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중국, 천교의 영역에 있는 비밀 호텔.
천교의 도움을 받아 은거하는 마인들의 아지트.
그곳에 모인 의회주들과 상급 마인들이 모두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큰일 났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고민 중이던 잭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어 침묵을 깼다.
“흉수악신께서 세계 헌터 회의 도중 붙잡히셨다.”
잭의 말에 다른 의회주들 역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쾅!
“더 구경하면서 당하기만 할 건가?”
의회주 중 하나, 금발에 벽안을 지닌 여성이 흉흉한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그녀는 제시카 로스차일드의 사촌이자 아르테미스의 신관.
제니퍼 로스차일드였다.
“우리가 한꺼번에 덤비는 건 어떤가? 잭.”
분노가 일렁이는 목소리로 제니퍼가 말하자.
“흠…….”
잭을 포함한 몇몇 의회주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 침음을 흘렸다.
그 외 여러 상급 마인들도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 작게 웅성거렸다.
분위기를 본 제니퍼가 속으로 옅은 웃음을 감추었다.
한처용과 마인들을 정면으로 격돌시키면 결과가 어떻든 양측 다 엄청난 피해를 받을 테니까.
자신은 그 사이에서 이득만 취하면 되었다.
마인들이 궤멸하든 한처용이 죽든 뭐든 좋은 상황이었다.
제니퍼가 속으로 비열한 웃음을 삼킬 때.
“의회주 아홉 전원과 백이 넘는 상급 마인.”
-탁. 탁.
잭이 진지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고민하듯 말했다.
“그놈과 맞붙으면 어떻게 될까?”
의견을 구하듯 잭이 입을 열어 말했지만.
“…….”
“…….”
그 말에 마인들이 정확하게 답하지 못하고 침묵을 지킬 때.
“아무리 그놈이라도 ‘우리’ 전부가 덤비는데 못 이길까?”
제니퍼가 잭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승산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잭은 제니퍼의 말에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보라는 듯 읊조렸다.
“놈을 어떻게 유인할 것이며, 우리의 움직임은 어떻게 감출 것인가?”
“지금부터 생각해 봐야지.”
제니퍼의 말에 잭이 눈을 가늘게 좁히며 그녀를 응시했다.
“산에 호랑이가 날뛰고 있다 해서 산을 모조리 태워 먹을 생각인가?”
“호랑이를 잡는 것이 중요한 거 아닌가?”
잭의 말에 제니퍼가 작은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러자.
“……우리의 목적을 잊지 마라. 제니퍼 로스차일드.”
잭의 입에서 많은 의미가 함축된 말이 흘러나왔다.
그 말에 제니퍼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그때.
“우리가 이길 가능성이 있다 해도, 정면 승부는 해서는 아니 되오.”
솔저가 잭과 제니퍼를 번갈아 바라보며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놈은 성좌의 화신체를 제압할 수 있는 이요. 게다가 신들만이 쓸 수 있는 권능을…….”
말을 하다 말고 솔저가 입을 다물었다.
제 눈으로 똑똑히 봐 놓고도 믿어지지가 않았으니까.
그는 성좌의 권능을 흉내 낼 수 있다.
한처용은 조커보다 더한 놈 정도가 아니라 한 차원 위의 존재였다.
그런 불가사의한 무력을 지닌 헌터를 정면승부로 상대한다?
이길 가능성이 있다 해도 가능성일 뿐.
솔저의 머릿속에는 참혹한 미래가 그려지고 있었다.
“그놈과 정면 승부를 한다 카면 우리들 중 대부분이 죽을 거요.”
“그 정도인가?”
“내래 눈으로 봤을 때에는! 확실하오.”
“흠…….”
잭이 솔저의 말에 침음을 흘렸다.
솔저는 멸망한 북한의 특전사 출신이었다.
여러 나라를 떠돌며 용병 생활을 하다가 WHU에 섭외를 받기까지 한 인물.
그는 의회주들 중에서도 상당한 강자에 속한 이였다.
웬만한 신관들보다도 강력한 무력을 가진 마인.
그런 그가 한처용을 직접 마주하더니, 그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그리고…… 놈은 내가 거기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소.”
솔저가 세계 헌터 회의에서 마주한 처용의 눈빛이 떠올랐는지 치를 떨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자네가 작정하고 숨으면 우리조차도 찾을 수 없거늘…….”
잭이 솔저의 말에 놀라움을 표하며 말했다.
“아니, 놈은 분명 내가 있다는 것을 알았소.”
솔저가 확실하다는 듯 다시 말했다.
“내래 혹시 몰라서 리더는 밖에 대기시켰었는데, 큰일 날 뻔했소.”
“허…… 대책이 없군.”
잭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고민에 빠질 때.
-슈우우우!!
회의실 내부에 검은 마기가 뭉쳐 들더니.
-스스.
사람의 형상으로 빚어지기 시작했다.
의회주들처럼 마인들의 본부에 분신을 만들어내는 스킬이었다.
문제는 의회주들만이 쓸 수 있는 스킬로 나타난 이는.
“내가 늦었나 보군.”
바로 교단의 추기경이었다.
