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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208화 (208/726)

#208화

이틀이 지나고 커맨더가 돌아오자.

“라이언…… 도대체 왜?”

이번 테러를 해결한 주역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커맨더가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라이언 헌터는 당신의 전 파티원이었죠?”

제시카가 커맨더, 그리고 그의 파티원인 백호 등을 보며 말했다.

“정말로 그가 마인이 된 건가요?”

“라이언이 확실했습니다. 그의 결전기도 확인했고요.”

스티븐이 제시카의 말에 착잡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역시 라이언과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같이 던전도 공략한 적이 있었기에 나름 라이언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 일 때문이겠지?”

진호가 팔짱을 끼고 인상을 쓰며 말했다.

마치,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는 듯 보였다.

“안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구만.”

백호가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잘못 봤나 싶어서, 수십 번 다시 보고 다시 봤었어.”

테러 당시, 솔저와 리더를 포함한 마인들의 습격.

그리고…… 그들 사이에 있던 키가 작은 로브를 뒤집어쓴 소녀.

그녀가 검은 나무뿌리를 소환할 때 로브 사이로 보였던 얼굴.

그 순간 백호의 시야에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를 죽이려는 처용을 몸으로 막아서는 리더.

그는 자신의 목숨보다 소녀가 중요하다는 듯 팔을 잃으면서까지 그녀를 보호했다.

마인으로서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어린 마인은 ‘에블린’이였어.”

백호가 로브 사이로 보였던 소녀의 얼굴을 다시 떠올리며 말하자.

“……뭐라고?”

“그게 정말이에요?”

진호와 커맨더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동시에 그들과 같은 커맨더의 파티원 전원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샬럿이 부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에블린은…… 죽었잖아요.”

커맨더의 파티원 전원이 놀라는 이유.

백호가 본 그 소녀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으니까.

“그것도 ‘우리’ 앞에서…….”

샬럿이 말을 하다 말고 입술을 깨물며 말을 흐렸다.

“라이언이 은퇴한 원인이지.”

백호가 샬럿이 삼킨 뒷말을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좀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분위기를 살피던 처용이 진지하게 말했다.

“아니, 들어야만 합니다. 그 에블린이라는 소녀 때문이라도.”

“그러고 보니 자네는 에블린…… 아니, 그 소녀를 기를 쓰고 죽이려고 하던데, 왜?”

백호가 처용을 향해 궁금한 듯 물었다.

“검은 나무뿌리…… 그건 정말 위험한 생명체이니까요.”

처용은 일행들에게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대략적으로 말했다.

판데모니움에는 검은 나무뿌리 형태의 괴물이 있고 그 소녀가 그 괴물인 것 같다는 식으로 둘러대었다.

그러자.

“에블린은 라이언의 딸이야.”

커맨더가 입을 열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상위 A급 헌터였던 라이언.

그리고 그의 하나뿐인 딸 에블린.

“우리도 에블린을 참 많이 예뻐했었지.”

백호가 씁쓸한 목소리로 옛날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커맨더의 파티원 전원과도 알고 지냈었던 소녀. 에블린.

“그 애가 각성했을 때, 내가 선물도 줬었는데.”

진호 역시 옛날 기억을 떠올리며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록 에블린의 진짜 가족은 아버지인 라이언뿐이었지만,

라이언의 동료들인 커맨더의 파티원 전원이 그녀를 가족처럼 대해 주었었다.

게다가 각성까지 했으니, 그녀의 미래는 앞으로도 밝은 듯 보였다.

하지만.

“에블린이 다니는 학교에서 게이트가 열리는 사고가 있었어.”

커맨더가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돌연, 에블린이 다니는 학교에서 게이트가 열리는 사고가 일어났다.

에블린은 학생들과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어린 나이임에도 스킬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다행히 열린 게이트는 낮은 등급이었고 학생들 중 죽은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 보는 몬스터한테 에블린이 상처를 입었어.”

커맨더가 왼손에 장착된 패널을 조작해 홀로그램을 띄우며 말했다.

홀로그램 화면 속에는 말라비틀어진 사체를 감싼 검은 넝쿨 같은 무언가가 있었다.

‘저건……!?’

처용이 커맨더가 보여준 사진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뒤늦게 도착한 우리랑 헌터들이 상황을 수습하긴 했는데…….”

착잡한 표정으로 홀로그램을 보던 커맨더가 말을 이었다.

괴상한 몬스터한테 상처를 입은 에블린.

