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190화 (190/726)

#190화

아테나가 처용의 제안을 수락했을 때.

“저…… 태초의 마수가 무엇인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제시카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질문했다.

대충 분위기를 봐서 신격으로 보이는 두 존재, 카투라와 크루마를 지칭하는 말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에 붙은 ‘마수’라는 단어가 신경이 쓰였다.

마인들의 병기도 ‘마수’라 불리고 있었으니까.

제시카의 입에서 의문 섞인 질문이 나오자.

“선천적 신격들이 태어나기 이전, 태초신과 함께 우주를 관리하던 최초의 신격들.”

처용이 간략하게 정리하여 설명했다.

“선천적 신격들의 선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 엄청난 분들이셨군요?”

제시카가 처용의 대답에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동시에,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이 있었다.

“왜 다른 성운들이 다짜고짜 이분들을 적대한다고 하신 겁니까?”

태초의 마수들을 보며 다른 성운들이 그들을 적대할 수 있다고 한 아테나의 말.

제시카는 그 말에 도대체 왜? 라는 의문이 들었다.

[…….]

아테나가 제시카의 질문에 뭐라 답해야 할지 망설일 때.

[우리는 태초신에 의해 버려진 이들이니까.]

카투라가 제시카를 향해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그게 끝인가요?”

제시카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기울이며 질문했다.

[응, 이게 끝인데?]

“…….”

카투라의 말에 제시카가 이해하지 못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은.

“큭, 이해가 안 되죠? 저도 이해가 안 됩니다.”

웃음을 참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분들은 잘못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냥 ‘태초신에게 버려졌다’ 이 이유가 끝입니다.”

“혹시, 태초신이 절대적인 존재입니까? 절대로 거스르면 안 되는 뭐 그런……?”

제시카는 처용의 말에 질문을 던졌다.

태초의 신이라는 이름답게 절대적인 무언가가 있을까? 싶어 던진 질문이었다.

“태초신이 절대적인 존재였으면, 차원이 무너지는 일 따위 일어나지 않았겠죠.”

처용이 작은 비웃음을 머금으며 제시카의 질문에 말을 이었다.

“애초에 차원이 무너진 이유가, 그 잘난 태초신께서 관짝에 들어가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니까.”

“…….”

“우리는 태초신이 무책임하게 뒤지면서 발생한 일을 수습하고 있는 겁니다.”

처용의 입에서 태초신을 비난하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결론을 짓자면 태초신이 과거 태초의 마수들을 버렸다. 정말 이게 끝이로군요?”

“네, 요약 잘하셨네요. 그게 끝입니다.”

“이상합니다.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만으로 무조건 적대한다는 것이…….”

생각이 정리된 제시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과거 태초의 마수라는 존재가 신계에 커다란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었다.

태초의 마수라는 존재 자체가 신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태초신이라는 존재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이유 하나.

그 하나만으로 최초의 우주를 관리하던 이들이 신들에게 적대를 받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꼬인 매듭이 있다면 대화를 하든 협상을 하든 풀면 됩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는…….”

제시카가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고민하듯 말하자.

“답이 없죠?”

처용이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그런 처용의 말에 긍정한다는 제시카가 침묵했다.

그리고.

[크큭, 아하하하!]

그 모습을 본 카투라가 큰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괜찮은 아이를 신관으로 들였잖아?]

[제시카는 총명하고 명석한 아이입니다…….]

아테나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흐리고는.

[저 역시 당신들이 다짜고짜 다른 성운들에게 적대를 받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하지만, 제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태초신에 대해 잘 모르는 차세대 신격이기 때문일 겁니다.]

즉, 태초신과 함께한 대신급 신격들은 아테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태초신을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을 테니까요.]

아테나의 말에 같이 성지를 방문한 헤르메스, 티케, 디오니소스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에게 있어 제우스 님과 같은 존재일 테니.]

헤르메스가 다른 성운의 대신들을 생각하며 말했다.

그때.

“태어나게 해준 부모라는 이유로 터무니없는 명령에까지 맹목적으로 따를 이유는 없습니다.”

처용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볼 때, 그들은 그저 태초의 마수들이 자신들의 선임이라는 사실 자체가 싫은 겁니다.”

부모인 태초신 외에는 그들 위의 존재를 생각하지 않는 선천적 신격들.

“오만한 그들은 태초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하등하게 보는 놈들이니까.”

처용의 말에 신격들도, 제시카를 포함한 사람들도 반박하는 이가 없었다.

세계 헌터 회의에서 처용이 밝힌 과거 대신들이 저지른 잘못.

그 사건의 당사자들이었던 신격들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존심을 세우기 바빴으니까.

“말 나온 김에 물어봅시다.”

