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디아블로의 화신체를 마무리한 결과.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
.
레벨이 올랐다는 알림이 줄지어 울리고 있었다.
이윽고 시스템의 알람이 끝나자.
[레벨 : 158]
130대 초반이었던 레벨이 순식간에 150레벨 후반대로 풀쩍 뛰었다.
30레벨 가까이 상승한 셈.
본래, 디아블로의 화신체는 200레벨이 넘는 헌터들이 무더기로 덤벼야 상대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나마 시스템의 제약과 불완전한 소환 의식으로 인해 많이 약해진 것이 다행이었다.
거기에 지금 시기에 가장 강한 헌터인 커맨더와 성자가 함께 있었다.
그들의 없었더라면…….
아니, 마지막에 디아블로의 투기장에 난입한 쿠루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분명 모두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순수한 악의 근원…….’
하나하나의 기연과 행운을 생각하던 처용의 머릿속에 자신을 잠식했던 존재가 생각났다.
동시에 디아블로가 사라지기 전 했었던 말이 떠올랐다.
-바알! 네놈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겠구나!
디아블로의 말투와 분위기로 봤을 때.
-네놈 역시 불완전하다! 크타니드!
그 말은 악의 종주와 바알을 향한 조롱처럼 느껴졌다.
‘삼천마 모두가 크타니드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아닌가?’
회귀 전에도 종종 느꼈던 생각이었지만.
그 당시는 대악마들과의 전쟁이 격렬하던 시기였기에 더 깊이 알아낼 수가 없었다.
처용이 악의 종주와 삼천마에 대해 생각할 때.
[잃어버린 스테이터스를 일부 회복합니다.]
추가적으로 시스템이 울렸다.
레벨 상승으로 인해 잃어버린 능력치를 일부 회복한 것이었다.
그리고.
[강기(罡氣)가 재생성 됩니다.]
잃어버렸던 경지 중 하나를 되찾았다.
그 덕분에.
[선인의 육체가 크게 성장합니다.]
[자연신공(自然神功)이 재생성 됩니다.]
[강기를 보다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주력 기술들을 되찾았다.
검기는 무기에 마나를 실어 위력을 높이는, 마나를 보다 정교하게 다루는 경지였다.
그러나 강기는 마나를 정교하고 자유롭게 다루는 것을 넘어서.
마나 자체에 자신의 의지(意志)를 담아내는 경지였다.
예를 들면, 마나가 마치 폭발하는 화산처럼 검붉은 색으로 분출하는 전사.
화산의 오크 쿠루타가 바로 강기의 경지에 닿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의지의 힘이 담긴 마나는.
신성력과 마기에도 능히 맞서 싸울 수 있었다.
나아가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한다면 신의 신력과 대악마의 마기에도 맞설 수 있었다.
인간이 신(神)에 맞설 수 있는 방법.
첫 번째는 시스템을 통해 성장한, 헌터들의 필살기라고 할 수 있는 스킬, 결전기(決戰技).
두 번째 방법이 바로 강기의 경지였다.
‘그보다도…….’
처용은 되찾은 경지는 태룡전에 돌아가면 알아보기로 생각했다.
바로 디아블로가 사라지며 남긴 아티팩트 때문이었다.
3미터가 조금 안 되는 크기인 양날 도끼.
양쪽에 박혀 있는 붉은 도끼날이 서로 이어진 듯 보이는 둥근 형태.
겉모습은 디아블로가 드레이크의 모습일 때 휘둘렀던 양날 도끼와 비슷했다.
처용이 바닥에 떨어진 양날 도끼를 집어 들며 세로로 세웠다.
-철컥! 쿠쿵!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짐과 동시에 아티팩트 안에서 강렬한 파괴력이 느껴졌다.
처용이 양날 도끼를 어깨에 걸치고 자세히 살피려는 때.
“괜찮은 거야!?”
커맨더가 처용에게 말을 건네며 다가왔고 뒤이어 다른 이들도 다가왔다.
