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신의 검객 길드 본부.
-벌컥!
길드장실의 화려한 여닫이문이 거칠게 열렸다.
“크, 큰일입니다!”
급하게 길드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A급 헌터가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그러자 업무를 보던 신의 검객 길드장.
“……뭐냐.”
무라키 요키라가 인상을 거칠게 일그러뜨리며 들어온 헌터를 쏘아봤다.
그리고.
“성지 입구에 여, 역천군주가 와 있습니다.”
이어지는 부하의 보고에 일그러지던 인상이 더욱 거칠게 구겨졌다.
“……뭐라고?”
혹시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다시 물었지만.
“성지 입구에 역천군주가 와 있습니다.”
보고하러 온 A급 헌터가 침착함을 되찾으려는 듯 차분하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부하의 말이 끝나자.
-쾅!
요키라가 책상을 주먹으로 거칠게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새끼가 여길 왜!? 아니 언제 입국한 거지?”
“역천군주가 입국했다는 보고는 없었습니다.”
요키라의 말에 부하 헌터가 즉시 대답했다.
처용의 행적은 모든 길드가 주시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가 타국에 방문하게 되면 즉시 해당 나라의 길드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처용은 복잡한 입국 절차 없이 그냥 나타난 것.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왔다고?”
요키라가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화르르륵!
길드장실 가운데에 불꽃이 피어오르더니.
[혈선의 신관이 제 발로 여길 찾아왔다?]
아마테라스의 화신체가 나타나며 말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태양신이시여.”
요키라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자.
[……놈을 유인해라.]
아마테라스가 서늘한 눈빛으로 명령하듯 말했다.
[놈이 무슨 목적을 가지고 왔건, 이번이 기회다.]
“……이미 저희는 실험체 하나를 확보한 상태입니다.”
요키라가 아마테라스의 명령에 불안한 듯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얼마 전 찾아온 협력자.
그 협력자가 보여준, 데미갓 프로젝트에 알맞은 후보가 있었다.
요키라는 그 실험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마무리되기 전까지 처용을 자극하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
“……조금 더 신중한 편이-.”
그러나 요키라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신관조차 되지 못한 것이! 내 명령에 불복하지 마라!]
아마테라스는 불편한 심기를 가득 담아 호통을 치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태양신이시여.”
결국, 요키라는 아마테라스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설마, 성운의 주신급 성좌가 직접 나서는데, 실패할까?’
성운의 주신이 직접 나서는 만큼, 안일한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일이 잘 풀리면 처용이라는 ‘불편한 존재’를 없앨뿐더러 가문의 실험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야스라는 어디서 무얼 하는 거지?’
동시에, 최근 잠잠한 야스라가 불안하게 느껴졌다.
가토가 올린 보고에 따르면 야스라는 이미 처용과 손을 잡은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당장 야스라에 대해 알아보고 견제하고 싶어도 지금은 불가능했다.
신의 검객 길드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던 시노비장(長)은 처분을 받은 상태였으니까.
‘일을 똑바로 했어야지……!’
요키라가 얼마 전, 임무 실패로 인해 처분을 받은 가토를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당장, 성지에 대기하고 있는 모든 헌터들을 모아라!”
보고하러 왔던 헌터를 향해 요키라가 명령하듯 말하자.
“네.”
A급 헌터가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우선 시간부터 끌겠습니다.”
요키라가 아마테라스를 향해 말하고는 바쁘게 움직였다.
***
처용이 신의 검객 길드 본부를 깜짝 방문하고 10분 정도 지나자.
“저를 따라오시지요.”
단아한 분위기의 청색 기모노를 입은 여성이 처용을 안내했다.
처용은 기모노를 입은, 익숙한 여성을 응시하며 그녀를 따라갔다.
[이름 : 무라키 미우]
[레벨 : 155]
[칭호 : S급, 우아한 달빛의 신관]
[클래스 : 거울의 환술사]
[특징 : 다양한 진법과 환영 마법에 특화된 클래스입니다.]
