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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141화 (141/726)

#141화

처용이 미국 땅을 밟은 지 20분도 되지 않은 시간.

미국에 세워진 빛의 신의 성당 다섯 곳이 습격을 받았다.

성당 건물이 일부 무너지고 빛의 신의 동상이 처참하게 망가졌다.

주변에 체류하고 있던 성기사들과 헌터들이 나섰지만.

성당을 습격한 정체불명의 괴한은 테러만 일으키고 홀라당 사라져 버렸다.

문제는…… 뒷수습을 하며 발견된 테러의 흔적이었다.

“이…… 이런!”

잔해를 수습하던 성기사 하나가 잘려나간 동상의 머리를 보고는 기겁하며 물러섰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주변에 있던 성기사와 사제들이 몰려와 동상의 머리를 바라보자.

“……!”

“흡!”

놀란 듯 숨을 들이켰다.

잘려나간 빛의 신의 동상 머리 부분.

정확히는 이마 부분에 칼로 새긴 듯한 문양 때문이었다.

마치 거대한 뿔을 그린 듯 안쪽으로 꺾인 두 개의 선.

그 중앙에 그려져 있는 X자와 해골 문양.

빛의 신의 동상 이마에 새겨져 있는 문양은 대악마의 표식이었다.

성기사의 보고를 받고 현장을 수습하던 대주교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교단의 대주교는 성당의 책임자, 각 길드의 지부장들과 같은 권한을 가진 자였다.

대주교가 동상의 머리에 새겨진 표식을 보고는 안색이 파래졌다.

“악마…… 이건 대악마의 마기!”

표식에서 묻어나오는 시커먼 마기를 감지한 대주교가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아무래도…… 집행자의 소행인 것 같습니다.”

성기사 중 하나가 대주교를 향해 다가오며 보고를 올렸다.

“이…… 이런 모독적인 짓을!”

보고를 받은 대주교가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마인들의 수뇌 중 하나가 빛의 신의 동상을 무너뜨렸다.

심지어 동상의 머리에 대악마의 표식까지 새긴 상황.

“서…… 선전포고다. 마인들이 선전포고를 했다!”

대주교가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당장 바티칸에 이 소식을 알려라!”

“예!”

대주교의 명령에 성기사와 사제들이 대답하고는 빠르게 움직였다.

“이 천인공노할 놈들! 대가를 치를 것이다!”

다시금 동상의 머리를 확인한 대주교가 분노를 터트렸다.

***

테러를 당한 성당들이 발칵 뒤집혔을 때.

모든 일을 끝마친 처용은 유유히 태룡전으로 돌아왔다.

[화가 좀 풀렸느냐?]

여래가 옅은 웃음을 지으며 처용에게 말했다.

“그렇게 시원하진 않습니다.”

처용은 여래의 질문에 옅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모든 성당을 잿더미로 만들려다가 말았습니다.”

[아하하! 지금 네가 저지른 짓만 해도 야훼의 속이 뒤집힐걸?]

카투라가 처용의 말에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태룡전에서 처용이 무슨 짓을 했는지 지켜봤으니까.

처용은 단순히 같은 테러만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

성당과 동상을 부수고 빛의 신을 대놓고 모욕하는 짓을 저질렀다.

그리고 단순히 동상 이마에 대악마의 표식을 새긴 것은 약과에 불과했다.

어떤 동상은 머리 위에 거대한 뿔을 박아 놓고 조각상의 인상을 험악하게 바꿔놓았다.

마치 빛의 신이 대악마로 타락한 것처럼, 동상의 얼굴을 성형(?)시켰다.

또 다른 동상은 다리와 허리를 자르고 땅을 향해 머리를 박고 경배하는 듯한 모습처럼 꾸며놨다.

그리고 모두가 잘 볼 수 있도록 뒤통수와 등에 대악마의 표식을 잔뜩 새겨놓았다.

마치……, 대악마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굴복한 모습이었다.

교단의 입장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테러를 당한 셈이었다.

[아하하하하하-!]

카투라는 다시금 처용의 테러가 생각났는지 통쾌하게 웃고 있었다.

[음…… 신계가 또 뒤집히겠구나.]

미륵이 작게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처용이 말한 화풀이는 그의 상상을 넘어섰으니까.

“문제는 없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어차피 마인들이 표적이 될 테니까?]

미륵이 처용의 말을 예상하고 말하자.

“그렇죠.”

처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하, 이것 참.]

미륵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처용은 화풀이라고 하면서 무모한 짓을 저질렀음에도 ‘계획’을 세우고 움직인 셈이었으니까.

“계획이긴 했지만, 화풀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미소를 지은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카투라 님이 보여준 환영 속에서 빛의 신만 열 번을 넘게 갈라 버렸거든요.”

환영 속 보살이 당한 모욕들.