“후, 다행히…… 살아남았네요.”
처용이 짧은 한숨을 내쉬고 옅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레벨이 크게 오른 덕분인지 육체의 재생력이 빨라졌다.
자잘한 상처들은 이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아물고 있었지만…….
“크! 커헉!”
돌연, 처용이 허리를 크게 꺾으며 피를 쏟아냈다.
그 모습에 커맨더와 연화의 얼굴에 큰 걱정이 어리자, 처용이 손을 들어 올리며 괜찮음을 표현했다.
‘……무리를 하긴 했네.’
처용이 자비의 손길을 자신에게 사용하며 육체를 진정시켰다.
보살의 권능에 자가 회복 능력으로 육체가 회복되고는 있었지만, 손발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당분간은 쉬어야겠군.’
항마의 화신에 이어 여래의 화신체를 받아들이는 강림까지 사용했으니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디아블로의 강림.
그와의 싸움은 목숨을 건 도박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에 가한 최후의 일격.
여래의 화신체를 받아들인 상태에서 충분히 막을 수 있으리라 판단했지만, 오산이었다.
심지어 디아블로는 온전하게 강림하지도 못한 상태.
그런 완전하지 못한 디아블로의 화신체를 상대로 처절한 싸움을 벌였다.
커맨더, 성자, 쿠루타,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을 잠식한 무언가까지.
이 중 하나의 기연이 없었더라면.
아니, 운이 조금이라도 없었더라면 모두 죽었을 것이다.
처용은 디아블로의 화신체를 가까스로 쓰러뜨린 이 상황을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처용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동의한다는 듯 침묵했다.
동시에 대악마가 얼마나 위험하고 두려운 존재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그때.
“우워-!”
-콰콰쾅!
조금 떨어진 곳에서 쿠루타가 잔해를 치우며 몸을 일으켰다.
“놈은!? 녀석은 어디로 갔나!”
쿠루타는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자마자 디아블로를 찾았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은.
“고맙다. 전사 쿠루타.”
쿠루타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네가 아니었으면, 우리 모두 죽었을 거야.”
“……은혜를 갚았을 뿐이다.”
쿠루타가 처용의 말을 듣고 그의 손을 잡으며 일어났다.
“전사여.”
처용은 쿠루타가 마지막에 한 말을 듣고 씨익 웃음을 지었다.
그가 상대방을 향해 ‘전사’라고 말한 것은 그 상대를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그건?”
쿠루타가 처용이 왼쪽 어깨에 걸치고 있는 도끼를 보며 말하자.
“전리품이지.”
처용이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리품? 던전이 아닌데도?”
커맨더가 처용의 말을 알아듣고는 의문을 담아 말했다.
던전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면 극악한 확률로 나타나는 아티팩트인 유물.
처용이 들고 있는 도끼는 유물이었다.
“그놈은 몬스터가 아니잖아?”
“시스템의 보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커맨더의 의문에 처용이 대답하며 도끼를 바라보았다.
“디아블로의 화신체가 사라지고 나타난 것이니, 유물이 맞습니다.”
[공포의 차륜 도끼 / 아티팩트]
[등급 : 레전더리]
[대악마의 힘이 담겨 있습니다.]
[강력한 흑염(黑炎) 속성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대악마의 인정을 받은 자만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공포의 오라 사용 가능.
-차륜격 사용 가능.
처용이 차륜 도끼를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시스템의 보상이라고 해도, 디아블로의 힘이 일부분 담긴 아티팩트가 그냥 드랍될 리가 없었다.
분명, 디아블로가 사라지며 고의적으로 자신의 힘을 남겼을 가능성이 높았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디아블로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정말 고의적으로 자신의 힘을 남겼는지도 불분명한 상황.
그러나, 손에 쥔 도끼가 강력한 아티팩트이니 만큼 유용하게 활용할 생각이었다.
그때.
“그 도끼를 교단에 넘기십시오. 한처용 헌터!”
