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옵저버를 통해 리카가 겪었던 일이 드러나자.
“이런 쓰레기 같은…….”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최악이군.”
1층에 자리한 헌터들이 왕저우를 쓰레기 보듯 노려보며 혀를 찼다.
온갖 억울한 감정을 드러냈었던 왕저우를 향해 수많은 질타의 시선이 쏟아지자.
“아니야! 저건 내가 아니야! 저건 조작된 영상이다!”
왕저우가 발악하듯 외쳤다.
그 모습을 본 커맨더는
“조작이라고?”
왕저우를 향해 흉흉한 선을 보내며 싸늘하게 말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신의 권능이다. 그걸 조작이라고?”
커맨더의 말에 처용도 왕저우를 살기가 일렁이는 눈빛으로 노려봤다.
그리고.
[이 아이의 기억과 감정, 감각을 느껴 보니 확실하네.]
리카의 기억을 읽은 세계수가 왕저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이 아이를 공격한 자는 저기 검은 가면을 쓴 녀석이다.]
세계수가 손을 들어 왕저우를 정확히 가리키며 확신하듯 말하자 주변이 크게 술렁였다.
그때.
[헛소리하지 마라! 미개한 신격이여! 내 신관은 범인이 아니다!]
이랑진군이 세계수를 향해 일갈하며 소리쳤다.
[어디서 네년의 같잖은 권능으로 나를! 내 신관을 능멸하려는-!]
세계수를 거침없이 비난하며 이랑진군이 목소리를 높일 때.
“어디서 개새끼가 짖나.”
처용이 귀를 후비며 낮은 목소리로 이랑진군의 말을 잘라버렸다.
[혈선의 신관……!]
이랑진군이 처용을 노려보며 분노를 표하자.
“네놈과 네 신관을 능멸했다고?”
처용은 피식 웃으며 할 말을 계속했다.
“넌 우리 성지의 귀한 손님을 능멸했어.”
세계수의 앞으로 나서서 이랑진군을 마주한 처용이 싸늘하게 읊조렸다.
[이……!]
“왕저우가 엘프를 공격한 건 ‘사실’로 드러났고. 그럼 이제…….”
처용은 분노하는 이랑진군을 무시한 채, 입가에 미소를 걸며 가장 중요한 말을 꺼냈다.
“이랑진군이 어떻게 거짓으로 신격을 맹세했는지만 밝히면 끝나는군.”
회의장 내부에 처용의 말이 울리자.
[정녕…… 사실인가?]
[어떻게 거짓으로 신격의 맹세가 가능한 거지?]
[모른다. 상상조차 한 적도 없으니.]
2층에 자리한 신격들조차 이랑진군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흘겨보며 말했다.
이랑진군이 신격을 걸고 절대로 범인이 아니라 호언장담한 왕저우는 엘프를 공격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것도 마인들과 직접 거래하는 모습까지 보인 상황.
그렇다면 이랑진군이 신격을 걸고 맹세한 부분은 어떻게 된 것이란 말인가?
성좌들의 머릿속에 의문이 차오른 것은 당연했다.
[어떻게 거짓된 신격의 맹세를 증명한단 말인가? 혈선의 신관!]
[어서 말하라!]
[이것은 중요한 문제다!]
처용을 향해 성좌들이 대답을 독촉했다.
그 모습을 쭉 지켜본 처용은.
“자꾸 혈선의 신관, 혈선의 신관 이러는데…….”
성좌들을 향해 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 스승님은 혈선도, 역천의 신도 아니야.”
처용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신법의 대신’이다.”
회의장 내부에 처용의 말이 울리자.
[그렇군, 역천을 봉인한 대가로…… 잠깐!?]
[설마…… 혈선이 신법재판소를?]
거대 성운에 소속된 몇몇 대신들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특히, 오래전 여래가 일으킨 피바람을 경험한 신들은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경악한 이들 중 하나.
[네놈이 신법재판소를 사용할 수 있다고!?]
옥황상제가 분노가 일렁이는 목소리로 여래를 향해 말했다.
