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디아블로의 명령으로 집행자를 포함한, 흩어졌던 마인들이 예비 아지트로 모였다.
“낙오된 이들은?”
집행자가 아지트를 지키던 상급 마인, 리더에게 묻자.
“모두 모였습니다.”
질문을 받은 리더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때.
“아주 피난처가 따로 없구만 기래?”
이곳에 체류하고 있던 S급 마인, 솔저가 집행자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대강 들었소. 집행자 동무.”
“하아…….”
솔저의 말에 집행자가 큰 한숨을 쉬었다.
“한 시간 후에 모두 모이도록 하지.”
집행자는 짧은 재정비 시간을 명령한 후, 상급 마인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마인들이 모인 곳은 임시 아지트의 대회의실.
이 장소는 음침한 분위기인 다른 곳과는 달랐다.
현대식으로 만들어진 원기둥 형태의 공동.
마치, 거대 기업체가 운영하는 빌딩 안에 구비된 대회의실과 같았다.
중앙 끝 단상, 회의실 내부가 모두 보이는 자리에 집행자와 솔저가 자리하자.
다른 상급 마인들이 밑의 좌석에 하나둘 착석했다.
그리고.
-푸화화! 파지지직!!
밑에서 마기가 솟구치더니 마치 홀로그램이 생기듯 사람의 형상들이 만들어졌다.
만들어진 형상들은 모두 의회주들의 분신이었다.
주요 인물들이 모두 모이자.
-탕!
집행자가 단상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계획이 어긋났다.”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대악마님의 명령에 따라 물러나긴 했지만, 우리 나름대로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집행자가 그간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설명하며 차후 대책을 논했다.
모든 설명이 끝나고 집행자가 본격적으로 대책을 논하려 할 때.
“왜 하나는 빼먹었는가?”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의회주 중 하나가 입을 열어 말했다.
프록코트를 입고 있는 남성, 잭이라 불리는 S급 마인이었다.
“무슨 소리냐? 잭.”
집행자가 잭을 향해 의문을 표하자.
“자네가 교단 본부를 쑥대밭으로 만든 일은 왜 빼먹느냔 말이다. 지금 그것 때문에 곤란한 상황이다.”
“……뭐?”
잭의 말에 집행자가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뭔 개소리냐?”
집행자가 표정을 구기며 목소리를 높이자.
-우우웅!
잭은 더 말하지 않고 마기를 끌어 올려 2미터 크기의 거울을 형성했다.
“대악마 ‘감찰관’님께서 보내주신 것이네.”
잭의 말이 끝나자, 거울 속에서 어떤 영상이 출력되었다.
집행자가 무차별적으로 바티칸을 파괴하는 모습.
그리고.
-내 언젠가는 반드시! 네놈의 모가지를 썰어 버릴 것이다!
야훼의 화신체를 향해 당당하게 선전포고를 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영상이 끝나자.
“…….”
“…….”
의회주들 뿐 아니라 상급 마인들도 모두 멍한 표정으로 침묵했다.
“…….”
당사자인 집행자 역시 자신이 바티칸에서 깽판을 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윽고 그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더니.
“죠오오오-! 커어어어-!!”
대회의장을 무너뜨릴 듯한 기세로 괴성을 토해냈다.
“이 개 같은 광대 새끼가!!”
집행자가 분노를 토해내자.
“……?”
“이번에도…….”
의회주들 사이에서 조용히 몇 마디가 오가더니, 황당함과 의문스러운 표정을 드러냈다.
“…이번에도 자네가 아닌가?”
잭이 눈을 가늘게 뜨며 집행자를 향해 말하자.
“한 번 더 나를 무개념 무지렁이로 취급하면, 죽여버리겠다. 잭.”
집행자가 살기를 한가득 담아 대답했다.
“흐음?”
그 모습을 본 잭이 두 손을 깍지끼며 생각하듯 침음을 흘렸다.
그때.
“집행자님은 아닙니다.”
상급 마인들 중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집행자님은 아지트에 성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자리를 비우지 않으셨습니다.”
