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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207화 (207/726)

#207화

“바알……!”

처용이 바알이 사라진 자리를 노려보며 분노를 담아 읊조렸다.

그리고.

‘왜 리치가 되었나 했더니, 바알의 마기가 담긴 성물을 부수고 마기를 흡수했던 건가?’

조금 전, 바알에게 살해당한 추기경을 생각했다.

본래, 회귀 전 추기경은 마인이 된 이후 힘을 축적하여 나중에 리치로 변했었다.

지금의 추기경이 곧장 리치로 변한 게 의외였었지만.

-감히! 나 거대한 어둠의 대악마, 바알의 신물을 깨뜨린 대가를 받아가겠노라!

바알이 나타나 그를 죽이면서 내뱉었던 말로 인해 납득이 되었다.

하지만.

‘디아블로에 이어, 바알의 분신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회귀 전에는 없었던, 삼천마의 등장이 벌써 두 번이나 일어난 상황.

처용은 무언가 다급하면서도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역천군주…… 방금 그건?”

처용이 생각에 잠길 때, 성자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불길하고 어두운 마기를 지닌 검은 해골.

그리고…… 작게나마 들려왔던, 처용이 했었던 말을 떠올려 본다면.

“디아블로와 같은 존재입니까?”

성자의 질문에 처용이 인상을 다시 찌푸리고는.

“삼천마 서열 1위, 거대한 어둠의 대악마 바알이었습니다.”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처용의 대답에 성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세계가 어찌 돌아가려는 건지…….”

성자가 탄식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며 말할 때.

“대부분의 수습은 끝났습니다.”

현아와 협회의 정예들이 처용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왕십리역과 학교 근처에서 벌어진 테러는 대부분 진압되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포위 섬멸 작전.

제니퍼를 이탈시키고 백호가 붙잡아 두던 솔저와 상급 마인들을 처치한다.

그 후, 압도적인 화력으로 외부에서 학교 쪽으로 밀고 들어가며 테러범들을 쓸어버린다.

마지막으로 학교를 고립시킨 추기경을 척살한다.

이것이 대략적인 작전이었다.

비록 닥터와 마녀의 개입으로 솔저와 리더, 정체불명의 소녀는 놓쳤지만.

큰 피해 없이 테러를 손쉽게 막아낼 수 있었다.

다만.

“마인들은 절반 이상이 도망쳤습니다.”

추기경을 따르는 교단의 배신자들은 모두 사살되거나 붙잡혔다.

그러나 마인들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채자, 재빠르게 흩어지며 도망쳤다.

마치, 이런 상황을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는 듯, 교단의 배신자들을 미끼로 던지고 모두 도주했다.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 병실 문이 열리더니 마인들을 집어삼키더군.”

올림포스의 주력 길드 중 하나인 그랜드 실더 길드의 길드장.

데메테르의 신관 스티븐이 다가오며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를 방해한 그놈인 것 같아.”

“그 의사 같은 놈 말이군.”

스티븐의 말에 백호가 대답하고는.

“아 맞다. ‘성지’를 습격한다던 놈들은?”

처용을 향해 말했다.

“…….”

그 말에 처용이 누군가에게 전음을 보내듯 눈을 감으며 침묵한 후.

“깔끔하게 정리되었네요.”

아무 문제 없다는 듯 말했다.

그때.

“맞아! 이쪽은 아무 문제 없어!”

-쿵!

하늘에서 이진호가 떨어져 내리며 말하자.

-쿵! 쿠쿵!

이진호가 쥔, 새하얀 사슬에 묶인 두 명의 사람이 바닥에 엎어졌다.

“등신처럼 호수에 자살하러 들어간 놈들은 모두 죽었을 테고, 보초를 서던 놈들은 잡았어.”

-탁. 탁.

사슬에 묶여 쓰러진 이들을 이진호가 발로 툭툭 건들며 말했다.

