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193화 (193/726)

#193화

“우선…… 조용히 때를 기다려라.”

추기경이 진지한 목소리로 명령하자 모였던 사제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그리고.

“젠장,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조금 전 추기경의 시선을 받고 고개를 끄덕인 고위 사제 중 하나.

추기경의 최측근 중 하나이자 한국 출신인 성역의 사제.

“추기경이 곧 사고를 칠 것 같긴 했지만…….”

박지원이 다급한 표정을 숨기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교단의 외부로 나가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한 박지원은.

“차음(遮音)의 결계.”

주변에 결계를 만들어 내어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조치했다.

“은폐의 결계.”

동시에 자신의 모습도 숨기는 철두철미한 모습을 보였다.

모든 준비가 끝난 박지원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가 꺼낸 것은 날개 모양의 장식품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박지원입니다.”

누군가와 직통으로 연결할 수 있는 통신 아티팩트였다.

지원이 마나를 부여하며 아티팩트를 작동시키자.

-미스터 박? 뭐야, 무슨 일이 있는 거야?

통신기 속에서 발랄한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장 문제가 터진 것은 아니지만, 뭔가 사고가 터질 조짐이 있습니다.”

박지원이 통신을 받은 여성을 향해 말을 이었다.

“메리 님.”

헤르메스의 신관이자 올림포스의 정보를 담당하는 나이키 윙 길드장.

통신기 너머에서 울리는 목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메리였다.

“추기경이 지금 수상한 일을 꾸미고 있습니다.”

지원은 그런 메리에게 정중하면서도 진지하게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성역의 사제 박지원.

그는 처용이 예상했던 대로 올림포스 측 사람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잘못하면 로스차일드에도 악영향이 생길 수도 있다 판단했습니다.”

그는 로스차일드 가(家)를 따르는 인물, 즉 ‘제시카를 따르는 사람’이었다.

제시카가 교단 내부에 심어놓은 올림포스의 첩자.

그것이 박지원의 진짜 정체였다.

“지시가 필요합니다. 메리 님.”

-우움…… 잠시만, 내가 지금 중요한 곳에 와 있어서.

지원의 보고에 메리가 무언가 고민하듯 침음을 흘리며 말했다.

-혹시, 한국으로 올 수 있어?

“……다행이군요. 마침 추기경의 지시 덕분에 한국으로 가야 했습니다.”

메리의 말에 지원이 작은 안도를 표하며 말을 이었다.

“의심받지 않고 한국에 갈 수는 있습니다만, 어떻게 접선합니까?”

-한국에 도착하면 강원도 쪽으로 와.

“혹시…… 역천군주의 성지?”

지원이 막 떠오른 생각을 말하자.

-오? 예리한데? 역시 첩자다워, 내가 지금 거기 있거든.

메리가 손뼉을 치며 대답했다.

“그렇군요. 안 그래도 보고를 올리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지원은 메리의 대답을 듣고는 추기경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빅터가 역천군주에게 엄청난 증오를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간 교단 내부에서 있었던 일들을 아는 대로 전부 보고하자.

-아주 좋은 타이밍에 좋은 정보를 전달해줘서 고마워.

메리가 환한 웃음을 섞어 대답했다.

“저 역시 로스차일드 사람입니다.”

지원은 자부심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 너 역시 중요한 로스차일드 사람이니까. 절대 죽지 마. 알았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추기경은 저를 신뢰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보자.

메리가 통신을 끊었는지 통신기에서 일렁이던 마나가 사그라졌다.

보고를 마친 지원은 결계를 해제하고 다시 교단 본부로 돌아갔다.

지원이 교단 본부로 발을 들일 때.

“어딜 갔다 오는 거냐?”

누군가가 지원을 향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원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같은 성역의 사제이자 추기경의 최측근인 남자가 서 있었다.

그를 유심히 바라본 지원은.

“너는 한가한 모양이야. 케빈? 추기경님의 명령을 잊은 건가?”

질책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들 분주한 와중에 네가 싸돌아다니니까 물은 거다.”

성역의 사제, 케빈이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언제부터 그렇게 오지랖이 넓었다고? 관심 꺼라.”

지원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고개를 돌려 나아갔다.

뒤돌아 나가는 지원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본 케빈은.

“저 새끼도 이단자와 같은 나라 출신이었지…… 수상한데?”

광기와 집착이 일렁이는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

성녀가 성지에 도착하고 하루 뒤.

