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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185화 (185/726)

#185화

다른 드워프들에 비해 거친 흉터와 굳은살이 유독 많은 손.

많은 경험을 축적한 듯 연륜이 느껴지는 차분한 분위기의 드워프.

그러나 눈빛만큼은 탐구심이 강한 장인 특유의 열정이 일렁이는 모습이었다.

[루-돌프]

[등급 : S급, 그랜드 스미스 드워프]

[특징 : 대지와 광물의 이치를 깨닫고 경지를 돌파한 드워프.]

[신의 경지에 닿은 손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확인 불가.]

[스킬 : 결을 보는 눈, 확인 불가…….]

드워프 일족의 장로 중 하나이자 ‘최고 장인’이라 불리는 이.

그랜드 스미스 루돌프, 혹은 마스터 루돌프라 불리던 드워프.

루돌프는 회귀 전, 처용에게 대장장이 기술을 알려준 장인 중 하나였다.

처용이 내민 손을 맞잡은 루돌프는.

“제가 장로인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궁금증을 담아 물었다.

“제가 눈치가 좀 빠릅니다.”

처용은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말씀 편하게 하시죠. 그랜드 스미스.”

드워프들 사이에서 최고 장인을 일컫는 말이 처용에게서 나오자.

“……허허, 놀랍구만.”

루돌프가 놀람을 표하며 말했다.

“손을 맞잡으니 확실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손을 맞잡으면 다 알 수 있어.

처용이 회귀 전 루돌프가 했었던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손은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과 경험의 흔적이 진하게 묻어있는 신체부위였다.

장인 드워프들은 상대와 손을 맞잡는 것으로 상대의 세월과 경험을 느낄 수 있었다.

상대의 선악을 파악하는 하이 엘프들의 감각과 비슷했다.

“놀랍군…… 정말 놀라워.”

루돌프가 처용의 손에서 전해졌던 ‘강렬한’ 느낌을 상기하며 놀람을 표했다.

뭐라 표현할 수 없지만, 오랜 세월 스스로의 기술을 연마한 ‘장인’의 느낌을 받았으니까.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마스터. 엄청난 친구라고.”

혁수가 놀라워하는 루돌프를 보며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루돌프가 아직도 감탄 섞인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 때.

“그랜드 스미스께서 이곳에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처용이 루돌프를 향해 말했다.

“……내가 직접 와야만 했네.”

루돌프가 이곳에 방문한 목적을 떠올리고는 상념에서 벗어나며 말했다.

태초의 생명체의 허물.

일족의 최고 장인들조차 애먹게 만들었던 재료.

그 최고 장인들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나다 평가받는 루돌프조차 놀라움을 금치 못하던 재료였다.

혁수는 이 재료를 가져다준 이가 커맨더 못지않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심지어 그는 저주를 받아 깨어나지 못하던 제자와 일족을 구해준 사람이었다.

그런 인간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태룡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랜드 스미스.”

“드래곤을 모시는 성지였던 건가?”

루돌프는 성지의 이름을 듣고 질문했다.

“이름일 뿐입니다. 뭐, 용이 한 분 계시긴 하지만…….”

성역에 머무르는 청룡을 떠올린 처용이 말을 흐렸다.

드워프는 신수인 드래곤을 신성하게 여기는 종족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청룡이 이곳에 머무른다는 사실은 이점이 될 수 있었다.

“그보다도 그것의 가공 방법을 알아내신 겁니까?”

처용은 루돌프에게 본론을 물었다.

그러자.

“이곳의 시설이 나쁘지 않아서 바로 보여줄 수 있겠어.”

루돌프가 마침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보물전 내부의 화로로 다가갔다.

화로 근처에는 카투라의 허물 조각과 검은 가루가 담긴 상자 등이 배치되어 있었다.

“뭐, 다른 잡설은 치우고 우리는 이것의 ‘활용’ 방법을 찾았다네.”

루돌프는 그간 카투라의 허물을 가공하기 위해 했었던 일들을 장황하게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에게 있어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했으니까.