처용은 막 생각났다는 듯 아테나를 향해 말했다.

“도대체 올림포스의 전 주신은 왜 사라진 겁니까?”

회귀 전에도 끝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제우스.

그나마 처용이 아는 사실은 그가 사라지기 전, 아스트라페와 주신의 권한을 아테나에게 넘겼다는 정도.

그가 왜 다른 이들도 아니고 아테나를 선택했는지.

왜 돌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라졌는지.

회귀 전, 세계가 멸망해 가는 상황에서도 왜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도 알고 싶구나.]

아테나가 고개를 저으며 진심이라는 듯 말했다.

[그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말만 남기고는 사라졌으니까.]

[헤라 님께서 열심히 찾고 계시지만,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어.]

아테나의 말에 헤르메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랑을 찾았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만 아니었으면…….]

제우스의 시녀 역할을 했었던 신격, 티케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러자.

[설마 그럴 리가요.]

아테나가 작게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아무리 제우스가 그쪽(?)으로 신계에서도 유명한 신이라지만.

설마 진짜 그런 터무니없는 이유로 사라졌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티케의 말을 들은 처용은.

‘설마가 사람을 잡긴 하지만…….’

카투라가 보여준 환영 속 제우스를 떠올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황상, 그가 다른 대신들의 터무니없는 계획에 동참한 이유는 보살 때문이었으니까.

처용 역시 그저 설마 하는 생각이 떠올랐을 뿐이었다.

한 성운을 이끄는 대신이 고작 그런 이유를 가지고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를 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한 선천적 신격들을 볼 때.

아주 적은 가능성은 아니었다.

“더 고민해 봐야 답이 나오는 문제는 아니네요.”

처용은 더 생각해 봐야 의미가 없다 판단하고는 주제를 돌렸다.

“그보다도 일본, 신의 검객 길드와 관련해서 전해 드려야 할 말이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언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주제였다.

처용은 무라키 야스라와 스사노오가 해주었던 이야기, 그들이 조사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말했다.

특히.

“데미갓 프로젝트.”

이자나기의 주신 아마테라스가 꾸미는 데미갓 프로젝트에 대해 언급했다.

“혹시 아시는 게 있습니까?”

이야기를 마친 처용이 제시카를 향해 묻자.

“데미갓 프로젝트…… 설마 당신에게 그 말을 들을 줄은.”

놀란 표정을 지은 제시카가 중얼거리듯 말을 흐렸다.

“아는 게 있나 보네요.”

처용이 단서를 잡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도 정확히 아는 건 아닙니다. 그저 가주님만이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우연히 갔을 때…….”

제시카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로스차일드뿐 아니라 각국의 여러 가문들이 과거에 같이 계획한 프로젝트인 것 같았습니다.”

제시카는 자신이 말하는 과거가 몬스터가 막 등장하기 시작했을 시기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난장판이 되어가는 세계를 위해 준비했던 여러 연구 중 하나였습니다.”

“세계에 영향력이 높은 가문들이 힘을 합쳐 연구한 프로젝트?”

“네, 하지만 실패하여 폐기된 프로젝트로 알고 있습니다.”

“흠…….”

제시카의 말을 들은 처용이 침음을 흘리고는.

“혹시, 데미갓 프로젝트에 대해 더 알아봐 줄 수 있습니까?”

진지하게 물었다.

직접 알아보는 것보다 로스차일드의 영향력 있는 인물이 파악하는 게 효율적이고 정확할 테니까.

그러나.

“그게…… 바로 알아내기는 힘들 겁니다.”

제시카는 진심으로 곤란하다는 듯 말을 흐렸다.

“여러 가문이 엮인 만큼, 특급 비밀로 분류되어 있을 겁니다.”

“로스차일드의 핵심 인물인 당신조차도 바로 열람이 불가능하다?”

처용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질문을 받은 제시카가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가문에서 일부러 은폐한 듯 보이는 정보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프로젝트 과정에서 숨겨야 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과거 로스차일드를 포함한 여러 가문들이 행한 실험.

제시카는 그 과정에서 비도덕적인 무언가가 있지 않았나? 의심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마수 실험과 같은 무언가를 했다거나?

“……야스라랑 스사노오를 기다릴 수밖에 없나?”

처용이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애초에 제시카를 통해 단서를 잡을 생각만 했었지, 바로 알아낼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저도 따로 알아보겠습니다. 뭔가…… 기분이 석연치 않습니다.”

제시카가 처용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다.

“데미갓 프로젝트…… 저는 왠지, 당신이 떠오르거든요.”

데미갓, 즉 반신이자 신격을 지닌 인간.

지금 시기에서는 처용만이 유일한 데미갓이라 할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혹시, 인공적으로 반신을 탄생시킨다거나…….”