교단의 성기사 단장, 안드레아가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대악마의 힘이 담긴 위험한 물건입니다. 교단에 넘기십시오!”
안드레아의 말에 처용이 피식 웃고는.
“싫은데?”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빛의 교리에 따라 그 물건을 봉인하겠다! 당장 그 무기를-!”
처용의 말에 안드레아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나한테.”
-쾅!!
처용이 도끼를 들어 땅을 내리찍고는.
“야훼가 만든 교리를 들먹이지 마라.”
싸늘한 눈빛으로 살기를 담아 대답했다.
“감히! 신의 존함을 함부로!”
안드레아도 물러설 수 없다는 듯 긴장감을 담아 말했다.
다른 교단의 헌터들 역시 안드레아의 옆에 서며 처용을 경계했다.
그때.
“모두 그만두십시오!”
성자가 처용과 안드레아 사이에 서며 크게 외쳤다.
“대악마와의 싸움이 막 끝났습니다. 왜 싸움을 일으킵니까!”
“대악마의 힘이 담긴 위험한 물건입니다. 당연히 교단에서 보관해야-!”
안드레아는 성자의 말에도 물러설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대악마의 힘을 직접 경험한 결과 그 힘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다.
그런 위험한 힘이 담긴 아티팩트를 개인의 손에 맡길 수 없었다.
안드레아의 말이 끝나자.
“크크, 멍청한 새끼.”
처용이 안드레아를 싸늘하게 노려보는 비웃음을 담아 말했다.
“네놈들이 가져가서 배신자들 손에 이걸 쥐어 주게?”
처용의 말에 성자와 커맨더의 표정이 굳었다.
뒤이어 다른 이들의 표정 또한 일그러졌다.
“감히 빛의 교단을…!”
-스릉!
처용의 말을 알아들은 안드레아가 검을 뽑으며 분노를 드러냈다.
“멈추라고 했습니다! 안드레아!”
그 모습을 본 성자가 안드레아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안드레아를 말린 성자를 본 처용이 입을 열었다.
“교단 본부 한복판에서 게이트가 열렸어, 그것도 마인들의 아지트와 이어지는!”
“…….”
처용의 말에 성자가 침묵했다.
“과연 마인들이 스스로 이루어낸 일이었을까?”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습니다.”
성자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교단 본부 한복판에서 게이트가 열리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있을 수 없는데…….”
“내부에 누군가가 개짓거리를 하지 않는 한 말이야.”
처용이 성자가 하고자 하는 말을 대신 이어서 말했다.
교단 내부에 숨어있는 배신자가 누구인지도 짐작, 아니 확신하고 있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미안합니다. 한처용 헌터. 그리고.”
성자가 처용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저희를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처용에게 감사를 전했다.
“성자의 이름을 걸고 오늘 도움을 받은 일은 잊지 않겠습니다.”
“뒤에 계신 양반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성자?”
처용이 성자의 뒤에 있는 교단의 헌터들을 노려보며 말하자.
“미안합니다.”
성자가 재차 미안하다고 사과를 건넸다.
그리고.
“당신들은 한처용 헌터한테 뭘 요구할 자격이 없어.”
커맨더가 교단의 헌터들을 향해 말했다.
“후배가 목숨을 걸고 대악마와 정면으로 싸워준 덕분에 목숨을 건진 건 모르나?”
그 말에 안드레아가 표정을 구기며 고개를 숙였다.
커맨더의 말이 맞았으니까.
“우선 현장 수습부터 하고, 추후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합시다. 성자.”
“알겠습니다. 커맨더.”
커맨더가 상황을 정리하자 성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모두가 상황을 정리할 때, 처용은 폐허가 되어버린 주변을 살펴보았다.
마인들의 아지트가 아닌 지상에 세워진 듯 보인 건물의 잔해가 보였다.
바로, 루나에게서 전해 들었던, 천교의 사람들이 머무르던 건물.
그러나 폐허가 되어버린 건물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튀었군.’
