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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161화 (161/726)

#161화

처용은 현장 수습을 커맨더에게 맡긴 채 성지, 태룡사에 돌아가기로 했다.

-이곳은 나랑 성자한테 맡겨.

커맨더가 자처해서 현장을 수습하겠다고 말했었으니까.

처용 역시 그게 낫다고 판단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헌터 둘이 현장을 수습하는 이상 문제는 없을 테니까.

그리고 교단의 헌터들은 빛의 신의 교리를 따르는 이들.

처용이 이종족들을 데리고 현장에 있어 봐야 좋을 건 없었다.

그들과 마찰이 있기도 했었고…….

성자 역시 커맨더와 같은 생각인지 교단의 헌터들을 지휘하며 현장을 수습하고 있었다.

처용은 현장을 수습하는 커맨더를 위해 가지고 있던, 남은 속성석을 모두 건네주었다.

이번 싸움으로 마키나의 에너지를 많이 소모했을 테니까.

처용이 돌아가려는 때.

“추후, 제가 성지로 찾아가도 되겠습니까?”

성자가 처용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처용은 성자를 보며 잠시 침묵하고는.

“……오려거든 혼자 오십시오.”

진지하게 대답했다.

“당신은 몰라도 다른 이들은 믿을 수 없으니까.”

처용이 말하는 ‘다른 이들’은 교단의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들이 이종족들과 같이 생활하는 처용의 성지를 좋게 볼 리가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교단의 헌터들 중 또 누가 배신자 측에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그런 이들을 손님으로 받고 싶지도 않았다.

“알겠습니다. 후에 제가 직접 찾아가죠.”

처용의 말을 알아들은 성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제 말 명심하십시오. 성자.”

처용은 돌아가기 전 성자를 잠시 바라보고는.

“교단의 모두가 당신을…… 야훼를 따르지는 않는다는 걸.”

진지하게 경고를 전했다.

그가 이 경고를 진지하게 듣는다면, 회귀 전과 같은 비극을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그의 여동생인 성녀도 마찬가지였다.

교단을 이끄는 성자의 입장에서 처용의 말은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지만.

“명심하죠.”

성자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처용에게 말했다.

처용을 마주한 건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려 대악마를 상대로 함께 싸우며 느낀 것이 있었으니까.

성자의 말을 들은 처용은 마지막으로 커맨더를 찾았다.

“혹시 이 근처에서…….”

처용이 커맨더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자.

“알았어, 그 정도야 아무 문제없지.”

커맨더는 처용의 말에 흔쾌히 대답했다.

처용은 커맨더의 대답을 듣고는 곧장 성지로 돌아갔다.

***

[고생 많았구나. 제자야.]

성지로 돌아오자 여래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처용을 반겼다.

“이번엔……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스승님.”

처용은 진심이라는 듯 진지하게 말하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구출된 이종족들은 모두 처용의 성지에 자리 잡은 세계수 쪽에 모여 있었다.

그들을 아타와 엘프들이 돌보고 있었다.

쿠루타는 테시아, 그리고 세계수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연화는 어디로 갔나요?”

주변을 둘러보던 처용이 보이지 않는 연화에 대해 물었다.

[……이번 일로 느낀 것이 많은 것 같더구나.]

여래가 조금 전 이 장소에 있었던 연화를 생각하며 말했다.

그녀는 동생이 대악마를 상대로 맞서 싸울 때,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한 것을 분하게 여겼다.

동시에 중요할 때 힘이 되어주지 못한 이유 역시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자신이 약하기 때문이었으니까.

[곧장 해전무신을 만나러 수련탑으로 향하더구나.]

100레벨을 돌파했고 S급 헌터가 되어 마음이 풀어졌다는 등.

연화는 자신을 탓하며 더욱 굳게 마음을 다잡은 듯 보였다.

“연화답네요.”

여래의 말을 들은 처용은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연화에게 있어서 나쁘지 않은 현상이었다.

대악마, 그것도 삼천마 중 하나인 디아블로를 마주하고도 살아남았다.

그 거대한 힘에 마음이 꺾일 만도 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다잡고 더욱 단련할 의지를 불태웠다.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살아남을 수 있는 헌터에게 있어서 아주 좋은 태도였다.

