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176화 (176/726)

#176화

“크흠!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죠.”

커맨더가 헛기침을 한 번 내뱉고는 회의를 이끌었다.

“이번 세계 헌터 회의를 통해 제가 알아보고 싶은 건 이겁니다.”

-삐빅! 띠릭!

왼손에 장착된 패널을 조작한 커맨더가 말을 마치자.

-우우웅!

회의실 중앙에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그 안의 내용은 이전 세계 헌터 회의에서 보였던 여러 증거들이었다.

“첫 번째, 성녀를 조종한 성좌가 누구인가? 그리고 두 번째, 천교 역시 소말리아에서…….”

커맨더가 분노가 일렁이는 진지한 목소리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마지막으로 교단 역시 소말리아에 숨어있던 마인들을 도왔다는 증거!”

성자와 추기경을 노려보며 말하는 커맨더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 모습에 추기경이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뭐라 말하려 했지만.

“……젠장.”

반대편에서 흉흉한 눈빛으로 노려보는 처용으로 인해 분노를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사사건건 커맨더를 방해하던 이들이 모두 입을 다물자.

“대악마까지 나타난 마당에! 마인들에게 협력한다는 건 그 어떤 이유를 들먹여도 납득할 수 없습니다!”

커맨더가 주체적으로 회의를 이끌 수 있었다.

“교단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는 건, 두 분 덕분에 알 수 있었습니다.”

성자가 커맨더의 말을 듣고 입을 열었다.

“교단을 이끄는 성자로서 말하기 부끄럽습니다만…… 아직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성자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커맨더께서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실 때 집행자가 성지를 공격했습니다. 그 이후 대악마와 마주쳤고요.”

한숨을 내쉬며 성자가 말하자.

“집행자는 그 이외에도 교단의 성당을 다섯 곳이나 습격했었습니다.”

“아직…… 성당의 수습도 다 못한 상황입니다.”

“빛의 성좌님도 화가 많이 나셨습니다.”

성자의 뒤편에 있던 고위 사제들이 의견을 더했다.

그 말대로 교단은 연달아 터진 사고에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 와중에 배신자의 존재까지 드러났으니…… 매우 골치가 아플 만했다.

“개인적으로 배신자부터 검거하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처용이 교단 측, 성자를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물론…… 처용은 누가 교단의 배신자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모든 증거를 은폐하고 아닌 척, 결백한 척하고 있지만.

“…….”

불안감을 억누르는 놈의 뒤통수에 흐르는 식은땀이 눈에 훤히 보였다.

하지만, 그 대상이 누구인지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이 상황을 더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으니까.

“……우리 교단에 배신자가 있는 게 확실한 겁니까!?”

추기경이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분위기.

그러나.

“확실합니다. 증거를 보여드리죠.”

커맨더가 그런 추기경을 노려보며 패널을 조작했다.

그러자.

-파지직! 우우웅!

회의실 중앙에 전류가 모이듯 마나가 뭉치더니 게이트가 열렸다.

-쿵! 쿵! 쿵!

그 안에서 커맨더의 안드로이드들이 마치 문틀과 비슷한 형태의 무언가를 짊어지고 나왔다.

“마수 실험장과 교단 본부를 연결한 게이트 발생 장치입니다.”

커맨더가 꺼낸 건 바로 마인들이 만든 게이트 발생 장치였다.

현장을 수습하던 커맨더에게 처용이 부탁하여 그 잔해를 수습한 것이었다.

“다행히 완전히 망가지진 않았었습니다.”

커맨더는 함선 기술자, 로완의 도움을 받아 게이트 발생 장치를 수습하고 고치는 데 성공했다.

“이 안에 교단의 본부와 이어지는 좌표가 등록되어 있습니다.”

커맨더가 말함과 동시에 패널을 조작하자.

-우우웅!

게이트 발생 장치에서 게이트가 열렸고 그 안에서 교단 본부의 모습이 비쳤다.

“저것으로 성지를 습격한 건가!”

“어떻게 저게 가능한!?”

교단 측 헌터들이 얼굴에 경악을 내비쳤다.

그리고.

“신의 보호를 받는 성지입니다! 어떻게 저기에 좌표를?”

마법에 실력이 있다 자부하는 성역의 사제 중 하나가 의문을 섞어 말했다.

바티칸에 있는 교단 본부는 성지, 즉 빛의 신이 선포한 신의 영역이었다.

그런 성지에 마인들이 직접 좌표를 찍고 게이트를 열었다?

절대로 불가능했다.

그러나.

“누군가가…… 협력하지 않는-.”

