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145화 (145/726)

#145화

악신들은 모두 강력한 힘을 가진 대악마들이었다.

그중 정점이 있는 자들이 바로 삼천마.

그러나 개개인의 강함을 떠나서 ‘악질’이라고 할 수 있는 악신들은 따로 있었다.

처용이 개인적으로 판단했을 때, 가장 악질적인 악신 중 하나가 바로 아스모데우스였다.

얼마 전에 소멸한 불화의 대악마 안드라스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소말리아에도 개입을 했던 건가? 아스모데우스…….’

회귀 전에는 알지 못했던 사실에 처용이 눈을 가늘게 좁히며 생각했다.

“대악마의 저주라니…….”

테시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침음을 흘렸다.

“……그래서, 세계수께서 직접 생명력을 주입해 주셔도 차도가 없던 것이로군요.”

엘프 여왕 역시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역시 교단의 도움을-.”

커맨더가 교단을 언급하자.

“빛의 신은 절대로 이 저주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처용이 커맨더의 말을 강하게 자르며 말했다.

“함부로 야훼의 신성력을 집어넣었다가는 환자가 죽을 겁니다.”

처용은 회귀 전, 왜 커맨더가 이들을 모두 구하지 못했는지.

빛의 신이 왜 이들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빛의 신, 야훼의 신력으로 아스모데우스의 마기를 이길 순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신력은 처용이 가진 파마의 힘과 비슷했다.

어둠을 용납하지 않는 빛의 힘.

그의 힘이 마기를 태움과 동시에 환자의 몸까지 공격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고통을 버티지 못하고 환자가 죽었을 가능성이 컸다.

‘머저리 같은 새끼…….’

처용이 속으로 빛의 신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아무리 마기를 태워버리는 빛의 신력이라 해도 야훼는 대신.

분명 환자들을 좀먹는 마기를 지울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종족과 인간을 하찮게 보는 신이었다.

그런 그가 이종족들을 배려할 리가 없었다.

“고칠 수 있는 건가……?”

커맨더가 눈을 감고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계수조차 치료할 수 없는 대악마의 저주를 과연 안전하게 없애는 것이 가능할까?

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그때.

“바알이 공들여 만든 저주도 없애버린 적이 있습니다.”

처용이 환자에게 눈을 떼지 않고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사히 없앨 수 있습니다.”

커맨더가 처용의 입가에 번져 있는 옅은 미소를 보고 희망을 되찾았다.

“우리가 무엇을 도와주면 되나요?”

엘프 여왕이 처용에게 질문했다.

“그 전에 확인부터 한번 해 보겠습니다.”

처용은 누워있는 리카를 향해 오른손을 뻗고 신력을 끌어내었다.

‘자비의 손길.’

-우우웅!

처용의 손바닥에서 찬란한 황금빛 신력이 퍼져 나갔다.

뻗어 나간 자비의 손길이 리카의 몸에 스며들었다.

그러자.

-스멀. 스멀.

리카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꿈틀거리며 위로 조금 솟구쳐 올라왔다.

‘조금만 더.’

처용은 마기에 눈을 떼지 않고 신력을 정교하게 컨트롤했다.

마기가 거의 다 모습을 드러내려 할 때.

-슈륵!

튀어나오려던 마기가 돌연 리카의 몸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젠장……, 역시 아직은 무리인가.”

그간 레벨이 많이 오르고 신력도 많이 회복했지만.

아직 상위 대악마의 마기를 홀로 해결하기엔 무리였다.

대신 아무 소득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저주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어떻게 번져 있는 상황인지 파악했다.

그리고 환자의 몸에 부담 없이 치료할 방법도 알아냈다.

“준비가 필요합니다.”

진단을 마친 처용이 엘프 여왕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엇이 필요한가요?”

엘프 여왕이 처용의 물음에 진지하게 답했다.

“우선…….”

처용은 필요할 만한 것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했다.

사실 크게 필요한 것이 없어 당장 준비할 수 있었다.

다만.

“저희 성지로 환자들을 이송해야 합니다.”

환자들을 처용의 성지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곳에 가야 보살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다만, 이들을 세계수에서 함부로 꺼내면 마기가 다시 날뛸 가능성이 있었다.

처용이 방법을 강구하려는 때.

[그 문제는 걱정하지 마세요. 계승자.]

보살에게서 전음이 전해졌다.

‘네?’

처용이 반문하는 순간.

[자비의 대신이 엘그드라실에게 방문을 요청합니다.]

[세계수 엘그드라실이 수락합니다.]

시스템의 알림이 울렸고.