“일단, 이것을 통짜로 가공하는 것은 불가능해.”

루돌프는 우선 카투라의 허물이 왜 통짜로 가공이 불가능한지부터 설명했다.

“탄성의 힘이 엄청나,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말이지.”

처용에게 설명함과 동시에 루돌프가 망치와 정을 집어 들고는.

-탁!

카투라의 허물을 향해 정을 꼽고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망치를 내리쳤다.

그러자.

-쩌적.

놀랍게도 카투라의 허물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처용은 루돌프가 무엇을 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있는 힘을 다해 내리쳐도 흠집도 나지 않던 카투라의 허물을 갈라지게 만든 기술.

루돌프는 사물의 ‘결’을 느끼는, 고유한 장인만의 감각이 있었다.

카투라의 허물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결을 정확한 각도와 힘으로 내리친 것이었다.

그때.

-스스스.

루돌프가 카투라의 허물에 만들어낸 균열이 점점 회복되더니 이내 수복되었다.

“완전히 잘라 버리면 원래대로 돌아가진 않지만, 워낙 단단해서 나조차도 힘들더군.”

작은 한숨을 내쉰 루돌프가 망치와 정을 내려놓고는 옆에 있는 검은 가루를 가리켰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이거라네.”

“허물을 갈아낸 것이로군요.”

처용은 검은 가루가 무엇인지 단번에 파악했다.

동시에.

‘그러고 보니 광선 검으로 허물을 갈았을 때도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았었지.’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선물한 광선 검으로 카투라의 허물을 잘랐을 때를 떠올렸다.

“맞네. 블랙 미스리움으로 제작한 도구를 썼지.”

“혹시…… 샌딩(Sanding)?”

처용이 갈아낸 카투라의 허물을 보며 떠오른 생각을 말했다.

“……허허, 이걸 보고 단번에 알아차릴 줄이야.”

루돌프가 처용이 말이 맞다는 듯 놀라움을 표하며 말했다.

샌딩, 혹은 사가(沙加) 단조법.

만들어진 무구나 원형에 강도가 높은 광물의 가루를 입혀 코팅하는 기술이었다.

“자네가 주로 쓰는 무기가 있나?”

루돌프가 처용을 향해 묻자.

“……이게 가장 적당하겠네요.”

처용이 아공간에서 화염의 절을 꺼내 루돌프에게 넘겼다.

-스릉.

루돌프가 화염의 절을 뽑아 살펴보았다.

그리고.

“자네가 만든 것으로군.”

화염의 절을 누가 만든 것인지 단번에 알아보고 혁수를 향해 말했다.

“이 친구를 위해서 공 좀 들였던 녀석이지요. 하하.”

혁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재료를 이것저것 섞은 것 치고는 나쁘지 않아. 괜찮은 녀석이 나오겠어.”

루돌프가 화염의 절을 자세히 살피며 중얼거리고는 처용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 녀석을 나한테 맡겨 주지 않겠나?”

“오히려 제가 부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처용은 루돌프에게 흔쾌히 화염의 절을 넘겨주었다.

화염의 절은 자주 애용하는 무기답게 손에 익숙해진 아티팩트였다.

그러나 최근 디아블로와 다른 성좌들의 화신체를 상대하며 조금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최상위 레전더리 무구인 ‘차륜 도끼’에 비하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런 화염의 절을 보다 강력하게 강화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처용이 그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루 이틀 정도 걸릴 거네.”

루돌프가 대충 걸리는 시간을 이야기했다.

본래 장인이 제작하는 무구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지금은 완성된 무기를 강화하는 것에 가까웠기에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벌써 기대가 됩니다. 그랜드 스미스.”

진심이라는 듯 처용이 말하자.

“하하하! 기대해도 좋아.”

루돌프가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제자와 일족을 구해준 은인의 무구였다.

루돌프는 드워프 최고 장인의 자존심을 걸고 최강의 작품을 만들 생각이었다.

***

사방이 하얗게 빛나며 여러 색의 별들이 빛나는 공간.

