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윤아와 연아, 루나가 막 학교에 도착했을 무렵.
“하필 이럴 때, A급 던전이라니…….”
성자가 자신이 쓰러뜨린 시커먼 몬스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돌연, 바티칸 근처에서 발생한 A급 던전.
던전 입구에서부터 강렬한 어둠을 내뿜으며 주변을 잠식하고 있었기에 성자가 다급하게 출동했다.
보스 몬스터가 매우 강력하긴 했지만.
다행히도 던전 규모가 소형 마을급이여서 빠르게 정리할 수 있었다.
지금은 휘하 헌터들과 함께 던전을 완벽하게 정리한 상황.
“이런 몬스터는 처음 보는데…….”
성자가 죽어 있는 몬스터를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보통 몬스터의 생김새는 흉측한 편이긴 했지만, 눈앞에 있는 몬스터는 무언가가 좀 달랐다.
마치, 여러 동물, 아니 여러 생명체를 합쳐놓은 모습이랄까?
장수풍뎅이의 등껍질에 사마귀 앞다리, 공룡처럼 보이는 뒷다리 등.
여러 몬스터가 합성된 키메라처럼 보였다.
게다가 이 몬스터가 내뿜는 불길한 어둠은 신성력을 약화시키고 무효화시키기까지 했었다.
지금껏 본 적도 없는 기괴하고 불길한 몬스터.
마치, 세계 헌터 회의에서 커맨더와 제시카가 언급했었던 ‘마수’가 생각났다.
그리고 던전에 들어올 때부터……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현장을 수습하고 모두 나갑시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불길한 느낌을 흘려보낸 성자가 휘하 헌터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성자님.”
성자의 옆에 있던 기사단장, 안드레아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던전을 공략했던 헌터들이 완전히 빠져나오자.
-후우우.
새하얀 안개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뭐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안드레아가 경계심 섞인 목소리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결계의 일종입니다.”
성자가 안개의 정체를 알아보고는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성자가 안개 속에 흐르는 마나를 살펴보며 의문을 품을 때.
“악감정은 없다. 성자.”
안개를 헤치며 검은 옷에 검은 복면을 두른 누군가가 다가왔다.
“우리는 임무를 수행할 뿐.”
“……시노비?”
성자가 눈앞에 나타난 불청객을 알아보며 말했다.
그러자.
“우리와 같이 가 줘야겠어.”
성자의 앞에 나타난 시노비, 가토가 말함과 동시에 이십여 명의 시노비가 추가로 나타났다.
“감히 교단을! 성자님을 공격하다니! 제정신인가!?”
안드레아가 검을 뽑아 들며 호통쳤다.
동시에 성자의 옆에 있던 성수의 기사 다섯이 안드레아 옆에 서며 검을 뽑아 들었다.
“제가 결계를 해제할 테니, 엄호해 주십시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성자가 안드레아에게 말했고.
“알겠습니다.”
성자의 말에 안드레아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척! 척!
같이 던전을 공략했었던 교단 소속 B급 헌터 열 명이 성자를 호위하듯 둘러싸며 경계했다.
성자가 신성력을 내뿜으며 결계를 해제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서자.
“막아라!”
가토가 시노비들에게 명령함과 동시에 일본도를 빼 들고 돌진했다.
“막아라!”
“성자님을 보호해라!”
그 모습을 본 안드레아가 명령했고 휘하 헌터들이 방어 진형을 짜며 시노비들에게 맞섰다.
“과연 기사단장이야, 빈틈이 없어.”
가토가 자신과 맞서는 안드레아를 향해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알고는 있는 것이냐!”
안드레아가 가토를 막아서며 일갈하듯 소리쳤다.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만들 것이다!”
“글쎄? 네놈이 여기서 살아 돌아갈 수 있다면 말이지?”
분노한 안드레아를 향해 작은 비웃음을 던진 가토가 잠시 뒤로 물러났다.
안드레아는 가토가 물러난 틈을 타 전장을 빠르게 관찰했다.
교단의 헌터들은 대부분 방어에 특화된 이들답게 레벨이 높은 시노비들을 상대로 잘 버티고 있었다.
이대로 버티다가 성자가 결계를 해제하고 곧장 지원을 요청하면 문제없었다.
안드레아가 다시 가토를 마주하자.
“웃어?”
복면 위로 드러날 만큼 비웃음을 던지는 가토를 보며 의문을 표했다.
그때.
“해제-!”
성자가 결계를 해제하기 위한 신성마법을 완성하기 직전!
“지금인가?”
성자를 보호하던 B급 헌터 중 하나가 뒤를 돌더니.
-사악!
검을 들어 성자의 등 뒤를 공격했다.
“무슨!?”
당황한 성자가 급하게 마법을 취소하고 방어했다.
-까강!
“도대체 무슨 짓-!”
