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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214화 (214/726)

#214화

처용의 싸늘한 말이 울리자.

“하하하!”

요시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그 오만한 가문의 콧대 좀 확 꺾어 주었으면 좋겠군.”

그는 자신이 모시던 가문이 피해를 받는다는 말에도 오히려 그러길 원하는 눈치였다.

“특히, 요키라 그놈은 좀 맞아야 할 필요가 있어.”

“신관조차 되지 못한 반쪽짜리 길드장이요?”

처용의 말에 요시다가 재밌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문에서 취급이 좋지 않았나 봅니다?”

요시다의 반응을 살핀 처용이 짐작하듯 말했다.

영웅으로 칭송받아 마땅한 1세대 헌터.

그러나 지금의 일본 시민 중에는 그를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았다.

아마도…… 무라키 가와 일본 정부가 무언가 정치질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처용의 예상대로.

“그 어린 것이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 하더군.”

요시다가 한이 많이 맺힌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가 과거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영웅이었던 요시다 무라마사.

그러나 무라키 가와 일본 정부는 요시다를 치하하는 것이 아닌 그를 경계했다.

요시다로 인해 자신들의 권력이 축소되는 것을 우려했으니까.

그 당시에는 요시다가 여러 던전을 공략할 때마다 일본 정부의 무능함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컸기 때문이었다.

세계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무라키 가와 일본 정부는 요시다를 배척하는 정치를 시작했다.

쉬고 싶었던 요시다 역시 다음 세대의 헌터들을 위해 기꺼이 물러났다.

그러나.

-그는 무라키 가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습니다.

차기 가주인 요키라는 요시다를 크게 경계했다.

아니, 경계하는 것을 넘어서 거의 적대적으로 취급했다.

늙은 사냥개가 다른 마음을 먹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

이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물론, 요시다가 호락호락 당하고만 있을 사람은 아니었지만…….

“고국을 위해 싸운 영웅을 사냥개로 취급한다……?”

요시다의 대략적인 사정을 들은 처용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뼈대 있는 가문의 차기 가주라는 놈 수준이 참…… 병신같군요. 쯧쯧.”

처용이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영웅을 배척하는 그들의 행동은 너무나도 멍청하고 바보 같은 짓거리였으니까.

하지만, 스스로의 권력과 욕망에만 목매는 이들은 그런 것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영웅들의 삶이나 희생보다 자신들의 권력과 부가 더 중요한 머저리들이었으니까.

처용은 그런 부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회귀 전, 진절머리나게 겪어 봤으니까.

인간들뿐 아니라 선천적 신격들을 통해서도…….

“이쯤 되면 친형제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인데?”

처용이 야스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모든 형제가 닮은 것은 아니지만, 야스라와 요키라는 정말 극과 극이었다.

“저와 형님은 서로 어머니가 다릅니다.”

야스라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가문의 사정을 짧게나마 이야기했다.

간단하게 축약하자면 삼남매인 요키라, 야스라, 미우의 어머니가 각각 달랐다.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들은 모두 무라키 가의 휘하 가문 사람들.

그중 아들인 요키라와 야스라, 그들 어머니 쪽 가문이 가주직을 차지하기 위해 수시로 마찰을 빚었었다.

그 과정에서…… 미우의 어머니가 희생되었다.

요키라 측과 야스라 측의 싸움을 말리려다 생긴 변고였다.

“전 비극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기에 가주직을 포기했습니다.”

야스라는 같은 형제, 가문 사람들끼리 싸우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가주직을 포기했다.

그러나.

“하지만 형님은…… 집요하더군요.”

요키라는 야스라의 순수함을 절대로 믿지 않았다.

수시로 견제와 압박을 가해왔다.

특히, 야스라가 스사노오의 신관이 되고 나서부터는 더욱 심해졌다.

언제…… 자신의 권력이 사라질지 모르는 불안감에 휩싸인 듯 보였다.

