릴 생각인 것 같다만?]

미륵이 아마테라스를 지긋이 노려보며 말했다.

[내 염원을 과욕이라 부르지 마라.]

아마테라스가 낮게 읊조리며 말하자.

[오냐, 그 망상은 포기할 생각이 없는 것이로구나. 어리석은 녀석.]

미륵이 가소롭다는 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쯧쯧, 그런다고 뒤진 놈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거늘…….]

아주 작게 읊조리듯 말하며 아마테라스를 측은하게 바라봤다.

미륵의 말은 아주 작았지만.

[……!]

아마테라스는 그가 하는 말을 분명하게 들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내 제안은 이것이네.]

미륵이 아마테라스의 반응을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작은 ‘전쟁’을 벌이는 것으로 타협을 하는 것.]

미륵의 말이 울리자.

“작은…… 전쟁이요?”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스미스가 의문을 뱉었다.

[우선, 이 장소 투쟁의 장이 어떤 곳인지부터 말해주어야겠군.]

미륵이 모두가 들으라는 듯 크게 말했다.

무신전 성좌들이 허락해야만 발을 들일 수 있는 장소, 투쟁의 장.

이곳에서의 ‘규칙’은 간단했다.

서로가 약속을 걸고 투쟁을 벌이는 것.

약조가 걸린 투쟁을 하여 승자와 패자가 나온 경우.

패자는 승자에게 자신이 건 ‘약속’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이것이 규칙이었다.

[성좌라 해도 규칙을 어길 순 없다. 이 장소는 태초의 힘이 깃든 장소이니까.]

미륵이 운장, 정확히는 그가 들고 있는 언월도를 응시하며 말했다.

‘태초의 힘……?’

아마테라스가 미륵의 말을 듣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동시에 운장을 바라봤다.

[어째서 태초의 힘이 이들에게 있는 것인가?]

아마테라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태초의 힘은 우주의 법칙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대한 태초신의 힘을 의미했다.

대표적인 예시를 들면 신법재판소가 이에 해당되었다.

그런 신법재판소와 같은 힘이 이 장소에 있다?

아마테라스는 그 사실을 이해, 아니 솔직하게 용납하기 힘들었다.

무신전 성좌들은 모두 인간 출신.

인간 출신의 성좌들이 태초의 힘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용납이 되질 않았으니까.

그런 의문을 제기하는 아마테라스를 본 미륵은.

[운장은 태초의 힘에게 인정을 받은 영웅이다.]

한심하다는 듯 짜게 식은 눈빛으로 말했다.

[인간이라 하여 그 자격을 의심하지 마라. 어리석은 애송이 녀석아.]

핀잔 섞인 미륵의 말에 아마테라스가 이를 갈았다.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상대는 만만치 않은 신이었다.

태초신에 버금가는, 전 주신인 이자나기보다도 오랜 세월을 살아온 신이었으니까.

[각설하고 내 제안은 이것이다.]

미륵이 아마테라스의 반응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마인들과 대악마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이상, 큰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니 지금 이 장소에서 작은 전쟁을 벌이는 것으로 타협하자는 것이었다.

“WHU는 찬성입니다.”

스미스가 미륵의 의견에 빠르게 찬성을 표했다.

거대 성운과 처용이라는 괴물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대전쟁보다는 나았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그 의견에 따를 것이라 보는가?]

아마테라스는 거부 반응을 보였다.

상황이 상대의 뜻대로 흘러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그 모습을 본 미륵의 눈동자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멍청한 태양신 녀석. 내 말 잘 들어라.]

미륵이 붉은 눈동자를 흉흉하게 빛내며 아마테라스를 향해 경고를 내뱉었다.

그리고.

[나는 네년에게 자비를 보인 것이다! 이대로 두면 이자나기 성운이 사라질 테니까!]

-우우웅!

분노가 일렁이는 미륵의 말에 신력이 섞이자 회의장이 옅게 울렸다.

[이-!]

아마테라스가 지지 않겠다는 듯 뭐라 말하려는 때.

[우선,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츠쿠요미가 아마테라스를 말리며 빠르게 말했다.

[너-!]

아마테라스가 뭐라 말하려 하자.

‘상황이 좋지 않아요.’

츠쿠요미가 아마테라스의 어깨를 잡으며 속으로 말을 전했다.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상대에게 조용히 말을 전할 수 있는 츠쿠요미가 가진 권능이었다.

‘지금은 화를 가라앉혀야 해요. 왜 이렇게 흥분한 거예요?’

츠쿠요미는 다른 성운들의 대표들을 보며 말한 것이었다.

그들 모두가 이자나기 성운을 좋게 보고 있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물러설 수 없단 말이다!’

아마테라스는 츠쿠요미에게 완고한 뜻을 전했다.

그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쉰 츠쿠요미는.

‘더 강하게 나가 봐야 좋을 게 없어요. 지금은…… 물러나야 해요.’

한 번 더 진지하게 말했다.

[젠장.]

아마테라스가 이를 갈고는 고개를 획 돌려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츠쿠요미가 다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다른 성운의 대표들을 향해 의견을 물었다.

