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지상에 숨겨져 있던 아르테미스 신전이 무너졌다.
그리고 신계, 은밀한 장소에 숨겨져 있는 아르테미스의 신전.
지금 그 안에서는.
“꺄아아아아!!”
-쿠구구!! 콰콰쾅!!
신전 주인의 히스테릭한 괴성이 신전을 뒤흔들고 있었다.
“이! 하찮은! 벌레 같은! 하계종들이 감히!!”
-쿠쿵! 콰쾅!!
아르테미스가 사방에 신력을 폭발시키며 분노를 내뿜고 있었다.
하계에 세워 둔 신전이 무너졌다.
올림포스 성운이었던 이들조차 모르는 장소에 세웠던 신전이었다.
그런데, 웬 괴상한 가면을 쓴 하계종이 자신의 신격을 모독하고 신전을 무너뜨렸다.
심지어 신전 내부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들어갔었던 이들 전부가 사망했다.
공들여 육성한 정예 병사들인 달의 사제들.
그들은 심지어 ‘마기’까지 하사받아 더욱 강하게 육성된 병사들이었다.
그런 정예 병사들을 단 하루 만에 아홉이나 잃었다.
그나마 신관이었던 제니퍼는 목숨을 건졌지만…….
강렬하게 터지는 폭발과 화마로 인해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다.
당분간은 활동하기가 어려울 정도…….
거기에 신전이 무너지는 바람에 추가적인 병사 육성에도 차질이 생겼다.
비단 병사 육성뿐 아니라 앞으로의 계획에서 모든 부분에 차질이 발생했다.
“죽여 버릴 거야!! 전부! 찢어 없애버리겠다!! 이 버러지 같은 하계종들!!”
이미 조커라는 하계종이 자신의 조각상에 저지른 신격 모독에서부터 분노가 임계점을 넘은 상태였다.
추가로 신전의 붕괴까지…….
“꺄아아아아!!”
아르테미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분노의 괴성이 다시금 신전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여신의 날카로운 분노를 피해 대피한 두 성좌가 있었다.
“크큭, 네 동생 말려야 되는 거 아니냐?”
아레스가 작은 비웃음을 섞어 입꼬리를 올린 표정으로 아폴론에게 말하자.
“그냥 둬, 말려 봐야 화만 더 솟구칠 거다.”
여동생의 미친 성격을 잘 아는 아폴론이 질색하며 고개를 돌렸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친 아르테미스를 말릴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머리에 차오른 화가 알아서 꺼지기를 기다리는 것.
괜히 말린답시고 접근하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 될 게 뻔했다.
“크크, 저 미친년이 나보다 더 화려하게 당할 줄이야.”
아레스가 미쳐 날뛰는 아르테미스를 비웃듯 작게 웃으며 말했다.
분하고 억울해 미칠 것 같은 일을 남이 당하자, 뭔가 기분이 좋았으니까.
“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서 그런 말을 지껄이는 거냐!”
아폴론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런 아레스를 질책했다.
“너도……, 나조차도 아르테미스의 신전이 하계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몰랐다. 그런데!”
조커라는 하계종은 도대체 어떻게 아르테미스의 신전을 찾아냈단 말인가?
“하계종이라고 만만히 봐서는 안 될 놈이다.”
진지하게 경고를 담은 아폴론의 말에.
“크크, 하계종한테 얻어맞더니 패배 의식에 찌들었나. 아폴론?”
아레스는 아폴론이 하계종 출신의 성좌, 해전무신에게 패배한 것을 떠올리며 비웃음으로 답했다.
“너 이 자식!”
나름대로 진지하게 생각해서 한 말이 비웃음으로 돌아오자 아폴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아, 멍청한 놈…… 그렇게 자만하다가는 또 당할 거다.”
아폴론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뒤돌아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레스의 인상이 구겨졌다.
“하계종 따위한테 두 번 당할 줄 알고?”
아레스는 진심으로 두 번 다시 당하지 않으리라 자신했다.
새로운 신관을 구하고 준비를 마치는 대로, 그림자 놈들을 쳐부술 생각이었으니까.
자신들을 도와준 이들에게도 그것을 부탁받기도 했고…….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직접! 전부 지옥으로 보내주마.”
아레스가 복수를 다짐하고 있는 와중에도.
-꺄아아아아!!
-쿠쿠궁!!
아르테미스의 화는 아직도 풀리지 않았는지, 그녀는 여전히 날카로운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
한편, 태룡전 안에서는.
“하하하하!”
소환수를 통해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일어난 일을 확인한 처용이 크게 웃었다.
