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209화 (209/726)

#209화

처용과의 이야기가 끝난 성자는 곧장 교단 본부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곳에들 모여 계셨군요?”

교단의 고위 사제들이 비밀스럽게 모이는 장소를 습격했다.

“모두 잡아라!”

성자가 명령하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안드레아와 성수의 기사들이 들이닥쳤다.

“이게 무슨 짓이오! 성자!”

나이가 있어 보이는 고위 사제 중 하나가 성자를 향해 따지듯 묻자.

“홀리 프레스!”

성자는 분노가 일렁이는 표정을 지으며 스킬을 사용하는 것으로 대답했다.

-쿠구구!

신성력을 응축하여 압력을 가하자 고위 사제들이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그 틈에 기사단장인 안드레아와 성기사들이 고위 사제들을 제압하고 묶었다.

“감히! 추기경이 사라졌다고 우리한테 이렇게 함부로 대하는 것인가!”

고위 사제 하나가 성자를 향해 눈을 치켜뜨며 말하자.

“네놈들이 받들던 추기경은 대악마에게 몸을 바친 더러운 배신자였지.”

인상을 찌푸린 성자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항상 온화하고 차분한 모습을 보이던 성자였지만, 지금은 강압적이고 분노에 차올라 있었다.

처음 마주하는 성자의 모습에 붙잡힌 고위 사제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전부 끌고 중앙 광장으로 향한다!”

성자의 명령에 안드레아와 성기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척. 척. 척.

교단 본부의 중앙, 거대한 분수대가 자리한 곳.

그 앞에 방금 붙잡힌 고위 사제들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끌려 나왔다.

그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성자.”

교황이 성자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성자가 갑자기 고위 사제들의 집무실과 저택을 급습한 것.

심지어 고위 사제들을 그 자리에서 구속하여 어디론가 끌고 갔다는 것까지 보고를 받았다.

교황은 그 보고를 듣고 다급하게 나온 상태였다.

성자는 어떤 일이 터져도 원만하게 해결하거나 유연하게 대처하는 편이지.

이렇게 강압적으로 행동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배신자 검열을 하고 있습니다. 예하.”

온화한 눈빛을 지우고 분노가 일렁이는 눈빛을 보이는 성자가 교황을 향해 말했다.

“너무 격심한 분노가 느껴집니다. 마음을 좀 가라앉히십시오.”

교황이 성자를 향해 타이르듯 말하자.

“죄송하지만, 그건 좀 힘들겠군요.”

성자가 붙잡혀 온 이들을 싸늘하게 노려보며 대답했다.

“성자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신께서도 이 모습을 원하지-.”

교황이 ‘성자의 마음가짐’을 운운하며 말할 때.

“저와 제 동생을 죽이려는 배신자들 앞에서도! 온화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까!”

성자가 교황의 말을 자르며 분노를 담아 외쳤다.

처음 보는 성자의 분노한 모습에 교황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추기경은 빛의 신을 배반하고 대악마에게 몸을 팔아 리치가 되었습니다.”

성자는 모두가 들으라는 듯, 한국에서 자신이 본 일을 이야기했다.

“형제라고 믿었던 이들이…… 같은 형제들을 죽이고 내게 칼을 겨누었습니다.”

던전을 공략하고 나온 자신이 배신을 당한 일.

“죽어가는 제 동생을! 치료를 받고 있는 성녀를 납치하려 했습니다!”

성자인 자신을 노린 것도 모자라 성녀까지 노린 일.

그런 일을 저지른 배신자들이 한국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벌인 테러 등, 자신이 눈으로 직접 본 일들을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성자의 마음가짐’을 운운하지 마십시오. 예하.”

성자가 교황을 향해 분노가 일렁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단순히 추기경을 따랐다고 해서 이들 모두가 배신자는 아닐 겁니다.”

교황은 침착함을 되찾은 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억울하게 잡혀 온 이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조사를-.”

교황의 말에 잡혀 온 몇몇 고위 사제들이 작은 미소를 보였다.