그들은 마기를 받아들인 교단의 B급 헌터, 배신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태룡사를 감싸는 호수 앞에 보초를 선 이유.

동료들과 마인들이 잠수복 아티팩트를 입고 호수에 잠수하여 성지에 침입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였다.

“머저리 같은 놈들이지, 크크.”

이진호가 바닥에 쓰러진 이들을 한심하다는 듯 비웃으며 말했다.

“그 호수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쯧쯧.”

이진호의 말이 끝나자.

“마인들의 조사력도 형편이 없군.”

“애초에 모를 수밖에 없지 않나? 하하.”

스티븐과 백호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들 역시 태룡사를 감싸는 호수 안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때.

“우선, 현장 정리부터 마무리하고…….”

처용이 사람들을 향해 말하고는.

“성자”

성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야기 좀 합시다.”

“…….”

처용의 말에 성자가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러시아 동쪽에 있는 인적 없는 숲.

“이런! 제기랄! 개 같은 새끼들이!”

-쾅!!

제니퍼가 주먹을 쥐고 거대한 나무 하나를 거세게 치며 욕을 내뱉었다.

-쩌저저적!

힘을 견디지 못한 거대한 나무가 쓰러져 내렸고.

“제-에! 시! 카-아!!”

제니퍼가 이를 아득바득 갈며 분노를 담아 제시카의 이름을 불렀다.

‘그 망할 년 때문에 더미를 다섯 개나……!’

예상하지 못한 제시카와 올림포스 길드의 난입.

그 결과 총 다섯 개의 더미를 잃었다.

‘도대체! 어떻게!? 무슨 수로!?’

제니퍼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처용에게 죽은 후 일어나자마자 마주한 제시카.

그녀에게 꼼짝없이 당한 후, 다른 더미로 몸을 일으켰지만.

-기다리느라 지루했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헤라클래스의 신관이자 스파르타 길드장인 리차드.

그리고.

-방패를 들어 올려라!

-포위 진형으로!

올림포스의 최정예 길드 중 하나, 스파르타 길드의 정예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빈틈없는 포위망에 이번에도 저항하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그 후 다른 장소에 숨겨둔 더미로 몸을 일으켰지만.

-오랜만이야? 배신자.

그곳에는 화로의 신 헤스티아의 신관이자 블레이즈 길드의 길드장, 도로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이끄는 블레이즈 길드의 정예 헌터들이 이미 포위망까지 구축한 상태.

“이런 개 같은 것들이!!”

제니퍼가 올림포스 길드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괴성을 내질렀다.

이번 일을 벌이는 장소가 한국이니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더미 다섯 개였다.

그러나 도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올림포스 길드가 더미의 위치를 귀신같이 찾아내었다.

사냥군주만이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아티팩트이자 스킬인 더미.

그런 사냥 군주의 더미에는 ‘초 은폐’까지 걸려 있었다.

도대체 무슨 수로 더미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한 것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젠장…… 우선 합류부터 해야겠군.”

제니퍼가 인상을 세차게 구기더니 발걸음을 옮겼다.

그간 당한 게 있으니, 최대한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파직.

자신의 신성력과 연결된 ‘아주 가느다란 선’이 있다는 것을.

-스르르.

그 선이 누군가에게 위치를 전달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제니퍼는 눈치채지 못했다.

***

서울 왕십리 부근에 테러가 발생하고 사흘이 지나자, 현장이 대부분 수습되었다.

그리고.

-한국, 대규모 테러 발생.

-교단의 배신자는 추기경? 마인들과 손을 잡다.

-한국에 모습을 드러낸 이종족, 모두 한국 헌터 협회 소속으로…….

-성자, 이번 일에…….

아니나 다를까 전 세계에서 다시 한번 한국을 향해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다.

유례가 없는 대규모 테러와 추기경이 교단의 배신자였다는 충격적인 사실.

심지어.

-성자, 배신자들과 신의 검객 길드에게 목숨을 위협받아…….

-신의 검객 길드, 그런 사실 없다. 우리는 모르는 일.

