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154화 (154/726)

#154화

한참, 마수 실험장이 난리가 났을 무렵.

“야! 성자 떴어! 당장 도망쳐야 해!”

“성자만이 아니야 커맨더까지……!”

극비 격리실에 있는 마인들도 소식을 듣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우린 도망쳐도 죄 없어! 극비 격리실 메뉴얼대로 했을 뿐이니까!”

“실험체들은?”

“……메뉴얼 대로라면 전부 폐기하고 도망가야지.”

마지막 마인의 말에 모두가 격리실 중앙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검은 기둥에 묶여있는 오크, 쿠루타를 향했다.

“……저건, 우리가 어쩔 수 없으니, 나머지만 죽이고 여길 뜨자고.”

“떨어져 있어도 조심해라, 언제 불덩이라 날아올지 모르니까.”

마인들이 쿠루타를 경계하며 모두 감옥으로 내려갔다.

“수감된 오크들을 모두 죽이고 여길 뜬다!”

마인들 중 하나가 외치자.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

그 말을 들은 쿠루타가 분노를 내뿜으며 오른쪽 발을 들어 올리고는.

-쿠쿠쿵!!

땅을 강하게 밟았다.

-쩌저적!

쿠루타가 밟은 땅을 중심으로 지면에 붉은 균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나! 화산의 수호자를 쓰러뜨리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손댈 수 없다!!”

그 모습을 본 마인들의 얼굴에 낭패감이 일렁였다.

“이런!”

“하필이면…… 이딴 패턴을!”

마인들은 그간 쿠루타를 억압하고 있었던 이들이기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쿠루타가 사용한 기술은 화산의 오크만이 사용할 수 있는 ‘화산의 수호자’라는 기술.

마인들은 쿠루타의 정확한 능력을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 알아낸 사실이 있었다.

지면에 붉은 균열이 일렁이는 동안, 다른 오크를 공격하면 불길에 휘감긴다는 것.

물론, 파훼법을 찾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아닌, 저주나 속박, 정신 계열 공격을 하면 불길에 공격받지 않았다.

두 명의 마인이 희생되고 나서야 겨우 알아낸 사실이었다.

그것을 알아낸 뒤로는 다른 오크를 지배하여 같은 오크를 죽이게 한다거나.

혹은 오크들의 정신을 붕괴시켜 쿠루타의 앞에서 자해하도록 만들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오크들의 사체는 모두 마인들이 화풀이한 흔적이었다.

“시간도 없는데 이딴 짓을!”

마인들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각각 저주 계열 스킬을 시전했다.

-크아아!

-커허……!

외벽 감옥에 갇혀있는 오크들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이 돼지들이 고통받는 건.”

마인 하나가 쿠루타를 향해 비웃었다.

“모두 네놈 때문이다. 크크.”

“네놈들이 감히!!”

-철크럭!! 우드드!!

쿠루타가 노성을 지르며 몸에 힘을 주었다.

당장이라도 사슬을 끊고 마인들을 죽이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여전히 사슬을 풀 다른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보통 물건이 아닌지 계속 힘이 빠지고 있었다.

그저 저주에 저항하고 놈들에게 굴복하지 않게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굴하지 마라! 화산의 오크여!

-오크의 의지는 꺾이지 않는다!

몇몇 오크들이 힘줄이 불거진 상태로 철창을 부여잡으며 울부짖었다.

“지배가 끝나면 서로 죽이게 만들고 여길 뜬다.”

마인 하나가 저주에 힘을 더 쏟으며 말하자, 나머지 마인들이 그를 따라 작업을 서둘렀다.

-커허허…….

-으어…….

버티고 있던 오크들이 하나둘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눈과 코, 입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지는 오크들을 쿠루타가 참담한 심정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네놈들을 멸절시킬 것이다!!”

분노가 가득 일렁이는 표정으로 마인들을 향해 노성을 질렀다.

“모든 오크가 멸족하고 나 혼자만이 남는다 해도-!”

쿠루타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분노를 내지를 때.

“그럴 리는 없어.”

의문의 음성과 함께 마인들 사이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뭔-!”

마인들이 그를 눈치채고 의문을 표하는 순간.

-사악! 스가악!

날카로운 칼날이 크게 두 번 휘둘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푸확! 푸화악!

마인들을 의문을 모두 내뱉지 못한 채 이등분, 삼등분이 되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늦진 않았네.”

순식간에 마인들을 도륙 낸 처용이 쿠루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인간……?”

쿠루타가 처용을 향해 의문을 내뱉었다.

그때.

“움직이지 마라.”

처용이 발도 자세를 취함과 동시에.

“명환부-광휘의 절(切).”

명환부 다섯 장을 도신에 붙였다.

-화아아!

어둠을 끊어내는 빛의 힘이 인첸트되자 도신이 눈부시게 빛났다.

타오르던 빛이 점점 뭉쳐 들었고 도신에 날카롭게 압축된 순간!