[스킬 : 거울의 환영, 무라키 검술…….]
역시나 안내를 하는 여성은 회귀 전, 기사로나 접했었던 S급 헌터였다.
야스라의 여동생이자 츠쿠요미의 신관인 무라키 미우.
“츠쿠요미의 신관이 직접 안내를 해주는 건가?”
처용이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을 텐데요?”
기모노를 입은 여성, 미우가 살짝 놀란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더 재밌는 사실도 많이 알고 있는데, 여기서 말해줄까?”
처용이 불길한 미소를 자아내며 말하자.
“……길드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미우는 표정을 바로잡으며 담담한 척 말했다.
처용은 그런 미우를 향해 작은 미소를 짓고는.
“신관도 되지 못한 길드장 말인가?”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은, 정확히는 무라키 가문이 숨기고 있던 사실 중 하나를 말했다.
“……!!”
처용의 말에 미우의 포커페이스가 깨졌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야스라 오라버니가 말해주었군요.”
미우는 굳은 목소리로 단 하나밖에 없는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아닌데? 야스라는 나한테 데미갓 프로젝트라는 ‘이름’밖에 알려주지 않았어.”
“가문의 비밀을…….”
처용의 말에 미우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드르륵.
처용을 안내하며 복도를 쭉 안내하던 미우가 화려한 여닫이문을 열었다.
미우와 처용이 안으로 들어서자.
“…….”
“…….”
넓은 일본식 방 안에 신의 검객 길드의 주요 헌터들이 모두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처용은 좌우로 길게 앉아 있는 이들을 하나하나 구경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네가 길드장인가?”
방의 끝, 가장 화려하고 넓은 방석 위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처용의 말에 길드장, 요키라를 포함한 몇몇 헌터들이 인상을 구겼다.
“……무슨 일로 일본에 오신 겁니까? 역천군주.”
요키라가 표정을 굳히며 처용에게 본론을 물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면 나야 좋지.”
처용은 날카롭게 노려보는 요키라를 재밌다는 듯 바라보고는 태연하게 자리에 앉아 팔짱을 꼈다.
그리고.
“데미갓 프로젝트가 뭐냐.”
대놓고 묻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게 무엇-.”
설마 직설적으로 데미갓 프로젝트를 언급할 줄은 몰랐던 요키라가 당황한 표정을 숨기며 말했지만.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인데?”
처용은 요키라를 포함한 몇몇을 눈동자를 돌려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츠쿠요미의 신관도 아는 눈치였고 말이야?”
“…….”
요키라가 처용의 말에 뒤에 있는 미우를 잠시 노려보았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본 처용은.
“성자와 커맨더의 조카를 납치해서 뭘 할 생각이었냐?”
요키라를 날카롭게 쏘아보며 다시 물었다.
“인공적으로 반신이라도 만들게?”
처용이 직설적으로 말들을 내뱉자 요키라와 신의 검객 헌터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가문에서 비밀리에 실험을 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야스라가 무언가 잘못 알린 것 같군요.”
요키라는 침착함을 되찾으려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시간을 더 끌어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마테라스가 안 보이는 거 보니 뭔가 준비하고 있나 본데?”
처용은 그런 그들의 생각을 훤히 꿰고 있다는 듯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안 그래? 츠쿠요미의 신관?”
뒤에서 조심스럽게 신성력을 움직이고 있는 미우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눈치 하나는 더럽게 빠르군. 미우!”
요키라가 때가 되었다는 듯, 미우를 향해 강하게 외치자.
“무한한 거울의 미로.”
미우가 소매에 숨겨둔 부채를 탁 피며 스킬을 발동했다.
-파창창! 피이이!
그녀가 부채를 피는 순간, 마치 거울이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공간이 깨지며 갈라졌다.
마치 처용을 중심으로 주변 공간이 거울이 깨진 듯 일그러지며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졌다.
“아무리 당신이라 해도 여기서 나오긴 쉽지 않을 겁니다.”
