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커맨더가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타이밍이 좋았네.”
집행자의 복면을 벗은 처용이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 처용은 마인들이 만든 차원 균열 장치 근처 그림자에 숨어있었다.
지금 그 차원 균열 장치 위에는 푸른 게이트가 일렁이고 있었다.
원래는 ‘키’가 있어야 작동시킬 수 있는 장치.
마인들은 그 키를 모조리 부숴버렸다고 했지만, 처용은 그들이 말하는 키를 하나 가지고 있었다.
[미완성된 차원 균열 장치 / 아티팩트]
[등급 : 레어]
[차원의 틈을 강제로 찢어 불안정하게 만드는 장치.]
[완성된 아티팩트가 아닙니다.]
[작동 시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지 모릅니다.]
처음 회귀하자마자 무너진 청량리역에서 마주한 마인들.
처용이 가진 아티팩트는 그 마인들을 죽이고 빼앗았던 물건이었다.
사실, 처용이 가진 것은 마인들이 말한 ‘키’가 아니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시제품, 즉 ‘프로토타입 키’였다.
그 당시에는 이것이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조금 전, 마인들이 부순 ‘키’를 직접 확인하자 곧장 파악할 수 있었다.
처용은 부수어진 키의 잔해 중 멀쩡해 보이는 몇몇 부품을 슬쩍했다.
탈취한 부품으로 원래 갖고 있던 장치를 개조하자 온전한 키를 얻을 수 있었다.
[균열을 여는 열쇠 / 아티팩트]
[등급 : 레어+]
[차원의 틈을 강제로 찢어 불안정하게 만드는 장치.]
[‘문’에 작동시키면 게이트를 열 수 있습니다.]
키를 얻은 처용은 곧장 놈들이 미리 설정해 둔 좌표로 게이트를 열었다.
바로 바티칸의 중심, 교단 본부.
처용은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곧장 몸을 던졌다.
조금 전, 교단 본부에서 날뛰던 집행자는 진짜 집행자가 아닌, 처용이었다.
‘계획대로 되었으면 좋겠는데.’
처용이 머릿속으로 계획을 정리하며 차원 균열 발생 장치에서 멀어졌다.
차원 균열 장치 위에 게이트가 열려 있음에도 마인들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그들은 지금…….
-마수들은 왜 갑자기 풀려난 거야!
-야 거기 막아! 그거 박살나면 다 망하는 거야!
-망할! 일단 몬스터들부터 막아!
너무나도 바빴으니까.
특히, 마인들이 만들어낸 마수들은 그 힘이 강력한 만큼, 마인들을 애먹이고 있었다.
그리고.
-몬스터는 몰라도 마수는 절대로 죽이지 마라!
소장이 마수를 상대하는 마인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마수는 마인들의 소중한 실험체이니만큼, 함부로 죽이기에는 아까운 듯 보였다.
그 증거로 소장과 오거를 포함한 A급 마인들이 직접 나서서 마수를 제압하고 있었다.
마수들이 최대한 다치지 않게 제압해야하는 만큼, 현장을 수습하는 데 오래 걸리는 듯 보였다.
“자이언트 포스!”
6미터가 넘어갈 정도로 거대해진 오거가 날뛰는 마수들을 최전방에서 제압하고 있었다.
만들어진 마수들의 등급은 C급에서 B급 사이.
본래의 오거라면 순식간에 모두 도륙 내 버릴 수 있었지만.
제압이 목적이었기에 상황 수습에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그 증거로.
“마수들을 잃으면 의회뿐 아니라 대악마께서 진노하실 거다!”
현장을 지휘하던 소장이 진심이라는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흠, 그래?’
소장의 말을 들은 처용의 입가에서 미소가 번졌다.
오거와 다른 A급 마인들의 활약으로 날뛰는 마수들의 절반 이상이 빠르게 다시 붙잡혔다.
마수들은 새로 준비된 격리실에 모두 수감된 상황.
처용은 그 격리실 쪽으로 몰래 이동한 뒤.
‘암영부-증폭의 암영.’
어둠의 찬가에 암영부를 붙여 위력을 높이고는.
-사각!
격리실의 입구를 베어버렸다.
그 후 곧장 다시 그림자 속으로 숨어버렸다.
-철컹! 철컹!
또 다시 격리실의 문이 열렸고.
-쿠와와와!!
-크아아!!
마인들이 겨우 잡아넣었던 마수들이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격리실이 열렸어!
-뭐!?
그 모습을 본 마인들의 얼굴에 허무함과 낭패감이 일렁였다.
“……쥐새끼가 있군.”
오거가 날뛰는 마수들을 제압함과 동시에 눈을 돌려 사방을 살폈다.
격리실이 파괴될 때, 마인의 마기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분명히 느껴졌다.
마기와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느낌이 조금 달랐다.