정작 야스라는 관심조차 없는데도.

“……하.”

이야기를 들은 처용의 입에서 실소가 타졌다.

“그 아비에 그 어미를 닮은 거지. 쯧쯧.”

요시다가 현 가주와 무라키 가 사람들을 생각하며 혀를 찼다.

그들을 나름대로 이해는 하지만, 공감하거나 동조하지는 않았다.

무라키 가는 본래 일본의 시민들을 바르게 이끌어야 하는 가문이다.

그러나 권력욕에 잡아먹힌 그들은 되려 시민들을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요시다는 그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수상한 짓을 한다는 건 알았지만, 뭔가 차원이 다른 위험한 짓거리를 하는 것 같더군.”

이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상당히 위험한 짓까지 저지르려 하고 있었다.

“차원이 다른 정도가 아니라 지구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처용이 요시다의 말에 심각성을 더해주었다.

“……다 같이 죽자는 건가?”

“성공할 거라고 믿는 거죠. 리스크나 후폭풍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고.”

“하아…….”

요시다가 처용의 말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띠릭. 띠릭.

처용의 라이센스가 울렸다.

수신자는 커맨더.

“네.”

처용이 커맨더의 연락을 받자.

-WHU가 한국 헌터 협회 측으로 이번 일에 중재를 요청했더라?

커맨더는 긴말 없이 바로 본론을 이야기했다.

“생각보다 빠르네요. 내일 한 번 더 깽판 친 다음에야 연락이 올 줄 알았는데…….”

처용은 커맨더의 말에 대충 예상했다는 듯 대답했다.

-그쪽 입장에서야 워낙 심각한 일이니까.

이번에 처용이 신의 검객 길드를 상대로 벌인 보복 테러.

공개적으로 테러를 저질렀던 만큼, 벌써 전 세계로 빠르게 소식이 퍼지고 있었다.

당연히 WHU 역시 이 사태를 빠르게 파악했다.

왜 처용이 이런 테러를 벌였는지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배신자인 추기경이 한국에서 테러를 벌였을 때부터 처용을 주시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스미스 씨가 이번에 WHU 고위 임원들을 전부 잡아서 조사하고 있더라고.

WHU 총장, 존 스미스는 우선 처용보다는 이번 일을 벌인 원흉부터 조사하기로 한 것 같았다.

추기경에게 윤아와 연아의 정보를 넘겨준 것.

파라오 길드를 이용해 커맨더를 한국에서 빼낸 것.

게다가 성자를 노리는 데 도움을 준 것까지.

아무리 WHU 임원들이라 해도 이번만큼은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혐의가 아니었다.

그리고.

-예상과는 다르게 너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꽤 있더라?

커맨더는 테러를 벌인 처용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어떤지 말해주었다.

“하하, 테러를 벌인 저를요?”

처용이 의외라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성자 때문인 것 같은데?

처용이 벌인 테러는 과격함을 넘어서 잔혹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 민간인을 향해 공격을 저지르기까지 했으니까.

그러나 처용이 벌인 테러에 대한 세상의 시선은 그리 공격적이지만은 않았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성자 때문이었다.

성자는 세상에 정말 많은 봉사와 헌신을 한 인물이었다.

그런 성자가 마인들, 배신자들과 협력한 신의 검객 길드에게 공격을 받은 것은 명백한 사실.

일본의 시민들은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신의 검객 길드와 이자나기 성운을 지지했다.

그런 신의 검객 길드와 이자나기 성운에게 분노한 처용이 벌인 일과.

-당신을 죽이고 실험체로 쓰려 했던 신의 검객 길드를 지지하는 것, 그 자체가 죄다.

처용이 일본의 시민들을 향해 분노를 담아 내지른 말.

-진실을 외면하는 ‘무지함’ 그 자치가 죄다!

그런 처용의 분노에 공감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던 것이다.

성자에게 도움을 받은 이들도 그만큼 많았으니까.

