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지원을 향해 몰아치던 거센 폭발이 끝나고.
-쿠구구…….
안개와 잔해가 걷어지며 폭발의 여파가 점점 사라졌다.
그리고.
“깔끔하군.”
추기경이 폭발의 중심이었던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곳에는 새까맣게 타버린, 사람이었던 무언가가 엎어져 있었다.
당장이라도 바스러질 듯, 잿더미를 흩날리고 있는 시체.
“흠.”
추기경은 자신의 목걸이를 잡고 주변을 한 번 신중하게 돌아봤다.
그리고.
“배신자까지 처리했으니 일이 더욱 수월하게 풀리겠군. 크크.”
시체를 바라보며 기대감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일대를 정리해라.”
“알겠습니다!”
사제들이 추기경의 명령에 대답하고는 마법과 스킬을 사용하여 시체를 흙 속에 덮어 버렸다.
“내일은 더 많은 이단자를 묻어 버릴 수 있겠어.”
케빈이 사체가 묻힌 장소를 향해 침을 내뱉으며 비웃음을 흘렸다.
“결계를 거두고 모두 돌아간다.”
할 일을 마친 추기경과 그를 따르는 사제들이 모두 뒤돌아 돌아갔다.
동시에.
-파아아.
그들이 만들어 두었던 결계가 해제되었다.
주변의 모든 이들이 사라지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주변이 고요해지며 침묵에 잠겼다.
그러고 잠시 뒤.
-푸화아아!
허공에 붉은 기류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우웅!
마치 게이트가 열리듯 붉은 공간이 열렸고.
“뭐, 늦지는 않았네.”
붉은 공간, 징벌의 선고 속에서 처용이 나타나며 말했다.
뒤이어서.
“으어…….”
추기경과 사제들의 공격으로 죽었었던 지원이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도대체 이게……?”
아직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지원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하자.
“일단 돌아가지.”
혹시 몰라 감각을 넓히며 주변을 살피던 처용이 지원의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동시에.
-우웅!
황금빛의 게이트가 열리고 닫히며 현장에 있던 처용과 지원이 사라졌다.
***
처용이 지원을 끌고 성지로 돌아오자.
“후,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메리가 다가와 지원을 바라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오버로드의 경고를 듣지 않았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어, 어떻게 된 겁니까? 메리 님.”
지원이 안도를 표하는 메리를 향해 사정을 물었다.
“그 전에, 널 구해준 사람한테 고맙다고 하는 게 먼저 아닐까?”
“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다시 뵙는군요.”
메리의 말에 지원이 처용에게 감사를 전했다.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짐작조차 되지 않지만, 처용이 자신을 구한 것은 사실이니까.
처용은 지원의 감사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받고는.
“생각보다 올림포스가 능력이 좋아, 일반 헌터도 아니고 성역의 사제가 첩자라니 말이야.”
메리를 향해 작게 웃으며 말했다.
“후후, 우리들의 능력을 얕보지 말라고.”
처용의 말에 메리가 허리에 손을 올리며 자신감을 담아 말했다.
“무슨 상황인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지원이 그런 둘을 보며 진지하게 질문했다.
“혹시 몰라서 내가 ‘전령새의 눈’을 사용했어.”
메리가 지원의 물음에 이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이야기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스킬 중 하나인 전령새의 눈.
그것은 특정 조건을 만족한 사람이 일정 거리에 있을 때, 그 주변을 미니맵처럼 볼 수 있는 스킬이었다.
메리는 지원이 강원도 인근에 도착하자 곧장 스킬을 활성화했고.
지원의 주변을 보여주는 미니맵에 붉은 점들이 찍히는 모습을 보고는 처용에게 곧장 알렸다.
메리의 말을 들은 처용은 마치 이 사태를 예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움직인 것이었다.
“놈들이 결계까지 미리 펼쳤었는데 어떻게?”
지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무려, 자신과 같은 성역의 사제들이 힘을 모아 펼친 결계였다.
S급 헌터조차 힘으로 뚫기 힘들 정도로 견고한 결계였기에, 지원도 가망이 없다 판단한 것이었다.
그런 결계를 힘으로 뚫는 것도 아닌 아무도 모르게 침입을 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들었다.
심지어 처용의 성지와 자신이 있던 장소는 같은 강원도 지역이라 해도 좀 먼 거리였다.
그런 거리를 단숨에 온 것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별것 아니던데?”
처용은 진심이라는 듯 말하고는.
-우우웅.
손을 들어 빛을 뿜어냈다.
문제는 처용이 내보인 빛이 단순한 빛 속성 마나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교단의 신성력!?”
지원이 처용이 내보인 빛을 보며 기겁한 표정으로 경악했다.
처용의 손 위로 떠오른 새하얀 기운.
그것은 교단의 고위 사제들만이 발현할 수 있는 빛의 신성력이었다.
“나에 대해 알 텐데?”
“그렇군요. 당신은 권능을…….”