“소장! 침입자가 있다.”
“나도 알아! 근데 지금은……!”
오거의 말에 대답한 소장이 짜증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젠장! 이 사달이 났는데 집행자님은 지하에서 뭘 하고 계시는 거야!”
소장의 말을 들은 처용은.
‘지하 2층…… 역시 S급 마인이 있었나?’
발밑을 응시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S급 마인이 있다는 것은 눈치채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하필 조금 전, 자신이 변장했던 집행자일 줄은 몰랐다.
‘어쩌면…… 좋은 상황일 수도?’
처용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을 때.
“이게 무슨 소란이야!!”
-콰쾅!!
땅 밑에서 지면을 뚫고 누군가가 솟구쳐 올라왔다.
붉은 문자가 새겨진 검은 복면과 오른손에 들린 흉측한 도끼.
S급 마인 집행자였다.
-쿠워워억!!
악어와 비슷한 모습인 7미터 크기의 마수 하나가 집행자를 보고 달려들었다.
집행자는 입을 벌리며 다가오는 악어 마수의 아래턱을 왼손으로 잡아챘다.
그리고.
-부웅!
힘을 주어 공중으로 들어 올리고는.
-콰쾅!!
지면에 강하게 패대기 쳐버렸다.
집행자는 마수 하나를 가볍게 제압하고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이 장소의 책임자인 소장을 향해 질책하듯 외쳤다.
“침입자가 있습니다! 놈이 마수와 몬스터들의 격리실을 모두 파괴했습니다!”
“뭐?”
소장의 말에 집행자가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수, 몬스터, 마인들이 뒤엉켜있는 아비규환의 상황.
아무리 S급 마인 집행자라 해도 이런 상황에서 몸을 숨긴 침입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초 은폐…… 암살자 클래스의 상위 헌터, 아니 신관인가?’
그때 주변을 둘러보던 집행자의 눈에 차원 균열 장치가 눈에 띄었다.
정확히는 그 장치 위에 만들어진 게이트.
“저것은 왜 열려 있는 것이냐!”
집행자가 소장을 향해 외친 순간.
-우우웅!
열려 있는 게이트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집행자!”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백발의 남자.
“……성자?”
집행자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성자를 보며 의문을 표했다.
성자는 집행자의 모습을 확인하자.
“집행자! 교단의 본부를 습격하고 빛의 신을 모욕한 대가를 받아야겠습니다!”
그를 향해 분노 섞인 고함을 질렀다.
동시에.
“샤이닝 스피어!”
성자가 스킬을 발동하며 허공에 열 개의 빛나는 창을 소환했다.
그 창이 집행자를 향해 빠르게 쇄도했다.
집행자는 도끼에 검은 불길을 피워내고.
-차카캉!
빛의 창들을 모조리 튕겨내었다.
“다짜고짜 나타나서 뭔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성자!”
집행자가 성자를 향해 의문과 짜증을 담아 외쳤다.
그러자.
“다짜고짜 나타나서 교단의 본부를 습격한 건 당신이지 않습니까!”
성자가 집행자를 노려보며 분노를 담아 대답했다.
동시에 현장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마인들과 몬스터들이 난잡하게 싸우고 있는 상황.
예상치 못한 상황에 조금 의문이 들었지만.
-저건 성자? 성자가 어떻게 여기에?
-실험체들부터 빨리 제압해!
-거기 막아! 중요한 것들부터 지켜!
성자는 주변 상황과 마인들이 외치는 말을 듣고는.
“그렇군요.”
대충 알았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빛의 이름으로!
-성자님을 도와라!
성자가 나타난 게이트 속에서 백색 갑옷을 입은 성기사들이 튀어나왔다.
총 열 명의, 두꺼운 백색 갑옷을 입은 성기사들.
교단의 정예인 성수의 기사들이었다.
“성역의 사제들도 곧 도착합니다!”
성수의 기사들이 성자를 보호하듯 일렬로 서며 검을 뽑아 들었다.
“이곳은 마인들의 아지트로 추정됩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십시오!”
성자가 성수의 기사들을 향해 말하자, 성수의 기사들이 긴장감을 끌어 올리며 스킬을 발동했다.
“전원! 성수를 발현해라!”
성수의 기사들 중 가장 화려한 갑옷을 입은 이가 말하자.
-쏴아아!
그들의 몸에서 백색의 물결이 뿜어져 나왔다.
성수의 기사들이 성수를 뿜으며 방어 진형을 짤 때.
“뭐가 이렇게 개판이야?”
게이트에서 커맨더가 걸어 나와 성자의 옆에 서며 말했다.
그 역시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는.
“이런 곳에 숨어있었나?”
집행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젠장! 네놈은 또 왜 여기에 있는 거냐!”
