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역사에 기록될 만한 파란만장한 일들이 지나가고 3일차 세계 헌터 회의가 열렸다.
“이랑…… 아니, ‘대악마’ 흉수악신은 ‘광휘의 나락’에 수감되었습니다.”
메타트론의 신관 라리네가 신계에서 급하게 열린 별들의 의회 결과 중 하나를 이야기했다.
우선, 대악마 흉수악신으로 밝혀진 이랑진군.
그는 에덴의 신역 가장 깊은 곳에서 관리하는 ‘광휘의 나락’이라는 감옥에 처박혔다.
광휘의 나락은 어둠을 태워버리는 번개와 빛이 끊임없이 내리치며 폭발하는 장소였다.
대악마를 가두는 데 아주 제격인 곳이기에 선택된 것도 있었지만.
에덴이 성녀에게 잘못된 치료를 행한 것에 대한 책임으로 이번 일을 맡기로 한 것이었다.
참고로 마인들과 거래한 라구엘 역시 대천사 자리에서 좌천당해 징계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에덴은 단순히 대악마를 수감시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엘 님께서 ‘정화’의 힘으로 정보를 얻으려 노력하고 계십니다.”
다섯 하늘이라 불리는 대천사 중 하나, 정화의 대천사 우리엘이 흉수악신을 심문하고 있었다.
물론 단순 심문이 아닌, 정화의 힘을 주기적으로 주입하여 고문하는 것에 가까웠지만…….
타락하여 대악마로 전락한 신에게 동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지금 무거운 침묵을 고수하는 옥황상제 역시 에덴의 심문에 동의했으니까.
[악마 주제에 쓸데없이 입이 무겁더군요.]
우리엘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랑진군, 아니 흉수악신은 끊임없이 고통을 받으면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리엘은 그런 대악마를 향해 고통의 강도를 점점 높여갔지만, 소용이 없었다.
더 무리하게 자극했다간 그가 소멸할 수도 있었기에 나름 자제하고 있었다.
그때.
“목숨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극한의 고통을 가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뭐냐?]
우리엘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묻자.
“전에…… 인간이 오리할콘을 먹으면 죽는다고 말했었죠?”
처용이 우리엘을 향해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오리할콘을 대악마가 섭취하면 어떻게 될까요?”
[……!]
우리엘이 처용의 말대로 한 번 상상해 본 뒤.
[악독한 놈.]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떠올리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닌데요?”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오리할콘을 정제하고 액화시킨 농축액을 놈에게 주입해 보십시오.”
빛의 힘이 한가득 응축된 오리할콘.
그 광석을 정제하여 성수처럼 뽑아낸 오리할콘 농축액.
그 농축액을 대악마의 몸에 주입한다면?
마치 사약(死藥)을 들이킨 죄인처럼 몸의 내부가 파괴되며 극한의 고통을 느끼게 된다.
고통은 육체 내부에 주입된 오리할콘 농축액이 점점 희석되며 힘을 잃기 전까지 지속된다.
이 방법을 처용이 아는 이유는 대악마들에게서 배웠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로잡은 천사에게 판테라움 농축액을 주입하여 고문했으니까.
“놈이 아주 좋아할 겁니다.”
처용이 잔혹한 미소를 보이며 확신하듯 말함과 동시에 옥황상제를 순간 관찰했다.
[…….]
그는 처용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여전히 입을 닫고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소중한 부하가 고문 받는 게 마음에 안 드나? 크크.’
처용은 옥황상제의 눈빛 속에 억눌린 분노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는 지금 이랑진군을 고문하는 방법을 논하는 처용에게 분노를 불태우고 있었다.
물론, 처용은 일부러 그를 자극하기 위해 우리엘에게 이 방법을 말해준 것이었다.
‘언제까지 참나 한번 보자.’
처용은 속으로 옥황상제를 비웃고는 다시 우리엘과 마주했다.
“그 대악마는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할 겁니다.”
[…….]
우리엘은 고문 방법을 이야기하는 처용을 보며 멍한 표정으로 침묵했다.
그리고.
[……네놈이 정녕 인간인지 궁금하다.]
질린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악마들을 상대로 손속을 봐줬다간 호되게 당할 겁니다.”
처용은 그런 우리엘을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일을 절대로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놈들이 어떤 존재인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를!”
[…….]
[…….]
처용의 말에 반박하는 성좌는 아무도 없었다.
