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이번 기회에 놈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습니다.”
처용이 진지하게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추기경은 분명 혼자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를 돕는 이들도 함께 움직일 것이 분명했다.
이번 기회를 살려 그들 모두를 한 번에 처리할 수 있었다.
다만.
“윤아와 연아는 이번 졸업식에 참석하지 마.”
추기경과 연결된 모든 세력이 모일 가능성이 있는 만큼 위험했다.
때문에, 윤아와 연아를 성지에 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 판단했다.
처용의 말이 끝나자.
“저희가 거기 없으면, 추기경이 학교를 노리지 않지 않을까요?”
윤아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추기경의 목표는 윤아와 연아.
목표 대상이 현장에 없으면 당연히 이상함을 눈치채고 빠질 게 분명했으니까.
“대타할 분신을 만들면 문제없어.”
처용은 그런 윤아의 말에 대답하고는.
‘토류부-흙인형.’
-쿠드드득!
지(地) 속성 마나를 뭉쳐 연아, 윤아와 같은 모습의 분신을 만들어 내었다.
심지어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식신부.’
투명하게 빛나는 식신부가 각각 만들어진 인형에 들어가자.
“어때?”
“이 정도면 감쪽같지?”
가짜 윤아와 연아가 비슷한 목소리로 입을 열어 말했다.
토류부로 생성한 분신에 식신부를 부여한 것으로 사람처럼 움직이고 말하게 만든 것이었다.
처용이 만든 인형을 메리, 커맨더가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을 때.
“음…….”
윤아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안 돼요. 이거 들킬 거예요.”
확신을 담아 이야기했다.
“음?”
그 말에 커맨더를 포함한 모두가 의문을 던졌다.
“제 눈에 가짜인 게 보여요.”
윤아의 눈동자가 푸르게 일렁이더니, 마치 용(龍)의 눈동자처럼 변했다.
용의 혜안(慧眼).
성좌인 청룡의 시야를 빌리는 스킬이었다.
이 스킬의 대표적인 능력 중 하나가 바로 ‘거짓 간파’였다.
“……이걸 알아봤다고?”
처용이 작은 놀람을 표하며 말했다.
자신이 만들어낸 분신은 그저 단순히 흙으로 만들어낸 분신이 아니었다.
인간의 신체 온도와 숨을 쉬며 움직이는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 등, 정밀하게 만들어진 인형이었다.
게다가 인형 속에는 처용의 마나 뿐 아니라 신력도 작게나마 담겨 있었다.
바로 ‘간파’ 특성을 지닌 스킬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윤아가 발현한 용의 혜안은 인형에 둘러진 막을 뚫고 가짜라는 것을 파악했다.
“저와 연아를 노리는 적 중에 삼촌과 같은 군주급 헌터가 있다면 알아볼 거예요.”
윤아가 커맨더를 바라보며 말하자.
“잠시만…….”
커맨더가 작은 게이트를 열더니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가 꺼낸 것은 정교한 기계장치와 톱니가 계속 움직이고 있는 망원경 형태의 아티팩트였다.
“디택트(Detect).”
커맨더가 아티팩트를 조작하자.
-띠릭! 띠릭!
톱니바퀴들이 회전하면서 아티팩트가 작동되었다.
그 상태로 망원경을 눈에 가져다 댄 커맨더가 인형을 바라봤다.
몇 초 정도 지나자.
“……미안하다. 나는 ‘간파’하지 못했어.”
커맨더가 쓴 미소를 지으며 윤아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옵저버의 탐색 기능이 담긴 아티팩트를 사용했는데도 처용의 분신을 간파하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훌륭하네. 윤아야.”
윤아를 향해 진심으로 칭찬을 건넸다.
조카가 어느 한 분야에서 자신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윤아는 커맨더의 칭찬에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저희를 노릴만한 이들 중에 저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지 않을까요?”
처용을 향해 우려를 담아 말했다.
“간파에 특화된 군주 클래스라거나.”
“흠…….”
윤아의 말에 처용이 팔짱을 끼며 무언가를 생각하듯 침음을 흘렸다.
‘커맨더의 옵저버가 가진 탐색 능력조차 분신을 간파하지 못했다. 하지만 윤아는 간파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처용의 머릿속에 반드시 죽여야 하는 배신자가 한 명 떠올랐다.