성자가 자신을 공격한 B급 헌터의 공격을 막으며 뭐라 말하려는 때.
-스릉! 사악!
양옆과 뒤에서 추가적인 공격이 날아왔다.
그들 역시 교단 소속의 B급 헌터들.
“이 새끼가!”
“무슨 짓이야!”
그 모습을 본 다른 B급 헌터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도대체 무-!”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려는 동료를 B급 헌터 하나가 제지하려 할 때.
-푸확!
또 다른 B급 헌터 하나가 검을 내질러 동료의 등 뒤를 공격했다.
“커…… 왜?”
동료의 검에 등 뒤를 꿰뚫린 헌터가 의문을 내뱉으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들입니까!!”
주변에 실드를 펼치며 공격을 막던 성자가 경악한 표정으로 외칠 때.
“샤이닝 슬래쉬!”
시노비들에게 맞서 싸우던 성수의 기사들이 뒤를 돌더니 몇몇 B급 헌터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커헉!”
“왜……!?”
A급 헌터들이 내지른 공격에 버티지 못한 B급 헌터들이 단말마를 내뱉으며 쓰러졌다.
“무슨 짓들이야!!”
안드레아가 경악한 표정으로 소리치자.
-스릉! 스르릉!
같이 싸우던 성수의 기사 다섯 전부가 안드레아에게 검을 겨누었다.
그때.
“빛의 날개.”
-화아아!
성자가 빛의 날개를 형성해 크게 펼치며 주변에 모든 헌터들을 뒤로 밀어냈다.
그리고.
“배신…… 인 겁니까?”
같은 동료들을 죽이고 기사단장인 안드레아에게 검을 겨누는 성수의 기사들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타락한 성자의 말을 더 들을 필요 없다!”
“우리는 고귀한 추기경님의 말씀에 따른다!”
배신한 교단의 헌터들이 광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약속대로 성자는 우리가 확보한다.”
시노비들이 배신자들과 합류했고 가토가 다가오며 말했다.
그리고.
“저건 방해되니…… 죽여.”
가토의 말에 시노비 다섯과 성수의 기사들이 안드레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
안드레아는 고레벨의 A급 헌터였지만, 상대 역시 레벨이 높은 A급 헌터들.
이들을 상대로 오래 버틸 수 없었다.
“내가 두고 볼 것 같습니까?”
성자가 신성력을 내뿜으며 스킬을 발현하려는 순간.
-푹! 푹! 푹!
성자의 주변으로 검은 막대 같은 것들이 날아와 꽂혔다.
-스르르!
막대에서 흘러나온 강렬한 어둠이 주변의 땅을 잠식하며 번지기 시작했고.
-화아아…….
성자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신성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건…… 아까 그 몬스터와 같은?”
“애초에 네가 빠져나갈 수 있는 함정이 아니었다. 성자.”
가토가 당황하는 성자의 앞에 서고는.
“얌전히 우리 ‘계획’의 일부가 되어 줘야겠어.”
성공을 확신하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결국, 위기에 몰린 성자는.
“빛의 강림.”
최후의 수단을 사용했다.
-화아아!
성자의 몸에서 강렬한 빛이 솟구치며 주변에 퍼진 어둠을 밀어냈다.
그리고.
[감히! 내 신관에게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성자의 입에서 야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하찮은 하계종들이!]
성자가 빛의 강림을 사용하기 전부터, 이 상황을 지켜보던 야훼는 극도로 분노한 상태였다.
[감히 나를 배신하느냐!!]
자신의 세력에서 배신자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를 용납할 수 없었으니까.
[전부 죽여 주마!!]
야훼가 격한 분노를 내뿜으며 흉흉한 빛무리를 흩뿌릴 때.
“시작해라!”
성자의 몸에 야훼가 강림했음을 알아차린 가토가 시노비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 말에.
-휙! 휘릭!
시노비들이 푸른색과 붉은색으로 빛나는 돌조각들을 꺼내 들고 성자를 향해 던졌다.
[같잖은 짓을!]
성자의 몸에 강림한 야훼가 손을 휘젓자 강렬한 빛이 퍼지며 돌조각들이 터져나갔다.
터져나간 돌조각들이 가루가 되며 흩날렸고.
-휘이이!
야훼를 향해 모여들며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마치 야훼를 중심으로 붉은색과 푸른색의 태극을 형성한 듯 보였다.
[무슨!?]
야훼가 당황할 때.
[우리의 계획을 방해하지 마라!]
[안타깝지만, 새로운 신관을 뽑으셔야겠어요. 빛의 신.]
각각, 붉은색과 푸른색의 태극에서 신들의 화신체가 나타나며 말했다.
붉은색의 태극에서는 이자나기의 주신인 아마테라스가.
푸른색의 태극에서는 스사노오와 같은 이자나기 성운의 대신 중 하나.