“제시카도 우리랑 같은 생각을 했네.”

커맨더가 제시카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신의 검객 길드가 무슨 짓을 꾸미든지, 좋지 않은 건 확실해 보여.”

“으음, 로스차일드 내부 정보는 파악하기 어려운데…….”

메리가 커맨더의 말에 침음을 흘렸다.

“뭐, 어떻게든 조사하다 보면 뭔가 나오겠지.”

침음을 흘리던 메리가 박수를 한 번 치고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역시 이자나기 성운을 주시하겠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테나가 진지하게 말했다.

“혹시라도 놈들이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하려 한다거나 그런 정황이 보이면 바로 알려 주십시오.”

처용은 사람들을 향해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그땐 무력을 써서라도 판을 뒤집어 버릴 생각이니까.”

[하하, 역천군주다운 생각이야.]

헤르메스가 처용의 말에 그의 이명을 언급하며 말했다.

[이자나기 성운 길드에 정면으로 쳐들어가기라도 하게?]

티케가 처용의 말을 확인하고자 직설적으로 물었다.

“필요하다면요.”

처용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놈들의 뻘짓으로 재앙이 일어나는 것보단 낫습니다.”

하나의 거대 성운을 멸망하게 만든 실험.

그 규모가 커지게 된다면 무슨 재앙이 발생할지 모르니까.

“아, 중요한 이야기를 빼먹을 뻔했네요.”

처용이 막 떠오른 듯 아테나를 향해 말했다.

“혹시, 하데스 님에게 저승에 무슨 일은 없는지 물어봐 주시겠어요?”

나름 중요한 주제였다.

[저승은 갑자기 왜?]

아테나가 의문을 담아 묻자.

“타르타로스에 생긴 균열, 아레스와 아폴론의 탈옥…….”

처용이 왜 저승에 관심을 가졌는지에 대한 이유를 말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마인들의 근거지를 습격할 때, 연옥에서 적출된 영혼이 있었습니다.”

마녀와 두 번째로 마주했을 때, 연옥에서 적출되었던 전위라는 영혼.

게다가 그가 처용에게 전해 주었던 말들까지.

‘무신전의 성좌들 중 배신자는 없어, 배신할 만한 명분도 없다. 그렇다면?’

처용은 무신전 내부에 배신자가 있을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했다.

그들 모두 회귀 전 자신과 함께 싸우다가 전사했으니까.

그렇다면?

“저승과 관련된 누군가가…… 대악마 쪽에 붙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음…… 일리가 있다.]

아테나가 처용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말하고는 헤르메스를 응시하자.

[바로 하데스 님께 전달할게.]

헤르메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동시에.

- 샤라락.

손을 들어 양피지 같은 종이를 소환하더니 무언가를 적었다.

-파앗!

헤르메스가 무언가를 적은 종이를 허공에 날리자, 빛과 함께 종이가 사라졌다.

아마 전령신의 권능으로 하데스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전한 듯 보였다.

“이렇게나 도움을 주셨으니, 이제 제 차례군요.”

그 모습을 본 처용은 아테나와 제시카가 찾아온 이유를 잊지 않았다는 듯 말했다.

“이전보다 더욱 고통스러우실 겁니다.”

처용이 제시카를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넌지시 말하자.

“이미 각오는 하고 왔습니다.”

제시카가 진심이라는 듯 각오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

고급스러운 목재로 제작된 듯, 유려하고 화려한 분위기를 내는 복도.

그리고.

[스사노오의 신관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고 있다?]

태양처럼 타오르는 듯, 휘날리는 금발과 금빛으로 빛나는 눈.

붉은색과 금색이 섞인 드레스를 입은 여신.

이자나기 성운의 주신, 태양신 아마테라스가 복도를 걸어오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예, 태양신이시여.”

아마테라스 뒤에 서서 따라오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옆구리에 두 자루의 일본도.

이마를 훤히 드러낸, 머리를 위로 묶어 올린 상투.

마치 도깨비를 형상화한 듯한 검고 화려한 갑옷을 입은 올라간 눈매의 남자.

그는 신의 검객 길드의 길드장이자, 무라키 가(家)의 장남.

차기 가주로 불리기도 하는 무라키 요키라였다.

[일의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

아마테라스가 요키라에게 묻자.

“아직까지 이상은 없습니다. 다만…… 여전히 후보가 없습니다.”

요키라가 고개를 숙이며 말을 흐렸다.

[쯧, 네놈이 내 신관이었으면 일이 더욱 수월했을 것을…….]

아마테라스가 요키라를 향해 차가운 시선을 보내며 말하자.

“죄송합니다.”

요키라가 분하다는 듯한 표정을 숨기며 고개를 숙였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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