“이번에 제 안에 자리 잡은 파편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처용은 여래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를 이야기했다.

위기의 순간 자신을 잠식했었던 무언가, 죄악의 파편에 대해.

[나 역시 감지할 수 있었다.]

여래가 처용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처용이 강림을 사용한 덕분에 여래는 처용과 보다 긴밀히 연결된 상태였었다.

그 덕분에 처용의 내면에 자리 잡은 죄악의 파편이 모습을 드러낼 때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 이것을 명확하게 알아볼-.”

[우선 쉬어라, 너무나도 큰 싸움이 막 끝났으니까.]

여래는 처용의 말을 자르고 우선 휴식할 것을 권했다.

그리고.

[네가 가져온 것들 덕분에 마수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놈들의 창고에서 털어온 것들이요?”

처용이 여래의 말에서 ‘마수’라는 단어를 듣고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래.]

여래가 처용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더 알아낸 것이 있다면 곧장 알려주마.]

“알겠습니다. 스승님.”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여래가 태룡전으로 돌아간 듯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은 발을 돌려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처용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산신각이었다.

태룡사가 성지로 변한 이후에도 산신각을 찾는 이는 드물었으니까.

처용의 발걸음이 산신각 중앙에서 멈추자.

“징벌의 선고.”

스스로를 징벌의 영역에 가두었다.

그리고.

“대화 좀 하지.”

누군가를 향해 말하듯 처용이 입을 얼어 말했다.

정확히는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은 무언가를 향해.

그러나.

“…….”

들려오는 대답이 없었다.

처용은 인상을 찌푸리고는.

-쿵!

육체에 신력을 순환시키며 심장 부근을 자극했다.

“이야기 좀 하자니까!”

처용이 진지하게 말하며 심장 부근을 다시 한 번 자극하자.

-쿠구구!

“커헉!?”

육체에 강한 반동과 고통이 전해져 처용이 심장 부근을 부여잡았다.

마치…… 대화를 거세게 거부하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화아아…….

처용이 발동한 징벌의 선고가 강제로 풀렸다.

“……이것 봐라?”

표정을 구긴 처용이 다시 한 번 징벌의 선고를 발동하여 놈을 끌어낼까 하다가.

‘나중에 보자, 이 자식.’

우선 휴식이 먼저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번에 근원을 직접 느끼며 알아낸 것이 있었다.

때문에 다시 녀석과 마주할 때는 이렇게 끌려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처용이 산신각에서 나와 다시 세계수가 있는 곳으로 가자.

“오셨군요.”

테시아가 처용을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돌아가시는 겁니까?”

주변을 둘러보고 상황을 파악한 처용이 테시아에게 말했다.

몇몇 엘프들이 다른 이종족들과 함께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고맙다. 친구.”

쿠루타가 처용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오크는 친구를 잊지 않을 것이다.”

오른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쿠루타가 말하자, 뒤에 있는 오크들도 따라서 가슴을 두드렸다.

오크들에게 있어 다짐, 혹은 맹세와 같은 행동이었다.

“부족으로 돌아가는 건가?”

“서둘러 장로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하니까.”

처용의 말에 쿠루타가 주먹을 불끈 쥐며 대답했다.

“그렇군.”

처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쿠루타와 오크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솔직히, 쿠루타가 성지에 더 머물렀으면 했지만, 그는 오크들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인물이었다.

“이걸 가져가라.”

처용은 쿠루타와 다른 오크들을 위해 작은 선물을 건넸다.

“이게 뭔가?”

쿠루타가 처용에게서 받은 상자를 보며 말했다.

“도시락이다.”

처용이 오크들에게 건넨 것은 치킨 박스였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거 아냐?”

미소를 지으며 처용이 건네는 말에.

“그렇군…….”

쿠루타가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오는 치킨 박스를 쥐며 말했다.

도시락을 건네는 처용에게서 자신과 오크들을 위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장담하지, 네가 먹었던 그 무엇보다도 맛있을 거다.”

“정말…… 고맙군.”

처용이 쿠루타의 감사에 미소를 짓고는 오른손 주먹을 앞으로 내밀었다.

“화산의 가호가 함께 하길, 친구.”