“제니퍼 로스차일드.”
배신자, 악신 아르테미스의 신관.
그리고.
“제니퍼 로스차일드가 군주 클래스야.”
처용이 그녀의 클래스를 언급했다.
“정말로? 그게 사실이야?”
메리가 처용의 말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올림포스가 파악하고 있던 정보와는 달랐으니까.
“제니퍼의 클래스는 ‘헌터 킬러’로 알고 있는데.”
“아니야.”
처용은 메리가 언급한 제니퍼의 클래스, 헌터 킬러를 듣고 단번에 부정했다.
“제니퍼의 클래스는 헌터 로드(Hunter Lord)…… 사냥 군주다.”
처용의 입에서 숨겨져 있던 군주 클래스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만약, 제니퍼 로스차일드가 추기경을 돕는다면…… 위험할 뻔했네.”
처용이 분노를 곱씹으며 말했다.
조커로 변장하여 신전을 무너뜨린 이상, 당분간 활동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고려 대상에서 배제했었다.
그러나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빠르게 신전을 복구하고 추기경을 도울 가능성은 충분했다.
신전을 복구하고 상황을 수습하는 데에, 마인만이 아닌 추기경과 천교의 도움까지 받으면 빠르게 가능했으니까.
그 대가로 추기경이 저지르는 일을 그녀가 도울 수도 있었다.
‘그때, 철수하지 말고 기다렸다가 죽였어야 했나?’
북한에서 아르테미스의 신전을 무너뜨릴 때.
정체를 감추고 신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무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후회스러웠다.
그때 무리해서라도 제니퍼를 죽였으면 이런 상황이 생기지 않았을 테니까.
처용이 제니퍼를 생각하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생각할 때.
“…….”
“……응.”
연아와 윤아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서로의 의견을 확인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역시, 저희가 직접 가는 게 좋겠어요.”
윤아가 ‘미끼’ 역할을 자처하듯 말했다.
“안 돼!”
커맨더가 윤아의 말에 즉답했다.
“이건 놀이나 훈련이 아니야!”
“이런 상황을 위해서 그동안 훈련하고 연습한 거잖아요?”
윤아는 커맨더의 거센 만류에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스스로를 지키고 사람들을 위해서 싸워나가는 게 헌터라고 하셨잖아요.”
“그거랑 네가 위험을 자처하는 거랑은 달라.”
커맨더가 계속 반대하자.
“보호만 받아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삼촌이 그러셨죠?”
윤아는 수련탑에서 훈련을 받을 때, 커맨더가 했었던 말을 언급하며 말했다.
“보호만 받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도!”
커맨더와 윤아가 서로 의견이 충돌하고 있을 때.
“너도 같은 생각이야?”
처용 역시 연아를 향해 진지하게 물었다.
처용도 겉으로는 침착하게 물었지만, 속으로는 엄청난 갈등을 하고 있었다.
과연 배신자들을 잡기 위해 연아를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 옳은가?
배신자들을 척살하는 것이 더 중요한가? 가족의 안위가 더 중요한가?
그러나 고민 끝에 가족의 안위가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신자들을 척살하고 악마들과 싸우는 이유가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였으니까.
하지만.
“맞아.”
연아는 처용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단호한 대답을 내뱉었다.
“하아…….”
처용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고.
“커맨더의 말대로 이건 장난이나 농담 같은 상황이 아니야.”
다시 한번 연아를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커맨더의 말대로 이 상황은 장난이 아닌 실제 상황.
훈련과 실전은 차원이 달랐으니까.
그러나 만류하는 듯한 분위기의 처용의 말에.
“우리가 농담으로 이러는 줄 알아!?”
연아가 목소리를 높였다.
“죽을 뻔했다면서? 중국에서…….”
중국에서 나타난 대악마를 처용이 목숨을 걸고 막았던 일.
연아는 처용이 위험했었던 상황을 언급했다.
“그따구로 무리하면서 우리한테 안전을 강요하지 마.”
“……이번에 맞설 적은 몬스터나 악마가 아니야, 사람이지.”
처용은 그런 연아를 향해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사람을 죽일 자신 있어?”