“검의 비명!”

처용의 화염의 절을 뽑아 크게 휘둘렀다.

-우우웅! 촤자자작!!

명환부의 힘이 부여되어 하얗게 타오르는 처용의 검기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중 가장 많이 쇄도한 곳은 바로 쿠루타.

정확히는 쿠루타를 구속하고 있는 검은 사슬들이었다.

-사각! 사각! 철크렁!

검기들은 쿠루타를 조금도 상처입히지 않은 채 사슬들을 갈라내었다.

-쿠구구!

쿠루타를 구속하던 검은 기둥이 쓰러짐과 동시에.

-사각! 철컹! 철크렁!

오크들을 가두고 있던 감옥까지 모두 부서졌다.

그리고.

“불카르으으!!”

-우드드득!!

쿠루타가 기합을 지르며 남은 사슬들을 단번에 끊어내며 속박을 풀었다.

‘다행히, 팔팔해 보이네.’

처용이 쿠루타를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을 때.

“네놈은 누구냐!”

쿠루타가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처용을 향해 말했다.

“나를 왜 풀어준 것이냐 인간!”

-쿠구구!!

그의 몸 위에서 붉은색과 검은색이 섞인, 마치 화산과 같은 기운이 솟구쳤다.

처용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고는.

“Bul-ka-r Thra-bu ka-r.”

입을 열어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처용의 입에서 나온 말은 시스템의 번역으로 전달되는 말이 아닌.

바로 오크들이 사용하는 언어였다.

해석하자면, ‘반갑다, 위대한 전사여’라는 의미였다.

“어떻게…… 우리들의 말을?”

쿠루타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른 인간들의 말처럼 머릿속으로 그 해석이 전달되는 것과는 달랐다.

눈앞의 인간이 건넨 말은 머릿속으로 해석되는 것이 아닌.

귀가 먼저 반응하게 되는 너무나도 익숙한 오크들만의 언어였으니까.

처용은 당황하는 쿠루타를 향해 작게 웃음을 짓고는.

“전사의 마음은 정의와 열정으로 불태우고 머리는 차갑고 냉정해야 한다. 아닌가?”

회귀 전, 그가 항상 입에 달고 다녔던 ‘전사들의 마음가짐’ 중 하나를 말했다.

“나는 오크들만이 아닌, 이곳에 갇힌 이종족 전체를 구하러 왔다.”

“…….”

처용은 침묵하는 쿠루타를 보며 재차 미소를 지었다.

“전사는-.”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다.”

처용의 말을 끊은 쿠루타가 처용이 하고자 하는 말을 대신했다.

“전사 쿠루타는! 나와 내 종족들을 도와준 것을 잊지 않겠다.”

-쿵!

쿠루타는 오른손 주먹으로 왼쪽 가슴을 강하게 두드리며 말했다.

그때.

“처용님, 대강 대피는 끝났- 당신은?”

테시아가 처용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다가 쿠루타를 보며 놀란 듯 말했다.

“하얀 나뭇가지?”

쿠루타 역시 테시아를 보고 그녀를 알아본 듯 말했다.

나뭇가지는 오크들이 엘프들을 지칭할 때 주로 쓰는 말이었다.

“누구보고 나뭇가지라고! 아니, 그보다도 왜 당신이 여기에?”

처용은 쿠루타와 테시아를 보고는.

‘아, 둘은 원래 서로 면식이 있었지.’

회귀 전 기억을 떠올렸다.

쿠루타는 테시아의 뒤에서 나타나는 다른 엘프들을 보고.

“……구하러 왔다는 말은 사실이었군.”

처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쿠루타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인들이 오크들은 따로 가둬 놨었습니다.”

처용이 테시아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일단, 응급처치만이라도 해야겠습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오크들을 확인한 처용이 오른손을 뻗었다.

-우우웅!

처용의 손에서 자비의 손길이 뻗어 나가 오크들에게 닿았다.

그러자.

-으윽.

-어떻게?

오크들은 상처를 회복하며 하나둘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리 여길 탈출합니다!”

테시아가 정신을 차린 오크들을 향해 말할 때.

“동족들을 먼저 데려가 다오.”

쿠루타가 테시아와 처용을 향해 말함과 동시에.

-콰쾅!!

오른손 주먹을 강하게 쥐며 바닥을 내리쳤다.

바닥이 무너져 내리며 구멍이 뚫리자.

“여기와 비슷한 곳이 또 있다. 그곳에 갇힌 이들도 구해야 한다!”

쿠루타는 마지막 말을 전하고는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처용은 쿠루타를 곧장 따라갈까 하다가 관두었다.

쿠루타가 걱정되었지만, 그는 웬만한 상급 마인은 상대조차 못 할 정도의 강자였다.

당장 그를 따라가는 것보단, 구출 작업을 마무리하고 따라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 판단했다.

“2층을 계속 사수하고 구출 작업을 마무리합시다.”