그러나.

“이미 조사 준비는 끝났습니다.”

성자가 확신 가득한 목소리로 강하게 말했다.

동시에.

-촤르르륵!

로브 속에 숨겨져 있던 목걸이를 오른손으로 꺼내 쥐고는 들어 보였다.

납작한 타원형의 장식.

중앙이 반구형으로 볼록 튀어나와 있는, 마치 감고 있는 눈이 연상되는 장식이었다.

성자가 목걸이를 쥔 오른손을 하늘 위로 높이 뻗고는.

“눈을 떠라.”

목걸이, 아니 아티팩트를 향해 시동어를 외쳤다.

그러자.

-키이잉!

눈을 감은 듯 보이는 아티팩트 장식의 중앙이 열리며.

-화아아!

새하얀 보석으로 조각된 눈동자가 드러났다.

그 눈동자에서 밝은 빛과 ‘파마의 힘’이 뿜어져 나오자.

-치이이! 치이!

성기사들에게 붙잡혀 구속된 이들의 몸에서 검은 연기 같은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그 연기의 정체는 다름 아닌 마기의 ‘흔적’이었다.

-마기는 쓰고 버리면 사라지는 단순한 에너지가 아닙니다. 찐득한 잔여 흔적이 남는 에너지이지요.

성지에서 처용이 성자를 향해 목걸이를 건네주며 전한 말이었다.

-이 안에 담긴 파마의 힘이 당신을 도와줄 것입니다.

처용이 건넨 목걸이는 파마의 힘이 담긴 아티팩트.

그것도 마기를 감지하는 데 탁월한 성능을 보이는 아티팩트였다.

[마(魔)를 꿰뚫어 보는 눈동자 / 아티팩트]

[등급 : 유니크+]

[어둠을 꿰뚫어 보는 강력한 파마의 힘과 명환의 힘이 담겨 있습니다.]

[근처 어둠 속성의 은신, 은폐, 초은폐를 감지하고 드러냅니다.]

[미세한 어둠의 흔적까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착용자의 빛 속성 능력 증폭.

-근처 어둠과 마 속성의 힘을 무력화.

-파마의 눈 사용 가능.

성자가 꺼낸 목걸이는 처용이 루돌프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아티팩트였다.

심지어 아티팩트 중앙에 자리한, 눈동자 모양으로 조각된 보석.

그것은 다름 아닌 얼마 전에 성자에게 받은 샤이닝 스톤이었다.

조각된 샤이닝 스톤에 명환부와 파마의 신력을 인첸트한 것이었다.

그것이 이 아티팩트가 어둠과 마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였다.

-피이이!

마치, 등대처럼 아티팩트의 눈동자가 밝은 빛을 토해냈다.

“으어어!?”

“크윽? 이게 도대체?”

유독 찐득한 어둠이 흘러나오는 고위 사제들이 괴로움을 토했다.

그 모습을 혐오스럽게 바라본 성자는.

“마기의 흔적이 없는 자는 풀어줘라.”

우선, 정말로 억울하게 잡힌 이들부터 풀어주었다.

잡혀 온 수십 명 중, 겨우 다섯 명이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나오십시오.”

성자는 마기의 흔적이 없었던 이들을 앞으로 불러 세우고 아티팩트를 앞으로 내밀었다.

“커스 브레이크.”

저주를 없애는 신성 마법을 성자가 발동하자.

-푸슈! 파아아…….

불려 나온 다섯 명의 몸에서 검은 실선 같은 것들이 흘러나오더니, 점점 사그라졌다.

“저주는 사라졌으니, 이제 말씀하고 싶으신 것들을 말씀하셔도 됩니다.”

성자의 말이 끝나는 순간.

“고위 사제 펜더슨이 악마와 손을 잡았습니다!”

“추기경이 저희에게 저주를 걸었습니다!”

“이 일을 알리려던 형제가 제 눈앞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은 그간 말하지 못한 억울함을 한껏 풀어내려는 듯, 고위 사제들을 노려보며 외쳤다.