연아가 카투라의 신관이 되었다지만, 그래 봐야 20살도 안 된 어린애였다.
이런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자.
“……마인들은 사람이 아니라 몬스터나 악마와 다름없다고 누가 말했더라?”
연아가 물러설 수 없다는 듯, 처용을 노려보며 말했다.
“나와 윤아가 목표인 이상, 이번만이 아니라도 계속 우리를 노릴 거 아냐?”
이번 기회에 자신과 친구를 노리는 적들을 역으로 잡아내자.
“멍청하게 이런 기회를 놓칠 거야?”
연아가 강하게 자신의 의지를 드러냈다.
“후…….”
처용이 한숨을 내쉬고는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겼다.
적들이 원하는 미끼를 놓고 유인한 다음 일망타진한다.
아주 완벽한 작전이었다.
하지만, 그 미끼가 처용과 커맨더의 가족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세상에 ‘완벽’은 없다.
언제나 변수가 존재하고 무슨 의외의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
그 의외의 변수로 인해…… 연아와 윤아가 위험할 가능성도 있었다.
결국.
‘좋지 않아.’
처용의 머릿속에서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아무리 좋은 작전이라 해도 연아와 윤아가 위험하다는 리스크를 떠안을 순 없었으니까.
“역시 안 되겠-.”
처용이 다시 한번 진지하게 말하려는 때.
[내 사도를 한 번 믿어 보는 건 어때?]
연아의 입에서 카투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카투라 님?”
확 달라진 분위기와 말투, 새어 나오는 신력에 상황을 눈치챈 처용이 말했다.
그리고.
[내 신관 역시 마찬가지라네. 믿어 주지 않겠나?]
윤아에게서도 청룡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애들은 혼자가 아니야.]
[항상 우리가 함께 하고 있지.]
카투라와 청룡의 말에.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위험합니다.”
처용이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소중한 신관이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다.
성좌라면 신관이 위험에 처하는 상황은 기피하기 마련.
하지만.
[그거 알아? 이 아이들은 너희들에게 미안해하고 있었어.]
[……스스로를 비관하기도 했었다.]
카투라와 청룡은 연아와 윤아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는 듯 보였다.
중국에서 디아블로가 나타났을 때, 목숨을 걸고 싸운 처용과 커맨더.
연아는 그 당시 처용이 죽을 뻔했다는 상황에 충격을 받았었고.
윤아 역시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인 커맨더가 위험했었다는 상황에 충격을 받았었다.
동시에 S급 헌터가 되었음에도 처용과 커맨더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비참했다.
자신들이 도움이 될 만한 존재였으면, 처용이 게이트를 여는 능력으로 도움을 요청했을 테니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이 아이들의 마음은 진심이야.]
[기회를 주지 않겠나?]
카투라와 청룡은 그런 연아와 윤아의 마음에 손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연아가 이해 안 되는 건 아니야.”
지금껏 침묵하고 있던 연화가 생각을 마친 듯 입을 열었다.
그녀 역시 디아블로와의 싸움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비참했었으니까.
다음에는 반드시 도움이 되기 위해 굳게 마음을 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었다.
어쩌면 윤아와 연아 역시 비슷한 심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카투라와 청룡, 연화까지.
의견을 듣을 처용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침묵하더니.
“이렇게 하죠.”
생각한 바를 이야기했다.
“저와 대련해서 옷깃이라도 스칠 수 있으면, 뜻대로 하겠습니다.”
즉, 처용의 의견은 스스로의 능력을 입증하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슈우우.
윤아와 연아의 몸에서 흐르는 신력의 기운이 사라지며 빙의가 풀렸다.
동시에.
“각오 단단히 해라.”
연아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처용을 향해 말했다.
“오냐.”
처용은 그런 연아의 자신감을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성자가 교단 본부로 돌아가자 곧장 교황을 찾아갔다.
그가 할 말이 있다며 성자에게 만남을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부르셨습니까? 예하.”
교황의 집무실에 들어선 성자가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어서 오십시오. 성자.”
성자를 마주한 노인이 작은 미소를 지어보며 반가움을 표했다.
추기경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듯, 잔주름이 많은 인자한 인상.
크게 튀지 않는 평범하고 새하얀 법복에 하얀 새치가 가득한 머리의 노인.
