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지구에 디아블로가 나타나고 사흘의 시간이 지났다.[
현장을 수습했던 커맨더와 성자는 이번 사건을 매우 심각하게 판단했다.
커맨더는 WHU에 이 사건을 알리고 성자는 다른 길드에 협력을 요청했다.
대악마가 지상에 강림한 여파가 워낙 거대했는지, 이미 눈치채고 있는 길드들도 있었다.
게다가.
-대악마 강림, 중국 헤이롱장성 지역 불바다.
-천교가 다스리는 지역에 대악마 강림? 천교, 우리와 관계없어.
이번 싸움이 격렬했던 만큼, 세계 언론에서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그리고.
-대악마와 정면으로 맞서 싸운 헌터는 한국의 두 번째 S급 헌터.
-성자, 대악마를 막아낸 건 한국의 두 S급 헌터 덕분이었다.
처용이 세간에 완전히 드러났다.
물론, 처용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성지를 무사히 완성하기도 했고 마녀도 자신에 대해 눈치챘으니까.
또 이제 본격적으로 활동해야 할 시기이기에 커맨더처럼 어느 정도의 명성은 필요했다.
기사를 쭉 둘러보던 처용은 어느 한 기사에서 눈을 멈추었다.
-동방불패 길드장, 천교 해명 똑바로 해라.
-민간인 사망자 발생에 동방불패 길드 분노. 천교가 책임져야 한다.
“……본격적으로 나서주는 건가?”
처용이 ‘동방불패 길드’라는 문구가 적힌 기사를 보며 중얼거렸다.
다소 유치해 보이는 이름을 가진 길드였지만.
이들은 중국을 장악한 천교를 유일하게 견제하는 세력이었다.
무신전 성좌들의 가호를 받은 병사들이 모여 만든 길드가 바로 동방불패 길드였다.
천교의 세력에는 중국의 대부분 고위직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반면에 동방불패 길드는 중국의 서민들이 주로 지지하는 세력이었다.
중국의 고위 권력자들과 그들을 돕는 거대 세력인 천교.
권력자들의 행패에서 벗어나려는 시민들과 그들을 돕는 동방불패 길드.
중국의 길드는 두 갈래로 나뉘어 서로를 견제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천교의 영역에 대악마가 나타났고 마인들의 아지트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동방불패 길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천교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리고 올림포스와 교단 등 다른 거대 길드들도 천교에게 해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천교는 자신들과 관련이 없다고만 말하며 침묵하고 있는 상황.
‘기대해라…… 옥황상제.’
처용은 반드시 복수해야 할 대상을 향해 비틀린 웃음을 짓고는 핸드폰을 껐다.
기사를 통해 돌아가는 상황을 확인한 처용은 우선 성지에 있는 협회 지부로 향했다.
손님이 와 있었으니까.
처용이 협회 지부, 대회의실로 들어서자.
“왔구나.”
커맨더가 손을 들어 보이며 처용을 반겼다.
방 안에는 커맨더 뿐 아니라 그의 파티원들, 그리고 태민과 협회장까지 자리해 있었다.
“안녕하세요. 커맨더.”
처용은 커맨더를 향해 인사를 건네고.
“팔은 좀 괜찮으세요?”
양팔에 붕대를 감고 있는 이진호를 향해 말했다.
“멀쩡하다고. 하하!”
이진호가 팔을 들고 눈가를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아직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알아요. 압니다. 덕분에 운동도 못 하고 있잖아요.”
이종국이 이진호를 향해 핀잔하듯 말하자 이진호가 불만이라는 듯 말을 흐렸다.
그 모습을 본 이종국이 짧은 한숨을 내쉴 때.
“과장님, 라이센스는요?”
처용이 태민에게 물었다.
“거의 다 끝났습니다. 오늘부로 하나하나 지급될 예정이구요.”
태민은 처용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듣고 그 말에 대답했다.
“라이센스?”
커맨더가 궁금한 듯 처용과 태민을 번갈아 보며 묻자.
“성지에 거주하는 이종족 분들에게 협회 소속 라이센스를 지급 중입니다.”
태민이 커맨더에게 처용이 계획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종족들에게 신분증을 만들어주고 그들의 능력을 활용하는 것.
“뱀파이어 분들 덕분에 던전 사고 발생률이 크게 줄었습니다.”
태민이 커맨더에게 태블릿 자료를 보여 주며 말했다.
이야기를 들은 커맨더는.
“으음…… WHU가 가만있지 않을 텐데…….”
작게 인상을 구기고 침음을 흘렸다.
이종족들을 한국에 거주시키려다가 실패한 이유.
WHU와 교단에서 한국 헌터 협회를 압박했기 때문이었으니까.
그때.
“더는 눈치 따위는 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커맨더의 말에 협회장이 강하게 말했다.