본래, 신법재판소는 천교의 주신만이 가지는 권한이었으니까.
그런 천교만의 권리이자 권력이었던 상징을 여래에게 빼앗긴 것도 모자라.
그것을 강탈한 이가 신법재판소의 권한까지 이용한다는 것이 참기 힘들었다.
동시에.
‘설마?’
무언가를 깨닫고는 여래의 옆에 자리한 성좌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검은 용포를 망토처럼 두르고 안대를 낀 성좌.
관철의 대신, 아니 태초신의 보좌관이었던 관리자를 노려봤다.
그 시선을 느낀 미륵이 옥황상제를 향해 피식 웃음을 지었다.
[……!]
그 모습을 본 옥황상제의 표정에 평온함이 사라지고 점점 격한 감정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옥황상제가 분노가 일렁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신법재판소는 본래 우리 천교의 것이었다! 그것을 함부로 쓰려 하느냐!]
옥황상제의 옆에 있던 태상노군이 큰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
여래는 태상노군의 고함이 울려도 그를 노려보기만 할 뿐 침묵을 고수했다.
그때.
“본래 천교의 것? 큭, 크크크…… 어이가 없네?”
처용이 천교의 성좌들을 응시하며 비웃음을 흘렸다.
[감히-!]
태상노군이 인상을 세차게 구기자.
“감히는 무슨 감히야!”
처용 역시 분노를 드러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게다가 처용의 목소리에는 어제보다도 더 격한 분노가 일렁이고 있었다.
“태초신에게 받은 권한으로 자비의 대신님에게 비열한 짓거리를 저지른 걸 내가 모를 줄 알았나!!”
처용의 목소리가 울리자.
[……!]
[……그걸!]
몇몇 대신들이 치부를 들킨 듯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왜!? 네놈들의 과거를 들춰내니까 쪽팔리냐? 이 비열한 새끼들아!?”
처용은 그런 대신들을 하나하나 노려보며 말했다.
“귓구멍 열고 내 말 잘 새겨들어라.”
-스릉!
처용이 차륜 도끼를 치켜들고 성운들을 도끼날로 하나하나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난 지금도 많이 참고 있어.”
-화르르륵!
마치 처용의 분노를 대변하듯 차륜 도끼에 거센 화염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네놈들이 과거에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지구고 시스템이고 악마들이고 나발이고 다 집어치우고!”
-콰아아!
처용이 내뿜는 기운에 신살자의 힘까지 섞여 분출되기 시작했다.
“그냥 다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 모습에.
[감히!]
[신들의 비밀을 발설하다니!]
당시 신법재판소의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몇몇 신들이 분개했다.
이런 상황에.
“……이게 무슨 소리야?”
“그…… 오래전에 신들끼리 뭐가 있었나 본데?”
1층에 자리한 헌터들은 의문이 섞인 말들을 하며 웅성거렸고.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것 같은데?]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나 보군.]
2층에 자리한 성좌들 중 차세대 성좌들은 의문을 드러냈다.
그들은 성운의 대신들과 주신에게 그 당시 사건을 간략하게만 들은 정도였다.
당사자들이 성운의 명예를 위해 여러 정보를 감추고 여래를 완전히 ‘악’으로 표현했으니까.
어수선한 상황이 계속될 때.
[선천적 신격들은.]
무신전의 성좌들 쪽에서 낮고 위엄 서린 목소리가 울렸다.
[애초부터 고결한 이들이 아니었던 것 같군.]
입을 연 이는 무신전의 수장, 운장이었다.
운장이 침음을 흘리고 당황하는 몇몇 신들을 하나하나 응시하며 말하자.
[함부로 말하지 마라! 하계종!]
[네놈들이 뭘 안다고…!]
시선을 받은 신들이 인상을 세차게 구기며 목소리를 높였다.
운장은 그런 그들을 향해 작은 한숨을 내쉬고는.
[그럼 제대로 설명해 보시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신계에 피바람이 불었는지를 말이오.]
진지한 목소리로 분개하는 신들을 향해 대답을 요구했다.
