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갑작스러운 테러로 인해 도쿄, 이자나기 성운의 성지가 한바탕 뒤집어진 후.
“이 근처인가?”
테러를 벌였던 처용은 야스라가 이전에 말했었던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있는 곳은 이자나기 성운의 성지와 떨어져 있는 지역.
일본의 최북부에 있는 홋카이도였다.
도심이라기엔 조금 낙후된 시골 마을 같은 지역.
‘장인의 초밥…… 여기인가?’
그중 야스라가 말한 낡은 옛날식 건물, ‘마감’이라는 팻말이 입구에 걸려 있는 식당을 찾았다.
그림자를 타고 닫혀 있는 건물 입구 안으로 들어가자.
-치이이. 탁! 탁!
마감한 식당답지 않게 조리대 위에서 일하는 노인과 그 앞에 앉아 있는 야스라가 보였다.
그리고.
“……손님이 오셨구려.”
조리대 위에서 식자재를 다듬던 노인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어 말했다.
‘동화경을 알아봤다?’
처용이 노인의 반응에 작은 놀람을 표했다.
아무리 동화경을 최대치로 발현한 게 아니라지만, 그림자에 숨은 처용을 알아보는 게 쉬운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뭔가 익숙한데…….’
처용의 느낌에 노인이 무언가 익숙하게 느껴졌다.
협회장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노인.
조리모를 쓰고 식칼로 재료를 손질하는 노인의 자세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숙련된 요리사라기보다는…… 전장에서 수도 없이 칼을 휘두른 듯한 익숙함이 느껴졌다.
-스르르.
처용이 그림자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내자.
“정말로 오신 거였군요. 저는 긴가민가했었는데…….”
야스라가 뒤를 돌아보며 노인을 향해 말하자.
“아직도 멀었구나, 너나 저놈이나.”
노인이 야스라를 향해 말하고는 식당 구석에 앉아 있는 누군가에게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처용이 노인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자.
‘……저 녀석은?’
놀랍게도 복면을 쓰지 않은, 얼굴을 드러낸 가토가 앉아 있었다.
야스라와 항상 마찰을 일으켰던 시노비들의 우두머리.
왜 시노비들을 이끄는 그가 이곳에 있는지 궁금했지만.
“가토 상은 이제 시노비장이 아닙니다. 역천군주.”
야스라가 처용이 생각하는 바를 눈치채고는 말했다.
그 말에 처용이 가토를 잠시 바라보고는.
“……포기한 건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처용이 나타났음에도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가토.
이전과는 다른,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눈빛.
회귀 전, 전의를 상실하고 삶을 놓아버린 이들이 주로 보인 모습이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임무 실패에 대한 대가로 자결, 아니 할복하라고 아마테라스가 말하던가?”
처용이 실소를 담아 말하자.
“그걸…… 어떻게?”
야스라가 처용의 말이 정확하다는 듯 말을 흐렸다.
“그 오만한 이자나기의 주신이 보이는 꼬라지를 보면 답이 나오지.”
처용이 성지에서 분노를 불태우던 아마테라스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인간을 도구로 쓰고 버리는 전형적이고 멍청한 선천적 신격들다워.”
처용의 말에 움직임이 없던 가토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정작 본인도 나를 잡으려다가 되려 대판 깨진 주제에 말이야. 크크.”
아마테라스를 비웃는 처용이 말이 울리자.
“이것 참…… 소문으로만 들었지, 상상 이상인 사람이구만.”
주방장으로 보이는 노인이 황당한 표정으로 처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 이분은 저를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야스라가 노인이 누군지 처용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식당 주인으로 보이는 노인은 은퇴한 헌터, 게다가 전 시노비장이었던 인물이었다.
처용이 야스라의 이야기를 들으며 노인을 바라봤다.
[이름 : 요시다 무라마사]
[레벨 : 173]
[칭호 : A급, 태양빛의 가호]
[클래스 : 카케 시노비]
[특징 : 검사와 암살자의 특징이 합쳐진 클래스입니다.]