성자는 아티팩트를 쥐고 그들의 말을 경청했다.

동시에 그가 쥔 아티팩트의 눈동자가 작은 빛을 점멸하고 있었다.

[파마의 눈 / 아티팩트 스킬]

[주시 대상의 진실과 거짓을 판별합니다.]

[주시 대상이 진심으로 마를 따르는 이인지 아닌지 판별합니다.]

아티팩트 마를 꿰뚫어 보는 눈동자의 스킬인 파마의 눈.

이 스킬은 대상이 마(魔)에 진심으로 충성하는 이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앞에서 증언을 하는 이들이 저주에 감염되었음에도, 마기의 흔적이 새어나오지 않았던 이유.

이들은 추기경의 측근들처럼 진심으로 마에 따르는 이들이 아니었다.

“이들을 모두 수감시켜-!”

모든 증언을 확보한 성자가 잡혀 온 이들을 향해 외칠 때.

-콰아아!

하늘에서 빛의 기둥이 내려왔다.

[감히! 나를 배신하고 내 신관을 죽이려 했겠다!]

빛의 기둥 속에서 야훼의 화신체가 분노를 토해내며 나타났다.

“빛의 신이시여.”

성자가 야훼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하자.

[이 배신자들의 쓸모는?]

야훼가 성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눈앞에 잡혀 온 배신자들에게 더 얻을 정보는 없냐는 의미.

“없습니다.”

성자가 야훼의 말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네놈들은 내가 직접 심판할 것이다!]

야훼가 구속되어있는 배신자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모습을 본 배신자들은.

“사, 살려 주십시오!”

“저희는 그저 추기경의 명령에-!”

몸부림치며 살려 달라 소리쳤다.

배신자들을 혐오스럽게 바라보는 야훼는.

[재가 되어 사라져라!]

쓰레기를 바라보듯 혐오감을 가득 담아 말하며 뻗은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콰아아!!

하늘에서 빛의 기둥이 배신자들에게 내리쳤다.

-파사사!

무려 신이 직접 내리는 심판에 배신자들은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재가 되어 사라졌다.

심판이 끝난 것을 확인한 성자는.

“……‘재판’은 끝났습니다. 모두 돌아가십시오!”

큰 목소리로 외치며 사람들을 해산시켰다.

본래 재판이란 죄인들을 잡아 죄를 밝혀내고 법률에 따라 판단하는 일이었지만.

이곳은 성지, 신이 다스리는 영역이었다.

죄가 밝혀진 죄인들을 신이 직접 벌한 것이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모여든 사람들이 흩어지고 있을 때.

[한처용, 혈선의 신관은?]

야훼가 성자를 향해 물었다.

“아마 지금쯤…….”

성자가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하자.

[그놈의 의견에 따를 생각이겠지?]

야훼가 성자를 바라보며 짜증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그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가장 좋다고 판단되옵니다. 빛의 신이시여.”

성자가 고개를 숙이며 진지하게 말했다.

[젠장.]

야훼가 성자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찼지만.

[어쩔 수 없지.]

마지못해 수긍한 듯 성자의 의견에 찬성했다.

그리고.

[관리자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야훼가 얼마 전, 다시 찾아왔던 미륵을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멍청하게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텐가?

미륵, 관리자가 ‘태초의 성역’에서 저지른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열이 뻗쳤으나.

[감히! 내 신관을 제물로 쓰려 했겠다?]

얼마 전 자신을 크게 엿 먹인 이자나기 성운.

그들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자신의 신관을 ‘어떤 일의 제물’로 쓰려 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 건방진 년이 호되게 당하는 꼴부터 봐야겠다!]

“……알겠습니다.”

야훼의 말에 성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는.

“슬슬, 시작하시죠.”

안드레아와 몇몇 성역의 사제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성자님.”

안드레아가 휘하 사제들과 함께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성자와 성기사들이 각자 할 일을 위해 흩어졌을 때.

“빛의 신이시여.”

