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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163화 (163/726)

#163화

커맨더는 세계 헌터 회의가 있기 전까지는 한국, 성지 태룡사에 체류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협회장을 도와주는 것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처용이 알려준 수련법 때문이었다.

수련탑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지긴 했지만.

최근 성지가 크게 성장하여 전각을 하나씩 더 지을 수 있게 되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지금 수련탑 내부에는 각기 자리를 잡고 서로 다른 방법으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직 팔이 낫지 않은 이진호의 경우는.

-으아아아아!!

성지, 태룡사의 강줄기 외곽을 전속력으로 조깅(?)하고 있었다.

이진호의 팔은 엄연히 말하자면 부상이 아니었다.

무리한 스킬 사용으로 인한 반동.

강력한 스킬을 사용한 대가로 받은 디버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나마 처용이 자비의 손길로 이진호의 팔을 추가로 치료해 조금 더 나아진 상태였다.

추후 그의 팔이 낫는 대로 수련을 도와주기로 했다.

그리고 커맨더의 경우는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다른 수련을 하고 있었다.

아니, 더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커맨더가 있는 장소는 성지의 수련탑이 아닌, 성역 태룡전의 수련탑 안이었다.

“으으으윽!!”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커맨더가 식은땀을 흘리며 고통을 참고 있었다.

그런 그의 등 뒤에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바로 말해야 해.]

성좌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커맨더의 등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잿빛 ‘신력’이 뿜어져 나와 손을 타고 커맨더에게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적당한 양의 신력을 뽑아내어 커맨더의 몸에 순환시키고 있었다.

커맨더는 지금 인간의 육체에 신력을 적응시키고 있었다.

“커, 커헉! 크헉!”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신력을 버티던 커맨더가 기침을 하며 피를 몇 방울 토해냈다.

[여기까지만 해, 더는 무리야.]

신관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신력을 거두었다.

그러자.

“딱…… 두 번만 더 합시다. 여신님.”

커맨더가 힘겹게 고개를 돌리며 자신의 성좌를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 아니야, 죽을 수도 있다고.]

“두 번! 두 번만 더 하고 안 하겠습니다. 진심이에요.”

[하아…….]

신관의 고집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한숨을 내쉴 때.

[딱 두 번만 하고 그만하는 겁니다.]

보살이 나타나 커맨더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우우웅.

자비의 손길이 무리한 신력 순환으로 부하가 걸린 커맨더의 육체를 진정시켰다.

본래 성역 태룡전이라 해도 시스템의 제약 때문에 타인에게 권능을 쓰는 것은 제한된다.

그러나 성지의 완성으로 제약이 조금 완화된 상태였기에 보살이 커맨더를 치료하는 것이 가능했다.

“감사합니다. 자비의 여신님.”

커맨더가 자신을 도와준 보살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후, 계속하시죠.”

각오를 다진 듯 짧은 한숨을 내쉬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게 훈련을 계속할 것을 청했다.

[하아.]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얼굴을 쓸며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갈피를 잡았습니다.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커맨더가 의지를 다진 듯 강하게 말했다.

동시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신력을 내뿜으며 명상에 잠긴 처용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과 붉은빛이 섞인 신력을 눈에 담았다.

-힘드시겠지만, 신력을 순환하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전투에 임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커맨더가 훈련 전 처용이 했었던 말을 다시 상기했다.

처용이 신의 신관들만 사용할 수 있다는 ‘꼼수’라 말해준 훈련법.

그러나 큰 고통을 인내해야 하고 자칫 잘못하면 목숨까지 위험한 방법이었다.

방금도 육체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신력을 딱 네 번 순환시켰을 뿐이었다.

단 한 번만 신력을 순환시켜도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격통이 밀려왔다.

시간으로 따지면 2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영겁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네 번을 반복하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1년 동안 하지 못했던 레벨업의 단서를 잡았으니까.

그리고.

-우우웅!

처용이 있는 곳과는 떨어진 장소에서 자신과 같은 수련을 받는 이가 있었다.

바로 해전무신의 신관 연화였다.

그녀 역시 해전무신의 신력을 받아 육체에 적응시키고 있었다.

고통을 참는 듯 힘줄이 불거져 있었지만,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미동조차 하지 않는 강인한 모습으로 벌써 다섯 번째 신력을 순환하고 있었다.

“시작하시죠.”

커맨더가 질 수 없다며 강하게 말했다.

꼴사납게 연화보다 먼저 나가떨어질 수는 없었다.

[이번에도 피를 토하면 나 안 할 거야?]

“하하, 있는 힘껏 견뎌야겠네요.”

미소를 지으며 각오를 다진 커맨더에게 다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신력이 흘러갔다.