이렇게 유쾌하고 통쾌한 기분을 느껴보는 것이 얼마 만인가.
아르테미스가 미쳐 날뛸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났다.
[하, 아주 악당이 따로 없구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미륵이 짧게 웃으며 말했다.
“놈들한테 배운 걸 그대로 갚아 줄 뿐입니다.”
처용이 지금쯤 발광하며 날뛰고 있을 여신을 상상하며 비웃었다.
“저는 놈들에게 있어서 악당 정도가 아니라 대악마가 될 생각이니까요.”
단순히 놈들에게 배운 것을 그대로 써먹는 것뿐 아니라 두 배, 열 배로 갚아줄 생각이었으니까.
[하하! 기대되는구나.]
처용의 예고에 미륵이 기대된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그보다도 보물전에서 한참 동안 뭘 만드는 것 같더구나.]
여래가 처용을 향해 궁금한 듯 물었다.
“아 카투라 님에게 받은 영약을 분류하고 있었습니다.”
어제 카투라에게서 받은 공청석유.
처용은 보물전에서 공청석유와 다른 약재, 포션을 적절히 섞는 작업을 했다.
이를 성좌들에게 설명하자.
[영약의 힘을 의도적으로 낮추고 조절한 것이로군요.]
보살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웬만한 헌터가 아니고서야, 이 영약을 그대로 흡수하지 못할 테니까요.”
처용이 희석된 공청석유가 담긴 포션 병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선인의 육체를 가진 처용은 원액을 들이켜도 문제가 없었다.
육체가 영약의 힘을 알아서 효율적으로 흡수하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각각 몸 상태와 레벨에 맞게 조율해서 복용할 필요가 있었다.
약한 육체가 강한 영약을 원액으로 들이키면, 몸이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하고 터질 수 있으니까.
때문에, 영약을 희석시키고 또 여러 개로 나누어 복용하도록 분류한 것이었다.
태룡전을 나온 처용이 성지, 수련탑으로 향하다가.
“마침, 여기에 계셨네요.”
태민을 마주하고는 마침 잘 되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협회에서 이곳으로 바로 올 수 있게 해주셨잖아요.”
백호와 마주하며 이야기를 하고 있던 태민이 처용의 말에 대답했다.
성지가 있는 곳은 강원도 산골짜기, 협회와의 거리가 나름대로 먼 곳이었다.
처용은 인증 받은 사람들만 출입이 가능한 협회 보안 시설에 성지로 이어지는 게이트를 열어 두었다.
바쁜 일정을 보내는 헌터들을 배려하고 그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덕분에 원룸 팔고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 사람들도 있지만요. 하하.”
태민이 작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협회로 출근하는 이들 중 일부는 성지의 안식전에 눌러앉기도 했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치유되는 듯한 아름다운 경치의 성지.
최고급 한옥 호텔에 버금가는 안식전.
거기다 협회로 바로 출근 가능한 편리함까지!
현아를 포함한 헌터들은 이러한 이점을 알아보고 처용에게 이곳에 머무르게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처용 역시 나쁘지 않다고 판단하여 흔쾌히 수락했다.
태민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른 곳에 있던 협회의 강원도 지부까지 이곳으로 옮겼다.
물론, 엄중한 심사를 통과한 이들만이 성지에 있는 지부에서 근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건 뭔가?”
백호가 처용이 들고 있는 병을 보고 궁금한 듯 물었다.
“여러분들이 먹을 영약입니다.”
처용은 백호의 말에 대답하며 들고 있는 포션 병을 백호에게 건넸다.
“영약? 이 물이?”
백호가 푸른빛이 찰랑거리는 물을 관찰하며 말했고.
“흠…….”
태민은 백호의 손에 들린 물이 궁금한 듯 감정 스킬을 썼다.
그러자.
“어……, 어…….”
감정을 끝낸 태민이 어버버하며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이게 뭔데?”
“…….”
백호가 묻자 잠시 진정하려는 듯 침묵한 태민은.
“……이, 이 물의 감정 결과입니다.”
감정 결과가 적힌 종이를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백호에게 건넸다.
백호가 감정 결과를 확인하고는.
“레, 레…… 레전더리!?”
튀어나올 듯 눈을 크게 부릅뜨며 외쳤다.
자신이 보고 있는 서류가 정말인지 백호가 서류와 태민을 번갈아 바라봤다.
“제가 감정 스킬을 다섯 번이나 썼습니다.”
태민 역시 제 눈을 믿지 못하고 감정 스킬을 여러 번 사용했다.
그 결과는 모두 같았지만…….
