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성자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따지기 위해, 하루 전 미리 일본을 방문한 상태였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일본 헌터 협회와 신의 검객 길드는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처용이 나타나 테러를 벌이는 상황이었다.
“저 혼자서는 막기 버겁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성자가 휘하 헌터들을 바라보며 말하자.
“예! 성자님.”
“빛이 우리를 인도하리라!”
안드레아를 포함한 성수의 기사들과 성역의 사제들이 답했다.
-화아아!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스스로의 힘을 나누어주는 빛의 인도를 발동하자.
-스르르.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온 빛의 힘이 성자에게로 모였다.
그리고.
“그레이터 세인트 실드!”
성자가 두 손을 하늘 위로 뻗으며 하늘 위를 감싸는 거대한 실드를 펼쳤다.
-쿠콰콰쾅!!
떨어져 내리는 바위들이 성자의 실드에 막히며 부수어지고 폭발을 일으켰다.
“크윽.”
성자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침음을 흘렸다.
실드가 깨진 영향으로 몸이 잠시 흔들렸지만.
“디바인 생츄어리!”
곧장, 신성한 영역을 펼치며 추가로 떨어지는 바위 파편까지 완벽하게 막아내었다.
성자가 처용의 공격을 막아내자.
-성자? 성자다!
-막았어!
도망치던 사람들이 성자를 알아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처용, 일본의 헌터들, 이자나기 성운의 화신체들까지 모두 그를 주목했다.
그리고.
“……성자.”
위에서 분노가 일렁이는 눈빛으로 성자를 바라보는 처용으로 인해 다시금 긴장감이 감돌았다.
공격을 막아낸 성자가 처용을 보며 잠시 침묵하더니.
“저 때문에 이러시는 거라면, 그만둬 주십시오.”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들은 죄 없는 시민들입니다.”
“……시민들은 죄가 없다고?”
성자의 말에 처용이 모여든 관중들을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잘 들어. 성자.”
처용의 목소리에 신력이 섞이며 작은 목소리임에도 크게 울려왔다.
“신의 검객 길드를 지지하는 것, 그 자체가 죄다.”
신의 검객 길드가 마인들과 작당하여 성자에게 해를 끼치려 했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시민들 대부분은 이자나기 성운과 신의 검객 길드를 신성시하며 지지하는 이들이었다.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신의 검객 길드가 성자에게 해를 끼쳤을 리가 없다.
신성한 이지나기 성운이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리가 없다.
세계가 경악할 만한 짓을 저질렀음에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먹이며 사실을 외면했다.
그간 일본 정부와 무라키 가가 시민들의 눈을 가리고 성공적으로 정치 공작을 펼친 결과였다.
“진실을 외면하는 ‘무지함’ 그 자치가 죄다!”
그것이 처용이 선동에 몰려든 이들을 향해 공격을 퍼부은 ‘공식적인’ 이유였다.
“거기 모여든 버러지들은! 전부! 성자인 당신을 죽이는 데 동참한 놈들이란 말이다!”
분노가 가득한 처용의 말에 선동에 몰려든 시민들이 움츠렸다.
“이분들은…… 그저 알지 못했을 뿐입니다.”
성자가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 슬픈 시선을 던지며 말하자.
“알지 못한 것이 아니다! 알려고 하지 않은 것이다! 내 알 바가 아니니까!!”
성자가 죽든 말든, 거대 성운의 실험체로 쓰이든 말든.
그것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내 알 바가 아니다.
처용은 그런 무지함과 멍청함, 이기심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차후 전쟁에 방해가 되면 되었지 절대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이들이 그냥 죽어 버리면 상관없었지만.
회귀 전에는 그런 이들 대부분이 배신자가 되어 동료에게 칼을 겨누었었으니까.
처용의 말에 성자가 다시 한번 시민들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모여든 사람들 역시 성자를 향해 불안한 시선을 던졌다.
그런 시민들을 잠시 바라본 성자는.
“……저 때문에 이러시는 거라면, 제가 이들을 용서하겠습니다.”
처용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니, 당신도 이들을 선처해 주십시오.”
성자의 말에 처용이 잠시 침묵하고는.
“성자…… 너는 두 번이나 배신을 당했어.”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그에게 물었다.
휘하 세력이었던 교단 소속 헌터들의 배신.
그리고 그가 많은 도움을 주었던 일본의 세력들.
그들은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그런데도! 너를 죽이는데 동조한 놈들을 용서한다고!?”
처용은 다른 것들은 둘째 쳐도 ‘배신’만큼은 용서가 불가능했다.
“이런 개 같은 세상에서! 이타적으로 행동한다는 게 얼마나 멍청한지를 모르나!?”
차원이 무너지고 세계의 질서가 흔들린 세상.
은혜를 베풀면 원수로 갚고 자비를 보이면 만만하다고 생각하며 은인을 배신하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이런 세상이기에…… 저 하나쯤은 이타적이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역천군주.”
