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151화 (151/726)

#151화

처용은 본격적으로 작전을 계획하기 전.

‘루나, 다시 위의 층으로 올라간다.’

다시 한번 마수 실험장의 구조를 점검할 필요성을 느꼈다.

4층부터 1층, 그리고 지하까지 대충만 둘러본 상황이었으니까.

‘옥상에 뭐가 있는지 살펴봐 줘, 나는 2층과 3층을 자세히 둘러볼게.’

지시를 내린 처용은 2층으로, 루나는 곧장 5층 위로 향했다.

처용은 2층만큼은 구석구석 자세히 살펴볼 요량이었다.

이종족들과 헌터들이 수감된 곳이었으니까.

2층에 도착한 처용은 우선 감옥의 상태를 확인했다.

‘마나를 흡수하고 충격을 반사시키는 아티팩트인가?’

철창을 구성하는 광물 역시 단순한 강철이 아닌 여러 금속이 합금되어 단단해 보였다.

‘루나나 테시아 정도 수준이면 강제로 부술 순 있겠는데…….’

처용은 감옥을 하나하나 구석구석 둘러보며 철창을 여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때.

“극비 격리실에 있는 그 오크 새끼는 불사신이야? 도무지 지치질 않아.”

마인들이 떠드는 말소리가 처용의 이목을 잡았다.

“우리 지부 하나를 혼자서 박살내고 여기 근처까지 온 놈이잖아?”

“간부님들 아니었으면 잡지도 못했어.”

“죽이질 못해서 생포한 거라며?”

처용은 마인들의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집중하며 귀를 기울였다.

‘극비 보안실? 저건가?’

2층을 구석구석 살펴보았지만, 단 하나 들어가지 못한 곳이 있었다.

여러 잠금장치와 결계로 막힌 문.

그곳이 극비 격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씨…… 그 오크 새끼를 다시 보러 갈 시간이네.”

처음 이야기를 꺼낸 마인이 불만을 내뱉으며 말하자.

“고생해라, 주드. 크크.”

동료 마인들이 손을 휘저으며 그를 놀리듯 웃었다.

그리고 주드라 불린 마인이 극비 격리실로 추정되는 문으로 향했다.

-스르륵.

처용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드라 불린 마인을 따라갔다.

문 앞에 선 주드는 보안 장치에 왼쪽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띠릭. 띠릭. 삐리릭!

화면에 승인되었다는 문구가 뜨자, 이번엔 붉은빛이 나오는 구멍에 왼쪽 눈을 가져다 대었다.

-지이잉- 삐리릭!

장치가 눈을 위아래로 스캔하자, 역시 승인되었다는 문구가 떴다.

그리고.

-우우웅!

마인이 마지막, 문 중앙에 있는 원형 장치에 마기를 흘려보냈다.

-최종 승인되었습니다.

문에서 알람이 울림과 동시에.

-지이이-!

문이 좌우로 열렸다.

마인이 문 안쪽으로 향하자.

-스르르.

처용은 동화경을 최대치로 유지하며 은밀하게 그를 따라갔다.

‘다행이군.’

문이 닫히기 전 들어온 처용은 작은 안도를 표했다.

문은 인증 절차 말고도 여러 결계가 씌워져 있었지만, 처용의 동화경을 잡아내지는 못했다.

마인을 계속 따라가자, 넓은 크기를 가진 원형 공동이 드러났다.

원형 공동의 외부에는 철창이 세워져 있었고 그 안에는.

-으윽!

-크아아!

오크들이 갇혀 울부짖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중앙으로 향해 있었다.

중앙을 바라본 처용의 눈이 놀란 듯 크게 떠졌다.

-크아아아아!!

중앙의 말뚝과 비슷한 기둥에는 한 오크가 구속된 상태로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3미터가 넘어가는 우람한 덩치와 단단한 근육질을 가진 오크.

피부가 초록색인 다른 오크들과는 조금 다르게 붉은빛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등 뒤부터 어깨, 가슴까지 이어지는, 마치 불길이 일렁이는 듯한 하얀 문신들까지.

그는 처용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오크였다.

[쿠루타]

[등급 : S급, 화산의 오크]

[특징 : 오크들의 성지에서 인정을 받고 진화한 하이 오크.]

[확인 불가.]