어제 일로 모든 성좌들이 큰 경각심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때.
[어찌 그리 악마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이냐?]
위엄 서린 여신의 목소리가 처용에게 울렸다.
처용이 목소리가 들린 성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치 태양처럼 타오르는 듯, 휘날리는 금발과 금빛으로 빛나는 눈.
붉은색과 금색이 섞인 드레스를 입은 여신.
그녀는 이자나기 성운의 주신이자 라와 같은 태양을 상징하는 성좌.
태양신 아마테라스였다.
[우리조차도 모르는 것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구나.]
아마테라스가 눈을 가늘게 좁히며 처용을 향해 물었다.
처용은 그런 아마테라스를 응시하며 잠시 침묵하더니.
“사냥꾼은 사냥감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표정 없는 진지한 목소리로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인간들의 말이 있지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을 지닌 말.
유명한 병법서에 기록된 말이었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생각하고 조사하고 대비했을 뿐입니다.”
[…….]
아마테라스는 처용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처용을 유심히 바라볼 뿐이었다.
처용 역시 표정을 감추고 아마테라스를 유심히 바라봤다.
동시에.
-세계 헌터 회의에서 시노비들, 이자나기 성운은 언급하지 말아 주십시오.
세계 헌터 회의가 있기 전, 성지에 머물렀던 무라키 야스라의 말을 떠올렸다.
-지금 그들을 자극하면 내 형님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야스라는 자신의 형이 아마테라스를 설득해 무언가 위험한 짓을 꾸미고 있다 말했다.
문제는 그 증거를 잡지 못한 상황.
-스사노오의 신관인 당신이 제대로 나선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텐데?
처용은 야스라를 향해 의문을 담아 물었다.
이자나기 성운에서의 영향력이라면 아마테라스 못지않은 성좌인 폭풍신 스사노오.
야스라는 그런 강력한 성좌의 신관이었다.
게다가 폭풍신 스사노오는 신관을 잃고 나서도 처용과 같이 저항군에 합류해 싸웠던 성좌였다.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정의로운 성품을 가진 이였다.
그런 스사노오가 아마테라스가 수상한 짓을 하는 것을 그냥 지켜본다?
조금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러나.
-미안합니다. 우리 가문이…… 사정이 좀 복잡해서…….
야스라가 복잡한 표정을 짓고는 ‘무라키 가문’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일본 내에 있는 명문 가문으로 로스차일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오랜 역사에서부터 일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온 명문가가 무라키 가(家)였다.
그리고 야스라는 알고 있는 정보 중 가장 중요한 것을 처용에게 말했다.
-나도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데미갓 프로젝트’와 연관이 있다는 것만 겨우 알아냈소.
야스라의 말에 처용이 ‘데미갓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물었지만.
그는 명칭만 알아냈을 뿐, 정확히 이게 무엇인지 모른다고 했다.
중요한 것이라는 느낌이 있어 이를 반드시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처용은 야스라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는 그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세계 헌터 회의의 목표물이 아닌, 다른 곳을 들쑤셔 일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이번 일로 이미 많은 이득을 취한 상황이었다.
천교의 손발 역할을 했던 사냥개는 에덴의 우리에 갇혔다.
여래와 보살이 과거에 당했던 부조리로 인한 불명예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처용이 성좌의 화신체를 진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공개된 이상.
신들은 섣불리 처용을 건들 수 없을 것이었다.
먼저 처용을 자극한다고 좋을 게 전혀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번에 흉수악신의 흉계를 미리 파악하고 모두를 위기에서 구한 만큼.
성좌들 사이에서도 나름 긍정적인 여론이 돌고 있었다.
이 정도만 해도 이번 계획은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야스라가 말한 데미갓 프로젝트나 이자나기 성운 문제는 차차 알아보고 조치하면 되었다.
여차하면…… 조금 과격한 방법을 쓸 생각이었다.
처용이 차후 계획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회의는 빠르게 흘러갔다.
대부분의 주제는 이번 일에 대한 후속 조치와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였다.
“천교 역시 이번 일에 큰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해서…….”
타친핑이 참담한 표정을 한껏 드러내며 말했다.
마치, 어제의 일로 큰 책임감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확실한데…….’
처용은 표정을 감추고 천교 측을 유심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천교에 자리한 놈들 중 ‘마인’이 숨어있을 가능성이 컸다.
아니, ‘확실’하게 놈들 중 마인이 숨어있었다.
