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젠장…….”
가까스로 도망쳐 돌아온 가토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침음을 흘렸다.
“몇 명이나 돌아왔나?”
가토가 시노비 중 한 명에게 묻자.
“저를 포함해 다섯이 전부입니다. 가토 상…….”
시노비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이런!”
그 말에 가토가 눈을 감고는 낭패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본래 목적은 성운과 가문의 실험으로 쓸 재료 후보를 확보하고 곧장 발을 빼 흔적을 지우는 것이었다.
이번 작전이 잘만 성사된다면, 재료 후보를 둘이나 확보할 수 있었다.
첫 번째가 성자.
그리고 두 번째가 바로.
-커맨더의 조카 년은 필요 없다!
추기경이 약속한 청룡의 신관이었다.
S급 헌터 둘.
실험의 핵심이 되기에 아주 충분한 이들을 확보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단 한 명의 개입으로 인해 모든 작전이 망해버렸다.
심지어 신의 검객 길드의 핵심 전투원인 시노비들.
같이 임무를 나갔던 이들 중 돌아온 이는 자신을 포함해 고작 여섯이었다.
스물에 가까운 정예 헌터들의 죽음.
엄청난 손실이었다.
문제는 엄청난 손해만 입고 정작 얻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더 심각한 것은.
‘역천군주가 이 일을 파악한 이상 절대로 가만있을 리가 없다.’
모든 일을 정리한 처용이 절대로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는 것.
“한국으로 넘어간 이들에게 전해.”
가토는 우선 임시방편을 생각했다.
“역천군주가 모습을 드러내거나 추기경이 실패할 것 같다면 바로 철수하라고 전해라.”
“명(命)!”
가토의 말에 살아남은 시노비들이 흩어졌다.
시노비들이 흩어지자.
“그래…… 이번만큼은 야스라 네가 옳았을지도.”
가토가 처용과 함께 있던 야스라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자신, 시노비들이 따르는 무라키 가문의 차남이자 자신이 가르치던 제자.
거대한 야욕을 품은, 무라키 가와는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
무라키 가의 이단아이자 이자나기 성운의 대신, 스사노오의 신관.
-잘못된 건 잘못된 겁니다!!
야스라는 너무나 답답할 정도로 정의로운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이니만큼, 또 야스라가 장남이 아닌 차남이니만큼, 나름 그를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다.
지금의 세상은 정의롭기만 해서는 살아남기 힘들었으니까.
그러나 이번만큼은 야스라의 정의가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신께서도 화가 많이 나셨을 테니, 수습부터 해야겠지.”
가토는 생각을 정리하고 이번 일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움직였다.
***
연아와 윤아, 루나가 등교하고 교실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을 때.
-모두 중앙 운동장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교실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울렸다.
졸업식을 위해 모인 학생들과 소수의 학부모, 교사들을 부른 것이었다.
“자, 다들 이동하자.”
학생들을 인솔하기 위해 교실로 들어온 담임 교사가 말했다.
“윤아야 그건 그…… 못 보내니?”
담임 교사가 윤아가 안아 든 잉어, 니모를 보며 당황한 듯 묻자.
“죄송해요. 한번 소환하면 일정 시간 같이 있어야 해서.”
윤아가 작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계속 안고 있을게요. 문제는 없을 거예요.”
“그래, 뭐…… 알았다.”
딱히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담임 교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윤아는 전교 1등, 지금까지 사고를 일으킨 적이 없는 아주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거기에 이전까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커맨더의 조카이기까지 했다.
그런 그녀가 사고를 일으킬 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담임 교사의 인솔에 따라 학생들이 모두 학교 운동장, 조회대 앞으로 향했다.
“아까보다 더 늘었어.”
루나가 연아, 윤아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그녀의 말에 연아와 윤아가 눈동자만 살짝 돌려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아요.”
“저놈들도 급하게 준비했다고 했으니까.”
윤아의 말에 연아가 굳은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다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학교와 조금 떨어진 건물 옥상에서는.
“가짜나 분신은 아니야, 틀림없어.”
서늘한 눈빛의 벽안으로 윤아와 연아를 몰래 지켜보는 여성이 있었다.
등 뒤에 활을 멘 긴 금발에 벽안을 지닌 여성.
마치, 윤아와 연아를 ‘사냥감’처럼 바라보는 그녀는 아르테미스의 신관.
제니퍼 로스차일드였다.
그런 그녀의 말이 끝나자.
“추기경의 계획은 순조롭다는 거로군?”
옆에 있던 S급 마인, 솔저가 학교 측을 노려보며 말했다.
정확히는 학교 정문 쪽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남자.
“권백호 저 간나새끼의 발만 잘 묶어 놓으면 문제가 없다는 건가?”
백호를 응시하고 있었다.
“자신 있는 거 맞아? 전에 커맨더 잡으려고 덤볐다가 깨졌다고 들었는데?”