그러자 목소리를 높이던 신들의 말소리가 크게 줄어들었다.
스스로의 입으로 말할 수 없었으니까.
그때.
“지금 목소리를 높이는 양반들이 자비의 대신님을 목표로 비열한 함정을 팠고.”
속으로 미소를 감춘 처용이 친절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천교는 신법재판소를 악용하여 스승님이 아끼던 이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심지어……!”
애초에 이 모든 상황은 여래의 억울함을 풀고 ‘혈선’이라는 불명예를 조금이나마 씻기 위함이었다.
처용이 빠르게 이야기를 마치자.
[그런…… 일이.]
[전부 말씀해주시지는…… 않으셨던 것이로군.]
2층에 자리한 선천적 신격들 중 차세대 성좌들이 침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1층에 자리한 헌터들 역시 신들의 비밀을 듣고 인상을 구긴 채 침묵했다.
동시에.
-나도 한때는 선천적 신격들의 고결함을 믿었어, 내 성좌님도, 내 친구들도 그들을 믿었어.
처용이 왜 신들에게 분노하는지.
-그들을 믿은 결과 ‘우리’에게 다가온 건 ‘파멸’이었다.
화합의 장 내부에서 처용이 했었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을 때.
[부끄러운 과거입니다.]
아테나가 나지막하게 입을 열어 말했다.
[우리가 반성해야 할 과거이기도 하지요.]
그녀의 말에.
[아테나……!]
[네년이 함부로!]
그 사건과 관계가 있는 몇몇 신들이 인상을 구겼다.
그러자.
[당신들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과거에 저지른 일이 사라집니까!]
아테나가 분노가 서린 목소리로 외쳤다.
[자비의 대신에게 용서를 구해도 모자랄 판에 어찌 이리 어리석은 모습만 보입니까!]
[닥쳐라!]
[네년이 뭘 안다고 지껄이는 것이냐!]
아테나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신격들끼리 마찰이 일어날 때.
[참, 한심하군.]
어제부터 침묵을 고수하던 여래가 입을 열었다.
[나름 변하기를 기대한 것이 잘못인가?]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들은 용서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래의 말에 처용이 아테나와 대치하는 신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쉰 여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웅성거림이 잦아지고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과거의 일은 이쯤 합시다. 더 언급해봐야 좋을 것도 없고. 무엇보다.]
여래가 이랑진군을 노려보며 중요한 본론을 이야기했다.
[이랑진군이 어떻게 거짓된 신격을 맹세했는지 확인하는 게 우선인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서로 간 마찰을 일으키던 신격들도, 웅성거리던 헌터들도 조용해졌다.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이랑진군에게 모였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던 선천적 신격들은 불편한 주제를 돌리기 위해.
다른 성좌들은 정말로 거짓으로 신격의 맹세가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
모두가 어수선한 분위기를 지우고 이 상황에 집중했다.
[……!]
이랑진군의 눈빛이 불안한 듯 흔들렸고.
[…….]
옥황상제 역시 분노가 일렁이는 눈빛으로 여래를 노려봤다.
여래는 그런 옥황상제의 시선을 차가운 눈빛으로 받아치고는.
[신법 재판을 시작한다.]
신법의 대신으로서 지닌 권능을 발동했다.
그러자.
-쿠구구!
주변이 일렁이듯 흔들리며 환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드넓은 경기장과 같았던 회의장 내부가 마치 재판장과 같은 환경으로 변했다.
앉아 있던 모든 이들은 재판장의 관중석으로 옮겨져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내 차례인가?]
재판장의 중앙에 미륵이 자리했다.
[관리자…….]
[무엇을 할 생각이오?]
몇몇 신들이 궁금한 듯 묻자.
[관리자의 권한으로 제가 임시 재판장을 맡지요.]
미륵이 고개를 들고 신들을 쭉 둘러보며 말했다.
[승인합니다.]
신법의 대신, 여래가 미륵의 말에 ‘승인’하자.
-화아아!
미륵의 오른손에 금빛으로 빛나는 작은 망치 ‘신법의 존엄’이 형성되었다.
[……!]