집행자를 변호하는 붉은 머리의 여성, 마녀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자.
“마녀의 말이 맞다.”
집행자가 자신을 변호해준 상급 마인, 마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마수 실험장이 난장판이 되기 전까지 소환 의식에 집중하고 있었단 말이다!”
집행자의 진지한 말에 대부분의 마인들이 고개를 기울이며 의문을 표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으니까.
그 순간.
“저자에 대해 짐작 가는 게 있습니다.”
마녀가 거울 속에 비치는 집행자를 향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말해 봐라, 마녀.”
집행자에 말에 마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에 집행자님도 보셨죠? 한국의 두 번째 S급 헌터를.”
“이종족 감옥 층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던 놈을 말하는 건가?”
“맞습니다. 그자입니다. 그리고…….”
마녀가 집행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일전에 보고드린 적이 있었을 겁니다. 그자와…… 조커의 연관성에 대해서.”
“그 보고는 받았네.”
마녀의 말에 잭이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한국의 두 번째 S급 헌터…… 자네는 그와 두 번을 마주하고 살아남았었지?”
“앞으로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잭의 말에 마녀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진지하게 대답하자.
“자네를 탓하려는 건 아니네. 자네 의견이 중요하다는 거지.”
잭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녀는 이곳에 모인 상급 마인들 중 유일하게 처용과 세 번 마주한 이였다.
그 중 두 번은 죽다 살아났고.
잭은 그런 그녀가 겪은 경험과 느낌이 중요하다 판단했다.
“아직도 그자가 조커라고 생각하는가?”
“……”
마녀는 잭의 말에 잠시 생각하고는.
“어디까지나 제 가설입니다. 망상에 불과하고요.”
진지하게 말했다.
“말해 보게, 능력 있는 젊은 마인이여, 판단은 우리가 할 테니.”
잭의 말에 마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처용은 조커가 아닙니다.”
생각해두었던 말들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조커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자라 생각합니다.”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섀도우 헌터라는 건가?”
마녀의 말에 잭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다만, 부하가 아닌 동등한 관계, 혹은 협력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마녀가 그간 처용과 마주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한처용도 빛과 어둠의 마나를 동시에 다룰 수 있습니다.”
주요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처용의 능력.
“성자의 신성 마법, 저지먼트 헤븐, 게다가 커맨더의 게이트까지.”
마녀의 말이 계속될수록 다른 상급 마인들과 의회주들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다.
그리고.
“제가 의회에, 집행자님께 도움을 요청한 이유가 그자를 조커라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리더가 마녀의 의견에 힘을 보태주었다.
“조커와 긴밀히 협력하는 S급 헌터라…….”
잭이 지팡이로 땅을 탁탁 두들기며 생각하듯 말을 흐렸다.
그러자.
“북한에 숨겨져 있던 지부가 조커에게 습격을 받은 것도 납득이 되는군.”
“내가 파악한 바로 디아블로 님을 막아선 것도 한처용이었네.”
“한처용의 가족 중 하나도 S급 헌터이지 않나?”
의회주들이 여러 정보를 곱씹으며 말했다.
그때.
-쿠우우!
“……!”
“……!”
집행자와 잭을 포함한 의회주들이 동시에 어떤 기운을 느끼고 멈칫했다.
“대악마님의 호출이다.”
잭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손을 앞으로 뻗으며 말하자.
다른 의회주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잭처럼 손을 뻗으며 마기를 뿜었다.
의회주들의 마기가 뭉치더니 대회의실 중앙에 불꽃처럼 타오르는 어떤 형상이 만들어졌다.
[아아…….]
그 형상에게서 낮고 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위대하신 삼천마를 뵙습니다!
모든 마인들이 그 불꽃 앞에 부복하며 말했다.
S급 마인들이 힘을 모아 발휘하는 스킬.
바로 대악마가 요청하면 즉각 소통할 수 있게 만드는 의회주들만의 스킬이었다.
[나의 신관.]
불꽃 속에서 흘러나온 말에.
