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처용이 마수 실험장에 잠입했을 당시.
커맨더는 바티칸에 있는 교단 본부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다.
신성한 느낌이 드는 새하얀 분위기의 응접실.
“오랜만입니다. 성자, 아니.”
커맨더가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고는.
“호르타 씨.”
낮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화가 많이 나셨군요. 커맨더”
커맨더와 마주보고 있는 단정하고 새하얀 사제복에 백발 곱슬머리를 한 남자.
인자하고 온화한 웃음기를 띈 그는 빛의 신의 신관이자 교단의 S급 헌터, 성자였다.
“저를 직접 찾아온 것을 보니, 제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듯 보입니다.”
성자가 커맨더의 인사에 눈을 살짝 감으며 말했다.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커맨더가 성자의 말에 굳은 목소리로 대답하자.
“무엇이 당신을 그리 화나게 만든 겁니까?”
성자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커맨더는 그 모습을 보고 잠시 침묵하고는.
“지금부터 제 말에 사실대로 답해 주십시오.”
화가 섞인 듯한 낮은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소말리아 사건 당시, 교단이 이종족들을 공격한 적이 있습니까?”
커맨더의 말에 성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성자가 진심이라는 듯 대답하자.
“교단이 마인들과 협력한 적이 있습니까?”
커맨더는 곧장 다음 질문을 던졌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습니다.”
역시 성자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으드득!
커맨더의 표정에 분노가 일렁이며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성녀.”
커맨더가 굳은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지금 어디 있습니까?”
“…….”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성자는 잠시 침묵하더니.
“잠시 기다리시지요.”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마치 누군가에게 무언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듯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잠시 뒤.
한 여성이 성자와 커맨더가 있는 응접실로 들어왔다.
성자처럼 단정하고 새하얀 여성용 사제복을 입은 백발의 여성.
“부르셨어요?”
그녀가 얼굴을 가린 반투명의 하얀 면사포를 머리 뒤로 넘기며 말하자.
성자와 비슷한, 차분하고 온화한 분위기의 얼굴이 드러났다.
응접실에 새로 나타난 여성은 성자의 여동생이자 교단의 또 다른 S급 헌터, 성녀였다.
“안녕하세요. 커맨더. 오랜만이네요.”
성녀가 커맨더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하자.
“……네.”
커맨더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처음 보는 커맨더의 차가운 모습에 성녀의 얼굴에 의문이 비쳤다.
그때.
“호네아.”
성자가 성녀의 이름을 불렀고.
“네. 오라버니.”
성녀는 긴장을 담아 대답했다.
뭔가, 화가 난 듯한 커맨더의 모습과 심각한 분위기를 띤 성자의 모습.
성녀는 이 자리가 그저 해후를 위한 자리가 아님을 눈치챘다.
“지금부터 묻는 말에 사실대로 답해 주길 바란다.”
“네, 알겠어요.”
성녀가 성자의 말에 대답하자마자.
“성녀.”
커맨더가 낮은 목소리로 성녀를 불렀다.
“네, 말씀하세요.”
“……소말리아 사건, 기억하고 계시죠?”
“……비극이었죠.”
성녀는 소말리아라는 말에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 커맨더가 말을 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커맨더가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성녀께서…… 이종족들을 공격했습니까?”
커맨더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그럴 리가요!”
성녀가 강하게 부정했다.
“제가 왜-!”
“맹세할 수 있습니까!”
커맨더가 성녀의 말을 자르고 한 번 더 강하게 물었다.
그러자.
“……저는 결코 이종족들을 공격한 적이 없습니다.”
성녀가 진지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본 성자는.
“……당신이, 아무런 이유 없이 제 동생을 압박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커맨더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성자의 질문에.
-탁.
커맨더가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손에 착 감기는 작고 납작한 원기둥 형태의 아티팩트.
커맨더가 아티팩트를 작동시키자, 그곳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시 말해봐, 교단의 성녀가 공격한 게 확실한 거야?