그 모습을 본 옥황상제의 표정이 다시금 세차게 구겨졌다.
설마 부수어진 신물을 복구했을 줄은 생각도 못했으니까.
옥황상제는 알지 못했지만…….
이는 태초신이 여래를 새로운 신법의 자리에 앉히면서 다시 창조된 신물이었다.
[재판장의 권한으로 천수의 신, 이랑진군에게 말하겠다.]
미륵이 이랑진군에게 신법의 존엄을 겨누며 말했다.
[무, 무엇이오?]
이랑진군이 떨리는 목소리를 바로잡으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본 미륵은.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음을 맹세하는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이랑진군을 향해 물었다.
그 말에.
[…….]
이랑진군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침묵하다가 옥황상제를 바라보았다.
마치, 천교의 주신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답을 요구하는 듯했다.
옥황상제는 이랑진군을 잠시 바라보다가.
[맹세하라.]
좀 전에 드러냈었던 분노와 격한 감정을 싹 지우고 진지하게 말했다.
[……맹세하겠다.]
이랑진군은 옥황상제를 믿고 미륵의 말에 따랐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은 좀 전에 들었던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직감하고.
‘쓰레기 같은 놈.’
옥황상제를 속으로 세차게 비난했다.
물론…… 이런 상황으로 이루어지도록 만들긴 했지만, 옥황상제가 이렇게 빨리 행동할 줄은 몰랐다.
처용이 속으로 옥황상제를 비난하며 생각할 때.
[지금부터 이랑진군은 신법재판소의 규율에 따라 거짓을 말할 수 없다.]
미륵은 모두가 잘 듣도록 큰 소리로 말한 후.
[이랑진군! 네놈의 신명이 정말 ‘천수(天守)’가 맞는가?]
미륵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이랑진군을 향해 대답을 요구했다.
[나는 하늘을 수호하는 천수의 신이 맞-!]
이랑진군이 미륵의 말에 ‘맞다’라고 말하려 하자.
-파지지지직!!
그의 몸에 강렬한 전류가 튀었다.
[크허허허억!?]
마치, 무언가에 충격을 받은 듯 이랑진군이 고통을 토해냈다.
[거짓이다.]
미륵이 그런 이랑진군을 보며 선언하듯 말했다.
[……어떻게!?]
[이건…… 이게 말이 되는가?]
신격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이랑진군을 바라봤다.
성좌의 신명이 바뀌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신명이 바뀐다는 것은 그 존재 자체가 바뀐다는 의미였으니까.
하지만.
‘단, 한 가지 방법이 있지.’
회귀 전, 처용은 많은 신격들이 ‘악신’이 된 것을 직접 목격했다.
그들이 어떻게 악신이 되었는지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감히 신법재판소에서 거짓을 고한 네놈의 진명(眞名)을 밝히리라!]
미륵이 이랑진군을 향해 신법의 존엄을 겨누며 큰 목소리로 외치자.
-파지직!
이랑진군에게 고통을 주며 그를 마비시키고 있는 전류가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신법재판소에서 진실을 맹세한 이가 거짓을 고했을 때.
거짓을 고한 자에게 진실을 토하게 만드는 신법재판소의 권능이었다.
-파직! 파직!
공중으로 튀어 오른 전류가 서로 뭉치더니 어떤 글자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흉수(凶獸)]
흉악한 짐승의 신.
이랑진군이 숨기고 있던 진짜 신명이 드러났다.
미륵은 그의 신명을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관철의 대신으로 명하니! 네놈의 진짜 정체를 드러내라!!]
신법재판소의 권능에 허덕이고 있는 이랑진군을 향해 ‘통찰의 눈’을 발동했다.
[아, 아! 안-!]
이랑진군이 어떻게든 저항하려 했지만, 아직 신법재판소의 억압도 풀지 못한 상태.
미륵의 권능을 피할 수 없었다.
통찰의 눈이 이랑진군에게 닿자.
[대악마 흉수악신(凶獸惡神) 이랑진군.]
이랑진군의 위로 시스템의 문구가 떠오르며 그의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