성자가 교단의 배신자들과 신의 검객 길드에게 목숨을 위협받았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신의 검객 길드는 이 사실을 부정하고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번 일을 통해 또 하나 드러난 사실.

그들이 테러를 통해 노리던 목표가 처용과 커맨더의 가족, 윤아와 연아라는 것.

이로 인해 연아가 다섯 번째 S급 헌터라는 사실 또한 알려졌다.

그것도 단순한 S급 헌터가 아닌.

-한국, 커맨더와 역천군주에 이어 다섯 명의 에픽 클래스 보유국으로…….

커맨더와 같은 가장 특별한 클래스를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둘은 추기경과 교단의 배신자들이 학교에 저지르는 테러를 막아낸 주역이었다.

학교에서 구출된 이들 모두가 목격한 바가 있었으니까.

추가로 이번 일에 지대한 공로를 세운 두 소녀를 지칭하는 이명이 생겼다.

청룡의 신관, 윤아에게는 ‘기상 소녀’라는 이명이.

그리고…….

“누구야!”

기사를 보고 소리를 지르는 학생.

“누가 나보고 ‘물귀신’이래!!”

고스트, 일명 물귀신이라는 이명을 얻은 헌터는 다름 아닌 연아였다.

“분명히 그놈들 중 하나야!”

연아가 같은 반 학교 학생들 중, 말이 많은 몇몇을 떠올리며 외쳤다.

실제로 모자이크 처리되어 인터뷰에 나온 이들 중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많았으니까.

“하하, 이명 생긴 거 축하한다.”

“물귀신 학생, 소감은?”

백호와 진호가 놀리듯 말하자.

“물귀신한테 한 번 맞아 볼래요?”

연아가 도끼눈을 뜨며 대답했다.

“우릴 이기기엔 아직 이르다 꼬맹아.”

무시무시하게 노려보는 연아가 오히려 귀엽다는 듯 진호가 태연하게 말했다.

이명에 관한 내용으로 사람들이 떠들 때.

“……무사히 마무리되었습니다.”

성지로 돌아온 처용은 가장 먼저 커맨더에게 연락해 소식을 전했다.

그는 가슴을 졸이며 이번 일에 대한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후, 다행이야.

처용의 말에 커맨더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이번 일을 핑계로 헬리오폴리스에 방문할 명분이 생겼군요.”

-뭘 하려고?

커맨더가 처용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제게 필요한 걸 가지고 있으니, 이번 일을 빌미로 삥 좀 뜯어야죠.”

-하하하, 태양의 신관이 골치 아프겠네.

처용의 말에 커맨더가 라진을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라진 씨가 나한테 미안하다고 곧장 연락하더라.

던전을 공략하고 나온 태양의 신관, 라진은 한국에서 일어난 소식을 접하고 기겁했다.

자칫 잘못하면 파라오 길드가 마인들과 추기경을 위해 커맨더를 유인한 꼴이 되어버리니까.

상황을 파악한 라진은 부랴부랴 커맨더에게 연락부터 했다.

이런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전했다.

커맨더는 그 말에.

-제 조카가 무사했다니, 일단은 안심이군요.

역시 전혀 몰랐다는 듯 ‘당황한 척’을 하며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라진은.

-당장 WHU에 항의부터 하겠습니다!

곧장 분노가 일렁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누가 파라오 길드를 이런 난처한 상황에 빠뜨렸는지.

이런 상황을 만들도록 뒤에서 조작한 것이 누구인지 곧장 파악하고는 조사를 시작했다.

“이번 일을 빌미로 WHU도 정리할 수 있겠네요.”

-이제 권력 놀음하는 늙은이들은 상대하지 않아도 되겠어. 하하.

처용의 말을 알아들은 커맨더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번 일에 추기경을 도와준 이들은 WHU의 고위 임원들.

그들 중 대부분이 정리될 것이고 그 결과 WHU 내부가 깨끗해질 테니까.