-우우웅!

처용의 옆에 황금빛 게이트가 열리며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보살님!? 어떻게?”

게이트를 타고 나타난 이는 다름 아닌 보살이었다.

게다가 화신체가 아닌 본신으로 강림한 상태였다.

성좌가 화신체가 아닌 본신으로 강림할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었다.

하나는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처용의 성지에 강림하는 것.

처용이 알기론 이 두 가지가 전부였다.

그런데 보살은 본신으로 엘프의 성지에 강림한 상황.

처용이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황스러워할 때.

[데우스 엑스 마키나 덕분입니다.]

보살이 미소를 지으며 처용에게 말했다.

“화신의 그릇…….”

처용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게 속성석을 넘기고 받은 것이 생각났다.

설마 그것이 성좌를 본신으로 강림시킬 수 있는 신물이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시스템의 제약은 받지만, 계승자를 충분히 도와줄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상황을 파악한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저기…… 이 분은?”

커맨더가 보살과 처용을 번갈아 보며 당혹스러운 듯 질문을 던졌다.

황금빛 게이트를 타고 나타난 여성은 분명히 성좌였다.

하지만, 올림포스 성지에서 마주한 처용의 성좌는 다른 이였다.

그렇다면 눈앞에 나타난 여신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엘프 여왕과 테시아 역시 같은 의문을 느끼고 침묵하고 있었다.

그때.

-화아악!

일행들 옆에 반딧불이들이 모여들더니 누군가가 나타났다.

겉모습은 엘프 여왕과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전신이 녹색으로 발광하고 있었다.

“엘그드라실 님.”

엘프 여왕이 빛무리와 함께 나타난 여성을 보고 테시아와 함께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새로 나타난, 녹색으로 발광하는 엘프는 세계수 엘그드라실의 화신체였다.

세계수의 화신체가 보살을 보고 싱긋 웃고는.

[오랜…… 만, 자비의 대신.]

딱딱 끊어지는 음성으로 보살에게 인사를 전했다.

[후후, 오랜만이에요. 엘그드라실.]

보살 역시 엘그드라실의 화신체를 보고 싱긋 웃으며 인사했다.

‘아, 두 분은 아는 사이셨지.’

처용은 세계수와 보살을 보고 뒤늦게 회귀 전 기억이 떠올랐다.

수천 년 전, 보살이 반신이었을 시절, 세계수와 안면이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보살과 세계수가 해후를 나누고 있을 때.

[기계 장치의 여신이 방문을 요청합니다.]

[세계수 엘그드라실이 수락합니다.]

-파지지직!

마치 차원문이 열리듯 푸른 전류가 몰아치더니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화신체가 나타났다.

[어쩐지…… 성지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보고 설마 했었는데.]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보살과 처용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관리자에 이어서 자비의 대신까지 함께하고 있었을 줄이야.]

[후후, 오랜만이네요. 데우스 엑스 마키나.]

보살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게도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여신님? 이 분은?”

커맨더가 궁금증을 가득 담아 자신의 성좌에게 질문했다.

[음……, 뭐라고 해야 하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커맨더의 질문을 이해했지만, 뭐라고 말해야 할지 헷갈렸다.

그러자.

“다른 사람한텐 말하지 마십시오.”

처용이 커맨더와 이 상황을 지켜보는 두 엘프에게 말했다.

이들은 모두 회귀 전, 자신의 비밀을 알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밝히게 될 줄은 몰랐기에 작은 한숨이 나왔다.

[비밀, 지켜.]

[그건 걱정하지 마.]

처용의 말에 두 신이 대신 대답했다.

그러자 엘프 여왕과 테시아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숙였고. 커맨더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처용은 간단하게 자신에 대해 설명했다.

전부 알리지는 않고, 자신이 단순한 성좌의 신관이 아닌 대신들에게 수련을 받은 후계자라는 것 정도만 말해주었다.

“우선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고 본론부터 해결하죠.”

처용은 눈앞에 있는 중요한 문제부터 해결하자고 제의했다.

[도움에, 감사.]

세계수의 화신체가 처용에게 감사를 전했다.

처용은 세계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루나.”

피의 서약을 통해 루나를 불렀다.

-우우웅!

처용의 옆에 붉은 게이트가 열리며 루나가 나타났다.

“나 불렀어?”

“어, 도움이 필요해.”

처용은 루나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그녀가 왜 필요한지 설명해 주었다.

“그 정도는 거뜬해.”

설명을 들은 루나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교수님.”

처용이 이종국을 바라보며 그를 부르자.

“아, 네.”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며 침묵하고 있던 이종국이 대답했다.