“호네아를 잘 부탁합니다.”

교단으로 돌아가려는 성자가 처용에게 인사를 건넸다.

성자는 하루 동안, 성녀가 어떤 치료를 받는지, 어떻게 어디서 지내는지를 지켜봤다.

그 결과.

“덕분에 희망을 봤습니다.”

본래 안색이 창백하고 주기적으로 경련을 일으키던 성녀의 상태가 눈에 보일 정도로 나아졌다.

무려 대신급 성좌, 보살이 직접 주기적으로 권능을 발현하여 성녀의 육체를 안정시키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바뀐 식습관과 규칙적인 운동, 어둠 속성에 적응하는 훈련 등.

처용이 직접 짠 매뉴얼대로 타락(?), 아니 치료를 시작했다.

약해진 육체를 바로잡은 후 어둠 속성 마나를 적응시키고 다루는 훈련이었다.

딱, 하루를 반복했을 뿐인데도, 종종 성녀를 괴롭히던 잔병들이 사라졌다.

“감사합니다. 요청하신 것들은 바로 보내겠습니다.”

성자가 감사를 전하며 이전 처용이 요청한 것들을 언급했다.

“급할 건 없습니다. 어차피 일부이니.”

처용이 성자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성녀를 치료해주는 대가인 샤이닝 스톤과 스킬석.

그중 일부만 받고, 나머지는 성녀가 완치되면 받기로 약속했다.

처용은 연달아 감사를 전하는 성자를 잠시 바라보더니.

“성녀를 이곳에 보낸 것만으로도 교단에서 불만을 가진 자들이 많을 겁니다.”

진지하게 경고를 담아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애초에 그럴 각오를 하고 왔으니까요.”

성자가 작은 한숨을 내쉬고는 각오를 다진 듯 강하게 말했다.

“추기경만 조심해서는 크게 당할 겁니다. 성자.”

처용이 대놓고 추기경을 언급하며 경고를 전했다.

-추기경이 뭔가를 꾸미고 있어.

어제 메리가 처용에게 전달해준 말 때문이었다.

추기경이 자신 하나만 목표로 잡고 움직이면 상관이 없었다.

대비는 충분히 갖추고 있고 여차하면 추기경만 죽여 버린 후 묻어버리면 되니까.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성자가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내부 입지나 정치적인 공격이 아닌 말 그대로 물리적인 공격.

즉, 성자의 목숨을 노릴 가능성도 존재했다.

설마, 성자를 죽이는 미친 짓을 저지를까 싶긴 하지만.

‘추기경이 누구와 협력하느냐에 따라 가능성은 있다.’

회귀 전, 추기경이 저지른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들을 생각하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알고 있습니다.”

처용의 말에 성자가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성자는 선을 추구하는 사람이지, 멍청한 인물이 아니었다.

추기경과 그를 따르는 교단의 사제들은 강욕(江慾)이 넘치는 이들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들이 교단의 이득을 위해, 아니 본인들의 이득을 위해 저지른 비리가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처용은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성자에게 한 마디를 더했다.

“교황을 너무 믿지 마십시오.”

처용의 말에.

“……위험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오버로드.”

성자가 표정을 굳히며 부정하듯 말했다.

대게 처용이 무슨 말을 하든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수긍하는 성자였지만.

이번만큼은 처용의 말에 부정하는 듯한 분위기를 보였다.

처용은 그런 성자를 이해했다.

교황이라 불리는 이는 성자에게 있어 아버지와 다름없는 인물이었으니까.

처용은 그런 성자를 잠시 응시하고는.

“성녀를 병기로 쓰자고 당신을 설득한 게 누구인지, 잘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진심 어린 경고를 담아 이야기했다.

“그, 그걸 어떻게!?”

성자가 처용의 말에 눈에 띌 정도로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호네아가 말했습니까?”

“아니오.”

처용은 성자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세상을 위해, 성녀를 위해, 그녀를 성좌들의 병기로 만들어야 한다. 그게 호네아의 운명이라고 하더군요.

회귀 전, 야훼가 성녀를 자폭시키는 것으로 전쟁을 잠시 멈추었을 때.

성자가 초점이 사라진 눈빛으로 처용에게 한 말이었다.

-호네아를 위하는 이는 정말 아무도 없었습니다. 당신을 제외하고…….

그 당시 마음이 무너진 성자가 한 말이 다시금 머릿속에 떠올랐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습니다. 성자.”