[현재 강력한 구속력을 가진 저주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스킬 : 확인 불가.]

하이 엘프와 같은 상위 오크 종족인 하이 오크.

화산의 오크는 하이 오크들 중 선택받은 극소수만이 달성할 수 있는 최상위 종족이었다.

그런 화산의 오크인 쿠루타.

-불카르으으!!

그가 마인들에 의해 구속된 채 울부짖고 있었다.

‘왜……!’

처용은 쿠루타라는 화산의 오크를 보며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회귀 전, 오크 종족을 통합하고 대족장이 되어 처용을 도와준 동료였으니까.

다른 이종족들보다 유독 오크들과 친하게 지냈던 이유가 바로 쿠루타 때문이었다.

‘왜…… 왜 여기에 있는 거냐!’

너무나도 친하게 지냈던 동료가 구속되어있는 모습을 보자, 처용의 마음이 들끓었다.

솔직히 쿠루타를 마주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튀어 나갈 뻔한 것을 가까스로 인내했다.

동시에, 그가 회귀 전 했었던 말이 생각났다.

-동족들을 구하려다 붙잡힌 적이 있었다. 놈들이 얼마나 악랄한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과거, 마인들에게 포로가 되었었던 적이 있었다고 했었던 쿠루타.

처용은 그 시기가 지금이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마음이 좋지 못했지만, 상황을 더 면밀하게 파악하기 위해 일단은 잠시 지켜보기로 했다.

“진짜 불사신인가? 힘이 빠질 기미가 보이질 않네.”

처용이 뒤따라온 마인, 주드라는 남자가 현장에 있는 마인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저주 계속 걸고 있는 거 맞아?”

“니가 해 봐라! 거는 족족 다 타버리는데!”

주드의 말에 동료 마인들이 짜증이 가득 담긴 말로 답했다.

“제대로 속박을 걸려면 접근을 해야 하는데…….”

“묶여있다고 가까이 가지 마라, 접근했다가 통째로 구워진 놈이 벌써 셋이다.”

동료들의 말을 들은 주드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간부님들은? 더 조치하지는 않았고?”

주드가 말하자.

“쓸모가 있다나 뭐래나, 일단 힘부터 빼란다. 우리들만 뺑이치고 있는 거지…….”

동료 마인들이 불만을 곱씹으며 중얼거렸다.

“교대까지 얼마나 남았지?”

주드가 동료 마인들에게 묻자.

“우리도 온지 얼마 안 됐어.”

“한참 멀었다.”

동료 마인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휴, 고생이다.”

그 말에 작은 한숨을 내쉰 주드는.

“난 관리실에서 현황 정리하고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불러.”

동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뒤돌아 나아갔다.

주드는 격리실 문밖으로 나가지 않고 서류가 쌓인 사무실 형태의 방으로 향했다.

“중간 관리인 쟤도 고생이다. 크크크.”

“저놈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닐 바엔, 그냥 노동이 낫지.”

돌아가는 주드를 향해 다른 마인들이 중얼거렸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처용은.

-스르르.

벽을 타고 감옥 아래로 내려갔다.

동시에 처용의 인상이 크게 일그러졌다.

감옥 아래로 내려오니, 위에서 보이지 않았던 광경이 드러났다.

잘려나간 오크의 머리, 마치 고문을 한 듯 보이는 여러 상처가 새겨진 오크 사체들.

그리고.

“반드시! 다 죽여 없애버릴 것이다!!”

중앙에 구속된 화산의 오크, 쿠루타가 분노에 일렁이는 눈빛으로 고함을 내질렀다.

‘이 새끼들이…….’

상황을 파악한 처용이 마인들을 노려보며 속으로 읊조렸다.

구속된 포로 앞에서 그의 동료를 고문하고 죽이는 것.

마인들이 주로 즐기는 악질적인 놀이였다.

처용은 분노를 갈무리하고 다시 쿠루타를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그를 구속하고 있는 기둥을 살펴보았다.

[신을 묶는 묘 / 아티팩트]

[등급 : 레전더리+]

[대악마의 축복을 받은 아티팩트입니다.]

[판데모니움의 희귀 광물, 판테라움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대상에게 강력한 구속력을 발휘함과 동시에 힘을 서서히 무력화시킵니다.]

대략 1미터가 조금 안 되는 두께를 가진, 7미터 높이의 검은 원기둥.