처용은 아직도 그 환영을 생각할 때마다 열이 뻗치는 중이었다.

무엇보다 그 환영은 실제 있었던 일을 카투라가 보여준 것.

그렇다면 과거 보살은 선천적 신격들에게 그런 모욕들을 당해 온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교단 본부를 판데모니움처럼 만들어 버리고 싶었습니다.”

처용이 눈을 날카롭게 뜨며 말했다.

방금 한 말은 실현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저지르고 싶은 마음이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계승자.]

보살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괜찮지 않습니다.”

보살의 말에 빛의 신이 생각난 처용이 주먹을 쥐며 말했다.

“당장이라도 야훼의 면상을 후려갈기고 싶은 마음입니다.”

야훼뿐 아니라 그 당시 보살을 모욕한 모든 이들을 기억했다.

“제 가족을 모욕한 이들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처용은 그 모든 이들을 응징할 생각이었다.

“그 누구라고 해도…….”

[……고마워요. 계승자.]

보살은 처용의 말에 잠시 침묵하고는 감사를 전했다.

처용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생생하게 전해졌으니까.

“궁금한 게 있습니다. 스승님.”

막 무언가 생각난 듯 처용이 여래에게 물었다.

“혹시 수련탑의 금강역사들은…….”

처용이 말을 흐리며 질문하자.

[네 생각이 맞다. 제자야.]

여래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금오도에서 선인의 수련을 받던 이들, 그 영혼들이 깃들어 있지.]

환영 속에서 억울하게 재판을 받고 죽임을 당한 이들.

그 영혼들이 깃든 골렘이 바로 금강역사들이었다.

[신법의 판결을 뒤집은 여파로 영혼들이 갈 길을 잃어버렸다.]

소룡을 포함한 이들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막았다.

그러나, 이미 잘못된 판결로 인해 죽어버린 이들을 되돌릴 순 없었다.

갈 곳을 잃고 떠도는 영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흩어져 소멸하게 된다.

혹은 사악한 기운에 노출되어 악령이 되어버리거나…….

여래는 그 영혼들을 구하고 싶었다.

[태초신의 도움을 받아 임시 육체를 만들고 그 안에 영혼을 정착시켰다.]

이것이 여래가 역천을 봉인하고 태초신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 중 하나였다.

“그렇군요.”

사정을 파악한 처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들과 대화가 가능합니까?”

처용이 궁금한 듯 물었다.

회귀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지만, 혹시나 싶었다.

[나도 잘 모르겠구나, 이 성역이 성장한다면 그 안에 깃든 영혼이 깨어날 수도 있겠지만…….]

“흠…… 알겠습니다.”

여래의 말을 들은 처용이 잠시 생각하고는 대답했다.

“아무튼, 빛의 신이 날뛰는 동안, 저희는 천천히 저희 할 일을 하면 됩니다.”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한 처용이 진지하게 말했다.

성지가 완성되고도 준비해야 할 일들은 많고도 많았으니까.

“당장 빛의 신이 성지에 마수를 뻗는 일은 없겠네요.”

그건 이번 일로 생긴 가장 유효한 효과였다.

선전포고를 제대로 당한 이상, 빛의 신은 크게 분노할 터.

그 분노가 마인들에게 향할 테니 처용의 성지에는 신경 쓸 겨를조차 없을 것이다.

“저희는 야훼가 지랄하는 걸 팝콘이나 먹으면서 구경하면 됩니다.”

원수들끼리 격렬하게 싸우는 동안, 조용히 힘을 모으고 때를 기다린다.

이것이 처용의 계획이었다.

[팝콘?]

“아, 남이 싸울 때, 구경하면서 먹으면 가장 맛있는 간식입니다. 하하.”

여래의 말에 처용이 작게 웃으며 말하고는 다음 계획을 위해 성지로 돌아갔다.

처용이 돌아가고 세 명의 성좌와 카투라만 남았을 때.

[그래서 지켜본 소감은 어때?]

카투라가 허공을 응시하며 누군가에게 말하듯 입을 열었다.

[크루마.]

그러자.

-화르륵!

태룡전 내부를 밝혀주는 불빛 중 일부가 일렁였다.

마치, 그녀의 말에 대답하듯…….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것 같군요…….]

그 모습을 본 보살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게 그냥 얌전히 오지 그랬나? 괜히 반항하다가 맞고 끌려오지 말고.]

미륵이 보살의 말에 작은 웃음을 보이며 누군가에게 말하듯 물었다.

그 말에 여래 역시 작은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좀 더 내면의 화를 식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아 보이는군요.]

[하하, 여래께서 그 화를 돋우지 않았습니까?]

여래의 말에 미륵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전 친절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허공을, 정확히는 흔들리는 불빛을 바라보는 여래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그러자.