-나도…… 믿고 싶지 않았어.
아티팩트의 정체는 바로 녹음기였다.
처용이 떠나자 커맨더가 남은 이종족들에게서 추가 증언을 확보한 것이었다.
-나도 교단이라는 놈들에게 당했어!
-저 역시 성녀를 봤어요.
-하얀 사제복을 입은 인간들과 성기사들을 봤어.
모든 증언들이 흘러나오고 아티팩트가 꺼지자.
“…….”
“…….”
성자와 성녀가 충격을 받은 듯 눈을 크게 뜨고 침묵했다.
“소말리아에서 피해를 받았던 이종족들을 치료하고 얻은 증언들입니다.”
커맨더가 성녀를 노려보며 분노를 담아 말했다.
“변명할 말은?”
“저는…… 저는 정말 아니에요!”
성녀는 진심이라는 듯 강하게 부정했다.
“……나는 지금 많이 참고 있어.”
-쿠구구!
커맨더에게서 짙은 회색빛의 신성력이 뿜어져 나왔다.
“교단 본부에 뉴 클리어를 날려버리려다가 가까스로 참고 대화를 들어보려 했는데 말이야.”
커맨더의 주먹이 강하게 쥐어졌고.
“사실을 부정하고 발뺌을 해? 성녀라는 작자가!”
분노를 담은 커맨더의 외침이 응접실, 아니 바티칸 전체에 울렸다.
“저, 저는 정말로…… 아니에요.”
성녀가 커맨더의 기백에 맞서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그때.
-파직! 파직!
성녀의 몸에서 새하얀 스파크가 일렁였다.
그 모습을 본 성자는.
“잠시, 모두 멈추어 주십시오.”
성녀를 향해 신성력을 담아 말했다.
그러자, 성녀의 몸에서 튀던 새하얀 스파크가 사라졌다.
성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커맨더.”
얼굴을 쓸며 커맨더를 불렀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여동생을 감싸줄 생각인가? 성자.”
커맨더가 분노를 담아 묻자.
“이야기를 듣고 공정하게 판단할 것을, 성자의 이름을 걸고 맹세합니다.”
성자가 흔들리는 눈빛을 바로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도움을 받아 이종족들을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커맨더는 성자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대략적으로 말해주었다.
그러자.
“한국의 두 번째 S급 헌터, 그분에게 도움을 받으신 거로군요.”
성자는 커맨더를 도와준 이가 누군인지 단번에 알아봤다.
“그를 아십니까?”
커맨더가 묻자.
“한국에서 대악마의 흔적이 나타났을 때, 아바타를 통해 그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성자는 언제 처용을 봤었는지 솔직하게 말했다.
커맨더는 성자와 성녀를 번갈아 잠시 응시하고는.
“한 가지만 더 물어보겠습니다. 성녀, 아니.”
또 하나의 본론을 이야기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S급 헌터라고 해야 하나?”
커맨더의 말이 끝나자.
“……그걸!?”
성자가 크게 동요했다.
“조금 전, 성녀의 몸에서 튄 신성력은 저 위에 있는 양반들이 강제로 몸을 빼앗으려는 전조증상이었나?”
커맨더는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한 마디를 더 보탰다.
그러자.
-파지직!
새하얀 스파크가 성녀의 몸을 휘감더니.
[어떻게 안 것이냐.]
그녀의 입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답해라,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신관.]
커맨더는 그 목소리를 듣고 피식 웃더니.
“누구냐? 넌.”
상대가 누구인지 물었다.
[건방진 하계종이! 당장 무릎을 꿇지 못할까!]
성녀의 입에서 고함이 울리자.
[감히! 내 신관한테 소리치지 마라!!]
-쿠구구!!
하늘에서 거대한 목소리가 울리며 바티칸 전체를 흔들었다.
목소리가 퍼진 곳은 바로 바티칸 상공에 떠 있는 커맨더의 성지, 마키나였다.
[크윽, 기계 장치의 여신…….]