그런 그녀가 돌연 괴로움을 호소하듯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독에 감염된 줄 알고 샬럿과 교단의 사제들의 힐링을 받았다.

“기억이 납니다. 저 역시 그녀를 치료했었죠.”

성자가 그 당시가 기억난다는 듯 말했다.

그렇게 에블린이 나아지나 싶었었다.

그러나.

“에블린이…… 몬스터가 되어버렸어.”

커맨더가 눈을 감으며 말했다.

그녀가 미지의 몬스터의 공격을 받고 일주일 뒤.

돌연, 온몸에 검은 핏줄 같은 무언가가 두드러지더니, 붉은 눈을 뜨며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그녀를 커맨더와 다른 사람들이 제압하긴 했지만.

“점점 강해지기 시작하더니 A급 몬스터로…….”

커맨더의 말에 백호와 샬럿 등 같은 파티원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미지의 무언가에 ‘감염’된 에블린.

그녀는 점점 강해지다 못해 A급 몬스터의 수준을 상회해, S급 몬스터의 수준까지 성장했다.

결국, 에블린은 커맨더와 파티원들이 만든 감옥을 부수고 다시 세상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아챈 WHU는 에블린의 사살을 명령했다.

당연히.

-내 딸이야! 절대로 그럴 수 없다!

라이언이 거세게 반대했다.

그러나 WHU는 전 세계에 에블린에 대한 사실을 공표해 버렸다.

모든 헌터들이 에블린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런 헌터들을 라이언 홀로 막아섰다.

흉측하게 변하고 미쳐 날뛰는 에블린과 그녀를 죽이려는 헌터들.

그 사이에서 에블린을 죽이려는 헌터들과 맞서는 라이언.

이런 비극적인 상황이 계속될 때.

“내가 직접 에블린을 끝장냈어.”

커맨더가 감았던 눈을 뜨며 말했다.

에블린의 급소로 보이는 ‘박동하는 심장 같은 부위’를 커맨더가 저격하자 에블린이 쓰러졌다.

죽어버린 딸을 붙들고 오열하던 라이언은 WHU에 의해 헌터 자격을 박탈당하고 은퇴했다.

아니, 종적을 감추고 사라졌다.

“비극이지?”

커맨더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자.

“네, 비극이네요. 그리고…….”

이야기를 들으며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처용이 인상을 세차게 구기며 말을 이었다.

“이 비극을 만든 새끼를 조져버리고 싶은데요?”

처용이 홀로그램 패널 속 정체불명의 몬스터를 바라보며 강하게 말했다.

“이게 뭔지 알아?”

처용의 시선을 따라 홀로그램을 바라보던 커맨더가 혹시나 해서 물었다.

그러자.

“페러사이트 디멘터.”

에블린을 감염시킨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몬스터.

그것의 정체가 처용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저 개 같은 ‘저주’의 정체입니다.”

“몬스터가 아니라…… 저주?”

처용의 말에 커맨더가 궁금한 듯 물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주로 만들어진 생명체입니다. 아니, 키메라 저주라고 해야 할까?”

처용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 저 저주는 누군가의 명령으로만 움직입니다. 그리고…….”

말을 잠시 끊으며 무언가를 생각한 처용은.

“에블린이라는 아이 각성자라고 했었죠?”

커맨더를 향해 중요한 것을 질문했다.

“맞아.”

“그 아이한테 가호를 내린 성좌, 누구인지 아십니까?”

“……아니, 그건 물어보지 않았어.”

처용의 질문에 커맨더가 고개를 젓고는 자신의 파티원들을 바라봤다.

그들 중에는 아는 사람이 있나 싶은 마음에 바라본 것이었지만.

“우리도 몰라.”

모두가 고개를 젓고는 백호가 대표로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처용은.

‘어떤 새끼가 재앙의 나무를 탄생시킨 거지?’

누군가가 일부러 이런 비극을 만들어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페러사이트 디멘터는 아주 악독한 악신이 다루는 저주입니다.”

생각을 잇던 처용이 입을 열었다.

“색욕마신 아스모데우스.”

“이종족들의 정신을 오염시킨 악신?”

커맨더가 처용의 말을 듣고는 기억났다는 듯 말했다.

처용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페러사이트 디멘터, 말 그대로 기생충 악령…….”

에블린을 감염시킨 페러사이트 디멘터가 무엇인지 설명했다.