교황이 야훼의 화신체를 향해 정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성자가 변했습니다.”

그리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교단의 상징이 되어야 할 성자.

그가 최근 무언가의 영향을 받고 변한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었다.

교황은 성자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가 처용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괜찮은 것인지요?”

교황이 걱정을 가득 담아 묻자.

[문제는 없다.]

야훼는 정말 문제가 없다는 듯 진지하게 말했다.

[일단은, 네놈도 내 신관을 따라 ‘청소’를 도와라.]

교단을 내부에서 좀먹고 있는 이들을 정리하라는 의미.

“알겠습니다. 빛의 신이시여.”

교황은 그 의미를 바로 알아듣고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

바티칸의 교단 본부에서 고위 사제들이 야훼에게 처형당한 후 이틀이 지났다.

-분노한 빛의 신, 직접 배신자들에게 심판을 내려…….

-성자, 신의 검객 길드에게…….

무려, 분노한 신이 직접 강림하여 인간을 심판한 일이었기에 나름 크게 이슈가 되었다.

신의 힘을 두려워하는 몇몇 인간들은 우려를 표하기도 했었다.

인간들이 만든 법과 재판 위에 신이 있는 셈이었으니까.

“화가 많이 났나 보네. 그 양반이 직접 내려올 정도면. 크크.”

처용이 스마트폰 속 기사를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본래 신들은 지상의 일에 크게 관여하려 들지 않는다.

특히 오만한 빛의 신, 야훼는 더더욱 그런 편이었다.

자신의 세력이라 해도 인간들끼리의 밥그릇 싸움이나 세력 싸움에는 신경을 쓰지 않으니까.

그런데 그런 야훼가 직접 강림하여 배신자들을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그가 이번 일에 얼마나 분노했는지 알 수 있었다.

과격한 방법이긴 했지만, 어떻게 보면 이번 일을 통해 신의 위엄을 높이는 셈이었다.

함부로 신을 거스르지 말라는…….

“그래, 우두머리면 우두머리답게 밑에 놈들이 잘하는지 감시할 줄도 알아야지.”

처용은 이번 일을 나름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교단이 내부에서 부패한 가장 큰 이유.

그들이 모시는 신인 야훼가 자신의 세력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교단의 고위직들이 신의 눈치를 보지 않고 비리를 저지르기 시작한 것.

그 비리는 비리의 정점에 있던 추기경이 대악마와 손을 잡는 결과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길드의 인간들이 먼저 비리를 저지르는 일은 줄어들 것으로 보였다.

“슬슬 시간이 됐네.”

보던 기사를 끄고 스마트폰을 집어넣은 처용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정면을 바라봤다.

지금 처용이 있는 곳은 한국이 아니었다.

바로 일본의 수도인 도쿄, 신의 검객 길드 본부이자 이자나기 성운의 성지 앞이었다.

일본식 기와가 펼쳐진 화려한 가옥들과 곳곳에 핀 벚꽃 나무들, 현대식 빌딩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장소.

아름답게 꾸며진 경관을 구경하며 거리는 다니는 사람들과 헌터들.

다들 조만간…… 이곳에서 무슨 일이 발생할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흐음…….”

처용은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경치를 구경하며 신의 검객 길드 본부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저 사람 어디서 많이 봤는데?

-……야, 저, 저 사람 혹시!?

몇몇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낸 처용을 알아보며 수군거렸다.

이윽고 처용이 길드 본부 앞에 도착하자.

“무슨 용건으로…… 여, 역천군주!?”

성지 입구를 관리하던 A급 헌터 하나가 기겁한 표정을 지으며 물러났다.

그 모습을 씨익 웃으며 바라본 처용은.

“여기 주인장한테 전해.”

자신을 경계하며 빠르게 모여든 신의 검객 소속 헌터들을 향해 말했다.

“귀한 손님이 찾아왔으니까. 맞이하라고. 크크.”

처용이 불길하게 웃으며 말하자, 성지 입구를 관리하던 헌터들이 식은땀을 흘렸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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