미우가 부채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잘했다! 미우!”
요키라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흐음?”
처용은 아무 문제없다는 듯 팔짱을 낀 자세 그대로 태연하게 앉아 있었다.
“여동생이 한 일에 너무 들뜬 거 아닌가? 신관도 되지 못한 떨거지? 크크.”
처용이 요키라의 민감한 부분을 건들며 조롱하자.
“닥쳐!”
요키라가 인상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네놈은 이제 우리 길드와 이자나기 성운을 위해 제물로 쓰일 것이다!”
“크, 크크크. 머저리 같은 새끼.”
처용은 광기 어린 요키라의 말에 태연하게 웃어 보이고는.
“내가 여길 못 나갈 거 같아?”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네놈은 절대로 나갈 수 없다!]
-화아아아!!
밝은 태양빛과 함께 아마테라스의 화신체가 나타났고.
-화아! 화아아!
미우의 뒤에는 달이 조각된 비녀를 머리에 꽂고 있는 여신, 츠쿠요미가 나타났다.
뒤이어 다른 이자나기 성운의 화신체들이 하나하나 강림했다.
“흠? 츠쿠요미의 술법을 신관들의 신성력, 화신체들의 신력으로 강화한 건가?”
처용이 강림하는 화신체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지금 자신을 가둔 미우의 스킬인 ‘무한한 거울의 미로’.
빠져나올 수 없는, 무한하게 이어지는 공간에 상대를 가두는 감옥과 같은 스킬이었다.
그리고 이 스킬은 본래 츠쿠요미가 사용하는 환영 진법에서 파생된 스킬.
미우가 발동한 스킬을 츠쿠요미가 더욱 강화해 주고, 거기에 다른 신관들과 화신체들이 힘을 더해주고 있었다.
[멍청한 놈! 함부로 신의 성지에 발을 들인 대가로 네놈의 육체와 혼을 받아가겠노라!]
아마테라스가 인상을 쓰며 말하자.
“큭, 지난번에 나한테 당한 게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나 봐? 태양신.”
처용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조롱하듯 대답했다.
그러자.
[이 건방진 하계종이!]
[네놈의 처한 상황을 알고는 있는 것이냐!]
성운의 주신을 향한 조롱에 다른 화신체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 모습을 하나하나 관찰하듯 지켜본 처용은.
“어째 하는 짓거리가 스승님한테 뒤진 이자나기와 다를 바가 없어.”
이자나기 성운의 역린이 될 만한 내용을 언급하며 비웃었다.
처용의 말이 울린 순간.
“…….”
“…….”
요키라와 미우를 포함한 헌터들은 멍한 표정으로 침묵했고.
[이-!]
[건방진 하계종 놈!]
[죽여 버리겠다!]
당연히 이자나기 성운의 성좌들은 난리가 났다.
특히.
[…….]
주신인 아마테라스는 섬뜩한 신력을 분출하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크크크.”
그 모습을 즐거운 듯 바라본 처용은.
“왜? 기분 나쁜가? ‘범죄자’인 이자나기를 언급하는 게? 크크.”
아마테라스를 싸늘하게 응시하며 조롱을 계속했다.
“꼬우면 문 열고 들어와서 나랑 붙든가.”
처용이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말하자.
[크흐흐…….]
아마테라스가 실소를 흘렸다.
[허세부리지 마라, 혈선의 신관.]
“허세?”
처용이 아마테라스를 향해 묻자.
[네놈은 여기서 살아 돌아갈 수 없다.]
아마테라스가 확신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이 상태로 날 네놈들의 실험에 쓸 테니까?”
[네 운명을 잘 알고 있구나, 멍청한 하계종 녀석.]
처용의 말에 아마테라스가 비웃음을 섞어 대답했다.
그때.
“역시나 태생적으로 오만한 놈들이라 그런가.”
-스르르르.
말을 하는 처용의 모습이 돌연 옅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멍청하기 짝이 없어.”