“이젠 볼 필요도 없고요.”
협회장이 커맨더를 향해 씨익 웃음을 짓고 처용을 바라봤다.
그러자.
“방해하는 놈이 있으면, 제가 직접 치워버릴 겁니다.”
처용이 커맨더를 향해 말했다.
“……감사합니다.”
잠시 침묵한 커맨더가 처용과 협회장에게 감사를 전했다.
이종족들과의 화합.
자신이 실패하고 좌절했던 일이 이루어 졌으니까.
“그보다도 전달 사항이 있어.”
커맨더가 처용을 향해 본론을 이야기했다.
그게 협회장을 포함한 모두가 이곳에 모인 진짜 이유였으니까.
“WHU에서 세계 헌터 회의를 열었어.”
커맨더의 말이 처용의 눈이 가늘어졌다.
WHU에서 개최하는 세계 헌터 회의.
세계 각국의 주요 인사들과 영향력이 높은 최상위 헌터들이 모여 의논하는 모임의 장이었다.
무엇보다 이 회의는 헌터들, 인간들만이 모이는 것이 아니었다.
“소집되는 성운은요?”
“거의 모두.”
커맨더의 대답에 처용의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태가 사태이니만큼, 거대 성운뿐 아니라 크고 작은 성운이 모두 모이는 듯 보였다.
“소집 날짜는 이 주 뒤야, 장소는 호주 시드니, WHU 사무국이고.”
커맨더가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저한테도 초청장이 온 것이로군요.”
이야기를 듣던 처용이 넌지시 말하자.
“그게…….”
커맨더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흐렸다.
“초청장은 한국의 S급 헌터 4명 전부에게 왔습니다.”
협회장이 작은 한숨을 쉬며 처용에게 말했다.
“흠…….”
처용이 협회장의 말에 생각하듯 잠시 침묵하고는.
“윤아를 포함시켰다라?”
눈을 날카롭게 뜨며 말했다.
“솔직히 난 윤아가 가는 건 반대야.”
커맨더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WHU의 말대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처용이 커맨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굳이 그런 자리에 윤아를 데려갈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 S급 헌터는 WHU도 파악하지 못했나 보네요. 크크.”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외부에는 알리지 않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알고 있는 존재.
바로 연아였다.
“S급 헌터 가족이라니, 참…….”
커맨더가 얼굴을 쓸며 말했다.
“커맨더도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
처용이 커맨더의 말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튼, 커맨더와 저, 연화 이렇게 셋으로 하죠.”
처용의 말에 커맨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 후배가 부탁했던 거 찾아보니까 있더라.”
커맨더는 이전 처용이 부탁했던 것에 대해 말했다.
“얼마나 찾았나요?”
처용의 말에 커맨더가 손가락 세 개를 폈다.
“적당하네요. 감사합니다.”
“네가 준 속성석 덕분에 군단을 빠르게 복구시켰으니까.”
커맨더가 처용의 감사에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이 주 후라…… 그동안 준비를 좀 해야겠네요.”
처용이 세계 헌터 회의 날짜를 되새기며 생각에 잠겼다.
“무슨 준비?”
커맨더가 궁금한 듯 묻자.
“저랑 이 성지를 아니꼽게 보는 양반들이 많을 테니까요.”
처용이 눈을 가늘게 좁히며 말했다.
“난 무조건 네 편이야. 그것만큼은 알아 둬.”
커맨더가 진심이라는 듯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 감사합니다. 커맨더.”
처용은 그런 커맨더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전했다.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이 세계 헌터 회의에 대비해 여러 이야기를 나눈 후 회의가 파했다.
처용이 돌아가려는 때.
“한처용 헌터.”
이진호가 진지한 표정으로 처용을 부르며 다가왔다.
“무슨 일이시죠?”
처용이 묻자.
“도와주십시오!”
이진호가 처용에게 고개를 숙이며 진지하게 부탁하듯 말했다.
그 모습에 잠시 침묵한 처용은.
“……도와드리겠습니다. 이진호 헌터.”
그가 왜 이러는지 눈치채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처용이 곧바로 수락한다는 말을 할 줄은 예상 못 했는지 이진호가 당황한 듯 말했다.
“더 성장하는 방법, 아닙니까?”
“……맞아.”
제대로 짐작한 처용의 말에 이진호가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대악마를 마주하고 뼈저리게 깨달았어.”
이진호가 아직도 조금씩 떨리는 팔에 힘을 주고 주먹을 쥐어 보였다.
“나는 아직 한참 부족해.”
처용은 그런 이진호를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진호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정진하는 헌터였다.
대부분의 헌터들은 100레벨이 넘어서면, 기초 훈련을 잘 하지 않았다.