그런 성자에게 해를 끼친 신의 검객 길드와 이자나기 성운을 지지하는 일본 시민들.

오히려 그들이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었다.

역천군주의 ‘분노’는 정당하다.

이것이 세상의 시선이었다.

그리고.

-저는 이 사람들을 용서했습니다. 그러니 거친 비난은 말아 주십시오.

이런 와중에 성자가 다시 한번 일본의 시민들을 용서한다고 공식적으로 말했다.

“성자의 지지가 폭등하겠네요.”

처용이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좋은 이미지를 가지던 양반인데, 이번 일로 찬양을 받고 있더라고. 하하.

커맨더가 처용의 말이 맞다는 듯 말했다.

“계획대로 되어서 다행입니다.”

이야기를 듣던 야스라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신 가문 이미지가 아작나고 있는데 괜찮은 겁니까?

“……시민들의 눈을 가리는 가문의 영향력을 부술 필요가 있으니까요.”

커맨더의 말에 야스라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군요.

야스라의 대답에 커맨더자 미소를 짓고는.

-우선, WHU에서 들어온 중재 요청은 어쩔 생각이야?

처용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다.

WHU에서 이번 일에 대해 처용과 신의 검객 길드 간의 중재, 협상 자리를 마련했지만.

처용이 거절하면 그냥 끝이니까.

“흠…….”

잠시 생각한 처용은.

“수락한다고 전해 주십시오.”

작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왠지 그럴 거 같았어, 시간은 이틀 뒤, 장소는 중국, 상하이야.

커맨더가 일자와 장소를 말해주었다.

“동방불패 길드의 성지로군요.”

-그것도 있고 상하이에는 WHU 사무국도 있거든.

“알겠습니다. 상하이에서 보죠.”

처용의 말을 마지막으로 커맨더와의 통신이 끊어졌다.

“저는 조금 더 정보를 조사해 보겠습니다.”

“부탁드리죠.”

야스라의 말에 대답한 처용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 맛있는 요리였습니다. 요시다 님.”

“응, 최고였어.”

처용의 말에 조용히 있던 루나가 동의한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허, 최고의 칭찬이군. 고맙네.”

요시다가 처용과 루나의 말에 즐거운 웃음을 보일 때.

“정말…… 이대로 포기하실 생각이십니까? 가토 상.”

야스라가 가토에게 다가가 그를 설득하듯 말하고 있었다.

사실, 처용이 오기 전부터 야스라는 가토를 설득하고 있었다.

요키라의 폭정을 막고 무라키 가를 바로잡게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무라키 가를 위해 일을 해온 가토가 버려지는 상황을 용납하기 힘들었다.

어떻게든 가토를 설득하고 싶었지만.

“내겐 더 이상 가치가 없다. 너에게도 가문에게도.”

이미 결정을 마친 가토는 영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버려진 도구의 운명은 끝난 법이니…….”

가토의 말에 야스라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내가 관여 안 하려 했는데 그 말은 못 넘어가겠군.”

처용이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도구의 운명? 이 세상에 정해진 운명 따위는 없어.”

처용은 나름대로 진심을 이야기했다.

다가오는 종말은 이 세상에 정해진 운명이라 불렸었다.

그 종말에 끝까지 맞서 싸운 처용이기에 ‘정해진 운명’을 믿지 않았다.

정해진 운명을 거부하고 맞서 싸우지 않는다면 똑같은 종말이 반복되니까.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신이 정한 운명이다. 인간이 피할 수 있을 리가…….”

가토가 영혼 없는 목소리로 말하자.

“운명은 세상이 결정해 주는 것도 신 따위가 결정해 주는 것도 아니야. 스스로가 개척하는 것이지.”

처용이 강하게 말했다.

“너는 신에 맞설 수 있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가토가 처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평범한 인간은 신에게 반항할 수 없었다.

거대한 힘에 맞서 싸울 수 없었다.

“우리는 운명을 거부할 수 없다.”