처용의 말에 지원이 침착함을 되찾고는 말을 흐렸다.
“역천군주의 역천이로군요.”
다른 성좌의 권능을 발현할 수 있는 권능.
모든 성좌가 기피하고 두려워하는 힘.
그런 역천의 권능을 처용은 작게나마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혀졌었다.
“야훼의 신력이 아닌, 가공된 힘 따위는 별것 아니지.”
처용이 자신감을 드러내며 말하긴 했지만.
사실은 역천이 아닌, 이전 라구엘의 날개를 흡수했을 때 얻은 ‘신성’ 속성 덕분이었다.
추가로 처용이 성녀의 육체에 어둠을 적응시킬 때.
그녀의 몸에 쓸데없이 많이 자리한 야훼의 기운을 일부 빼내고 흡수한 덕도 있었다.
“후, 어찌 되었든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지원은 처용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다시 한번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이럴 때가 아닙니다! 지금 추기경 그 미친놈하고 정신 나간 광신도들이-!”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들었는지, 그간 있었던 일들을 상세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냥 테러 정도가 아닙니다! 이건……! 이건! 용서받을 수 없는 짓거리입니다.”
지원의 말이 끝나자.
“와…….”
메리가 입을 벌리며 멍한 표정을 짓고는.
“말이 안 나오는데? 이 정도로 추기경이 미쳤을 줄이야.”
고개를 가로저으며 경악을 내뱉었다.
“추기경은 애초에 이런 쓰레기였어, 그동안 자제하고 있을 뿐이었지.”
“그게 자제한 거였다고? 그것도 충격인데?”
처용의 말에 메리가 이마를 잡고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메리는 올림포스의 정보를 담당하는 나이키 윙 길드장.
그녀는 그간 추기경이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저지른 일들을 일부 파악하고 있었다.
그 수준과 수법이 ‘악질적’이라는 것 역시도…….
그러나 추기경이 이번에 저지르려는 짓은.
그가 그간 저질러온 짓들을 단번에 애들 장난으로 만들 정도로 심각했다.
게다가.
“한국을 노리는 것도 모자라 성자까지……?”
추기경, 아니 추기경과 연합한 이들이 노리는 것은 처용만이 아니었다.
“혹시나 했는데…….”
처용이 실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성자는 지금껏 세상을 위해 해온 일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성자에게 해를 끼친다?
“이건 도를 넘은 정도가 아니라, 뇌가 없는 수준인데?”
처용의 목소리에 싸늘한 살기가 일렁였다.
제 이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
스스로가 저지르는 일들로 인한 후폭풍과 좋지 않은 결과는 생각하지도 않는 이기적인 놈들.
“진짜, ‘역천’이 뭔지…… 제대로 알려 줘야 하나.”
흉흉한 기운을 내뿜으며 읊조리는 처용을 본 메리와 지원이 침을 삼켰다.
“……우선, 대비를 해야 해.”
메리는 침착함을 되찾고는 처용을 향해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성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좋지 않아.”
“성자는 걱정하지 마.”
처용은 메리의 말에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보험을 걸어 놨으니까.”
“……보험?”
메리가 처용의 말에 의문을 품으며 말했다.
“나도…… 설마 성자를 노릴까 싶었는데, 미리 대비하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어.”
처용이 성자를 생각하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계획을 조금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여.”
“……같은 생각이야.”
메리가 처용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미스터 박.”
“따르겠습니다. 메리 님.”
메리의 부름에 지원은 마치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덕분에 더 좋은 결과를 볼 수 있겠어.”
처용이 핵심 정보를 전달해 준 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본래의 계획은 ‘방어’ 후 ‘추적’이었지만…….”
“역시…… 나랑 같은 생각을 했구나?”
메리가 처용의 말에 대답하자 처용이 씨익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섬멸(殲滅).”
나지막하게 처용이 한 단어를 말하자 메리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더 견고한 ‘통발’을 짜 보자고.”
처용이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놓고 물고기를 유인해 가두는 도구이자 함정.
그 미끼가 연아와 윤아라는 것이 아직도 찝찝했지만.
지원이 가져다준 고급스러운 정보 덕분에 연아와 윤아의 안전이 확실해졌다.
“제시카에게 바로 알릴게.”
처용의 말에 메리가 답하고는 지원과 함께 움직였다.
그 모습을 바라본 처용은.
‘아타, 바로 사람들을 모아 줘.’
아타에게 전음을 전함과 동시에 발을 돌려 움직였다.
***
하루 뒤, 서울 왕십리역.
막 도착한 전철의 문이 열리고 교복을 입은 세 명의 소녀가 기차에서 내렸다.
“그간 있었던 일 때문인지, 학교 가는 게 진짜 오랜만인 것 같네.”
역에서 내린 윤아가 연아를 향해 말했다.
“나도 계속 집에 있어서 그런가? 오랜만에 나와보네. 히히.”