레벨과 마나, 스킬의 숙련도를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이진호는 하루도 빠짐없이 기초 체력 훈련을 하며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지는 이였다.
그게 처용이 이진호라는 헌터를 가장 높게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수련탑으로 와 주십시오.”
처용은 마침 잘 되었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이진호에게 말했다.
***
처용은 수련탑에 모인 이들, 정확히는 커맨더의 파티원들에게 더 성장할 방법을 알려 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 방법 중 하나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육체의 단련?”
커맨더가 의문이라는 듯 말하자 처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우선 이진호 헌터를 보시죠.”
처용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이진호에게 쏠렸다.
이진호가 좌우를 둘러보며 당황할 때.
“모두 레벨이 정체될 때, 이진호 헌터만 레벨이 올랐습니다. 왜일까요?”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커맨더는 이계던전에서 S급 몬스터를 사냥해도 레벨이 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진호는 찔끔찔끔 레벨이 올랐었다.
모두가 레벨이 오르지 못하고 정체될 때, 이진호만 조금씩 레벨이 오른 것이다.
“설마…… 기초 훈련을 했다고.”
다른 이들과 이진호의 차이점을 생각하던 커맨더가 짐작하듯 말하자.
“맞습니다. 정확히는 육체 단련을 ‘꾸준히’ 했죠.”
처용이 커맨더를 향해 말했다.
“보통 레벨이 오르면 스텟이 상승하잖아요? 근데 스텟이 오르면 레벨이 상승? 모르겠네요…….”
샬롯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드리죠.”
처용이 오른손을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스킬, 마나, 레벨. 헌터에게 있어서 중요하지 않은 건 없습니다. 다만.”
잠시 처용의 말이 멈추자.
-화륵! 슈르르! 쩌저적! 파지직…….
그의 오른손 위에 작은 속성 마나들이 모여 개성을 나타냈다.
불, 물, 얼음, 번개, 바람 등.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자연부의 능력을 손 위로 나타냈다.
그리고.
“헌터에게 있어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육체입니다.”
처용이 속성 마나를 이용해 여러 형상을 만들며 설명을 이었다.
“모든 힘은 육체에서 나옵니다.”
헌터는 육체를 움직여 스킬을 사용하고, 스킬을 사용하는 에너지인 마나도 육체에 담는다.
육체가 강할수록 더 정순하고 많은 마나를 담을 수 있고 그만큼 스킬이 더 강해지기 때문이었다.
“레벨이 정체되는 이유는 육체가 더 이상 에너지를 담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처용의 말이 끝나자.
“한처용 헌터의 말은 사실이야.”
이야기를 듣던 백호가 처용의 말에 힘을 보탰다.
“저 친구 말대로 꾸준히 하니까…… 레벨이 올랐어.”
“정말인가요?”
백호가 작은 웃음을 지으며 한 말에 커맨더가 놀란 듯 되물었다.
그러자.
“맞아요! 저 역시 처용 씨 덕분에 100레벨에 닿을 수 있었어요.”
백호 옆에 있던 현아가 사실이라는 듯 강하게 말했다.
그녀는 처용이 지시한 대로 쭉 따라온 결과, 99레벨을 돌파할 수 있었다.
비단 그녀 뿐만이 아니었다.
백호가 이끄는 협회의 정예들 중 99레벨의 벽에 막혔던 이들이 하나 둘 A급에 도달하고 있었다.
추가로.
“저도 벌써 99레벨입니다.”
창을 움켜쥔 젊은 남성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그는 협회의 정예에 막내로 들어왔던 헌터.
바로 처용과 튜토리얼에서 마주했었던 김정훈이었다.
김정훈은 각성한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99레벨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가 가진 재능과 헌터로서의 열정, 그리고 처용의 맞춤형 수련이 합쳐진 결과였다.
“물론, 단순 육체 단련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처용이 작은 웃음을 보이며 추가로 이것저것 설명했다.
그러자.
“대가는?”
커맨더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이런 건 어디서 억만금을 줘도 얻을 수 없어, 이 가치가-.”
“대악마가 또 나타난다면!”
처용이 커맨더의 말을 자르고 진지하게 말했다.
“좌절하지 말고 맞서 싸워 주십시오. 이게 대가입니다.”
“…….”
처용의 말에 모두 디아블로가 생각난 듯 침묵했다.
그때.
“맹세하지!”
이진호가 주먹을 쥐어 보이며 열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다음에 그 불덩이 자식이 나타나면! 내가 조각 조각내서 맥반석으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처용은 대악마를 마주하고도 굴하지 않는 의지를 보인 이진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하하, 기대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진호가 호기롭게 선언한 덕분인지.
“나 역시 마찬가지야.”
커맨더를 포함한 다른 이들도 웃음을 지으며 대악마에 맞설 것을 약속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