쿠루타는 처용의 인사말에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처용이 건네는 인사는 절친한 전사들이 헤어질 때 하는 오크들의 인사말이었다.

“불카의 가호가 함께 하길. 친구!”

-탁!

쿠루타는 처용을 향해 마주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맞부딪혔다.

이윽고 세계수의 가지가 열리며 다른 곳과 이어지는 통로가 열렸다.

쿠루타와 오크들이 통로로 들어가자.

“아, 여러분들도 이거 받으시죠.”

처용은 테시아와 엘프들에게도 무언가를 건넸다.

“도와주신 답례라고 하기에는 좀 작지만요.”

처용이 내민 것은, 손에 착 감기는 크기의, 종이로 포장된 무언가가 가득 담긴 상자였다.

“이것도 도시락인가요?”

테시아가 처용이 내민 것을 알아보고 질문하자.

“엘프의 특성은 잘 알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처용이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엘프들에게 내민 것은 유기농 야채로 만들어진 샌드위치였다.

바로 윤아의 아버지, 제석의 기업에서 만든 제품이었다.

처용이 성지에 엘프들이 올 것을 생각해서 성지에 들인 업체 중 하나에서 나온 음식.

엘프들의 습성을 잘 알고 있는 처용이 직접 하나하나 확인했었기에 문제는 일절 없었다.

“감사합니다.”

테시아가 처용에게 감사를 전하며 선물을 받아들였다.

하이 엘프의 코와 감각으로 봐서, 처용이 내민 선물은 정말로 문제가 없었으니까.

“저희 엘프들도 오늘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테시아가 처용에게 감사를 전하고는 세계수가 만든 통로로 휘하 엘프들을 이끌고 들어갔다.

그렇게 대부분의 이종족들이 돌아가고 남은 이들이 있었다.

자원을 받아 성지에서 생활하게 된 소수의 엘프들.

그리고 이번에 구출된 이종족들 중 일부였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처용이 남은 이종족들을 보며 묻자.

“저, 저희는 돌아갈 곳이 없어요…….”

구출된 이종족 중 하나인 인어, 그들의 대표가 나와 말했다.

이종족들은 엘프들과 오크들처럼 거대한 하나의 집단으로 생활하기도 했지만.

소수로 모여 생활하는, 소수부족 형태로 지내는 경우도 많았다.

눈앞의 인어들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외진 터전에 소수가 모여 생활하는 이종족들이었다.

마인들은 숨어 사는 이종족들의 터전을 찾아내 불태우고 그들을 실험체로서 잡아간 것이었다.

이러한 사정을 가진 이들은 인어만이 아니었다.

동물의 특징을 지닌 수인족.

새의 특징을 지닌 조인(鳥人)들과 고양이의 특징을 지닌 묘인(猫人) 등.

그 외 정말 보기 드문 이종족인 라미아와 아라크네 등.

모두 인어들처럼 소수가 모여서 생활하는 이들이었다.

“여러분들을 본래 살던 것으로 보내드리고 싶지만, 다시 붙잡힐 가능성이 있습니다.”

처용이 이종족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능하면 그들을 원래 살던 것으로 보내주고 싶었다.

그러나 마인들에게 다시 붙잡힐 가능성이 높았다.

“이곳에서 지낼 수는…… 없는 건가요?”

인어가 간절함을 담아 말했다.

자연의 신성함이 가득한 성지.

이곳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고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장소에서 함부로 거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질문을 한 인어의 지느러미가 점점 축 처지며 내려가고 있을 때.

“조건이 있습니다.”

처용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속으로는 누군가가 눈앞의 인어처럼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 대가 없이 보호받는 것은 저희도 원하지 않습니다.”

인어의 말에 다른 이종족들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태룡사에는 여러 종족이 살아가는 만큼, 서로 지켜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

처용은 이종족들에게 간단하게 성지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자세한 건 아타가 이야기해 줄 겁니다. 오늘은 쉬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은인이시여.”

인어가 처용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전하자, 다른 이들도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처용은 아타에게 다른 이종족들을 맡긴 후, 안식전으로 향했다.

크게 무리를 한 만큼, 피로가 몰려오고 있었으니까.

현장을 수습하는 커맨더에게서 따로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쉴 생각이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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