“부르셨습니까? 디아블로 님!”
집행자가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야훼의 성지를 박살 내 버렸다는 말은 들었다.]
“그, 그건-!”
디아블로의 말에 집행자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버벅였다.
혹여나 그의 심기를 거스른 건 아닌지, 빠르게 변명하려 할 때.
[아주 훌륭하다!]
마치 웃는 듯 불꽃의 입 부분이 길게 휘어지며 디아블로가 말했다.
“예?”
집행자가 의문을 표하자.
[과연! 나의 신관답다! 아주 잘해주었느니라!]
디아블로가 진심이라는 듯 짙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화르륵!
불꽃이 여러 갈래로 나뉘며 마인들에게 흘러 들어갔다.
[대악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마기 스텟이 10 상승합니다.]
현장에 있는 상급 마인들의 마기가 짙어졌다.
[앞으로도 기대하지.]
디아블로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파아아…….
불꽃을 꺼트리며 사라졌다.
모든 마인들이 어리둥절할 때.
“바티칸의 일은…… 그냥 내가 한 걸로 하겠다.”
집행자가 눈을 감고 작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모시는 대악마의 칭찬까지 받은 마당에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는 것도 이상했다.
또 대악마의 기분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낫다고 빠르게 판단했다.
졸지에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짓을 한 것으로 취급해야 했지만…….
“……그러지.”
집행자가 한 말의 뜻을 알아차린 잭이 작은 측은함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지.”
잭이 다시 좀 전까지 논의하던 안건을 꺼냈다.
“한국의 두 번째 S급 헌터,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겠나?”
잭의 말에 다른 마인들이 각기 웅성거릴 때.
“조만간, 세계 헌터 회의가 있다 들었소.”
솔저가 잭을 향해 말했다.
“마녀 동무가 볼 때, 그놈이 거기 나타날 것 같나?”
“……나타날 겁니다.”
마녀가 솔저의 말에 확신하듯 말했다.
솔저가 짧게 침묵하며 잠시 생각하고는.
“이 자리에 전 WHU 출신이 둘이나 있으니, 그날 놈을 지켜보겠소.”
누군가를 응시하며 말했다.
“따르겠습니다. 솔저 님.”
시선을 받은 리더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한국의 두 번째 S급 헌터는 맡기겠네.”
“내래 용써보겠소.”
솔저의 대답을 들은 잭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수 실험장과 소환 의식은…….”
남은 중요한 안건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시작했다.
***
커맨더와 그 동료들이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작한 다음 날.
“부르셨나요. 스승님?”
처용은 여래의 부름을 받고 태룡전으로 향했다.
신들이 거주하는 중앙 전각으로 들어서자.
[왔구나. 제자야.]
여래가 처용을 반겼다.
성지의 메인 전각, 태룡전 안에는 세 명의 대신과 카투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네가 저번에 가져온 거 덕분에 새로운 걸 알아냈거든.]
카투라가 처용을 향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좋은 소식은 아니군요.”
처용이 짐작하듯 말하자.
[……네 짐작이 맞다.]
여래가 작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가 가져온 것 중에 이게 있었어.]
카투라가 처용에게 마치 무언가의 살점처럼 보이는 덩어리를 들어 보였다.
“그건? 분명 그놈이 던졌던……!”
처용은 카투라가 손에 든 것을 보고 기억났다는 듯 말했다.
“마수 실험 책임자로 보이는 마인이 가지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중요해 보였는데…….”
바로 마수 실험장에서 소장이라 불렸던 마인.
그가 마수를 합성할 때 던졌던 정체불명의 무언가, 그거였다.
[이건…… ‘가이라마-크타니드’의 파편이야.]
카투라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태초의 마수.”
처용의 눈가가 가늘어지며 말했다.
[맞아, 사냥당한 나의 형제야.]
“유감입니다. 카투라 님.”
처용은 진심으로 카투라에게 유감을 전하고는.
“마수 실험에 헌터와 이종족뿐 아니라 태초의 마수까지 희생시킨 것이로군요.”