[뛰어난 기동력과 다양한 도구, 다양한 술법을 다루는 것이 특징입니다.]
[클래스와 별개로 아주 뛰어난 기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스킬 : 도검 마스터리, 기감…….]
노인, 요시다 무라마사는 예상보다 더 높은 레벨을 가진 헌터였다.
게다가 일반적인 시노비가 아닌 카케 시노비라는 클래스를 가진 노인.
그리고…… 처용이 노인을 처음 봤을 때 들었던 익숙한 기분.
통찰의 눈으로 그가 누군지 확인하자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아니…….”
처용이 노인, 요시다를 향해 작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1세대 헌터’ 요시다 님.”
1세대 헌터.
흔히 첫 번째 세례자 혹은 초대 각성자라 불리는 이들이었다.
말 그대로 게이트 사건이 터지고 신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
가장 처음으로 각성한 이들이었다.
커맨더와 백호 등, 고레벨의 헌터들 중 일부가 바로 1세대 헌터들이었다.
가장 힘든 시기에 힘겨운 싸움을 치르고 살아남은 전사들.
눈앞의 노인은 불혹이 넘은 나이에 각성하여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앞장서 싸운 인물이었다.
그런 1세대 헌터 중 하나인 요시다 무라마사.
과거 일본에서 발생한 위험한 게이트들을 앞장서 막아냈었던 소위 ‘영웅’이라 불리던 이였다.
“은퇴했다고는 들었습니다만, 일본을 지킨 영웅이 식당을 하고 계실 줄은 몰랐군요.”
처용의 말에 요시다가 재료 손질을 잠시 멈추고 처용을 바라봤다.
“허허…… 그걸 기억하는 젊은 사람이 아직도 있을 줄은 몰랐군요.”
요시다가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잊었을 터인데…….”
“잊어서는 안 되죠.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지켜준 영웅인데.”
처용이 요시다를 향해 말함과 동시에 야스라를 바라봤다.
‘역시…… 조력자가 있었던 건가?’
아무리 야스라가 무라키 가의 차남이라 해도 혼자서 가문의 비밀을 조사하기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요시다가 야스라를 도와준 듯 보였다.
“……세상의 시선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군.”
요시다가 처용의 말에 잠시 침묵하고는 말을 이었다.
“어떻게 보면 다행이야, 이런 젊은 친구가 세상을 위해 싸워주고 있으니.”
“폭풍신께서도 인정하셨습니다.”
“그래, 이번엔 네가 옳았구나. 야스라.”
야스라의 말에 요시다가 작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처용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유례없는 이단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등 혹독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인간이 성좌의 화신체를 무력으로 때려눕히는 전례 없는 대형 사고를 일으켰으니까.
심지어 그런 처용의 성좌 역시 신계에서 말이 많은 신이었다.
야스라가 처용과 함께 한다 들었을 때…… 솔직히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처용을 직접 마주하니, 그런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살아오고 싸워온 감이 처용을 악인이 아니라 판단했으니까.
어쩌면 애초부터 가문과 맞지 않은 선한 성품을 가진 야스라이기에 처용을 알아본 것일 수도 있었다.
“그보다도, 시간을 끌어주신 덕분에 가문의 비고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야스라가 처용을 보며 말했다.
처용이 성지에서 테러를 일으키며 모두의 시선을 붙잡는 동안.
야스라는 가문의 비고에 접근하여 ‘데미갓 프로젝트’가 정확히 무엇인지 찾는다.
이것이 작전이었다.
“흠…….”
처용은 야스라의 말을 들으면서도 가토를 응시했다.
아무리 그가 삶을 포기한 듯 보여도.
아직까지는 이자나기 성운, 무라키 가의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하아, 가토 상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주일 뒤에 자결할 놈은 신경 쓰지 말게나.”
야스라와 요시다가 가토를 향해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마치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는 듯한 분위기.