“다양한 저주를 품고 ‘적합자’를 찾아 기생하면 그 대상을 변이시킵니다.”

처용은 페러사이트 디멘터가 어떤 원리로 만들어지는지 모두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조건에 적합한 존재를 감염시키면 무슨 일이 발생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어때? 반갑지? 새로 태어난 네 친구야. 꺄하하하!

회귀 전, 아스모데우스가 처용을 조롱하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었으니까.

처용과 친했던 저항군 중 하나를 사로잡아 감염시키고 몬스터로 만들어 내보이면서…….

그 감염된 저항군은 다름 아닌 지구 멸망에서 살아남은 헌터였다.

게다가 그를 감염시키는 역할을 한 이들 중 하나가 바로 그 헌터에게 가호를 내린 성좌였다.

‘이때, 재앙의 나무를 탄생시키며 한번 실험을 했었던 건가? 아스모데우스!’

처용이 속으로 이를 아득바득 갈며 읊조렸다.

그리고.

‘재앙의 나무, 아스모데우스, 데미갓 프로젝트, 마인, 이자나기 성운, 무라키 가문…….’

처용의 머릿속에서 여러 정보가 떠올랐고 서로 엉키고 설키기 시작했다.

분명히,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들과 에블린의 일이 연관되어 있었다.

다만, 정보가 부족한 탓인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무언가…… 중요한 ‘키’ 역할을 하는 정보 하나가 부족했다.

그리고 이 ‘키’를 얻기 위해서는 가만히 앉아 생각하는 것보다, 직접 행동할 필요가 있었다.

“우선, 앞으로의 일부터 이야기하죠.”

생각을 마친 처용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지, 어떤 모습을 보일지 사전에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성자.”

성자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숨기며 그를 불렀다.

“네, 무슨 일이시죠?”

처용의 부름에 성자가 의문을 표하자.

“연기 좀 하십니까?”

처용이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

그리스 양식으로 지어진 듯한 어두운 신전 내부.

중앙에 자리한 거대한 거울, 그 앞에서.

“좋지 않아…… 좋지 않단 말이야.”

검은 흑발 위로 달이 조각된 관을 쓴 여신.

아르테미스가 거울을 흘끔거리고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중얼거렸다.

그녀가 보고 있는 거울은 신계의 신전 가장 깊은 장소에 있는 통신구였다.

불안과 짜증이 일렁이는 표정으로 거울을 잠시 응시할 때.

-우우웅!

거울이 일렁이며 누군가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그 순간.

“왜 미리 말해주지 않은 거야!!”

아르테미스가 거울에 비친 누군가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가! 올림포스가 이 일에 개입한다고 말해주기만 했어도! 이런 손해는 없었어!”

거울에 비친 누군가에게 아르테미스가 거칠게 따지듯 묻자.

-어머? 항상 ‘당한 놈이 잘못이지~’ 라고 말하는 년이 어디서 큰소리래?

거울 속에 나타난 여인이 아르테미스를 비웃듯 말했다.

-그리고 이번 일은 올림포스의 핵심 인물들만 비밀리에 모여서 행동했더라고, 당연히 나는 몰랐지~.

“조짐이라도 있었을 거 아냐!”

-화내지 말라고, 너도 아테나 성격을 알잖아?

아르테미스와 대화를 하는 여인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못하면 나까지 잡혀버리는 수가 있어.

“혈선의 성지는? 뭐 알아낸 거 없어?”

-내 신관은 거길 가지도 못했는데, 내가 어찌 아니?

통신 상대의 말에 아르테미스의 미간에 힘줄이 생겼다.

“잘 들어, 네가 똑바로 하지 못하면 다 끝이야!”

아르테미스가 통신 상대를 무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일이 잘못되면 내가 직접 네년 대가리에 화살을 박아 넣을 줄 알아. 알았어!?”

-또라이 같은 년, 네 일이나 똑바로 잘해.

거울 속 여인은 아르테미스의 분노 섞인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른 ‘우리의 형제’들도 조심하고 있으니까 걱정은 말고. 흐흐.

아르테미스가 거울 속 여인이 웃음을 흘리며 하는 말을 듣고는.

“크흐흐,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거울을 보며 싸늘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일이 잘못되면 그 고운 얼굴을 화살촉으로 그어버릴 줄 알아.”

마지막 말을 마친 아르테미스가 통신을 꺼 버리고는 거칠게 고개를 돌려 뒤돌아 나아갔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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