“처치가 끝나면 바로 환자들을 봐주세요. 혹시 모르니.”

“알겠습니다.”

이종국이 처용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시작합니다.”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시작하겠다 선언한 후 루나를 바라봤다.

루나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블러드 웹.”

손끝에서 혈기를 거미줄처럼 얇게 뽑아내었다.

스멀스멀 뻗어 나가던 혈기가 리카의 몸 여기저기에 닿자, 상황을 지켜보는 두 엘프가 움찔했다.

루나는 뱀파이어, 그녀가 사용하는 마나는 어둠 속성이었으니까.

그러나 세계수를 포함한 신격들이 모두 조용히 지켜보고 있기에 침묵하고 있었다.

붉은 거미줄이 리카의 몸에 닿고 몇 초가 흐르자.

“모두 잡았어.”

루나가 처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역할은 환자의 몸 곳곳에 침투해 뿌리를 박은 마기를 모두 감지해 찾아내는 것이었다.

뱀파이어인 루나가 사용하는 어둠은 마기와 비슷한 기운.

때문에 아스모데우스의 저주는 이전 처용의 신력에 닿았을 때처럼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비의 손길.”

처용이 루나의 말을 듣고 황금빛 신력을 루나의 혈기에 흘려보냈다.

파마의 기운이 담긴 신력이 루나가 만든 길을 따라 흘러 들어갔다.

처용의 신력이 루나가 감지해 둔 저주의 근원들에 닿았고.

그 저주를 처용의 신력이 강하게 붙잡은 순간!

-화아아!

보살이 연분홍빛 신력을 리카에게 흘려 보냈다.

그러자.

-슈르륵! 꾸득! 꾸륵!

리카의 몸 여기저기에서 검은 액체와 같은 저주 덩어리들이 뿌리째 뽑혀 나왔다.

이전 처용의 신력에 격렬히 반응했던 아스모데우스의 저주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끌려 나왔다.

저주가 완전히 뽑혀 나온 순간.

“명환부-악령 구속.”

왼손에 명환부를 쥔 처용이 뽑혀 나온 저주의 덩어리를 봉인했다.

“음……, 이제 저주는 없습니다. 깔끔하게 끝났네요.”

치료를 마친 하이 엘프를 통찰의 눈으로 관찰한 처용이 치료 종료를 선언했다.

“이 방법대로 쭉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처용이 루나와 보살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루나의 혈기는 몸 곳곳에 뿌리박힌 저주의 근원지를 찾아내는 탐색꾼이었다.

처용의 신력은 루나의 안내를 따라 저주의 근원지를 꼼짝 못 하게 잡아내는 역할이었다.

저주가 완전히 구속된 순간, 보살의 신력이 저주를 통째로 뽑아 버린다.

동시에 보살의 신력이 환자의 체내에 잔류하며 저주가 남긴 상처를 치료한다.

이것이 환자가 다치지 않도록 처용이 고안한 치료 방법이었다.

치료가 막 끝났을 때.

“으으…….”

리카가 눈가를 파르르 떨더니 신음을 내었다.

“리카?”

“정신이 드니!?”

커맨더와 테시아가 소리를 듣고 재빠르게 다가와 리카를 불렀다.

“어, 언니?”

눈을 가늘게 뜬 리카가 테시아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내가 너무 오래 잤나 보네.”

커맨더를 향해 옅은 웃음을 보이며 목소리를 내었다.

“아……, 다행이야. 정말로…….”

리카의 목소리를 들은 커맨더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듯 말했다.

“미안해요. 조금만 더 쉬면…….”

주변을 둘러보던 리카의 눈꺼풀이 서서히 감기더니 졸린 듯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편히 쉬어 리카, 이젠 괜찮으니까.”

눈을 감은 리카를 향해 테시아가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동시에 처용이 이종국을 바라보았다.

“교수님.”

이종국은 처용의 말을 곧장 알아듣고 리카에게 다가와 상태를 살폈다.

“……특별히 이상이 있는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행입니다.”

리카를 자세히 진료한 이종국이 감탄과 안도감을 섞어 말했다.

겉으로 봤을 때는 저주를 강제로 뽑아낸 듯 보였기에 환자가 다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환자는 다친 부분 없이 멀쩡했다.

“당연하죠. 빛의 신보다 훨씬 뛰어나신 분의 손길이 닿았는데.”

처용이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모두가 노력한 결과입니다.]

보살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나머지도 신속하게 끝내버리죠.”

자리에서 일어난 처용이 몸을 풀며 본론을 말하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홀로 계승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