그런 그들의 말대로 가토는 야스라가 중요한 정보를 말하는데도 정말 관심이 없다는 듯한 분위기였다.
마치…… 이젠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보였다.
“쯧쯧, 권력을 따르는 것이 아닌, 가문과 명예를 위해 싸우라 가르쳤건만…….”
요시다가 가토를 향해 혀를 차며 말했다.
“……가토 상은-.”
야스라가 가토를 향해 슬픈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그는 처용이 예상했던 대로 무라키 가문과 이자나기 성운의 재판을 받은 상태였다.
며칠 동안 시간을 줄 테니 주변을 정리하고 할복하라는 것.
그것이 그가 받은 재판 결과였다.
그가 다른 시노비들을 위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쓴 결과였다.
가토는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주변을 정리하며 돌아다니다가 이곳에 온 것이었다.
차원 붕괴가 일어나기 전부터 무라키 가를 위해 충성한 시노비들.
그들은 애초부터 인간이 아닌 철저한 도구로 교육을 받아온 이들이었다.
도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버리고 교체하는 것은 당연한 것.
무라키 가와 이자나기 성운에 있어서 헌터들, 특히 시노비들은 그런 존재였다.
“시노비장이었던 자가 여기에 있는 것 자체가 위험한 거 아닌가?”
처용이 의심을 거두지 않고 가토를 바라보며 말하자.
“그건 걱정 말게나.”
요시다가 처용을 말에 대답하듯 말을 이었다.
“이곳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저 망할 녀석과 야스라 뿐이니까. 그리고…….”
잠시 말을 흐린 요시다가 처용의 발밑 그림자를 응시했다.
“자네랑 자네 친구도 이제 포함되었군.”
“…….”
처용이 요시다의 말에 작은 놀람을 표하며 미소를 지었다.
“반응을 보니 맞나 보군. 나도 아직은 늙지 않았나? 끌끌.”
요시다가 처용의 반응에 작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러자.
-스르르.
처용의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루나가 나타났다.
그녀는 처용이 다른 신의 성지를 공격한다는 말에 처용의 전투를 구경하고자 따라온 것이었다.
그리고 류마를 포함한 일부 뱀파이어는 지금 성자와 함께 있었다.
주목을 받는 성자를 향해 신의 검객 길드가 또다시 위협을 가할 가능성은 적었지만.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할 필요는 있었으니까.
만약 또다시 성자를 공격하는 미친 짓을 벌인다면 루나를 통해 즉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뱀파이어 아가씨였구만, 앉게나.”
요시다가 루나의 정체를 태연하게 말했음에도 처용은 당황하지 않았다.
태룡사에 거주하는 이종족들 중에 뱀파이어가 있다는 사실은 나름 알려진 상태였으니까.
“식사부터 하게나.”
요시다가 사람들 앞에 준비된 초밥을 내었다.
“나 입맛 까다로운데?”
루나가 처음 접하는 음식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하자.
“까다로우면 좋지, 솔직한 평가를 받을 수 있으니. 끌끌.”
요시다가 작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초밥을 잠시 관찰한 루나가 하나를 집어먹자.
“맛있어!”
밝은 미소와 함께 솔직한 평가를 흘렸다.
‘진짜 맛있네?’
그런 루나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요시다가 만든 요리는 정말 뛰어났다.
그리고.
“이거, 몬스터로 만든 거로군요. 그것도 A급.”
처용은 초밥 위에 얹어진 생선 살코기가 평범한 생선이 아닌 몬스터라는 것을 알아봤다.
“끌끌, 특별한 손님이 온다고 해서 아껴두었던 ‘골든 그루퍼’를 꺼냈지.”
요시다가 미소를 지으며 재료가 무엇인지 말해주었다.
일본의 A급 상위 던전 중 하나인 그레이트 그루퍼 홀.
흉측한 우럭처럼 생긴 20미터 크기의 어류형 몬스터가 출몰하는 위험한 던전이었다.
그리고 골든 그루퍼는 그런 던전의 보스 몬스터였다.