‘흠…… 둘 다 생각보다 잘 버티네.’

잠시 명상에서 빠져나온 처용이 눈을 가늘게 뜨며 커맨더와 연화를 바라봤다.

예상으로는 두 번에서 세 번이면 나가떨어질 줄 알았다.

아무리 고통에 익숙한 헌터라 해도 버티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둘 다 생각보다 잘 견디고 있었다.

그 모습에 처용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연화와 커맨더 둘 다 평범한 신관이 아닌 ‘군주’ 클래스였다.

추후 일어날 재앙들에 앞장서 싸울 이들이었다.

이들이 빨리 성장할수록 마인들의 수작과 악마들의 침공에 더 안전하게 대비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아직 부족하다.’

처용은 연화와 커맨더의 생각을 거두고 한 번 더 자신을 점검했다.

[이름 : 한처용]

[레벨 : 158]

[칭호 : 반신]

[클래스 : 계승자–징벌자]

[생명력 : 10820]

[마나 : 5750]

[근력 : 416]

[민첩 : 308]

[체력 : 402]

[마력 : 314]

[신력 : 280]

‘신력은 30% 정도 회복했고 스테이터스는…… 아직 멀었군.’

100레벨을 찍기 전 신력 스테이터스는 250이었다.

디아블로의 화신체를 잡고 158레벨이 된 지금까지 고작 30 올랐다.

아주 적은 수치가 올랐지만, 처용은 그 이유를 이해하고 있었다.

498이었던 본래 레벨에 비하면 지금은 아주 낮은 레벨이었으니까.

그리고 신력 외 모든 스테이터스가 300을 돌파했다.

동 레벨의 헌터로 비교하면, 많게는 1.5배 많다고 볼 수 있었지만…….

‘부족하다.’

처용은 이것도 적다 생각했다.

본래 자신의 스테이터스는 천 단위가 넘어갔으니까.

현재 육체의 스펙이 본래 레벨의 육체보다 부족한 만큼 신력의 회복이 더디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완전히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바로 강기를 되찾았으니까.

강기를 되찾은 이상 지금까지와는 다른 더 강하고 효율적인 전투가 가능했다.

추가로.

‘200레벨 전에 육체 진화가 가능할 수도.’

육체 진화, 혹은 환골탈태(換骨奪胎)라 불리는 현상.

강기의 경지에 닿아 성장한 무인의 육체가 변하는 현상이었다.

육체의 골격이 더욱 단단해지고 보다 마나에 친화적으로 변한다.

무엇보다 육체가 진화하면 모든 기본 스테이터스가 많으면 두 배까지 상승한다.

회귀 전, 처용은 강기를 완성하고 200레벨 중반쯤 되었을 때, 육체 진화를 처음 겪었었다.

현재, 200레벨 이전에 강기를 되찾은 이상, 잘하면 육체 진화도 더 빠르게 달성할 수 있었다.

성지에 머무르는 이들의 성장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힘을 되찾는 것이 더 중요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최근 마주했던 대악마 때문이었다.

‘디아블로…….’

삼천마 중 하나이자, 대악마 서열 3위.

무한한 공포의 대악마 디아블로.

얼마 전에 싸웠었던 극도로 위험한 상대.

그리고…… 지금 시기에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될 상대였다.

그런 디아블로로 인해, 처용은 자신과 주변인의 성장에 더 신경 쓰고 있었다.

아무리 불완전했다지만, 디아블로가 차원의 틈을 찢고 지상에 강림했다.

그렇다는 건.

다른 삼천마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강림이 가능하다는 말이었으니까.

디아블로야 정말 행운에 행운이 따라주었기에 큰 피해 없이 막았던 것이었다.

만약, 무방비한 장소에 디아블로가 강림했다면?

어떤 피해가 발생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최소, 두 개의 거대 길드가 회생 불가능할 정도의 피해를 입는 것이 예상되었다.

회귀 전과 다른 미래가 펼쳐지는 만큼,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과 생각을 정리한 처용은.

“후-.”

-우우웅!

짧은 한숨을 내쉬며 강기와 신력을 동시에 끌어올리고는 다시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했다.

***

판데모니움 악의 제전.

“계획에 어긋났다.”

분노를 감춘 듯 바알이 누군가를 향해 고요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직접 나선 것이냐? 디아블로.”

그런 바알의 시선과 질문을 받은 대악마.

“흐흐흐.”

디아블로가 작은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놈들이 답답해서 그랬다.”

“…….”

바알이 디아블로의 웃음소리에 인상을 살짝 일그러트리며 침묵하고는.

“……오랜 준비를 거친 소환 의식이었다.”