그 원기둥에서 뻗어 나온 검은 사슬들이 쿠루타를 구속하고 있었다.

‘판테라움…… 그래서 당장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건가?’

판테라움은 판데모니움의 가장 깊은 곳에서 발견되는 희귀 광물이었다.

단단함은 당연했고 무엇보다 독특한 특징이 있는 광물이었다.

판테라움은 주변에 있는 생명체의 힘을 점점 약화시키는 특징이 있었다.

때문에, 채굴 자체도 쉽지 않은 광물이었다.

지금, 쿠루타를 묶고 있는 아티팩트 ‘신을 묶는 묘’는 통짜 판테라움으로 만들어진 아티팩트였다.

다가간 처용조차 힘이 점점 빠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방법이 있다.’

처용은 아티팩트를 자세히 관찰하며 쿠루타를 풀어 줄 방법을 찾아내었다.

문제는 다른 이종족들을 모두 구출해야 하는 만큼, 당장 그를 풀어줄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미안하다.’

처용은 쿠루타에게 속으로 미안하다고 전했다.

그리고.

-스윽. 슥슥.

쿠루타의 앞, 모랫바닥에 작은 글씨를 써 내렸다.

“어디서 개수작을-!”

쿠루타는 마인들의 농간이라 생각하며 분노를 내질렀지만.

“……!!”

글씨를 확인하자 말이 끊겼다.

-불카르(Bul-ka-r), 형제여.

처용이 써 내려간 글씨는 다름 아닌 오크들의 언어였다.

불카르(Bul-ka-r).

오크들이 전투에 임하거나 자기 자신을 고양시켜 각오를 다지는 등의 상황에 주로 외치는 말이었다.

혹은 같은 동족이나 전사를 향한 인사말이기도 했다.

불카르의 유래는 최초의 오크 대족장이자, 최초의 화산의 오크 ‘불카(Bul-ka)’를 뜻하는 말이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조상을 모시는 오크들의 풍습.

처용은 이런 오크들의 역사와 그들의 문화, 문자를 잘 알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쿠루타와 교류하며 그에게 직접 배웠으니까.

-형제여, 조금만 기다려라.

마지막 메시지를 전달한 처용은.

-사악.

모래에 써진 글씨를 지웠다.

“……기다리지.”

쿠루타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처용은 쿠루타를 등지고 뒤돌아 나갔다.

처용이 향한 곳은 주드라는 중간 관리직 마인이 향한 관리실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사무실 문이 열리고 로브를 뒤집어쓴, 주드로 보이는 마인이 서류 뭉치를 들고 나왔다.

“또 어딜 가냐.”

그 모습을 본 동료 마인이 그를 향해 외치자.

-펄럭.

격리실 문으로 향하는 주드는 서류 뭉치를 들어 보이며 펄럭이고는 계속 나아갔다.

“에효, 저것도 할 짓이 못 된다.”

그 모습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은 다른 동료 마인들은 하던 일을 계속했다.

격리실 문 앞에 도달한 주드가 고개를 들어 보이자, 놀랍게도 그 얼굴은 주드가 아닌 처용의 것이었다.

처용은 손바닥을 대는 패드에 누군가의 잘린 손목을 가져다 대었다.

-삐리릭.

스캔이 끝난 다음은 눈을 스캔하는 잠금장치.

처용은 그곳에 누군가로부터 뽑아낸 눈알을 가져다 대였다.

-삐리릭.

두 번째 잠금장치가 풀렸고, 마지막 마기를 인증하는 장치.

처용은 소매에서 사람의 심장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꺼냈다.

심장에 어둠 속성 마나를 주입하자.

-스르르.

그 심장의 주인 주드의 마기가 흘러나왔다.

-삐리릭. 승인되었습니다.

아무 문제없이 극비 격리실을 빠져나온 처용은 곧장 루나에게 전음을 보냈다.

‘루나, 위에는 별 것 없었어?’

마침, 2층에서 처용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루나의 그림자가 은밀하게 다가왔다.

‘5층은 무기 같은 게 엄청 많아, 그리고 옥상으로 가 봤는데…….’

루나가 옥상에서 목격한 것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어, 그리고 동방 제국 건물들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많았어.’

처용은 루나의 묘사를 꼼꼼하고 자세하게 들었다.