윤아의 말에 연아가 작은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겉보기에는 그저 학교로 등교하는 평범한 소녀들의 모습.
그러나 그녀들 뒤에는.
“…….”
“…….”
아주 은밀한 발걸음으로 뒤따라오는 이들이 있었다.
100미터가 넘는 거리에서 은밀하게 소녀들을 추적하는 이들.
본래, 평범한 학생들이라면 전문가의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그들을 눈치챌 리가 없었지만.
“음…… 너희들의 표현으로 따지면 B급 다섯에 A급 둘이네?”
연아와 윤아가 아닌 또 다른 교복을 입은 소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단정하게 내린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
목에 검은 목걸이를 차고 있는 차갑고 도도한 분위기를 가진 학생.
그녀는 다름 아닌 루나였다.
“A급 둘은 신성력이 느껴져.”
루나가 눈을 가늘게 뜨며 조용히 말하자.
“아직까지는 예상대로네요.”
윤아가 루나의 말에 조용히 대답했다.
“그리고 교복이 너무 잘 어울리는데요. 루나?”
“흐음?”
루나가 윤아의 말에 자신이 입은 옷을 한번 훑고는.
“나쁘지 않아.”
작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세 명의 소녀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학교 앞에 도착하자.
“윤아 양! 인터뷰를-!”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이밀며 몰려왔다.
그 순간!
-파지직!
“길 막지 말고 모두 비켜!”
세 명의 소녀 앞에 그녀들을 몸으로 가릴 듯 우람한 덩치를 지닌 남자.
백호가 나타나며 기자들을 가로막았다.
“학생들한테 뭐 하는 짓들이야!”
인상을 구긴 백호가 일갈하듯 말하자 기자들이 주춤거렸다.
그 틈에 세 명의 소녀가 빠르게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스르르.
마치, 빛처럼 일렁이는 투명한 무언가가 학교의 담을 넘어 소녀들을 뒤따랐다.
“아…… 인터뷰 따야 되는데!”
“승진의 기회가!”
기회를 놓친 기자들이 탄식을 토했고.
“거, 등교하는 애들한테 민폐 끼치지 말고 비켜!”
백호와 몇몇 협회 헌터들이 학교 앞을 복잡하게 만드는 기자들을 정리했다.
그때.
“저…… 그럼 권백호 헌터께서 한 말씀 해주실 수 있을까요?”
모자를 눌러쓰고 안경을 낀 여성 기자가 백호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백호는 다가온 기자를 잠시 응시하고는.
“짧게 끝냅시다.”
기자를 향해 아주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권백호 헌터”
여성 기자 역시 백호를 향해 아주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백호가 학교 앞에서 기자들을 막는 동안 세 명의 소녀가 교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커맨더의 조카라며!?”
“진짜야?”
“네 오빠가 역천군주라며?”
아니나 다를까 조금 전 기자들처럼, 학생들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다른 반 학생들까지 관심을 보이며 찾아오는 와중.
“…….”
같이 등교했었던 루나는 마치 익숙한 듯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본래 이 학교, 윤아와 윤아가 있는 반의 학생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루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은 듯 보였다.
마치 어느 학교에나 있을 법한, 존재감이 없는 학생과 같은 모습.
그런 루나는 가만히 앉아 목에 찬 목걸이를 매만지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윤아와 연아에게 쏟아지는 학생들의 관심은 식지 않고 있었다.
그때.
“S급 헌터라며? 클래스는? 스킬은 있어?”
한 학생이 윤아를 향해 궁금한 듯 물었다.
“야! 그런 걸 함부로-!”
“생각이 있냐?”
다른 학생들이 질문을 한 학생을 질책하듯 말할 때.
“스킬이라면 이거.”
윤아가 입을 열며 말했다.
“나와라. 니모.”
윤아의 말이 끝나자.
-슈루루루.
허공에 물이 모이더니 두 팔로 안아 올릴 정도의 크기를 가진 잉어가 나타났다.
윤아가 허공을 유영하는 니모를 안아 들고는.
“소환 스킬이야.”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앗! 귀여워.”
“근데 몬스터랑 싸우지는 못할 거 같은데?”
학생들이 윤아가 소환한 니모를 보며 큰 관심을 보였다.
“이제 막 각성했는데, 몬스터랑은 못 싸우지.”
윤아가 학생들의 말에 니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 불청객들이 있었다.
“신관이라 해도 막 각성한 수준입니다. 소환사라고 해 봐야 약해빠진 잉어 한 마리…….”
그들은 마치 누군가에게 보고를 올리듯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본래라면 교실에 있는 그 누구도 불청객들의 말을 듣지 못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약해빠진 잉어 한 마리? 재밌네.’
교실의 뒤쪽 구석에 앉아 있는 루나가 창밖을 바라보며 그들의 말소리를 듣고는.
‘그 잉어한테 갈기갈기 찢겨 봐야 정신을 차리겠어.’
수련탑에서 했었던 니모와의 대련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흘렸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