분노를 삼킨 듯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뒤틀린 아버지에게 살해당하고 정수를 흡수당한 모양이야.]
카투라가 씁쓸한 표정을 짓고 손에 들린 파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처용은 카투라가 말한 뒤틀린 아버지라는 말에.
“조크-크타니드?”
악의 종주의 이름을 말했다.
[악의 종주가 태초의 마수들을 사냥하고 힘을 흡수하고 있다.]
여래가 처용을 향해, 그간 알아봤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놈이…… 태초의 마수들을요?”
처용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자를 마주했을 때를 떠올려 보거라, 특히 그가 사용했던 능력을.]
여래의 말에 처용이 회귀 전, 악의 종주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가 사용했던 능력…… 설마!?’
생각을 마친 처용은 여래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눈치챘다.
“그놈이 썼던 기술 중에-!”
[눈치챘구나.]
여래가 처용의 말을 듣고 안타까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으드득!
처용이 이를 갈며 다시금 악의 종주를 떠올렸다.
‘크타니드가 다른 태초의 마수들을 잡아먹고 힘을 키웠다?’
그러고 보니 회귀 전 그가 중얼거리며 썼던 권능 중에는…….
-이거 하나는 쓸만하군.
카투라의 초월기, 종말의 백야와 아주 흡사한 권능이 있었다.
백색 광선이 아닌 흑색의 광선이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분명 종말의 백야와 아주 흡사했다.
“막아야겠군요.”
처용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동시에 작은 희망을 가졌다.
회귀 전, 잡아먹혔어야 할 카투라-크타니드는 지금 이 자리에 있었으니까.
악의 종주가 태초의 마수들을 사냥하기 전에 미리 찾아내 보호한다면.
조크-크타니드를 약화시킬 수 있었다.
[네가 보여 준 기억을 보고 급하게 카투라를 찾았었던 거다.]
여래가 그간 하지 못했던 말들을 이야기했다.
왜 태초의 마수를 찾아내 태룡전으로 인도했었는지.
왜 그녀에게 처용의 비밀을 말해주었는지 등.
그리고.
[짐작은 했지만…… 놈들이 만드는 ‘마수’는 태초의 마수를 베이스로 양산하는 복제품이더구나.]
여래가 눈을 감고, 며칠 전 처용이 가져온 것들을 생각하며 말했다.
“혹시, 필요할까 싶어서 구한 건데, 도움이 되어서 다행입니다.”
처용이 커맨더를 통해 부탁했었던 것.
바로 디아블로가 날뛴 현장을 수습하며 마수의 사체를 몇 개 구해달라는 것이었다.
커맨더는 처용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운이 좋았는지 마수의 사체가 아닌 재앙을 피해 몸을 웅크리고 숨어있던 마수를 찾아내었다.
커맨더는 손쉽게 마수를 제압하고 ‘산 채로’ 처용에게 넘겨주었다.
지금 성역에 있는 보물전 안에는 세 마리의 마수가 감금되어 있었다.
여래와 미륵은 처용이 잡아 온 마수와 마인들의 창고에서 털어 온 것들을 살펴보았었다.
처용을 통해 마수가 만들어지는 과정까지 보았으니, 마수를 만드는 원리를 알아낼 수 있었다.
“놈이 다른 태초의 마수를 찾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겠군요.”
여래의 이야기를 들은 처용이 진지하게 말했다.
잘하면, 악의 종주도 약화시키고 마인들의 마수 실험도 막을 수 있으니까.
[태초의 마수를 찾는 것은 우리가 힘써 보마.]
“감사합니다. 스승님.”
[그리고…… 수련탑의 3층이 개방되었을 거다.]
처용은 여래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설마?”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눈치채고 놀란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쯤 준비를 마쳤을 테니, 한 번 가보는 것이 어떠냐? 제자야.]
“바로 가보겠습니다.”
처용은 지체하지 않고 곧장 수련탑으로 향했다.
또 다른 태초의 마수.
누구일지, 어떤 모습일지 나름대로 기대가 되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