성녀가 귀를 막으며 비틀거렸다.
그때.
“빙의를 푸십시오. 대천사님.”
성자가 성녀를 지긋이 보며 말했다.
[네놈이 감히 나한테.]
성녀에게 깃든 대천사가 성자를 노려보며 말하자.
“풀라고…… 했습니다.”
성자가 무언가 각오를 다진 듯한 눈빛으로 다시 강하게 말했다.
“함부로 호네아에게 깃들지 않기로 한 약조를 잊으셨습니까?”
[……이 일을 기억할 것이다.]
성녀에게서 흘러나온 말이 끝나자.
-파지직.
그녀를 감싸던 새하얀 스파크가 사라지더니, 성녀가 쓰러졌다.
그런 성녀를 성자가 재빠르게 다가가 안았다.
“하아…….”
성자의 입에서 아주 깊은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미안합니다. 커맨더, 못 볼 꼴을 보여드렸군요.”
“성녀는…… 정말로 신들의 병기가 된 겁니까?”
“…….”
커맨더의 말이 성자가 눈을 감으며 침묵했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커맨더가 그런 성자의 모습을 보고 한 가지 정확하게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소말리아 범죄자들을 도운 범인은 성녀가 아니었군요.”
커맨더의 시선이 성녀에게서 하늘 위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성자는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하아…….”
한 번 더 성자의 입에서 아주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제게…… 시간을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성자가 커맨더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최근…… 집행자가 성당을 부수고 신의 동상을 훼손하는 일이 발생했었습니다.”
“교단이 마인들에게 공격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 일로 빛의 신께서 화가 많이 나셨습니다. 이번 일을 제가 설명해 봤자 제대로 듣지 않으실 겁니다.”
“…….”
“성당의 일을 수습하는 대로 소말리아에 있었던 일을 알아보겠습니다.”
커맨더는 성자의 말을 듣고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그간 성자께서 보여주신 모습이 있으니 이번만은 믿겠습니다.”
성녀를 안고 있는 성자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종족들이 교단에 공격을 받은 건 아직도 화가 났다.
그러나.
신들과 여동생 사이에서 복잡한 줄타기를 하는 듯 보이는 성자가 조금 안타까웠다.
비록,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성자는 가족과 신들 사이에서 끊임없는 고민과 갈등을 하는 듯 보였다.
“하아, 감사합니다. 커맨더.”
커맨더의 말에 성자가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다.
“후.”
복잡한 상황만 목격하고 실질적으로 얻은 게 없는 이 상황에 커맨더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콰콰콰쾅!!
마치 지진이 몰아친 듯 바티칸의 땅을 뒤흔드는 충격이 느껴졌다.
“……!”
“……!”
난데없는 충격에 성자와 커맨더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머저리 같은 야훼는 들어라!!
누군가의 외침이 바티칸에 울려 퍼졌다.
-네놈은 위대하신 대악마의 앞에 머리를 조아리리라!!
누군가가 겁도 없이 교단 본부에서 빛의 신을 모욕하는 말을 외치고 있었다.
“……!?”
이 상황을 곧장 이해하지 못한 성자가 의문과 경악을 내비치며 침묵했고.
“……이게 무슨 일.”
커맨더 역시 당황한 듯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이 간악한 야훼의 졸개들!!
다시 한번 빛의 신을 모욕한 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의 ‘집행’을 받아라!!
그 목소리가 끝나는 순간!
-화르륵!
새까만 불길이 바티칸을 덮쳤고.
-콰콰콰쾅!!
건물들이 참혹하게 부수어졌다.
심상치 않은 상황에 커맨더가 밖으로 나갔고.
성자 역시 성녀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는 커맨더를 따라 밖으로 향했다.
그러자.
“야훼는 어디로 숨었느냐!!”
-콰콰콰쾅!!
바티칸의 건물들을 마구잡이로 부수며 난동을 부리는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강도와 같은 검은 복면.
이마부터 머리 뒤로 이어지는 붉은 문자.