주변의 건물이 어떤 모양인지.

어떤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있는지.

그리고.

‘인간들 옷에 구름이랑 번개? 이상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루나가 위에서 마주했던 사람들의 복장.

정확히는 옷에 그려진 문양을 그림자로 그려 보이며 설명했다.

그러자.

‘천교…….’

처용은 그 문양을 곧장 알아볼 수 있었다.

추가로.

‘여기는 중국인가.’

마수 실험장의 정확한 위치를 대략 특정할 수 있었다.

한국의 던전에 있던 입구는 여러 나라로 이어지는 통로 중 하나에 불과했다.

마수 실험장의 정확한 위치는 바로 중국.

더 정확히는 ‘천교’가 다스리는 구역 중 하나로 추정되었다.

‘루나, 우리가 왔던 입구로 돌아가서 사람들한테 내 말을 전해 줘.’

‘나 혼자 가?’

처용이 말하자 루나가 처용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

‘나는 이 장소를 개판으로 만들 준비를 해야 하거든.’

처용의 시선이 아래층을 향했다.

‘내가 신호를 보내면 곧장 와야 해.’

‘……혹시 모르니, 나도 동족들을 데려올게.’

‘좋아.’

루나는 처용의 대답을 듣고는 4층으로, 일행들이 기다리는 게이트를 향해 나아갔다.

처용은 3층, 몬스터들이 격리된 감옥으로 향했다.

동시에 아공간에서 새까만 목도를 꺼내 들었다.

[어둠의 찬가 / 아티팩트]

[등급 : 레전더리]

[빛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전설 속 광석, 암천귀석(暗天鬼石)으로 만들어진 무구.]

처용이 꺼내 든 것은 얼마 전, 보살이 뽑아준 레전더리 아티팩트였다.

‘암영부-증폭의 암영.’

추가로 어둠의 찬가에 암영부를 붙여 어둠 속성의 힘을 높였다.

몬스터들이 수감된 감옥에 도달한 처용이 어둠의 찬가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는.

-스각! 스각!

감옥의 창살을 빠르게 베어내었다.

그러자.

-키익! 철컹! 찰그랑!

감옥의 창살이 산산이 부수어지며 몬스터들이 속박에서 풀려났다.

처용이 다른 것도 아니고 어둠의 찬가를 이용해 감옥을 쉽게 부순 이유가 있었다.

[주변의 속성 마나를 빨아들여 암 속성 마나로 전환합니다.]

바로 어둠의 찬가의 능력 중 하나인 속성을 빨아들이는 능력.

감옥 창살에 새겨진 마법은 몬스터들이 날뛰지 못하게 묶는 전격 속성과 화염 속성의 인첸트였다.

그 창살에 새겨진 속성 인첸트를 어둠의 찬가가 흡수해 버린 것이다.

또 어둠의 찬가는 그 자체적으로도 ‘강력한 어둠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약한 어둠은 더 강한 어둠에 잡아먹히는 법.

아무리 마인들이 공들여 만든 창살이라 해도 어둠의 찬가의 공격을 버틸 수 없었다.

처용은 빠르게 이동하며 눈에 보이는 모든 창살을 박살내었다.

그러자.

-캬아아!!

-크에에!!

그동안 속박당한 울분을 푸는 듯, 몬스터들이 뛰쳐나가며 날뛰기 시작했다.

-뭐, 뭐야!

-격리실이 갑자기 열렸어!

갑작스레 몬스터들이 날뛰자 마인들이 당황하며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았다.

처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곧장 지하로 향했다.

발걸음을 멈춘 곳은 바로 ‘마수’가 격리된 곳이었다.

‘마인드 컨트롤 전이라고 했지?’

조금 전, 소장이라는 마인의 말에 따르면, 막 완성된 마수들은 아직 제어할 수 없는 상태였다.

‘네놈들이 만든 병기에 당해 봐라!’

처용은 망설이지 않고 마수가 격리된 감옥을 부수었다.

-쿠워워워!

-크웨에에!

마수들 역시 그간 묶여있었던 울분을 푸는 듯 날뛰기 시작했다.

처용은 그 모습을 보며 씨익 웃고는 마인들이 만든 차원 균열 장치로 향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조금의 피해도 입지 않고 이종족들을 모두 구출할 수 있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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