“재료 공급 겸, 심심할 때마다 운동 삼아서 혼자 사냥해 오거든.”
“그렇군요.”
요시다의 말에 처용이 대답하며 생각했다.
무려 A급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혼자서 사냥해 온다?
그의 실력이 현역 시절에 비해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1세대 영웅이라…….’
커맨더와 같은 가장 위험한 시기에 앞장서 싸운 경험 많은 헌터.
그가 헌터로서 가진 노하우와 많은 경험은 추후 벌어질 싸움에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미 은퇴한 그를 다시 끌어들이기에는 미안하지만, 앞으로의 힘든 싸움에는 많은 인재가 필요했다.
눈앞의 요시다 같은 인물이라면 더더욱.
혹시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
“아까 한 말을 이어서 하자면, 데미갓 프로젝트는 예상대로 인간을 반신으로 만드는 실험이었습니다.”
야스라가 무라키 가의 비고에서 털어온 정보를 언급하며 말했다.
처용이 테러를 벌이며 난동을 피우는 동안.
야스라는 무라키 가의 비고를 확인하고.
스사노오는 신계 아자나기 성역, 주신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에 몰래 잠입했었다.
그 결과 대략 어떤 방식으로 실험이 이루어지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신성력이 아닌 순수한 신력을 인간의 몸에 이식시키는 실험이었습니다.”
“성녀처럼?”
처용이 특이 체질을 가진 사람, 성녀를 언급하자.
“조금 다릅니다. 체질을 강제로 변화…… 개조시킨다고 해야 할까요?”
야스라가 작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무라키 가와 이자나기 성운은 실험체의 체질을 강제로 바꾸고 반신으로 만드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나?”
야스라의 이야기를 듣던 처용이 터무니없는 듯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육체를 뜻대로 개조하고 병기로 만든다?
절대로 쉽지 않았다.
끊임없이 육체를 단련하고 수련해 온 처용이기에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폭풍신께서 이자나기 성운의 성역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봤다고 합니다.”
야스라가 굳은 표정으로 스사노오에게서 전달받은 말을 꺼냈다.
“주신만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에 ‘태초의 조각’이 있었다고…….”
야스라의 말이 끝나자.
“……뭐라고?”
처용이 인상을 쓰며 되물었다.
동시에.
‘스승님, 지금 폭풍신의 신관이 하는 말이…….’
여래에게 이 사실을 빠르게 알렸다.
그러자.
[안 그래도 지금 스사노오가 우리에게 찾아와 말해주더구나.]
즉각 여래의 답이 들려왔다.
이미 스사노오가 여래를 찾아가 자신이 무엇을 봤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아마테라스…… 아니 이자나기가 태초의 조각을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스사노오가 전달한 말에 여래 역시 당황스럽다는 듯한 분위기였다.
이자나기 성운이 설마 태초의 조각을 가지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그 태초의 조각이 가진 힘을 ‘적합자’와 융합시켜 괴물을 만들 생각이더구나.]
태초의 조각.
여래에게 듣기로는 태초신이 소멸하며 퍼진 파편, 즉 영혼의 조각과 같은 개념이라고 했었다.
태초신에게서 분리되어 탄생한 태초의 마수들 역시 각각 태초의 조각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강력하고 위험한 힘을 가진 태초의 파편.
그 태초의 파편을 잘못 다루게 된다면, 재앙이 일어나는 것은 뻔했다.
‘이자나기 성운이 멸망한 이유가…….’
처용이 회귀 전 일들을 떠올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자나기 성운의 멸망.
재앙의 나무의 탄생.
라이언의 딸, 상급 마인인 에블린.
아스모데우스의 페러사이트 디멘터.
그리고…… 태초의 조각을 이용한 위험한 실험.
아직 전부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비어 있는 정보의 조각 하나를 찾은 느낌이었다.
“이거 아무래도…… 이자나기 성운의 성지를 한 번 더 뒤집어 버려야겠는데?”
생각을 마친 처용이 낮게 일렁이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