디아블로를 향해 흉흉한 눈빛으로 말했다.

“네놈의 재미를 위해 소모될 것이 아니었단 말이다.”

“재미? 내가? 크흐흐.”

바알의 눈빛을 받은 디아블로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하위 대악마를 한 명 더 강림시킨다고 뭐가 더 나아질 것 같았나. 바알!”

디아블로는 오히려 바알을 향해 질책하듯 말했다.

“네 계획 중 제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화르르륵!

디아블로가 거센 불길을 일으키며 말을 이었다.

“네놈의 답답한 계획에 따르느니, 내가 직접 움직이는 것이 낫다 판단했다.”

“디아블로……!”

바알이 싸늘한 음성을 내뱉음과 동시에.

-쿠구구구!

빛 한점 허용하지 않는 칠흑같이 어두운 마기를 뿜어댔다.

“네놈의 행동으로 그분을 위한 계획이 어그러졌다.”

“크흐흐, 난 그분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 거다.”

-쿠콰콰콰!

디아블로의 화염과 바알의 마기가 서로 충돌하여 굉음을 울리고 있었다.

위험한 긴장감이 이어지고 있을 때.

“……디아블로의 말도 틀리지는 않았다. 바알.”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며 침묵하고 있던 삼천마.

메피스토가 진지한 목소리로 바알에게 넌지시 말했다.

“메피스토……?”

바알이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메피스토의 이름을 말하며 의문을 표했다.

“으음?”

디아블로 역시 마찬가지로 의문을 표했다.

-파아아…….

두 대악마가 내뿜던 마기가 사라지고.

“무슨 소리냐? 메피스토.”

바알이 메피스토에게 의문을 담아 물었다.

메피스토는 자신의 부관, 나베리우스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였다.

항상 진지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악마.

그런 그가 디아블로의 돌발행동에 손을 들어준 것이 의문이었다.

“우리의 목표가 무엇인가?”

메피스토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이 장소에서, 판데모니움에서 우리가 나가는 것이다.”

-탁. 탁.

발 앞꿈치로 땅을 탁탁 두드리며 메피스토가 말하자.

몇몇 대악마들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들의 목표는 판데모니움 밖으로 나가는 것이 맞았으니까.

“그분께서도 시스템의 붕괴를 원하시기에 우리가 그분을 돕는 것이 아닌가?”

“…….”

메피스토의 말에 바알이 인상을 작게 찌푸리며 침묵했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지만,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조건 네 계획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는 있다.”

메피스토는 다른 악마들의 반응과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할 말을 계속했다.

“디아블로가 직접 강림한 덕분에 차원의 틈을 조금 찢기까지 하지 않았나?”

“그래 봐야 금방 복구될 뿐이다.”

바알이 메피스토의 말에 반박하자.

“시스템의 장막을 ‘찢었다’라는 사실과 ‘찢을 수 있다’라는 가능성만 해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흐음…….”

메피스토의 말에 바알이 고민하는 듯 침음을 흘리고는.

“우리들의 시간은 무한하니…….”

마치 무언가를 생각하듯 말을 흘렸다.

“이번처럼 시스템의 장막을 찢으려 시도할수록 시스템의 내구도가 빠르게 소모될 것이다.”

메피스토가 바알의 뒷말을 잇듯 진지하게 말했다.

“해서, 나는 이번에 디아블로와 그 신관이 벌인 적극적인 행동은 옳다고 본다.”

“내 신관?”

디아블로가 뜬금없이 자신의 신관이 언급되자, 의문을 표했다.

그러자.

-딱!

메피스토가 손가락을 튕겼다.

-우우웅!

악의 제전 중앙에 마기가 뭉치더니 타원형의 거울과 같은 형상을 만들었다.

이윽고 그 거울 안에서.

-머저리 같은 야훼는 들어라!!

디아블로의 신관, 집행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네놈은 위대하신 대악마의 앞에 머리를 조아리리라!!

그가 빛의 신, 야훼의 성지를 무참히 부수는 모습.

그리고.

-내 언젠가는 반드시! 네놈의 모가지를 썰어 버릴 것이다!

분노한 야훼의 화신체를 향해 선전포고(?)를 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비추고는.

-파아아…….

마기로 만들어진 거울이 흩어졌다.

“네 신관의 행동력은 나조차도 감명받게 만드는군, 디아블로.”

메피스토가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말하자.

“크하하하하!!”

디아블로가 큰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래야지! 과연 나의 신관답다! 하하하!!”

그 모습에 바알이 눈을 가늘게 뜨며.

“난 저런 놈을 신관으로 들이지 않을 것이다.”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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