[친절은 무슨! 다짜고짜 쳐들어 와서 날 깨우고 끌고 와 놓고!]

태룡전 내부에서 앙칼지고 화난 목소리가 울렸다.

[크루마…….]

카투라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그 목소리의 이름을 불렀다.

크루마-크타니드.

그는 카투라의 형제, 같은 태초의 마수 중 하나였다.

며칠 전, 여래는 카투라가 말해준 단서를 토대로 또 다른 태초의 마수, 크루마를 찾아내었다.

물론, 카투라처럼 일이 수월하게 풀리지는 않지만…….

여래가 흔들리는 불빛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를 마주하자마자 먼저 공격을 한 건 자네였지 않나?]

[네가 누님의 정수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크루마가 목소리를 높여 대답하자.

[카투라가 자네를 설득하라고 내게 건네준 것이라 말하지 않았나?]

여래가 작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어! 네가 누님을 죽였을지도 모르는데!]

크루마가 적대감을 담아 외치듯 말하자.

[내가 그럴 리 없지 않나?]

여래가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애초에! 누님이 위험에 처했던 게 너 때문-!]

크루마가 목소리를 점점 크게 높이고 상황이 점점 고조될 때.

[둘 다 그만.]

카투라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대로 두면 2차전이 시작될 것 같았으니까.

[크루마, 너도 지금의 상황을 파악했으니까 여기 있는 거잖아?]

[…….]

[도와줄 거지?]

[……누님의 부탁이라면요.]

카투라의 말에 크루마가 마지못한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크루마가 짜증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말을 흐렸다.

개인적으로 보살, 자비의 대신에게는 악감정이 없었다.

그러나 나머지 두 명만큼은 정말로 싫어하는 이들이었다.

특히, 여래는 더욱 그러했는데, 그로 인해 형제인 카투라가 신들의 표적이 되어 소멸할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필 누님을 위험하게 만든 놈들을…….]

크루마가 불만을 중얼거리자.

[이젠 우리 모두가 위험에 처해 있어.]

카투라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만히 있으면 우리 모두 먹잇감이 되어 잡아먹힐 뿐이야.]

[…….]

[여래가 알려주지 않았으면 너도, 나도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소멸했겠지.]

카투라의 말에 크루마가 침묵했다.

그녀의 말이 맞았으니까.

사악하고 거대한 ‘포식자’가 태초의 마수들을 잡아먹고 힘을 키우고 있었다.

[찾지 못한 형제들 중 일부는 벌써 잡아먹힌 상태일지도 몰라.]

[그럴 리가…… 없어요.]

카투라의 말에 크루마가 말을 흐리며 대답했다.

크루마는 그녀의 말에 부정하듯 말했지만, 말투 속에는 불안감이 일렁이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 둘만 남았을 수도 있어.]

카투라가 경고하듯 진지하게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너까지 잃을 수는 없어, 크루마.]

[…….]

크루마는 자신을 걱정해 주는 카투라의 말에 침묵하고는.

[……알았어요. 도와주면 되잖아요.]

마지못해 대답하는 듯 말을 전했다.

-화륵!

태룡전을 밝히는 불빛이 크게 한번 깜빡이자, 더 이상 크루마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크루마가 사라지자.

[네 말 만큼은 잘 들어서 다행이야, 카투라.]

여래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카투라를 향해 말했다.

[크루마는 형제들 중 내 말만큼은 잘 듣는 아이였으니까.]

카투라가 미소를 보이며 말하고는 걱정을 내비쳤다.

[다른 형제들도 찾아야 할 텐데.]

[찾을 수 있을 거다. 크루마도 생각보다 빨리 찾지 않았나?]

형제들을 걱정하는 카투라의 말에 여래가 대답하자.

[하지만……, 이제 단서가 없어. 크루마도 다른 형제들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했으니까.]

카투라가 답답한 듯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서둘러 형제들을 찾지 못하면 ‘포식자’에 의해 잡아먹힐 테니까.

[같은 형제들인 너와 크루마가 모르는 이상 놈들도 쉽게 찾진 못할 거다.]

카투라의 말에 미륵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관리자의 권한으로도 찾지 못하고 있으니까.]

미륵이 무언가 집중을 하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가 찾기 전까지 무사하길 바라는 수밖에 없겠네.]

미륵의 말에 카투라가 답답한 감정을 섞어 말했다.

자신과 크루마는 무사했지만, 다른 형제들의 생사는 알 수 없는 상황.

카투라는 진심으로 형제들이 무사하기를 기원했다.

그들이 잡아먹힌다면 ‘포식자’의 힘은 점점 강해진다.

그렇다면 그를 막을 수 없게 되고 미래와 같은, 종말이 반복될 것이다.

처용이……, 종말을 겪고 돌아온 계승자의 노력이 모두 허사가 되어 버린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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