커맨더를 확인한 집행자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갑자기 성자가 나타난 것도 머리가 아픈 마당에 커맨더까지 난입했다.
심지어.
“교단 본부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 도망간 주제에 뭐가 어째?”
커맨더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까지 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이 답답해 미칠 것 같은 상황에 집행자가 고함을 내질렀다.
그 모습을 본 커맨더는.
“뭐, 우리가 길게 대화를 나눌 사이는 아니지.”
더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고 자신의 ‘군단’을 불러내었다.
“장소가 장소다 보니 군단을 전부 불러낼 순 없습니다. 성자.”
“아닙니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커맨더.”
성자가 커맨더에게 감사 인사를 전할 때, 교단의 헌터들이 추가로 게이트를 넘어왔다.
“샤이닝 포스, 빛의 가호…….”
성자는 빠르게 스킬을 발동하여 교단의 헌터들에게 축복을 내렸다.
그리고.
“빛의 이름으로!”
손을 앞으로 뻗으며 헌터들에게 공격을 지시했다.
성자의 버프를 받은 교단의 헌터들이 현장에 난입하자.
“젠장! 의식을 잠시 중단한다! 기둥을 맡은 녀석들을 제외하고 전부 나와!”
집행자가 급하게 외쳤다.
그러자, 그가 부수며 나타났었던 바닥에서 열 명이 넘는 인영이 추가로 나타났다.
그들은 집행자의 명령을 받고 지하에서 무언가 작업을 하고 있던 상급 마인들이었다.
‘밑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던 건가?’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던 처용은 마인들이 튀어나온 바닥의 균열을 보며 생각했다.
하지만, 당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 판단한 처용은 관심을 접었다.
‘커맨더, 지휘를 하면서 들으십시오.’
그리고 커맨더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음?”
난데없이 들리는 처용의 목소리에 커맨더가 짧은 의문을 표했지만, 빠르게 표정을 감추었다.
‘2층에 이종족들이 갇혀있습니다. 지금부터…….’
처용이 커맨더에게 현재 상황을 빠르게 전달하자, 커맨더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처용은.
‘루나.’
루나에게 전음을 보내고는 빠르게 2층으로 향했다.
3층에서 내려오는 계단 쪽에서 몇 초 기다리자.
“우리 왔어.”
루나가 연화와 테시아를 이끌고 나타났다.
“테시아 님.”
처용이 테시아를 부르자.
“준비되었습니다.”
테시아가 처용의 말을 알아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지금 부름을 받은 전사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처용이 루나를 통해 테시아에게 부탁한 내용이었다.
바로 이종족 구출에 참여할 엘프 전사들을 추가로 모집해달라는 것.
하이 엘프, 그것도 여왕 바로 아래인 장로의 권한을 지닌 테시아였다.
그녀는 깊은 명상에 드는 것으로 세계수와 대화하는 것이 가능했다.
테시아는 곧장 도움을 요청했고 세계수와 엘프 여왕이 엘프들을 움직였다.
“감옥은 테시아 님과 루나의 힘이면 충분히 부술 수 있습니다.”
처용은 빠르게 이야기를 마치고는.
-우우웅!
성지와 이어지는 게이트를 열었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삼십여 명의 엘프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부르셨습니까?”
류마를 포함한 열 명의 뱀파이어들이 처용과 루나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나타났다.
“싸움은 최대한 피하거나 빠르게 끝내고 사람들부터 구합니다.”
테시아는 엘프들을 이끌며 곧장 구출 작업을 시작했다.
그때.
-저놈들은 뭐야!
-놈들이 감옥을 열었어! 잡아!
상황을 목격한 마인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그러나.
“들이치는 밀물!”
곧장 연화가 내지른 파도로 인해 저지당했다.
연화가 미처 제지하지 못한 마인들은.
-커허억!
-으억!
어둠 속에서 튀어나오는 뱀파이어들에 의해 저지당했다.
그리고.
-이 괴물이 입구를 막았어!
처용이 철벽이를 불러내어 2층과 이어지는 계단 입구를 막아버렸다.
철벽이는 거대한 몸집으로 계단에 틀어박힌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마인들이 철벽이를 치우려 공격을 쏟아 부었지만.
철벽이는 아타의 거대 개미들 중 가장 강력한 방어력을 지닌 개미.
웬만한 공격으로는 철벽이를 치울 수 없었다.
게다가 3층 역시 몬스터들이 날뛰고 있었고.
1층에는 집행자와 성자, 커맨더가 나타나며 난장판이 된 상황이었다.
이런 정신없는 상황에 마인들은 이종족들이 수감된 2층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하나 구출된 이종족들이 처용이 연 게이트로 이동하고 있었다.
처용은 순조롭게 돌아가는 상황을 확인하고는.
‘쿠루타!’
곧장 친구를 구하기 위해 특수 격리실로 향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