“맞다. 늦었지.”
잭이 추기경을 보며 핀잔 섞인 말로 대답하자.
“성자와 빛의 신이 세계 헌터 회의에 집중하는 동안 겨우 틈을 만들었단 말이다!”
추기경이 잭을 노려보며 호통치듯 말했다.
“네놈들이야말로 뭘 한 거냐! 특히 집행자는 도대체 왜! 난데없이 교단 본부를 들쑤신 거냐!”
그간에 쌓였던 일들을 한꺼번에 토해내듯 추기경이 목소리를 높였다.
“하…… 이게 사람 빡치게 만드네.”
-스릉.
집행자가 옆에 세워진 도끼를 잡고는 추기경을 노려보며 말했다.
안 그래도 일이 꼬이는 바람에 하지도 않은 짓을 자신이 한 게 되어 버렸다.
집행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짜증이 날 만한 상황이었다.
“저 새끼는 성자 바로 아래 직위인 주제에 솔저보다도 얻어온 정보가 없는 늙은이다.”
“뭐라!?”
추기경이 집행자의 말에 인상을 세차게 구기며 반문할 때.
“저런 무능한 놈이랑 굳이 협력해야 하나?”
집행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추기경을 노려보며 말했다.
회의장 내부에 위험한 기류가 흐를 때.
“그만! 우리끼리 싸워 봐야 손해일 뿐이다.”
잭이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며 싸움을 중재했다.
그리고.
“그것을 쓰면서까지 우리를 직접 만나러 왔다는 건, 무언가 대책이 있다는 건가?”
추기경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내게 생각이 있다.”
잭의 질문에 추기경이 잔혹한 웃음을 짓고는 말을 이었다.
“한처용은 섣불리 건들 순 없을 거다. 네놈들이라 해도.”
“……반박할 수 없군.”
잭이 흔쾌히 인정했다.
“그렇다면 놈의 주변을 노리면 된다.”
“가족…… 혹은 지인.”
추기경의 말에 잭이 중얼거리고는.
“우리가 생각을 안 해봤을 거 같나?”
날카로운 눈빛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교단의 정보력으로 파악한 정보가 있다. 놈의 가족 중 하나가 성지를 나올 것이다.”
“흠……?”
“그때 그 망할 녀석의 가족을 확보한다. 심지어 각성자도 아니더군. 크크.”
추기경이 잔혹한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천교에서 배신자가 나온 이상, 놈은 천교에만 집중할 것이다. 딱 좋은 상황이지…….”
“자칫 잘못하면 놈을 폭주시킬 수도 있다.”
잭이 신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과거 커맨더를 잘못 자극한 결과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그날 발생한 손해는 당장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막심했었다.
잭은 그 일이 반복되는 것만큼은 원치 않았다.
게다가 한처용과 커맨더는 같은 한국의 S급 헌터.
둘의 사이가 굉장히 가까운 편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처용을 잘못 건들게 되면 커맨더까지 감당해야 할 가능성이 높았다.
추기경은 그런 잭의 생각을 눈치채고 있다는 듯.
“잘하면 한처용 뿐 아니라 커맨더의 목줄까지 잡을 수 있다.”
커맨더에 대한 대책까지 생각하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소말리아에서 네놈들이 썼던 정신살상기, 여유 재고가 있겠지?”
추기경이 말하는 ‘정신살상기’는 이종족들의 정신을 오염시킨 아티팩트였다.
“한처용이 이종족들을 치료한 사실을 모르나?”
잭이 문제를 지적하자.
“당연히 그것에 대한 대비 역시 해 두었다.”
추기경이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흠…….”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본 잭은.
“……자세히 듣고 싶군.”
흥미가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추기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전에 우리를 도울 만한 길드가 더 있다.”
추기경은 그런 잭을 보며 한 가지 좋은 소식을 더 전했다.
“그 망할 이단자 놈을 싫어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더군. 크크.”
“이런 상황에서 도와주는 이들이 많을수록 좋지.”
잭 역시 추기경을 보며 작은 미소를 짓고는 대답했다.
동시에 고개를 숙이며 중절모를 살짝 내리고는.
“…….”
빠르게 상급 마인들이 자리한 장소를 향해 눈을 흘겼다.
찰나의 순간, 잭의 시선을 받은 마인.
“…….”
상급 마인으로 위장해 있는 닥터가 미세하게 고개를 저었다.
닥터의 반응을 확인한 잭이 다시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답답한 상황에 좋은 정보를 주어서 고맙군. 추기경.”
추기경을 향해 감사를 전했다.
***
수련탑의 3층, 타오르는 강줄기.
불길의 강이 끊임없이 흐르는 그 장소는 지금.
-콰콰콰콰!!
강렬한 화마가 사방에서 폭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터져나가는 화마조차도 다 가리지 못하는 거대한 괴수.
태초의 마수 크루마의 분신은 무려 다섯이었다.
거대한 괴수 다섯 마리가 단 하나의 작은 존재와 전투를 벌이고 상황.
[너 정말 인간이냐?]
크루마의 입에서 질린 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 음성이 닿은 장소에는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고 20분째 버티고 있는 처용이 있었다.