떠오르는 과거를 상기한 처용이 성자에게 말을 이었다.

“마음은 아프겠지만,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 보십시오.”

“…….”

“교황이 당신 남매에게 접근한 시기와 유독 잘 대해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럴……리는.”

처용은 눈빛이 흔들리는 성자를 향해 진심 어린 충고를 했다.

“성자, 당신이 성녀를 위해 행동한 것처럼, 아무도 믿지 말고 스스로를 믿고 판단하십시오.”

“…….”

“지금 내가 하는 말 역시도,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고 의심하고, 당신의 주체적으로 행동하십시오.”

성자의 눈과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는 존재.

이들 남매에게 있어서는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인물.

처용은 그런 인물이 부릴 개수작을 미연에 방지할 목적이었다.

교황.

교단에서 성자와 필적할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인물.

성자와 성녀가 어릴 때부터 그들 남매를 돌봐준 이.

그리고…….

야훼에게서 처음으로 가호를 받고 각성한 각성자.

정확히 말하자면 교황은 야훼의 첫 번째 병사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야훼의 충복…….’

그런 교황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바로 야훼의 신관을 찾는 것.

그 당시 구 종교인으로서 명성이 높았던 교황은 가진 세력을 이용해 성자를 찾아냈다.

처용의 눈에는 그것이…… 이들 남매에게 있어 불행의 시작으로 보였다.

“받으십시오.”

“……이건?”

성자가 처용이 내민, 금빛으로 일렁이는 구슬을 받으며 중얼거렸다.

“정말 위험한 상황이라 판단되면, 그 구슬을 깨뜨리십시오.”

처용이 성자에게 건넨 아티팩트는 일종의 보험이었다.

“당신이 성녀를 이곳에 혼자 두고 죽을 거라 생각되진 않지만, 저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는 터라.”

“그럴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성자는 처용의 말에 강하게 부정했다.

그러자.

“항상 대비하고 생각하고 준비하라.”

처용이 세계 헌터 회의에서 했었던 말을 진지한 목소리로 다시 입에 담았다.

“앞으로의 싸움에 있어 당신은 중요한 사람입니다. 이건 제 나름대로 보험이라 할 수 있는 거고.”

“…….”

처용의 말에 성자가 건네받은 금빛 구슬을 응시했다.

내부에 강력한 신성력, 아니 처용의 신력이 일렁이는 아티팩트.

아마도 처용이 사용하는 방어 스킬이나, 권능이 내장된 듯 보였다.

“이래 봬도 저 역시 신관, S급 헌터입니다.”

성자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처용에게 말했다.

성자로서 존중은 받아 봤지만, 누군가에게 걱정을 받아 본 적은 없었으니까.

“당신만큼은 아니라 해도, 저 역시 강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처용은 성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역시 설마 성자가 공격당하는 미친 상황이 벌어질까 싶은 마음이었지만.

‘가능성은 있다.’

추기경이 저지르는 음모, 이자나기 성운, 무라키 가문, 제시카와 반대되는 로스차일드 세력.

그리고…… 마인들까지.

이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모르는 이상, 대비하고 계속 준비해야 했다.

“나는 농담 삼아 걱정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자.”

처용은 성자를 향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경고를 전했다.

“성녀를 혼자 두고 죽으면, 그녀를 절반이 아니라 완전히 타락시켜 버릴 겁니다.”

“하하, 앞으로 조심해야겠군요.”

성자가 처용의 말에 작은 웃음을 보이고는 성지를 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성녀의 치료라는 걱정거리를 조금이나마 덜어낸 탓인지 발걸음이 가벼웠다.

동시에.

‘설마, 무슨 일이 일어날까?’

처용이 건네준 작은 구슬을 매만지며 그가 말한 경고를 떠올렸다.

사실, 이 아티팩트를 처음 받았을 때는 거절하려고 했었다.

아무리 추기경과 그를 따르는 세력이 강욕을 추구하는 이들이라 해도.

설마, 정말로 성자인 자신을 공격하는 짓을 벌일까? 싶었으니까.

하지만, 추기경이 아닌 다른 세력이 자신의 목숨을 노릴 수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주적이라 할 수 있는 마인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대악마가 다시 강림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성자인 자신이 위험한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은 빛의 신, 대신인 야훼의 신관이었으니까.

‘……오버로드의 말대로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생각을 마친 성자는 금빛으로 일렁이는 구슬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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