달을 상징하는 여신, 츠쿠요미가 나타났다.
[감히! 태초신의 대리자인 나한테 이런 짓을 하고도-!]
야훼가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화아아…….
강렬하게 퍼지던 빛과 붉고 푸르게 빛나던 태극이 함께 사라졌다.
성자의 몸에 강림한 야훼와 태극 속에 나타났었던 두 화신체 역시 사라졌다.
“커허!”
강제로 강림이 풀린 성자가 주저앉았고.
“크윽!”
안드레아 역시 치명상을 입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성자를 확보하고 빨리 저걸 죽여라.”
가토의 명령에 열 명의 A급 헌터들이 안드레아를 죽이기 위해 칼을 내지르려는 순간!
“폭풍이여 몰아쳐라!!”
하늘에서 안개가 잠시 걷히며 누군가가 전장에 난입했다.
-……푸아아아!!
안드레아를 공격하려던 헌터들에게 바람의 참격이 쏟아졌고.
“젠장! 막아라!”
“홀리 실드!”
그들이 급하게 방어하는 동안.
-휘리릭!
바람처럼 나타난 야스라가 안드레아를 잡아채고는 성자의 옆으로 다가왔다.
“미리 막았어야 했는데!”
야스라가 성자와 안드레아, 죽어 있는 헌터들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이번엔 선을 넘었습니다. 가토 상.”
-스릉!
가토를 향해 태도를 겨누며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일갈했다.
“야스라…….”
또다시 방해하러 나타난 야스라를 바라본 가토는.
“이럴수록 너에게도, 네 성좌에게도 좋지 않다는 것을 모르느냐?”
야스라를 향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당신들이 저지르는 이 상황 자체가!! 옳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게 압니다!!”
야스라가 가토를 향해 격한 분노를 토해냈다.
“……임무를 속행한다.”
가토의 말에 시노비들, 배신한 교단의 헌터들이 야스라, 성자를 포위했다.
“너희들 중 절반은 나와 같이 저승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야스라가 각오를 다진 목소리로 외쳤다.
그때.
“……도망가십시오. 야스라 님.”
상황을 잠시 관찰한 성자가 야스라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보아하니, 어떤 사정이 있어 보입니다. 도망가십시오.”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스릉.
야스라가 굳은 표정으로 태도를 움켜쥔 채, 사방을 경계하며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본 성자는.
‘안드레아에 야스라까지 죽게 만들 수는 없다.’
품속에서 밝게 빛나는 구슬을 꺼내 들었다.
처용이 ‘보험’이라며 건네주었던 아티팩트였다.
‘당신의 선견지명이 옳았군요. 역천군주.’
성자가 꺼낸 황금빛 구슬을 본 가토는.
“포기해라, 이런 상황에 무슨 짓을 하든 가망은 없다.”
별것 아닐 것이라는 생각으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과연, 그럴지는…… 두고 봐야 알겠죠.”
성자는 가토와 배신자들을 향해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파사삭!
황금빛 구슬을 깨뜨렸다.
그러나.
-…….
주변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고요할 뿐이었다.
구슬을 깨뜨린 성자 역시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처용이 건네준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으니까.
“……마지막 수단이 실패했나 보군.”
그 모습을 본 가토가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야스라가 방해하긴 했지만, 길드와 성운의 계획은 성공에 다가갔으니까.
“악감정은 없다. 얌전히 우리들의 원대한 계획에 일부가-.”
성자를 향해 말하는 순간.
“무슨 원대한 계획?”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스르르.
성자의 옆에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처용이 나타났다.
“대충 봐도 무슨 상황인지 알겠네.”
주변을 쓰윽 둘러본 처용이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여, 역천군주!? 어떻게?”
“어째서…… 어째서 여기에!?”
교단의 배신자들과 시노비들이 당황하며 말했다.
“한처용 헌터?”
야스라가 바로 옆에서 나타난 처용을 보며 놀란 듯 말했고.
“역천군주? 이게…… 어떻게?”
가토 역시 뒤로 한발 물러나며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흘렸다.
한국의 성지에 있어야 할 처용이 어떻게 이곳에 와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으니까.
“크크크.”
처용은 당황스러워하는 이들을 향해 싸늘한 미소를 짓고는.
-스르릉.
새로 태어난 자신의 파트너, 역천의 절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나 역시 네놈들에게 악감정은 없지만…….”
가토가 했었던 말을 비꼬아 그대로 돌려주었다.
“내 ‘원대한 계획’을 위해 너희들 전부 죽어 줘야겠어. 크크크.”
-우우웅!
처용에게서 강렬한 강기가 뿜어져 나오자.
“으윽.”
“젠장!”
성자, 야스라를 포위했었던 이들이 점점 뒤로 물러나며 침음을 흘렸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