흉측한 도끼에 일렁이는 새까만 불길.
-으아아!
-살려줘!
그 불길이 일렁이는 도끼가 가한 무자비한 일격들로 인해 사람들이 다치고 건물이 무너지고 있었다.
“집행자!!”
그 모습을 확인한 성자의 입에서 분노가 담긴 외침이 흘러나왔다.
“감히! 교단 본부에서 이런 짓을!”
분노한 성자의 모습을 확인한 집행자는.
“나의 집행을 받아라! 간악한 야훼의 신관!”
다짜고짜 성자를 향해 검은 불길이 일렁이는 도끼를 휘둘렀다.
-화르르륵!!
강력한 힘이 응축된 검은 불길이 성자를 향해 반월처럼 쏘아져 나갔다.
성자는 굳은 표정으로 검은 불길을 응시하며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랜드 크로스 실드!”
성자가 스킬을 발동하자.
-피이잉!
그의 앞에 십자 문양이 빛나는 넓은 방패가 형성되었다.
이윽고 검은 불길이 성자의 방패에 닿자.
-쿠쿠! 쿠콰쾅!!
요란한 폭음을 내며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이 걷히자 실금이 조금 일어난 성자의 방어 스킬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 성자께서 나오셨다!
-우린 살았어!
집행자의 공격을 견고하게 막아낸 성자를 본 사람들이 환호했다.
그러나 환호하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성자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어떻게 마인들의 수뇌 중 하나인 집행자가 교단 본부 한복판에 갑자기 나타났는가?
성자의 머릿속에 의문이 들 때, 집행자의 뒤편에 있는 게이트가 보였다.
“어떻게 여기에 게이트를?”
“크크크, 야훼의 성지 따위.”
집행자가 성자의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며 조소를 흘렸다.
“모조리 박살내 주마!”
다시 한번 집행자의 도끼가 지면을 강타했다.
-콰콰쾅!!
지면에 검은 불길이 번지며 교단 본부의 건물들이 부수어지려는 때.
“디바인 생츄어리!”
성자가 두 손을 모으며 빛을 내뿜었다.
그러자.
-피이잉!
성자를 중심으로 신성한 빛이 뻗어 나갔다.
넓은 영역을 신성한 빛으로 감싸 보호하는 성자의 스킬이었다.
집행자가 퍼트린 검은 불길에 성자의 빛이 닿자.
-피시식.
불길은 마치 물에 맞은 장작불처럼 검은 연기만 남기며 꺼져갔다.
그 모습을 본 집행자가 재차 공격하려는 순간.
“도와드리겠습니다. 성자.”
커맨더가 성자 옆에 나타났다.
“이런……, 커맨더가 여기 있었을 줄은 몰랐군.”
집행자의 입에서 낭패감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피이잉!!
성자의 옆에 하늘과 땅을 잇는 빛의 기둥이 나타났다.
그 기둥 속에서 온몸이 빛나는 사람 형태의 무언가가 나타났다.
[감히 악마의 하계종 따위가!]
빛나는 사람 형태의 무언가에게서 분노가 일렁이는 목소리가 울렸다.
그는 빛의 신, 야훼의 화신체였다.
“크크크.”
야훼의 화신체를 본 집행자가 비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내 언젠가는 반드시! 네놈의 모가지를 썰어 버릴 것이다!”
야훼를 향해 외치고는.
-우우웅!
열려 있던 게이트로 몸을 던졌다.
“……도망쳤다고?”
그 모습을 본 커맨더의 입에서 의문과 황당함이 섞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때.
[당장! 저 악마의 하계종을 추적하라!!]
야훼의 화신체가 격노 어린 음성을 토해냈다.
“성지에 1급 비상령을 선포한다!”
야훼의 말에 성자가 현장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성자가 빠르게 지휘를 내리고는.
“도와주십시오. 커맨더.”
커맨더를 향해 정중하게 부탁했다.
“……상황이 상황이니 도와드리죠.”
커맨더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성자를 도와주기로 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