“말조심하라우 애송이, 동무 같았으면 순식간에 당했을 거다.”
제니퍼의 말에 솔저가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 자신은 있다는 거네.”
“그때랑은 다르게 준비를 댄디 갖췄으니까.”
솔저가 말함과 동시에 뒤를 바라보자.
“준비되었습니다.”
리더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고 그 뒤에 있는 상급 마인들도 고개를 숙였다.
“저 호랑이시키를 잡으려면 동무의 역할이 중요하다.”
“잘 알고 있습니다.”
솔저의 말에 리더가 대답하고는.
“권백호의 스킬은 저와 ‘상극’, 그리고…….”
옆에 있는 작은 키의 로브를 뒤집어쓴 마인을 바라보며 말을 흐렸다.
“그 아이도 있으니, 아무리 권백호라 해도 이번엔 쉽지 않겠지. 크크.”
솔저가 리더의 말을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리더의 옆에 자리한, 로브를 뒤집어쓴 어린이처럼 보이는 상급 마인.
“제 딸아이를 구해주신 만큼, 보답할 것입니다.”
리더가 어린 상급 마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슬슬 시작할 때인가?”
옥상에서 학교를 관찰한 솔저가 중얼거리듯 읊조렸다.
그리고.
“우리는 추기경을 ‘돕는 척’만 하다가 빠진다.”
상급 마인들을 향해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들의 목표는 소란이 일어난 틈을 이용해 주요 헌터들을 죽이고 빠지는 것이다.”
마인들은 추기경이 제시한 작전이 성공하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그를 진심으로 도울 생각 따위는 없었으니까.
성공하면 좋고 실패하면 이득만 챙기고 빠질 생각이었다.
마인들의 진짜 계획은 바로 한국의 주요 헌터들을 죽이는 것.
그들을 죽이면 처용뿐 아니라, 커맨더와 한국 헌터 협회까지 뒤흔들 수 있었다.
‘성자까지 없애는 데 성공한다면 앞으로 일이 좀 수월해지겠군.’
솔저가 시노비와 추기경을 따르는 교단의 배신자들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추기경의 신호에 맞춰 우리도 움직인다.”
다시 학교를 바라보며 분위기를 살핀 솔저가 명령하듯 말하자.
“네.”
리더와 어린 상급 마인을 제외한 마인들이 고개를 숙이고는 일제히 흩어졌다.
그리고.
“준비하라우.”
솔저가 제니퍼를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단번에 죽여 버려도 상관없겠지?”
제니퍼가 은빛으로 빛나는 화살을 활에 장전하며 말했다.
그녀가 겨누는 화살촉 끝은 백호를 겨누고 있었다.
다른 마인도 아닌 ‘군주’ 클래스를 가진 마인의 저격이었다.
제니퍼는 상대가 아무리 강한 A급 헌터라 해도 단번에 죽일 자신이 있었다.
“크흐흐, 꿈도 꾸지 말라.”
솔저는 그런 제니퍼를 향해 어림도 없다는 듯 진지하게 말했다.
“유인만 똑바로 하면 된다. 알았나?”
“나한테 명령하지 마.”
제니퍼가 솔저의 말에 차갑게 대답하고는 활시위에 감각을 집중했다.
학교 주변으로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가득 흐를 때.
-……졸업식을 시작하겠습니다.
학교 조회대에서 교장의 목소리가 울리며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졸업생들이 하나둘 조회대로 올라가 졸업증을 받았고.
이내 마지막으로 전교 1등이자 학생대표인 윤아가 조회대에 올라갔다.
“졸업을 축하합니다. 윤아 학생.”
교장이 자랑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감사합니다.”
윤아가 마주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 순간!
-쿠구구구!!
지진이 들이닥친 듯 지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에에에에엥!
사방에 긴급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마나를 감지해 가까운 곳에 게이트가 발생하면 울리는 사이렌.
문제는 사이렌이 울리는 이 장소가 도심 한복판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콰콰콰콰쾅!!
학교 근처에 있는 몇몇 건물이 폭발하며 화마를 일으켰다.
“뭐, 뭐야!?”
“갑자기 터졌어!”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게다가.
“저, 저거 게이트 아니야?”
시민 중 하나가 허공에 갑자기 생겨난 게이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도심 속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게이트.
문제는 도심 속에서 나타난 게이트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크르르!
-캬아아!
게이트 속에서 흉측한 몬스터가 머리를 들이밀며 나타나기 시작했다.
본래는 게이트가 폭주하지 않는 이상 몬스터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런 전조증상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온 상황.
“모, 몬스터!”
“도망-!”
패닉에 빠진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갈 때.
“모두 위치로!”
“시민들을 보호해라!”
시민들 틈에 섞여 미리 대기하고 있던 헌터들이 빠르게 장비를 갖추고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입구막기’를 시작해!”
한국 헌터 협회 소속의 고레벨 헌터 한 명이 명령하듯 말하자.