[아무리 내 백염의 힘을 받았다지만, 넌 정말 비상식적이야.]
“칭찬 감사합니다.”
어둠의 찬가를 지팡이처럼 짚고 버티던 처용이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잃어버린 능력치가 일부 복구됩니다.]
시험 종료되었다는 시스템의 음성과 함께 레벨이 하나 더 올랐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처용이 어울려 준 크루마를 향해 감사를 전하자.
[……흥.]
가장 앞에 있던 크루마의 분신 하나가 새침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하하.”
그 모습을 보며 작은 웃음을 흘린 처용이 스스로를 점검했다.
[레벨 : 165]
디아블로의 화신체를 잡았을 때의 레벨은 158이었다.
라구엘을 잡았을 때 레벨이 하나 더 올랐고 이후 라파엘과 천사들의 화신체를 잡으며 추가로 올랐다.
그리고 지금 막 오른 레벨까지.
‘멀게만 느껴졌는데…… 머지않았군.’
그간 꾸준히 노력한 결과 200레벨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다.
처용이 스스로의 점검을 끝냈을 때.
[하나만 물어보자.]
크루마가 그런 처용을 보며 입을 열었다.
“말씀하시지요.”
처용이 대답하자.
[왜…… 그런 거야?]
크루마가 많은 의미가 함축된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신격들을 상대로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거야?]
그 역시 여래의 도움으로 처용이 세계 헌터 회의에서 지지른 짓들을 지켜봤었다.
인간이 저지르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행동.
어떻게 아무 망설임도 없이 인간이 신격을 공격할 수 있는지, 그저 의문이 들었을 뿐이었다.
“신격이라는 이유만으로 제가 굽신거릴 필요는 없죠.”
처용은 뭐가 문제냐는 듯 편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이라고 거창할 건 없습니다. 그저 우주를 구성하는 이들 중 인간보다 강한 생명체일 뿐.”
[맞아, 틀린 말은 아니야.]
크루마가 처용의 말에 긍정했다.
“그리고 저보다 먼저 전례를 만든 분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네.]
처용의 말에 누군가가 떠오른 크루마가 긍정하듯 대답했다.
그의 스승이자 같은 인간 출신의 신격.
심지어 처용이 성좌를 폭행한 이번 일은 여래가 신계에 일으킨 피바람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잊고 있었네, 네가 여래의 제자였다는 걸.]
“스승님도 하셨는데 저라고 못 할 건 없죠.”
크루마는 그 모습에 내심 들었던 작은 걱정이 사라졌다.
한 번 신계를 뒤집어 엎어버렸던 여래가 존재하는 한, 신격들이 직접 처용을 노리지는 못할 테니까.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당신이 스스로에게 당당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처용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선천적 신격들이 이 우주를 편하게 지배할 수 있는 이유.
그들의 선배 격인 태초의 마수들과 태초신이 우주의 기초를 잘 잡아 놨기 때문이었다.
처용이 볼 때, 태초의 마수들이 선천적 신격들보다 우주를 위해 더 많은 기여를 한 이들이었다.
그런 태초의 마수들이 단순 태초신에게 버려졌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것은 불합리했다.
“애초에 태초신이 완벽한 존재가 아니니, 선천적 신격들이 그따위인 거겠지만…….”
처용이 그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자 태초신을 비난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이 우주의 구성과 원리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카투라에게 들었던 말에 의하면 태초신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저 우주에서 가장 첫 번째로 탄생한 존재였을 뿐이었다.
카투라는 태초신과 함께 겪었던 온갖 시행착오를 떠올리며 그를 이해한 듯 보였지만.
‘마음에 안 들어.’
처용은 오랜 시간 자신을 도운 태초의 마수들을 버린 태초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크루마는 그런 처용을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전에 누님이 네 싸움을 도와준 적이 있었지?]
“덕분에 큰 위기를 모면했었습니다. 그것 외에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구요.”
처용의 말 속에는 카루라를 향한 고마움이 가득했다.
포세이돈과의 싸움 뿐만 아니라, 그녀가 건네준 공청석유와 허물 등 물질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까.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와주겠다.]
크루마의 말에 처용이 미소를 지었다.
처용은 크루마의 힘을 계승 받았을 때, 카투라 때와 같은 시스템 창을 확인했었다.
[소환 : 크루마]
[크루마의 분신을 소환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대량의 화염이 존재하지 않거나 제한된 공간에서는 소환할 수 없습니다.]
-168시간에 한 번 사용 가능.
카투라의 분신을 소환할 수 있는 것처럼 크루마의 분신을 소환할 수 있는 스킬.
하지만, 처용은 크루마의 허락이 있기 전까지 이 스킬을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나름 크루마를 배려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크루마가 본인 스스로 처용을 돕겠다 선언했다.
“감사합니다.”
처용이 크루마를 향해 감사를 전하고는 수련탑 3층을 빠져나왔다.
또 하나의 강력한 카드가 손에 들어왔다.
만약, 또다시 디아블로가 차원의 틈을 찢고 나타난다면?
이제는 더 수월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