하얀 우주와 같은 이 공간의 한 가운데 여러 빛깔로 빛나는 한 존재가 자리해 있었다.

빛의 신 야훼.

이 하얀 우주와 같은 공간은 그의 성역.

아니, 원래는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의 성역이 된 공간이었다.

야훼는 그런 공간의 중앙에서 무언가를 생각하듯 침묵하고 있었다.

우주에 순백색의 침묵만이 계속 흐를 때.

-우우웅!

순백색의 공간 일부가 일렁이며 검은빛이 나타났다.

하얀 우주에 갑자기 나타난 검은 존재.

그는 관철의 대신 미륵이었다.

“감히, 이 장소에 함부로 발을 들이다니.”

야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기분 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륵은 그런 야훼를 보며 작은 한숨을 내쉬고는.

“이 장소에는 ‘대리자’만 발을 들일 수 있는 게 아니거늘…….”

날카로운 눈빛으로 야훼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못 본 새에 멍청해지기라도 한 건가? 형제.”

미륵이 야훼를 향해 ‘형제’라 칭하자.

“누가 네놈의 형제냐!”

야훼의 표정이 세차게 일그러지며 고함이 튀어나왔다.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한 것이!”

“크크, 하하하!”

미륵은 야훼의 반응을 보며 웃음을 내뱉고는.

“그까짓 태초신이 지명해준 이름 따위! 필요 없다.”

비웃음을 섞어 말했다.

“뭐라?”

야훼가 미륵의 말에 작은 놀라움과 경악을 내뱉었다.

관리자라 불리는 이름 없는 신격, 태초신의 보좌관.

태초신을 따라 여러 명령을 수행하던 태초신의 그림자.

그런 태초신과 가장 가까웠던 이가 태초신을 비난하는 듯한 말을 내뱉었다.

“관리자…… 미쳤구나.”

“현실을 깨달았을 뿐이네. 오만하고 어리석은 형제여.”

미륵이 질린 표정을 짓는 야훼를 향해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 네놈은 미쳤다! 그리고 원래 네놈도 태초신과 함께 소멸했어야 했다!”

야훼는 그런 미륵을 보며 인상을 세차게 구기며 고함을 질렀다.

“왜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이냐! 네놈의 역할은 모두 끝났을 터!”

미륵은 태초신의 보좌관.

본래 그는 태초신이 소멸하면서 같이 소멸했어야 할 운명이었다.

태초신이 활발하게 활동할 시기에 같이 활동하던 극소수의 대신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야훼 역시 미륵이 소멸한 줄 알았다.

그러나 미륵은 소멸하지 않았고 추후 여래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어 놀라움을 선사했다.

“오만한 네놈은 절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미륵이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으며 야훼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하계에서 기어 올라간 놈들이 사술을 부린 것인가?”

야훼가 미륵과 함께 있는, ‘인간’ 출신의 두 신격을 떠올리며 말했다.

태초신의 보좌관이었던 미륵이 사술에 당할 리가 없었음에도 내뱉은 말이었다.

“하아…….”

미륵은 그런 야훼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한 세월이 흘렀음에도 네놈은 변하질 않는군.”

과거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오만함을 유지해 온 빛의 신.

“가끔 네놈을 포함한 다른 형제들을 보면, 학습이라는 개념이 대가리에 박혀 있는지 궁금할 정도다.”

그런 변하지 않는, 아니 변할 생각이 없는 형제를 향해 미륵이 탄식을 흘렸다.

“학습 자체가 내게 가치가 없다!!”

야훼는 그런 미륵을 향해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감히! 나는 완벽하게 창조된 존재이니라!!”

“태초신조차 완벽하지 못한 존재였다. 어리석은 녀석아.”

미륵은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 자신의 형제를 향해 혀를 차며 말했다.

이전까지는 야훼의 저런 모습을 보며 태초신에게 생각이 있었겠거니 했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우주와 자신을 창조한 태초신이었으니까.

그러나.