그는 교단의 교황이었다.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성자가 묻자.
“성녀를 역천군주의 성지로 보냈다지요?”
교황이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 외엔 방법이 없었다는 것을…….”
성자가 교황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고는.
“설마, 예하께서도 호네아를 ‘성령’으로 취급하자는 의견에 찬성하시는 겁니까?”
날카로운 감정이 담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허허, 그럴 리가요.”
교황은 작은 웃음을 지으며 부정하듯 말했다.
“제게 있어서 호네아는 성자와 같습니다. 포기하라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행입니다.”
교황의 말에 성자가 아주 짧게 침묵하고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동시에.
-교황을 너무 신뢰하지 마십시오.
처용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방금 교황이 한 말.
성녀는 성자와 같으니 포기할 수 없다.
둘 다 교황에게 있어서 소중하다는 말로 들리기도 하지만.
‘어째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건가?’
미묘하게 성자인 자신을 우위에 두는 말이었다.
이전이라면 이런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았겠지만.
-교황이 당신 남매에게 접근한 시기와 유독 잘 대해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어째서인지 처용의 말과 동시에 머릿속에 번뇌가 휘몰아쳤다.
성자가 생각에 잠길 때.
“하지만, 이 늙은이는 좀 걱정이 됩니다.”
교황이 성자를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역천군주가 과연 성녀를 회복시킬 수 있는지, 혹여 잘못된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지…….”
과연 처용이 성녀를 치료할 수 있는 것인가?
“역천군주의 성좌는 한때 신계를 멸망으로 몰고 갔었다는 마신이라고 하더군요.”
처용의 성좌는 악명 높은 마신이다.
“그저 걱정이 됩니다.”
이런 처용을 믿고 성녀를 맡길 수 있는 것이냐?
이것이 교황이 묻고자 하는 진의였다.
“제 눈으로 직접 호네아가 호전되는 것을 보고 왔습니다.”
성자는 그런 교황의 진의를 파악하고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교단의 모든 고위 사제들이 힘을 써도 호전되지 않았던 병을 하루 만에요?”
성자의 말을 들은 교황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자비의 대신이라는 성좌님께서 권능을 발현해 주셨습니다.”
의심이 담긴 교황의 말에 성자가 반박하듯 강하게 말하자.
“마신과 함께 하는 성좌입니다. 믿음이 가질 않는군요.”
교황이 의심이 일렁이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대답했다.
그러자.
“한처용 헌터의 성좌는 마신이 아닌 신법의 대신입니다.”
성자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째서 그 성좌가 마신으로 불렸는지, 왜 신계에 그런 사태가 일어났는지 전해 들으셨을 텐데요?”
과거 다른 성좌들이 연합하여 한 대신을 향해 저지른 큰 잘못.
그들이 저지른 잘못 덕분에 처용의 성좌가 신계에 피바람을 일으켰다고 들었다.
“자비의 대신께서는 ‘피해자’입니다. 어째서 피해자를 핍박하듯 말씀하시는 겁니까?”
성자가 교황을 향해 다그치듯 물었다.
자신이 직접 마주한 자비의 대신은 그 신명답게 온화하고 따듯한 신이었다.
직접 호네아에게 손을 뻗고 권능을 발현하여 아픔을 걷어주는 여신.
그런 보살을 본 성자는 그녀가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신성함만이 가득해 보였다.
그런 여신을 ‘마신과 함께하는 이’라며 깎아내리는 말은 그냥 넘기기 힘들었다.
“……그저 성녀를 생각하는 늙은이의 우려일 뿐입니다.”
교황은 무언가 달라진 듯한 성자의 분위기에 당황스러움을 숨기며 말했다.
성자가 자신의 말에 정면으로 반박한 적은 지금껏 없었으니까.
“하실 말씀이 더 없으시다면 가 보아도 되겠습니까? 예하.”
“……제가 바쁜 성자를 너무 오래 붙잡아 두었군요.”
교황의 말에 성자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성자의 뒷모습을 본 교황은.
“어째서 저리 엇나가게 된 것인가?”
온화한 표정을 없애고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어찌해야 좋을까요? 빛의 신이시여.”
하늘을 바라보며 누군가에게 말을 전하듯 입을 열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