예상으로는 이곳에 문제가 발생한 것을 감지하고 흔적을 지운 후 도망간 듯 보였다.
천교는 이곳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았다.
대충 조사를 마친 처용은 테시아와 연화 등을 성지로 돌려보냈다.
그때.
“내가 구한 이들이 밑에 있다. 그들을 찾아야 한다.”
쿠루타가 처용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가지.”
처용은 곧장 대답하고는 쿠루타를 따라갔다.
쿠루타가 무너진 잔해를 거침없이 치우며 나아갔다.
마치, 굴착기처럼 땅을 쭉 파내며 나아가는 쿠루타를 처용이 뒤따랐다.
그러자.
-치이이!
용암에 가로막힌 벽이 나타났다.
쿠루타가 그 용암에 오른손을 대자.
-스르르.
용암의 벽이 쿠루타의 손에 빨려 들어왔다.
벽이 사라지자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리고.
-쿠루타가 돌아왔다.
동공 내부에 있던 이종족들이 쿠루타를 보며 안도를 표했다.
“용케 무너지지 않았네.”
“놈들이 중요한 것을 보관하는 창고로 쓴 것 같았다.”
쿠루타의 말에 처용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견고한 외벽에 둘러싸인 창고 안에는 각종 병장기와 약물, 여러 약재가 나열되어 있었다.
“내가 해방되고 나서…….”
쿠루타가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처용에게 구해지고 난 쿠루타는 다른 이종족들을 구하고 그들을 이끌었다.
모두 구출하고 처용에게 향하려는 때, 디아블로가 소환되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급하게 견고해 보이는 창고에 이종족들을 대피시키고 그 폭발을 몸으로 막아내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쿠루타는 창고 입구를 용암으로 막고 무너진 땅을 뚫으며 지상으로 향했다.
쿠루타가 들고 있던 검은 기둥, 신을 묶는 묘는 오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다.
“우선, 다들 여길 나가시죠.”
처용은 게이트를 열고 쿠루타가 구한 이종족들을 성지로 인도했다.
추가로.
‘아타, 일개미들을 보내서 여기 있는 물건들 모두 보물전으로 옮겨.’
일개미들을 불러내어 창고 안에 있는 물건들을 모두 보물전으로 옮겼다.
마지막 구출 작업과 창고 털이(?)가 진행 중일 때.
“우리, 오크들의 말은 어떻게 아는 건가?”
쿠루타가 처용에게 궁금한 듯 물었다.
“친구에게서 배웠지.”
처용이 작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신이 말하는 그 친구가 바로 눈앞에 있는 쿠루타였으니까.
“그 친구는 오크인가?”
“맞아.”
“우리들의 언어와 문화를 알려준 걸 보면 정말 친했었나 보군.”
쿠루타가 처용을 보며 말했다.
오크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기술을 다른 이종족들에게 잘 알리려 하지 않았다.
같은 ‘전사’로서 인정받은 이들만이 서로의 기술을 공유했으니까.
“그 전사를 만나볼 수 있나?”
“만날 수 없어.”
쿠루타의 말에 처용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대악마의 손에…… 죽었거든.”
회귀 전, 쿠루타는 바알이 처용을 죽이기 위해 가한 회심의 일격을 대신 맞고 죽었다.
“……그런가? 유감이군.”
처용의 말에 쿠루타가 진심으로 유감이라는 듯 말했다.
“전사 한처용, 아니.”
쿠루타가 처용을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친구.”
처용은 쿠루타가 자신을 향해 말한 ‘친구’라는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친구에게 받은 은혜는 전사 쿠루타의 가슴에 새길 것이다.”
쿠루타가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강하게 말했다.
그리고.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달려갈 것이다. 친구.”
처용을 향해 오른손 주먹을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이 환한 미소를 짓고는.
“정말 든든하네.”
-탁!
“친구.”
쿠루타의 주먹에 자신의 주먹을 맞부딪치며 말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