그저 순종하고 굴복해야만 할 뿐이다.

그러나.

“내가 정해진 운명 따위를 위해 그 지옥 같은 싸움을 거치고 살아남은 줄 아나?”

처용은 그런 세상의 논리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무력하게 죽을 거면 그냥 죽어라. 나는 어떤 비참한 운명이 온다 해도 끝까지 싸울 테니까.”

마지막 말을 전한 처용이 루나와 함께 식당을 빠져나갔다.

“…….”

가토가 처용의 말을 생각하듯 침묵했다.

“가토 상, 저 역시 싸울 생각입니다.”

야스라가 가토를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이게 옳다고 믿으니까요.”

마지막 말을 전한 야스라 역시 식당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젊은 놈들이 저리 패기 넘치게 투쟁하고 있는데, 계속 자빠져 있을 생각이냐?”

-탁.

요시다가 가토의 앞에 안주와 사케를 내려놓으며 앞에 앉았다.

“이 빌어먹을 아들 녀석아.”

“저는…… 역시 당신의 아들이 될 자격이 없었습니다.”

과거 고아였던 가토를 양아들로 받아들인 요시다.

가토가 요시다와 같은 성을 가진 이유였다.

“아직 멀었구나, 애송이 녀석. 쯧쯧.”

-쪼르르.

요시다가 혀를 차며 가토의 술잔에 사케를 따라주었다.

“남은 일주일 동안이라도 한 번 지켜봐라. 저 패기 넘치는 놈들이 운명에 맞서는 모습을. 끌끌.”

“…….”

요시다의 말에 가토가 생각이 많아진 듯 침묵했다.

***

어두운 동굴 속.

-저벅. 저벅.

아티팩트로 어둠을 밝히며 걷던 요키라가 돌연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스르르.

“상황이 좀 급한가 봐? 이렇게 무리하게 찾아올 정도면?”

안개가 모여드는 듯 뭉쳐 들더니 요키라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칠흑 같은 검은 머리에 타이트한 가죽 재질의 옷.

길게 늘어진 손톱을 지닌 여성.

“급한 정도가 아니다. 릴.”

요시다가 눈앞에 나타난, 무언가 위험한 분위기를 띄우는 여성.

마인들의 수뇌부, 의회주 중 하나인 ‘릴’을 보며 말했다.

“흐음? 근데 지금은 곤란해, 그 아이의 보호자가 이번에 좀 많이 다쳤거든?”

“보호자가 다친 거지 실험체가 다친 건 아니지 않나?”

요키라가 릴을 향해 다그치듯 묻자.

“네가 급한 거지 우리가 급한 건 아니거든. 호호.”

릴은 되려 요키라를 자극하듯 말꼬리를 흐리며 말했다.

“네놈이!”

요키라가 당장이라도 공격할 듯 거친 마나를 뿜으며 분노를 표하자.

“우쭐대지 마라. 네놈 혼자서는 ‘여자’인 나를 절대로 이길 수 없어.”

릴이 싸늘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러나.

“내가 혼자인 것 같나?”

요키라가 마주 싸늘한 미소를 보임과 동시에.

-쩌저적!

거울이 깨지듯 공간이 깨지며 미우가 나타났다.

“쯧, 신의 검객 길드장은 생각보다 겁이 많나 봐?”

릴이 미우를 보며 혀를 차고는 말을 이었다.

“아무튼, 당장 그 아이를 내줄 순 없어. 그러니까 상하이에서의 협상을 잘 마무리하라고? 호호.”

마지막 말을 이은 릴이 안개처럼 사라졌다.

“저 여자의 제안은 위험합니다. 오라버니.”

마우가 릴이 사라진 자리를 노려보며 말하자.

“내 결정에 토 달지 마라!”

요키라는 미우의 말에 거칠게 답하고는 뒤를 돌아 나아갔다.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쉬며 요키라를 짧게 노려본 미우가 그를 따라갔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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