[나는 찬성이오.]

미륵의 말에 아스가르드의 대표로 온 천둥의 신, 토르가 찬성표를 던졌다.

그리고.

[참고로 네놈들이 이 협상을 파하고 고집대로 군다면! 나 역시 이들을 도울 것이다.]

이자나기 성운 측, 특히 아마테라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천둥의 신……! 네가 감히!]

아마테라스가 낮게 읊조리며 말하자.

[네놈들이 희생시킬 후보에 내 신관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쿠구구!

토르가 천둥의 힘을 담아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저 역시 천둥의 신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헤르메스가 토르의 의견에 손을 보태었다.

[협상을 파하고 이자나기 성운이 제 고집을 부린다면, 올림포스는 당신들을 적대할 것입니다.]

그 역시 토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데미갓 프로젝트 문서에 적힌 실험체 후보들.

그 후보들은 모두 해당 성좌와 상성이 좋은 최상위 헌터들이었다.

그 증거로 처용 다음으로 거론된 후보가 야훼의 신관, 성자였으니까.

그렇다면 성좌와 상성이 좋은 신관들은 모두 후보 대상이라 볼 수 있었다.

이자나기 성운이 계속 데미갓 프로젝트를 고집한다?

실험이 성공할 때까지 다른 성좌의 신관을 납치하여 희생시킨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빛의 신의 신관을 건든 것부터, 네놈들은 이미 선을 넘었다.]

침묵하고 있던 에덴의 대표.

정의의 대천사 미카엘이 입을 열었다.

[이자나기 성운의 행동에는 정의가 없다. 강욕만이 느껴질 뿐.]

미카엘의 말이 끝나자.

[나 역시 찬성이오.]

[우리 역시…….]

다른 성운의 대표들이 모두 찬성을 표했다.

[…….]

모든 대표들이 찬성을 말하고 아마테라스가 무거운 침묵을 지킬 때.

[나 역시 찬성이오.]

스사노오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하고는 아마테라스와 이자나기 측 성좌들을 응시했다.

[……저희 역시 찬성합니다.]

대답을 한 것은 아마테라스가 아닌 츠쿠요미였다.

그녀의 말에 아마테라스가 반박하지 않자.

[결정이 되었군.]

미륵이 운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운장이 미륵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작은 전쟁, 투쟁의 장에 대해 간단하게 예시를 들어 주지.]

미륵이 투쟁의 장에 대해 간단한 예시를 들어 보였다.

[각각의 대표들이 나와 승리할 경우와 패배할 경우의 약조를 건다.]

예시로 이자나기 성운은 ‘승리’할 경우 이번에 벌어진 모든 일을 불문에 붙인다.

반면에 ‘패배’한 경우 데미갓 프로젝트를 전면 폐기하고 모든 일에 책임을 진다.

책임을 예로 들면 아마테라스가 이자나기 성운의 주신 자격을 잃는 것이었다.

[서로가 거는 약조는 ‘동등’해야 한다. 동등하지 못하면 태초의 힘이 거부하게 되느니라.]

예시를 들어 말하던 미륵이 마지막 말을 마치자.

[방금 관철의 대신께서 예를 들어주신 약조의 조건은 동등합니다.]

운장이 금빛 용이 휘감긴 언월도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우우웅!

언월도에 감긴 금빛 용이 밝은 빛을 토해내자 이자나기 성운의 성좌들이 서로 의견을 내듯 쑥덕댔다.

아마테라스는 어떻게 하면 유리한 조건을 붙일지 세차게 머리를 굴리는 듯 보였다.

그러자.

‘대가리를 굴리시겠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이 싸늘한 미소를 짓고는.

“이런 조건도 가능합니까?”

운장을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말해보게.]

운장이 처용을 바라보며 말하자.

“이자나기 성운이 승리할 경우 제가 데미갓 프로젝트 실험에 협력해 주지요.”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

처용의 폭탄 같은 말에 회의장에 모인 모든 이들의 얼굴에 경악이 일렁였다.

무려 스스로를 희생해 주겠다는 말과 같았으니까.

이자나기 성운의 성좌들 역시 서로 쑥덕이던 말을 멈추고 처용을 향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생각이냐……!]

아마테라스가 처용을 노려보며 말했다.

“대신 이자나기 성운이 패배한다면.”

처용은 아마테라스의 반응을 무시하고는.

“이자나기 성운 전체가 내 밑으로 소속된다.”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말을 이었다.

그러자.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성좌들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말 그대로 이자나기 성운이 패배한다면 그들 전부가 처용에게 소속된다는 말이었으니까.

“가능한가요?”

처용은 성좌들의 반응을 무시하고 운장을 향해 물었다.

[허허허…….]

운장이 처용을 향해 헛웃음을 흘리고는 언월도를 쥐며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허, 허허허, 설마 했지만, 네가 말한 터무니없는 조건이 동등하다는 결론이 나왔구나.]

운장의 입에서 ‘가능’하다는 말이 나왔다.

[웃기지 마라!]

[뭐 하는 짓거리야!]