[…….]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챈 아마테라스가 처용을 자세히 관찰하자.
[젠장, 가짜군!]
눈앞에 태연한 모습을 보이는 처용이 가짜임을 눈치챘다.
“왜? 다 잡은 물고기인 줄 알았어? 낚시 실력이 형편없는데?”
처용이 아마테라스를 포함한 다른 이들을 쭉 둘러보며 비웃듯 말하자.
[네놈들은 왜 눈치채지 못한 것이냐!]
아마테라스가 휘하 성좌들과 헌터들을 향해 일갈했다.
하지만, 그녀조차도 눈앞의 처용이 분신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으니, 남 탓을 할 처지는 아니었다.
“그 성운에 그 병사들답군, 실력들이 아주 형편이 없어.”
처용, 아니 처용이 공들여 만든 분신의 말에 이자나기 성운의 화신체들과 헌터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네놈들의 입으로 많은 정보를 전달해 줘서 정말 고맙다고 해야 할까? 크크크.”
처용이 만든 분신은 이전, 연아와 윤아를 만든 분신과는 차원이 다른 분신이었다.
정확히는 그때 윤아가 분신을 간파한 이후, 처용이 여러 스킬과 권능을 재조합하여 다시 만든 것이었다.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진 분신 속에는 신력만이 아닌 다른 하나의 권능이 더 추가되었다.
바로, 크루마에게서 계승 받은 자생의 백염이었다.
[자생(自生)하는 인형]
[정교하게 만들어진 분신을 하나 창조합니다.]
[분신의 능력은 복사 대상의 50%까지 발휘할 수 있습니다.]
[내장된 자생의 백염이 완전히 소모되기 전까지 반영구적으로 활동합니다.]
[신력과 마력 스테이터스가 높을수록 더 강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최대 1개 생성 가능.
-내장된 에너지 소실 시, 분신 소멸.
살아 숨 쉬는 에너지 덩어리라고 할 수 있는 자생의 백염.
이 에너지를 추가해 만든, 더 정교한 분신은 윤아조차도 구분이 불가능했다.
다만, 이전보다 더 정교하게 만들어진 만큼, 단 한 개만 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네놈들에게 줄 선물이 하나 있는데.”
처용이 씨익 웃음과 동시에.
-우우웅!
몸 위로 새하얀 불꽃, 자생의 백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기존에 만들었던 분신들과는 다른 점 하나가 있었다.
분신의 동력, 즉 원자로라고도 할 수 있는 자생의 백염.
그 자생의 백염에 과부하를 준다면?
“요즘 성좌고 악마고 다들 자폭을 좋아하는 거 같아서 말이야.”
처용이 씨익 웃으며 말하자.
-우우웅!
몸 위로 흘러나오는 새하얀 불길이 더욱 거칠게 뿜어져 나왔다.
검은 화염을 폭발시켜 사방을 잿더미로 만드는 디아블로의 권능.
그리고 태양 폭풍을 불러일으키는 아마테라스의 권능.
지금 처용이 자생의 백염에 과부하를 걸어 벌이는 일은 두 권능의 묘리를 섞어 재현하는 것이었다.
“네이팜 버스트.”
처용의 말이 끝나는 순간.
-피이이!
마치 도자기가 깨지듯, 분신에 균열이 일어나며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이 ‘무한한 거울의 미로’까지 뚫고 새어 나오기 시작하자.
[모두 방어해라!]
아마테라스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성좌들의 화신체와 헌터들이 힘을 모아 급하게 방어막을 형성했다.
그리고.
-삐이이-!!
마치 핵폭탄이 떨어진 듯, 새하얀 빛이 사방으로 번지며 굉음이 귀를 울렸다.
[혈선! 네 이놈-!]
앞장서 처용의 자폭을 방어하던 아마테라스가 새하얀 섬광에 삼켜졌고.
[……큭!]
“……모두 막-!”
현장에 있던 화신체들과 헌터들 역시 빛에 삼켜졌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