성자가 옅은 웃음을 보이고는 진지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
성자의 대답에 처용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성자…… 역시 변하지 않았군.’
그가 왜 사람들에게 성자라고 불리는지.
회귀 전, 지구가 멸망한 후 다른 세계의 사람들도 왜 그를 성자라 불렀었는지.
다시 한번 이해가 되었다.
“……젠장.”
결국, 처용이 시민들을 향해 겨누던 손을 거두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원래는 적당히 하고 내일 다시 하려 했는데 말이야…….”
다시 이자나기 성운의 성지를 매섭게 노려보며 손을 뻗고는.
“역시 네놈들만큼은 용서할 수가 없어.”
분노가 일렁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세상을 위해 진심으로 행동하는 성자를 죽이려 한 이들.
다시금 그런 이들에게 분노가 솟구쳤다.
-키이이!
처용의 손아귀에 새하얗게 불타오르는 에너지가 응축되기 시작했다.
“종말의 백야.”
눈앞의 모든 것들을 쓸어버리는 카투라의 초월기, 종말의 백야가 처용의 손에 응축되었다.
“젠장! 성지의 실드를 최대치로 올려라!”
그 모습을 본 요키라가 기겁한 표정으로 외쳤다.
[태양빛의 가호.]
[달빛이여.]
아마테라스와 츠쿠요미를 포함한 성좌들도 각각 권능을 발현하여 방어를 준비했다.
“이걸로 끝이라 생각 마라.”
-위이이잉!!
처용의 손아귀에 모인 백색의 에너지가 최대치에 달했다.
이윽고.
-!!
모든 것을 지워 버리는 백색의 광선이 성지를 향해 발사되었다.
***
처용이 일본을 한바탕 발칵 뒤집어 버린 후.
“피해가…… 얼마나 되나?”
요키라가 허무한 목소리로 휘하 헌터를 향해 말했다.
“다행히 사망자는 많지 않습니다. 성좌님들께서 보호해 주신 덕분에…….”
요키라의 옆에 있던 헌터 하나가 말을 이었다.
“문제는…… 성지의 상태가…….”
사망자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성지의 상태가 거의 반파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아름다운 경관과 건물들이 무너지고 망가졌다.
성지에 축적해 놓은 마나와 소모품 역시 많이 사용해 버렸다.
그리고.
[혈선! 한처용! 죽여 버리겠다!!]
이자나기 성운의 주신, 아마테라스가 극도로 분노한 상태였다.
다른 성좌들의 화신체 역시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동시에 망가진 성지를 보며 놀라움까지 일렁이고 있었다.
거의 전쟁을 했다고 해도 무방한 성지의 상태.
이 모든 상황을 고작 인간 하나가 저지른 짓이었으니까.
[인간이…… 이 정도로 성장하는 것이 가능한 건가?]
괴력의 신 타지카라오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혈선 또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제자이니…….]
타지카라오노의 말에 츠쿠요미가 말을 이었다.
[여래는 오랜 시간 수행을 거쳐 신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그의 스승인 보현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헌데…….]
[그 아이는 고작 몇십 년 살았지.]
타지카라오노가 츠쿠요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그때.
[전 주신께서 금오도를 멸망시킨 이유가 그것 때문이다!]
아마테라스가 그런 성좌들을 향해 외쳤다.
[하계종들이 분수에 맞지 않는 힘을 가지면 저런 재앙이 되니까!]
악에 받친 목소리로 아마테라스가 말하자.
[그 말은 틀렸소. 누님.]
스사노오가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스사노오……!]
[진실을 왜곡하지 마시오.]
스사노오가 아마테라스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은 누님이 저지른 짓이지 않소?]
[네가 무엇을 안다고 지껄이는 것이냐!?]
아마테라스가 스사노오의 말에 분노를 담아 외쳤다.
[……왜 이렇게 추악해진 것이오.]
그런 아마테라스에게 스사노오가 슬픔이 담긴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당장 이 배신자를 잡아!]
아마테라스가 휘하 성좌들을 향해 명령하듯 말했다.
그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스사노오를 향해 성좌들이 다가왔다.
그러자.
[지금! 이자나기 성운이 저지르는 짓거리가! 정녕! 고결하다고 믿는 것인가!]
스사노오가 성좌들을 향해 일갈하듯 말했다.
[타지카라오노.]
그리고 명령을 받은 성좌 중 하나, 타지카라오노를 바라봤다.
[네가 받은 신명인 괴력은 그저 상대를 힘으로 때려눕히라고 받은 이명이 아니었다.]
[…….]
[만인을 악으로부터 보호하고 그 악을 물리치라 받은 이명이란 말이다.]
스사노오의 말에 타지카라오노가 침묵했다.
[츠쿠요미 너 역시 마찬가지다!]
스사노오는 성좌들의 이명을 하나하나 언급하며 말을 이었다.