WHU를 생각하던 커맨더가 미소를 지우고는.

-백호 형에게 들었어, 라이언 씨가…….

복잡한 감정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마인이 되어버린 옛 동료를 언급했다.

“은퇴한 옛 파티원이었다면서요?”

처용이 재앙의 나무로 의심되는 소녀를 보호했던 상급 마인, 리더를 생각하며 말하자.

-맞아, 이전에 어떤 일 때문에…… 우리랑 틀어지고 은퇴한 사람이야.

커맨더가 착잡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 그래도 그 일을 좀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틀 뒤면 일을 마무리하고 돌아갈 거야.

“잘 되었네요. 성자도 이틀 뒤쯤 다시 여기에 온다고 했으니.”

커맨더의 말에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친절하게도 놈들이 명분을 줬으니…….”

처용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 잘난 하늘 한번 제대로 뒤집어 버려야죠.”

이번 일에 대놓고 개입한 성운의 길드, 그 첫 번째 목표가 정해졌다.

“우리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생각입니다.”

처용은 이번 기회에 진심으로 보여줄 생각이었다.

동시에 야스라를 도와 데미갓 프로젝트를 알아낼 계획이었다.

***

같은 시간 교단의 한국 지부.

“정말 괜찮은 겁니까?”

지원이 성자를 향해 진지하게 물었다.

조금 전, 성자가 자신에게 한 말 때문이었다.

-지금부터 당신이 이 지부의 대주교입니다.

성자가 자신을 교단의 한국 지부를 책임지는 대주교로 직접 발령을 내렸으니까.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저 역시 그들과 같은, 당신의 입장에서 ‘배신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성역의 사제 박지원.

그는 로스차일드, 제시카를 따르는 인물이었다.

성자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물은 것이었다.

교단을 따르는 사람이 아닌데 왜 이런 인사 조치를 취한 것인지.

“저는 당장 가호를 잃고 파면당해도 할 말이 없는 입장입니다.”

지원이 진지하게 묻자, 성자가 잠시 생각하고는.

“저는 저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제 세력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저는 아니, 교단은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번 일을 통해, 성자는 머릿속에 정말 많은 생각이 휘몰아치며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 고민 중 하나가 바로 교단의 개혁이었다.

교리만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

성자와 빛을 추앙하며 주어진 명령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열혈 신도?

전부! 다 필요 없었다.

지금 교단에 필요한 것은 세상을 위해 행동할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이 ‘교단에 필요한 사람’이라 판단했습니다.”

나름 실력이 뛰어난 성역의 사제.

로스차일드의 일원답게 여러 업무와 일에 능통한 사람.

처용을 포함한 한국의 주요 헌터들과 원만한 교류를 할 수 있는 인물.

지원이 있으면 처용과 동맹인 올림포스, 즉 제시카와도 더 긴밀한 협력을 할 수 있었다.

추가로 지원을 믿을 수 있는 이유.

그가 따르는 로스차일드 세력, 즉 제시카는 악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세상을 위해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제시카를 따르는 인물이기에 성자는 지원을 한국의 지부에 둔 것이었다.

“대답이 되었습니까?”

성자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그렇군요.”

지원이 작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새삼 눈앞의 새하얀 인물이 왜 ‘성자’라고 불리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감정과 자신의 이득만을 따지며 움직이지 않는 인물.

성자는 세상을 위해 진심으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성자께서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지원을 이 자리에 앉힌 것만으로 교단 본부에서 성자를 향해 많은 항의를 할 것이다.

지원은 솔직히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성자가 무언가를 다짐한 듯 굳은 눈빛으로 말했다.

“교단에서 제 밥그릇만 신경 쓰는 이들은 이제부터…….”

낮게 일렁이는 분노가 성자의 목소리에 섞이기 시작했다.

“그 밥그릇이 사라질 걱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성자의 말이 끝나자.

“알겠습니다. 성자님.”

지원이 성자의 말에 안심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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