-애초에! 선천적 신격들의 대가리가 깡통인 이유가 태초신 때문이지 않습니까!

미래를 위해 선택한 인간인 계승자가 그런 절대적인 존재를 거칠게 비판했다.

태초신의 보좌관이었던 미륵은 처용의 현실적인 비판 덕분에 새로운 시야를 가질 수 있었다.

‘나보다도 더 정확하게 관철해 냈구나.’

미륵이 처용을 떠올리며 작은 미소를 지을 때.

“태초신의 대리자로서 네놈에게 기회를 주마. 관리자.”

야훼가 미륵을 내려다보며 명령하듯 낮게 말했다.

“네놈 손으로 우주를 어지럽히는 이단자들의 목을 내게 바쳐라! 그럼 내 친히 자비를 내려주마!”

“…….”

“놈들에게 분에 넘치는 성지를 내게 바치고 나를 받들어 모셔라!”

야훼는 더는 처용과 여래를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세계 헌터 회의에서는 자칫 잘못하면 모두의 적이 될 수 있었기에, 딱히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완벽한 신격인 자신의 판단으로 처용은 법칙에 거스르는 이단이자 악이 맞았다.

인간이 신에게 거스르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

태초신의 대리자로서 이 일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태초신의 대리자로서 명한다! 당장 내 명령에-!”

“크크, 하하하하!!”

미륵이 야훼의 오만한 명령에 폭소를 터트리며 그이 말을 잘라 버렸다.

“오만한 정도가 아니라, 이 정도로 병신(病神)이었을 줄이야.”

처용이 항상 선천적 신격들을 향해 하던 욕을 미륵이 입에 담았다.

동시에 그의 붉은 눈동자가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네놈은 좀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미륵이 야훼를 향해 싸늘한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콰쾅!!

그의 손아귀에서 새까맣고 긴 무구가 나타났다.

검은 철제 곤봉처럼 길고 투박한 형태.

곤봉의 끝에는 마치 철퇴처럼 두꺼운 쇠붙이와 고리가 달려 있었다.

마법사들의 지팡이처럼 보이기도 하고 수도승(修道僧)들이 사용하는 석장(錫杖)처럼 보이기도 하는 무구.

미륵이 꺼낸 신물은 관리자만이 다룰 수 있는 신물, ‘관철의 조정자’였다.

“감히! 태초신의 대리자인 나에게 반기를 드는 것이냐!”

적대감을 마구 분출하는 미륵을 본 야훼가 호통을 내질렀다.

“관리자로서 네놈을 ‘조정’할 필요를 느꼈느니라.”

미륵이 그런 야훼를 바라보며 싸늘한 말을 내뱉었다.

“네놈 역시 내게 태초신을 대리할 자격이 있는지를 증명해야 할 것이다.”

-콰아아!!

야훼를 향해 관철의 조정자를 겨눈 미륵이 잿빛 신력을 분출하며 말했다.

애초에 미륵이 이 장소에 방문한 궁극적인 이유.

바로 야훼가 쓸데없는 짓을 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였다.

야훼는 이래 봬도 태초신의 ‘대리자’.

처용은 태초신의 대리자인 야훼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생각했지만.

그것은 처용이 잘 모르기에 하는 말이었다.

지금 미륵이 찾아온 새하얀 우주와 같은 공간.

태초신의 대리자인 야훼는 우주의 법칙이 적용되는 이 공간의 기능을 일부 사용할 수 있었다.

함부로 막 사용할 순 없지만, 그 권능으로 계승자를 방해할 가능성이 있었다.

미륵은 야훼가 그 기능으로 멍청한 짓거리를 저지르기 전에 미리 막을 생각이었다.

‘관리자’의 권한으로 ‘대리자’의 권한을 막을 수 있었으니까.

“네놈의 오만한 버릇을 고쳐주마. 애송아.”

“나에게 반기를 든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미륵에 맞서 야훼 역시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격노를 표했다.

이윽고.

-!!

잿빛의 대신과 백색의 대신이 서로 충돌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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