“네.”

처용의 말에 테시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오크들을 이끌고 극비 격리실을 빠져나왔을 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누군가의 낮은 음성이 울렸고.

“크윽!”

공격을 받은 듯 보이는 연화가 처용이 있는 쪽으로 크게 물러나며 신음을 토했다.

처용이 정면을 바라보자, 엘프들과 뱀파이어, 연화와 대치하고 있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몇 시간 전 사라졌었던 시노비들이었다.

“잠깐 자리를 비웠더니 아주 난장판이 되어 있군.”

열 명의 시노비 중 가장 중앙에 선 가토가 앞으로 한 걸음 다가오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은.

“우릴 방해할 생각인가? 시노비.”

화염의 절을 뽑아 들고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가토가 처용을 보는 순간.

‘강하다.’

눈을 살짝 찌푸리며 긴장감을 속으로 감추었다.

헌터가 되기 전부터 훈련을 받은 가토는 상대의 기척과 재량을 읽는 감각이 있었다.

처용을 마주하자, 그 감각이 서늘한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방금까지 맞서던 이종족들과 눈앞의 환도를 들고 있는 여자와는 차원이 다른 위험함이 느껴졌다.

빠르게 표정을 감춘 가토는.

“악감정은 없다. 우리는 의뢰를 수행할 뿐.”

허리춤에서 일본도를 뽑아 들고 처용과 대치했다.

그때.

“몰아쳐라!!”

누군가의 강렬함 외침이 들려옴과 동시에.

-휘이이이!!

어디선가 날아온 바람의 칼날들이 시노비들이 자리한 장소를 휩쓸었다.

“풍진막(風塵膜)!”

가토가 도를 빠르게 세 번 휘두르자 시노비들을 보호하는 원형의 바람막이 생성되었다.

-파아아!

바람의 칼날과 가토의 보호 스킬이 서로 충돌하며 사라졌다.

그리고.

“가토 상!!”

누군가가 가토의 이름을 크게 외치며 처용과 가토 사이에 바람처럼 나타났다.

길고 거친 검은 머리를 뒤로 묶은 모습.

콧잔등에 가로로 그어진 상처와 날카로운 눈빛을 지닌 남자.

“어째서! 시노비들이 마인들과 협력하는 겁니까! 가토 상!”

그가 가토를 향해 태도를 겨누고 분노를 토했다.

“야스라…… 결국, 여기까지.”

가토는 자신들을 막은 남자를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읊조렸다.

처용 역시 시노비들을 막아선 남자를 보며 작게 놀란 상태였다.

이곳에서 마주할 줄은 예상도 못 한 사람이었으니까.

[이름 : 무라키 야스라]

[레벨 : 158]

[칭호 : S급, 폭풍신의 신관]

[클래스 : 폭풍의 검객]

[특징 : 넓은 공격 범위를 가진 근접 클래스입니다.]

[스킬 : 바람의 참격, 무라키 검술…….]

무라키 야스라, 일본의 S급 헌터이자 폭풍신 스사노오의 신관.

처용이 야스라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많지 않았지만,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회귀 전, 그는 조국인 일본을 마지막까지 지키려다가 사망했다는 것.

그리고 야스라가 조국을 지키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

그것은 같은 고레벨 헌터인 그의 형에게 배신당했기 때문이었다.

야스라와 시노비들이 대치할 때.

“야스라 오빠!”

붙잡혀 있었던 이종족 중 하나가 야스라를 알아보고 그를 불렀다.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긴 백발과 창백한 얼굴을 한 어린 여자아이.

눈의 일족이라 불리는 이종족, 설녀였다.

“유파?”

야스라 역시 그 설녀의 이름을 부르며 알아보고는.

“……설녀들을 납치하고 마인들에게 넘긴 게 시노비였습니까! 가토 상!!”

가토를 향해 노성을 질렀다.

야스라를 보며 잠시 침묵한 가토는.

“……우리는 임무를 완수한다!”

일본도를 고쳐 잡으며 시노비들을 향해 말했다.

그 순간.

“폭풍을 맞이하라!”

야스라가 태도를 굳게 쥐고는.

-촤아아!

도 끝을 내리며 바닥을 크게 그었다.

그러자.

-휘이이!!

가토와 야스라 사이에 마치 벽처럼 솟구치는 바람이 휘몰아쳤다.

바람의 벽을 세운 야스라는.

“보아하니 이종족들을 구해주는 것 같습니다만, 제 말이 맞습니까?”

뒤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처용이 고개를 끄덕이자.

“시간을 벌어 주겠습니다.”

-스릉!

야스라가 태도를 고쳐 쥐고 정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처용은 그에게 감사를 전하고는.

“서두릅시다!”

뒤의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야스라와 시노비들 간에 복잡한 사정이 있는 듯 보였지만.

당장 중요한 것은 이종족들의 구출.

시노비들에 관한 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판단했다.

나 홀로 계승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