결국, 고민을 계속하던 사제의 입에서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결론이 흘러나오려는 순간.

“그 입 닥쳐라!”

추기경이 성역의 사제를 향해 일갈했다.

“그럴 리가 없다! 우리 교단에서 배신자는 절대로 없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추기경이 소리칠 때.

“좀, 시끄러운데…….”

처용이 귀를 후비며 조용히 한마디 하자.

“이…….”

추기경의 입이 다시 다물렸다.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은 처용은.

“절대로 아니라 하면 아니라는 증거를 대 봐.”

싸늘한 눈빛으로 추기경을 노려보며 말했다.

“감히-.”

추기경은 본래 습관대로 교단의 직위를 내세우려 했지만.

“감히 뭐?”

성좌조차 힘으로 굴복시키는 처용 앞에 권위 따위 통할 리가 만무했다.

“증거도 없이 빽빽 우기기만 할 거면 당장 나가! 이 새끼야!”

-우우웅!

처용이 목소리에 신력을 섞어 말하자 주변이 진동하듯 울렸다.

“크-.”

“으윽!”

목소리가 유독 강하게 영향을 받은 교단 측 헌터들은 모두 귀를 막고 침음을 흘렸다.

그리고.

“으…….”

처용의 ‘신력’을 직접 마주한 추기경의 입에서 두려움이 섞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추기경은 평소 성격대로 교단의 지위를 한껏 드러내며 소리치고 싶었지만.

“…….”

기세가 완전히 꺾인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상대는 신조차도 때려눕힌 ‘이단자’였으니까.

그런 자가 교단의 추기경이라는 이유로 손속을 봐줄 리가 없었다.

지금 처용을 정면으로 상대하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두고 보자!’

추기경은 속으로 열불을 삼키며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쯧.”

‘일부러’ 추기경을 자극한 처용이 혀를 차고는.

“좀 품격 있는 회의를 바랐는데, 인간이나 신이나 다를 바가 없어.”

한마디를 더 내뱉었다.

매우 건방진 말이었지만, 그 말에 토를 다는 이는 없었다.

회의장 내부에 침묵이 이어질 때.

“교단은 협력을 약속하겠습니다.”

성자가 커맨더와 처용을 보며 말했다.

“서, 성자-!”

추기경이 성자를 향해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숨어 있는 배신자가 무슨 짓을 저지르기 전에……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성자는 추기경의 말을 무시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현명한 선택입니다. 성자.”

처용이 그런 성자를 향해 작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성자는 협력을 약속했고…… 두 길드는 어찌할 생각인가?”

처용의 눈동자가 커맨더에 의해 언급되었던 두 길드를 향했다.

각각, 성녀를 조종한 혐의가 있는 성운인 에덴, 즉 저스티스 길드.

그리고 소말리아 사건 당시 이종족들을 공격한 정황이 있는 천교.

처용의 말에 두 길드의 분위기가 긴장감에 잠겼다.

잠시 침묵이 흐를 때.

“하늘의 서기관님께서…….”

금색 문자가 나열된 하얀 천으로 눈을 가린 은발의 여성.

저스티스 길드의 길드장이자 메타트론의 신관인 라리네가 입을 열었다.

“당신에게 협력하라고 하십니다.”

그녀는 처용의 질문을 받을 때, 메타트론에게서 목소리를 들었다.

-우선 협력한다고 하거라.

어딘가 다급한 듯한 목소리였지만, 신의 명령은 신의 명령.

에덴의 대천사들을 모시는 신관의 입장에서 그 말을 따라야 했다.

라리네의 말을 들은 처용은 잠시 생각하듯 침묵하더니.

“빈말은 아니겠지?”

라리네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신의 말씀입니다.”

처용의 말에 라리네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신의 말? 크크, ‘명령’이겠지.”

라리네의 말을 비웃은 처용이 표정을 굳히고는.

“메타트론에게 똑똑히 전해.”

경고를 담아 말을 이었다.

“천사들이 한 번 더 내게 오만과 위선을 드러낸다면, 아주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거라고.”

“협박입니까?”

라리네가 처용의 말에 경직된 표정으로 말했다.

“협박 맞아.”

처용은 라리네의 말을 인정하며 말을 이었다.

“그 무슨 야만적인-!”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처용이 라리네의 말을 자르며 강하게 말했다.

“선천적 신격이라는 새끼들은 말을 들어 처먹을 놈들이 아니니까!”

다시 한번 처용의 입에서 흘러나온 신성 모독에 회의장 내부가 침묵에 잠겼다.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침묵을 깨고 라리네가 처용을 향해 물었다.