그러나.
‘증거가 없다…….’
놈들을 들쑤실만한 명분이 없었다.
게다가.
‘그리고 누가 숨어있는지 대충 짐작이 가네.’
처용조차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마기를 숨기고 있는 마인.
지금 시기에 이 정도 은폐를 자랑하는 의회주는 극소수였다.
확실하진 않지만, 지금껏 모습을 숨긴 것으로 봐서 가능성은 높았다.
처용은 놈을 찾는 것은 포기하고 오히려 이 상황을 이용하기로 했다.
아마 마인들에게 회의장에서 일어난 모든 상황이 빠르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놈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머리를 부여잡고 있을 게 분명했다.
어떻게든 이런 답답한 상황을 풀어보려 애쓸 것이다.
‘추기경…… 천교…… 누가 먼저 움직일까?’
처용이 속으로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그때.
“한처용 헌터.”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처용이 생각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처용을 부른 이는 저스티스 길드장 라리네였다.
“혹시나 해서 묻는 것입니다만, 당신은 섀도우 헌터와…… 조커와 무언가 연관이 있습니까?”
“…….”
라리네의 말에 처용이 잠시 침묵했다.
처용에게 이런 질문이 던져진 이유는 좀 전까지 섀도우 헌터에 관한 주제로 말이 오갔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최근 모습을 감춘 조커가 언급되었고 그의 능력에 대한 주제로 말이 오갔다.
조커의 능력, 그 역시 모든 속성을 다룰 수 있다는 말에 처용이 연상된 것이었다.
처용이 모든 속성의 마나를 모아 라파엘을 향해 폭격을 퍼붓는 모습을 보였으니까.
심지어 처용은 다른 성좌의 권능을 흉내 낼 수도 있었다.
그것이 ‘역천’이라는 성좌들이 기피하는 권능의 묘리라는 것은 밝혀졌다지만.
성좌의 권능도 엇비슷하게 흉내가 가능하다면…….
헌터의 스킬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라리네의 입에서 질문이 나온 것이었다.
“무엇 때문에, 그 말이 나왔는지는 알겠는데…….”
처용은 표정을 숨기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섀도우 헌터와도 조커와도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라리네가 확답을 받았다는 듯 대답했다.
처용의 말에서 ‘진심’이라는 느낌을 전달받았으니까.
물론, 처용이 일부러 라리네에게 드러낸 감정이었다.
처용은 속으로 라리네를 향해 고마운 미소를 흘렸다.
‘머리가 아플 거다. 크크.’
동시에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의회주를 향해 실소를 흘렸다.
마인들이 자신과 조커를 어떻게 연관 짓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의 머리가 복잡해질수록 더 많은, 쓸데없는 대책들을 준비할 것이다.
마인들이 시간을 허비하고 뻘짓을 할수록 좋은 것은 처용이었다.
거대한 사건들이 지나간 탓에 그 후속 조치를 논하는 것으로 3일차 회의가 끝났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제가 없을 겁니다.”
목표를 완수한 처용은 성지로 돌아가기로 했다.
더 여기 있어 봐야 지루한 말들만 오가는 것을 구경할 뿐이니까.
그럴 바엔 수련탑에서 태초의 마수들과 대련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나머지는 우리한테 맡겨.”
커맨더가 처용에게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처용 덕분에 이종족의 일부터 시작해서 대부분 속시원하게 해결이 되었으니까.
비록 그 과정에서 괴팍하고 폭력적인 부분이 있었다 해도.
처용이 최선,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사실이었다.
그가 협조적이지 않던 성좌들의 문제까지 해결해 줬으니까.
이제 남은 회의를 유리하게 이끄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즉시 오겠습니다.”
커맨더에게 마지막 말을 전한 처용은 게이트를 열고 성지로 돌아갔다.
그때.
[제자야.]
여래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무슨 일입니까?’
처용이 여래의 물음에 답하자.
[스사노오가 우리와 조용히 대화하기를 원하더구나.]
여래가 조금 전 찾아왔던 스사노오를 생각하며 말했다.
‘혹시…….’
처용은 아마테라스 옆에서 침묵을 지키던 스사노오를 생각하며 말을 흐렸다.
동시에 야스라가 말했었던 ‘데미갓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혹시 그거에 관한 주제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을 해본 처용은.
‘수락한다고 전해 주십시오. 스승님.’
스사노오의 요청을 승낙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