이자나기 성운의 성좌들이 분노를 담아 소리칠 때.

“태초의 힘이 인정했다라? 그럼 내가 실험체가 되면 100% 성공한다는 말이겠네?”

처용이 이자나기 성운을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태초신의 힘이 방금 처용이 말한 조건을 ‘동등’하다고 결론을 냈다?

그렇다면 반신인 처용이 실험체가 되면 데미갓 프로젝트는 성공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때? 내 조건이?”

처용이 이자나기 성운을 향해 엄청난 미끼를 끼워 낚싯대를 던졌다.

데미갓 프로젝트를 100% 성공시킬 수 있다는 미끼.

[…….]

아마테라스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들썩였다.

그리고.

[좋-.]

그녀의 입이 열리려는 순간.

[거절합니다!]

츠쿠요미가 아마테라스의 어깨를 잡고는 빠르게 대답했다.

[관리자께서 말씀하신 조건에 따르겠습니다.]

츠쿠요미의 말이 끝나자.

“쯧, 아깝네…… 한 번에 잡을 수 있었는데.”

처용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악마 같으니라고.’

츠쿠요미가 처용을 응시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자기 자신, 스스로를 미끼로 배팅하는 담력.

게다가 그 미끼를 이용해 하나의 거대한 성운을 집어삼키려는 야망.

그 거부할 수 없는 미끼에 아마테라스가 넘어갈 뻔했다.

[아주 무서운 놈이로구나.]

츠쿠요미가 처용을 응시하며 말하자, 처용이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사실 처용도 이자나기 측이 함부로 수락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이런 상황에서조차도 머리를 굴리는 신격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던진 말이었다.

“잔대가리 굴릴 생각은 마라, 네놈들의 ‘범죄’에 협상해 주는 것만으로도 많이 양보한 셈이니까.”

처용이 경고를 담아 말하자 이자나기 측 성좌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서로 동등한 조건의 약조가 맺어지자.

[누가 투쟁을 증명할 것인가?]

운장이 처용과 이자나기 성운, 양 측을 번갈아 응시하며 말했다.

작은 전쟁을 치를 이는 누가 될 것인가?

그들 역시 동등한 조건이여야 했다.

“저 혼자 하지요.”

처용이 자리에서 일어나 중앙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아마테라스가 이를 갈며 나서려 했다.

그러나.

[동등하지 못하오.]

운장이 아마테라스를 향해 말했다.

[인간을 상대로 한 성운의 주신이 직접 나서는 것이오?]

그의 말을 증명하듯 언월도에 휘감긴 금빛 용의 눈에서 붉은빛이 새어 나왔다.

[저 하계종은 신력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아마테라스가 처용을 가리키며 운장을 향해 소리치자.

[허, 고작 신화경에 닿은 인간을 이겨 먹으려고 주신이 나선다라? 체면은 개나 줘 버린 건가?]

미륵이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로 ‘동등’해야 하오. 동등하지 못한다면, 조건과 규칙을 더해야 하오.]

운장이 잘 들으라는 듯 한 번 더 말하자.

“이렇게 하죠.”

생각을 마친 처용이 입을 열었다.

“신력이 문제가 된다면, 신력을 쓰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와 투쟁을 겨룰 텐가?]

운장의 말에 처용이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들 전부.”

처용이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신의 검객 길드 헌터들이 자리한 곳.

즉, 신의 검객 길드 소속 헌터 20명을 지목한 것이었다.

처용의 말이 끝나자, 운장이 곧장 눈을 감으며 조건이 동등한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아슬아슬하게 동등하군.]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서로가 가진 힘의 총량만을 따졌을 때, 네가 불리하다. 괜찮겠느냐?]

운장이 확인차 처용에게 묻자.

“문제없습니다.”

처용이 자신감을 보이며 말했다.

“건방진……!”

그 모습을 본 요키라가 처용을 향해 이를 갈며 말했다.

“우리 전부를 상대하겠다고? 신력도 없이 마나만 써서?”

“왜? 스무 명씩이나 돼서 질 것 같나?”

처용의 도발에 얼굴을 세차게 구긴 요키라가 아마테라스를 조심스럽게 응시했다.

마치 무언가 허락을 구하는 듯.

[…….]

아마테라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후회할 것이다. 역천군주!”

요키라가 처용을 향해 비열한 미소를 감추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처용이 괴물같이 강하다 해도 그 힘의 근원은 신력.

신력을 쓰지 못하는 처용의 힘은 일반 헌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처용을 상대하는 것은 자신을 포함한 최상위 헌터 20명.

그리고…… 자신에게는 숨겨둔 비장의 카드도 하나 있었다.

승산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생각하겠지.’

처용은 그런 요키라의 생각을 훤히 꿰고 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상대할 20명 중에는 츠쿠요미의 신관, 미우가 있었다.

그녀를 포함한 신관만 세 명인 상황.

인간이 다루는 마나는 신의 힘, 즉 신성력을 이길 수 없다.

이것이 보편적으로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러나.

‘모조리 짓밟아 주마!’

처용에게는 그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상대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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