[누님 역시 마찬가지란 말이오! 태양빛의 여신!]
마지막으로 언급한 것은 자신의 누이이자 이자나기 성운의 주신이었다.
[사람을 태워 죽이는 게 아니라! 만인을 비추고 인도하는 게 태양빛이란 말이다!!]
어두운 악을 걷어내고 사람들을 태양빛으로 인도하는 여신.
그것이 아마테라스가 받은 태양빛의 진정한 의미였다.
[태양빛을 상징하는 성좌가 어찌 이리 추악해졌단 말인가!]
[닥쳐라!]
스사노오의 말에 아마테라스가 일갈하듯 외쳤다.
-화르르!
아마테라스가 당장이라도 공격할 듯 일렁이는 태양빛을 뿜어댔다.
그러자.
-휘이이!
스사노오 역시 폭풍과도 같이 몰아치는 청색의 신력을 분출했다.
[너!]
그 모습에 아마테라스가 경악을 섞어 말했다.
스사노오는 자신을 향해 핀잔을 던지거나 짜증을 낼지언정 진심으로 공격적인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다른 성좌들 역시 달라진 스사노오의 모습에 주춤했다.
그리고.
[나 폭풍의 대신은 이자나기의 주신에게 ‘성좌전’을 신청한다.]
모두가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폭탄선언을 해버렸다.
성좌전(星座戰).
간단히 말하자면 성좌들 간의 약속을 걸고 결투를 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한 성운의 소속 성좌가 주신을 향해 성좌전을 건다는 의미는…….
주신의 자리를 걸고 결투를 신청한다는 의미였다.
다만, 조건이 있다면 주신의 자격이 주어진 자만이 가능하다는 것.
스사노오는 아마테라스의 동생.
전 주신, 이자나기의 자식이니만큼 그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
[……!]
스사노오의 선언에 이자나기 성운의 성좌들이 혼란스러운 듯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성좌전?”
“……어떻게 되는 거야?”
그 모습을 지켜보는 신의 검객 헌터들 역시 혼란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진심이신가요. 오라버니?]
츠쿠요미가 스사노오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는 누님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스사노오는 그런 츠쿠요미의 말에 대답하지는 않고.
[왜 누님을 말리지 않은 것이냐?]
슬픔과 핀잔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
츠쿠요미가 스사노오의 말에 뭐라 대답하지 못할 때.
[감히……! 네가 미쳤구나!]
아마테라스의 표정이 확 일그러지며 분노를 내뿜었다.
그러자.
[더 이상 누님이 ‘그것’을 함부로 사용하게 두고 볼 수 없소.]
스사노오가 아마테라스를 향해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그걸 본 것이냐?]
아마테라스가 작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주일의 시간을 주겠소. 부디 마음을 바꾸시오.]
스사노오는 아마테라스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할 말을 계속했다.
주신인 아마테라스가 부디 마음을 바꾸기를 바라면서 시간을 준 것이었다.
그녀가 계속 제 고집을 밀고 나가겠다면…… 영원히 적이 되겠다는 뜻이었다.
스사노오는 마지막으로.
[……아직 마음속에 ‘고결함’이 남아 있다면 곰곰이 생각들을 해 보시오.]
이 상황을 지켜보는 성좌들을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파아아…….
스사노오가 폭풍의 신력을 거두고 거칠게 뒤를 돌았다.
[멈춰…….]
아마테라스가 뒤돌아 나가려는 스사노오를 향해 외쳤다.
[거기 서라 스사노오!]
[부디…… 현명한 판단을 해주길 바라오. 누님.]
스사노오는 아마테라스를 잠시 응시하며 말하고는 사라졌다.
성지에 시간이 멈춘 듯한 침묵이 감돌았다.
[……모두 성지부터 수습해라.]
츠쿠요미가 침묵을 깨고는 헌터들을 향해 명령했다.
그리고.
[……우선, 돌아갑시다.]
멍한 분위기로 서 있는 아마테라스의 팔을 잡아채 사라졌다.
그러자 다른 성좌들 역시 화신체를 해제하며 돌아갈 준비를 했다.
[먼저들 돌아가게. 난 병사들이나 좀 도와주고 가겠네.]
타지카라오노가 신계로 돌아가는 성좌들을 향해 말하고는.
-쿠구구!
권능을 발휘하며 무너진 잔해를 빠르게 수습하기 시작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츠쿠요미의 신관, 무라키 미오가 감사를 전하자.
[…….]
생각이 많은 듯한 표정의 타지카라오노는 굳이 대답하지는 않았다.
괴력의 신 타지카라오노.
그는 깊은 고민이 있거나 생각이 많아지면 몸부터 움직이는 성격이었다.
그런 그가 자진해서 인간들을 도와 성지를 수습하고 있는 상황.
그만큼 많은 생각과 고민이 머릿속에 휘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