-척! 척!
마치,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 각각 조를 짜며 게이트 앞을 막아섰다.
-캬아아!
몬스터들이 게이트 밖으로 빠져나오려 하자.
“파이어 월!”
“참격!”
자리를 잡은 헌터들이 게이트 입구를 향해 스킬을 퍼부으며 몬스터들을 저지했다.
도심 한복판에서 발생한 열 개가 넘는 게이트.
역사에 유래가 없는 재앙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상황이었지만.
“우리는 막기만 하면 된다!”
“무리하게 싸우지 말고 벽을 세우면서 버티기만 해!”
헌터들이 각각 열 명에서 스무 명씩 조를 짜 게이트 앞에서 진을 치고 몬스터들을 막고 있었다.
작전명 입구막기.
지원이 전달한 정보 덕분에 헌터들이 세울 수 있었던 대책이었다.
수련탑에서의 수련을 통해 A급에 도달한 헌터들이 각 조의 팀장으로 자리해 지휘하고 있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그간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강자가 된 이들.
“B급 게이트 쪽에 인원을 더 보내!”
“C급을 맡은 팀 중 손이 비는 놈들은 다른 헌터들을 도와!”
그런 고레벨의 헌터들이 다른 이들을 이끄는 이상 위험은 적었다.
그리고.
“모두 이쪽으로 대피하세요!”
“급하게 뛰지 마시고 질서 있게 행동하십시오!”
몇몇 헌터들은 시민들을 인솔하고 다친 이들을 보살피며 안전하게 대피시켰다.
“아직까지는…… 예상대로군.”
현장의 상황을 빠르게 관찰한 백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여기도 슬슬 시작하려나 본데요?”
그 모습을 본, 백호와 인터뷰를 하고 있던 여성 기자가 어느 한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파지지지직!
그녀가 바라보는 곳에서는 다른 게이트와는 다른 거대한 흑색의 게이트가 열리고 있었다.
그 순간.
-피이잉!
백호를 향해 순식간에 쇄도해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정확히 백호의 머리를 목표로 날아오는 것은 은빛의 화살이었다.
화살이 백호의 머리를 꿰뚫기 직전!
-타앙! 팅!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백호의 머리를 향해 쇄도해오는 화살을 격추했다.
-엄호사격 완료.
화살을 격추한 샬럿이 백호에게 통신을 보내자.
“믿고 있었다고 샬럿.”
백호가 씨익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위치는?”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 옥상이에요.
샬럿이 백호의 말에 화살이 날아온 위치를 말해주었고.
-조심하세요. 예상하긴 했지만, 제니퍼 로스차일드가 확실한 것 같아요.
백호를 향해 진지하게 경고를 전했다.
막 사방에 난리가 났을 때 그녀는 백호에게 위협 탐지라는 스킬을 사용했었다.
대상에게 가해지는 ‘위협’을 미리 알아챌 수 있는 스킬이었다.
그 스킬 덕에 백호에게 가해지는 저격을 막을 수 있었다.
“너야말로 조심해라. 지금부터 네가 그놈을 상대해야 하잖아.”
백호가 샬럿을 향해 걱정을 담아 말했다.
제니퍼가 자신에게 화살을 날린 이유는 이곳에서 가장 강한 자신을 이 전장에서 이탈시키기 위함이었다.
백호는 그런 놈들의 의도에 맞춰줄 생각이었다.
샬럿은 그런 백호를 보조하는 역할.
그러나 백호를 보조해야 하는 샬럿이 맞서야 할 상대가 제니퍼, 군주 클래스라는 것이 걱정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시간을 버는 것은 자신 있으니까.
샬럿이 자신감을 담아 말했다.
-놈들은 꿈에도 모를 거예요.
“오히려 자기들이 유인당하고 있다는 거? 크흐흐.”
백호가 샬럿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고는.
“벼락 질주!”
-파지직!
화살이 날아온 장소로 빠르게 나아갔다.
백호와 샬럿이 사라지자.
-우우웅!
불길함을 자아내는 흑색의 게이트가 완전히 열렸다.
그리고.
-크르르르!
거의 20미터에 달하는 상당한 덩치를 지닌 시커먼 몬스터, 마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수……!”
기자, 아니 기자로 위장해 있던 현아가 모자와 외투를 벗고는.
“그때는 무력하게 당했지만…….”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마수를 바라보며 강하게 말했다.
“예전의 내가 아니야.”
현아가 변장을 벗고 전투준비를 갖추자.
-스륵! 철컥! 철컥!
방송국 기자와 직원들로 위장해 있던 정예 헌터들이 변장을 풀고 빠르게 전투준비를 마쳤다.
현아를 포함한 협회의 정예 헌터들은 거대한 마수를 마주했음에도.
“몇 백 미터짜리 괴수를 자주 봐서 그런지.”
“저 덩치가 귀여워 보이네. 흐흐.”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