“뭡니까?”

처용이 아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묻자.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라리네가 많은 의미가 함축된 질문을 했다.

“제게 보이는 당신은…… 나름대로 정의가 있는 사람입니다.”

안대 속에 가려져 있는 라리네의 눈은 상대의 모습을 보는 눈이 아닌, ‘신념’을 보는 눈이었다.

정확히는 보는 게 아닌, ‘느끼는 것’에 가까웠다.

라리네는 처용을 응시하며 그가 가진 신념과 정의를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활화산처럼 끓어오르는 격한 감정도 같이 전해졌다.

마치…… 무언가에 ‘분노’한 것처럼 느껴졌다.

“당신 정도의 강자라면 충분히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처용의 신념을 보며 라리네가 말을 이었다.

“세상을 위해 평화적인 방법을 취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성좌들을 적대하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가?

라리네는 그저 궁금함에 물은 것이었다.

“정의를 보는 눈인가?”

처용은 라리네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정의의 대천사 미카엘.

그녀는 에덴의 대천사들 중 신관을 선택하지 않은 천사였다.

미카엘과 파장이 맞는 헌터가 없기도 했지만, 그녀가 신관을 원하지 않은 이유가 컸다.

그런 미카엘은 메타트론을 돕기 위해 자신의 권능 중 하나를 그의 신관에게 내렸다.

처용은 그 권능을 이어받은 라리네를 잠시 응시하더니.

“성좌를 위협할 수 있는 무력을 지닌 인간…….”

나지막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계를 멸망으로 몰고 갔다는 신의 신관, 신과 같은 신력을 지닌 인간, 위험한 힘을 지닌 인간…….”

처용의 말에는 자기 자신을 남들, 성좌들이 어떻게 말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런 나를 저 양반들이 가만히 둘까?”

손가락으로 하늘 위를 가리킨 처용이 말을 이었다.

“회의장에서 비둘기 새끼들이 지껄인 말들을 잘 생각해 봐.”

-탁! 탁!

처용이 하늘을 가리켰던 손가락을 내려 단상을 두드리며 말했다.

“신이 죽으라고 말하면 죽어야 하나? 존엄한 ‘신의 명령’이니까? 크크.”

처용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그리고.

“나도 한때는 선천적 신격들의 고결함을 믿었어. 내 성좌님도, 내 친구들도 그들을 믿었어.”

비웃음이 사라진 처용의 얼굴에는 격한 분노가 자리했다.

“그들을 믿은 결과 ‘우리’에게 다가온 건 ‘파멸’이었다.”

“…….”

라리네는 처용의 말을 모두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에게서 격렬한 배신감이 전해졌으니까.

물론, 처용은 일부러 그녀의 눈에 보이도록, 감정을 흘리고 있었다.

“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을 존중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

“대답이 되었나? 메타트론의 신관.”

라리네는 처용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은 라리네에게서 고개를 돌리고는.

“천교는 어떻게 할 텐가?”

천교의 대표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타친핑을 노려보며 말했다.

“우, 우리도 협력하겠소.”

타친핑은 갈라지는 목소리를 바로잡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처용은.

“변명거리가 있다면 내일 똑바로 설명하는 게 좋을 거야.”

살기가 담긴 눈빛으로 누군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천교의 ‘사냥개’한테 내 말 똑똑히 전해.”

처용이 노려보는 이는 검은 개 형태의 가면을 쓴 S급 헌터, 이랑진군의 신관이었다.

“이……!”

이랑진군의 신관은 처용이 성좌를 모욕해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제가 더 있을 필요는 없겠네요.”

처용이 할 일을 마친 듯 커맨더에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맙다. 도와줘서.”

커맨더가 처용에게 감사를 전했다.

“사실, 여기에 숨어들어 온 쥐새끼를 잡기 위해 기다린 거였는데…….”

처용은 커맨더를 향해 나지막하게 말하며 어느 한 곳을 응시했다.

“아쉽게도 이 자리에 나타나지는 않았네요.”

처용의 시선이 향한 곳은 천교의 헌터들이 앉아 있는 자리였다.

그 모습에 타친핑이 얼굴에 힘을 주며 무표정을 유지했다.

겉으로는 뭐가 문제냐는 듯 태연한 모습을 보였지만.

‘어, 어떻게? 설마!?’

속으로는 식은땀을 홍수처럼 흘리고 있었다.

처용은 마치 그의 속마음을 파악하고 있다는 듯 작은 비웃음을 흘린 후.

“내일 있을 회의에서 보죠.”

여유로운 걸음을 걸으며 밖으로 나갔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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