“레전더리 등급의 영약……, 이게 실존하는 거였군요.”
“아티팩트 중에는 본적이 있지만…….”
백호의 동료, 커맨더가 사용하는 권총 아티팩트가 레전더리 등급이었다.
때문에, 유니크보다 상위인 ‘레전더리’ 등급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나도 레전더리 등급인 영약은 처음 봤다.”
“도대체 이 물의 가치가…….”
태민이 안경을 고쳐 쓰고 물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중국 경매에 나온 레어 등급 백년설삼이 180억에 팔렸다고 들었는데…….”
“크흠!”
백호는 태민의 말에 헛기침을 하고는 한 손으로 가볍게 쥐고 있던 포션 병을 두 손으로 잡았다.
마치 금이라도 가면 안 된다는 듯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감싸 안으면서.
손에 들린 물의 가치는 백호의 전 재산을 능가했으니까.
“하하.”
그 모습에 작은 웃음을 지은 처용은.
“과장님도 받으세요.”
태민에게도 물이 담긴 포션 병을 건넸다.
“예……, 예? 아, 아니! 이, 이걸.”
태민은 당황하면서도 처용이 건넨 포션 병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았다.
태민이 뭐라고 하기 전에 처용이 먼저 말을 이었다.
“부장님은 원액, 과장님은 50%로 희석시킨 겁니다.”
처용은 건네준 공청석유가 다 같은 것이 아니라고 설명을 했다.
“제가 각각 사람들의 수준에 맞게 재조합한 겁니다.”
“영약을요? 그래도 되는 건가요?”
태민이 궁금한 듯 묻자.
“과장님이 원액을 들이키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몸이 감당할 수 없는 영약을 함부로 먹으면 죽는다는 점을, 처용은 진지하게 경고했다.
“근데, 이렇게 귀한 걸 왜 우리한테?”
백호가 의문을 담아 물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자본만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영약이었으니까.
“저는 이미 마셔서 더 먹어 봐야 효과가 없습니다. 그리고.”
처용은 작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절 믿고 도와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선물입니다.”
진지한 목소리로 감사의 선물이라는 말을 전했다.
성지를 완성하는 데까지 이들의 도움도 적지 않았으니까.
아니, 적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 이들이었다.
“이틀에 한 번씩 아침마다 들이키시고 30분간 마나 명상을 하세요.”
처용은 마치 처방전을 내리듯 주의사항과 복용 방법을 말해주었다.
“아타한테 이야기해 놓았으니 이곳에 방문할 때 하나씩 가져가시면 됩니다.”
“……너무 큰 은혜를 받았는데.”
“다시 한 번 말하는 거지만, 이건 감사의 선물입니다. 아 그리고.”
백호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던 처용은 태민에게 작은 상자를 건넸다.
“이건 협회장님 가져다 드리세요.”
“혹시…… 이것도?”
태민의 물음에 처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2%로 희석시킨 거라 문제는 없습니다. 자양강장제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레전더리 등급의 영약으로 만든 자양강장제라니…… 참나.”
처용의 말에 백호가 실없는 웃음을 지었다.
“자네 덕에 형님이 호강하겠군.”
“하하, 웬만한 보약보다는 효과가 좋겠죠.”
백호의 말에 처용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처용은 나름대로 협회장을 생각해서 만든 것이었다.
그가 굳건하게 협회장의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대부분의 일들이 수월하게 처리되니까.
백호와 태민에게 한 번 더 영약의 주의사항을 말해준 후.
처용은 현아를 포함한 다른 이들에게도 영약을 건네주고 주의사항을 말해 주었다.
‘연화랑 윤아는…….’
영약을 다 나눠준 처용은 남은 공청석유를 생각하며 연화와 윤아를 생각했다.
가장 중요하게 선별한 이들 중 하나인 연화와 윤아에게는 아직 영약을 주지 않았다.
받은 공청석유가 많은 만큼 처용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이었으니까.
방금 협회 헌터들에게 나눠준 양만 따져도 카투라에게 받은 영약의 극히 일부밖에 쓰지 않았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생각한 중요 인원이 하나 더 있었다.
‘연아는 아직인가?’
어제, 카투라와 이야기를 마친 연아는 지금까지 그녀의 영역에 있었다.
여래의 말로는 각성을 위한 준비라고 듣긴 했지만, 걱정은 되었으니까.
그때.
[계승자, 지금 막 끝난 것 같습니다.]
보살의 전음이 들려왔고.
‘알겠습니다.’
그녀의 말을 알아들은 처용은 곧장 게이트를 열고 태룡전으로 향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