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과거 처용의 아버지인 한정민이 구해주었다는 사람들.
놀랍게도 그 사람들 중 하나가 바로 윤아의 가족들이었다.
“설마 아드님께서 두 번째 S급 헌터셨을 줄은…….”
윤아의 어머니, 혜진이 처용의 어머니를 보며 말했다.
“하, 하하,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우연이 다 있나…….”
커맨더가 헛웃음을 지으며 얼굴을 쓸었다.
여동생의 가족들을 구해준 사람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비록 그의 장례식에 직접 찾아가지는 못했지만…….
은혜를 입은 여동생인 혜진을 통해 사례금을 전달했었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동생의 가족을 구해준 사람이 처용이 아버지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인연이 이렇게 이어질 줄이야…….”
처용 역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스러운 듯 말을 흐렸다.
설마 자신이 구해준 사람들이 과거 아버지가 구해준 사람들이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윤아의 아버지 이제석이 처용과 그의 어머니를 향해 고개를 크게 숙이며 다시 감사를 전했다.
“저희를……, 윤아를 ‘세 번’이나 구해주셨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눈물까지 보이며 전하는 감사 인사에 처용의 어머니가 당황한 듯 두 부부를 일으켰다.
“왜 세 번입니까?”
궁금증이 든 처용이 질문했다.
자신이 윤아를 구해준 건 지하철에서 한 번, 청룡의 부탁으로 두 번이었으니까.
그러나.
“처용 헌터님 아버님께서 저희뿐 아니라, 윤아도 구해주었었습니다.”
“기절한 윤아한테 다가오는 몬스터를 막으려다가…….”
-어서! 따님이랑 같이 도망치세요!
제석과 혜진은 그 당시 정민의 외침 소리를 상기하며 처용을 향해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그렇군요.”
처용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회귀 전, 처음 각성했을 때가 생각났다.
다가오는 몬스터, 그리고 아이를 끌어안고 쓰러진 임산부.
그 상황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몬스터에게 달려든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비슷한 심정이었으려나…….’
처용은 이젠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아버지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했다.
“저, 전 사고가 일어났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 당시 기절했던 윤아는 자신이 모르던 사정을 파악하자 눈물을 글썽였다.
“흐윽, 죄송해서 어떻게 해요…….”
“괜찮아.”
훌쩍이는 윤아를 감싸준 것은 처용의 어머니였다.
“우리를 원망해도 할 말이 없는데…….”
커맨더 역시 처용과 그의 어머니를 향해 미안한 감정이 가득한 듯 눈을 감으며 말하자.
“여러분들은 잘못한 게 없습니다. 진정 잘못을 저지른 놈들은…….”
뒷말을 삼킨 처용이 말을 흐렸다.
“원망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진심이라는 듯 처용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정말…… 고마워.”
처용의 말을 알아들은 커맨더가 감사를 전했다.
어머니와 윤아, 그리고 윤아의 부모님에게 잠시 감정을 가라앉힐 시간을 준 후.
처용은 윤아와 다른 사람들을 태룡담으로 인도했다.
“가까이 가 봐.”
처용이 윤아에게 연못으로 가까이 다가가라 말했다. 윤아가 연못에 다가가자.
-쏴아아!
연못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솟구쳐 올라왔다.
[이곳으로 와 주어서 기쁘구나.]
못 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놀랍게도 청룡이었다.
“안녕하세요. 청룡 님.”
윤아가 청룡에게 다가가 해후하고 있을 때.
“화신체가…… 아닌데!?”
청룡을 관찰한 커맨더가 놀란 듯 처용에게 물었다.
“이곳은 평범한 성지가 아니니까요.”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곳 성지의 특징 중 하나는 성역, 태룡전의 환경이 일부분 구현되었다는 것.
그 증거로 태룡전의 유용한 전각들을 성지에 불러낼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태룡전에 거주를 허락받은 신격들이 성지에 본체로 강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시스템의 제약은 받기에 본래의 힘을 전부 발휘할 수는 없었지만.
분신, 즉 화신체 밖에 강림시키지 못하는 다른 성지에 비하면 엄청난 기능이었다.
지구가 무너져 가고 있을 당시…….
성지들 중 이 장소가 최후 방어선이 되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뒤통수를 치고 배신한 놈들 때문에 무너졌지만.
“과장님, 제가 전에 이 성지에서 무엇을 할지 대충 설명은 해드렸죠?”
처용이 태민을 향해 말하자.
“네, 그런데……, 그게 정말 가능할까요?”
태민이 의문을 섞어 대답하듯 물었다.
그리고.
“한 달 안에 100레벨을 돌파시켜 준다는 거……, 정말 사실인가요?”
태민의 옆에 있던 현아가 정말 궁금한 듯 처용에게 물었다.
태민과 백호를 따라온 이들 중에는 현아를 포함한 협회 정예 헌터들도 있었다.
백호가 직접 이끄는 이들 중 입이 무겁고 신뢰가 두터운 이들이었다.
“빠르면 일주일.”
처용이 현아의 물음에 자신감이 넘치는 강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 안에 A급 헌터가 될 수 있습니다.”
“믿기지가 않는데…… 묘하게 믿어지네요. 하하.”
처용의 말에 현아가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현재 그녀는 벌써 99레벨을 달성한 상태.
그간 바쁘게 처리한 일들과 독도에서의 치열한 싸움을 경험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더 성장하려면 ‘한계’를 돌파해야 하는 상황.
평생 던전을 돌아도 ‘한계’를 돌파하지 못하고 99레벨에 머무르는 헌터들은 많았다.
처용은 그런 헌터들의 ‘벽’인 한계 돌파를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듯 말했다.
심지어 빠르면 일주일 안에 가능하다고 하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원 150레벨에서 200레벨 이상으로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처용의 말에 사람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이며 놀람을 표했다.
“……나도 200레벨이 안 되는데?”
이들 중 가장 레벨이 높은 커맨더가 곤란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현재 레벨에서 1년 이상 레벨업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압니다. 지금 레벨이 정체되어있으시죠?”
처용이 묻자 커맨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계던전에서 S급 몬스터들을 주구장창 사냥했는데도 레벨이 오르지 않았으니까.
“방법이 있습니다.”
처용이 자신 있다는 듯 미소를 보이며 말하자.
“정말인가?”
백호가 기대감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 역시 커맨더와 마찬가지로 레벨이 정체된 상태였으니까.
처용이 막 무언가를 이야기하려 할 때.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청룡과 이야기를 마친 윤아가 돌아왔다.
“성좌하고 무슨 말을 한 거야?”
커맨더가 궁금한 듯 묻자.
“제 스킬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들었어요.”
“스킬?”
커맨더가 의문을 표하자.
“직접 보여 드릴게요.”
윤아가 대답하며 하늘을 바라보고는 눈을 살포시 감고 손을 모았다.
그리고.
“예고합니다.”
그녀의 말이 마치 물결에 퍼진 파문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울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따사로운 햇볕을 받은 여우비가 내릴 예정입니다.”
윤아의 말이 울리자.
-후둑! 투두둑!
햇빛이 만연한 하늘 위에서 따스함이 담긴 옅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절경에 가까운 태룡사의 경치에 따스한 햇볕을 담은 여우비가 내리며 하늘에 무지개가 떠올랐다.
“와!”
사람들이 풍경을 감상하며 감탄할 때.
“……엄청난데?”
처용은 윤아의 스킬을 전략적인 시선으로 관찰하며 감탄했다.
그녀가 사용한 스킬, ‘일기예고’는 날씨와 환경을 변화시키는 스킬이었다.
처용도 자연부를 이용해 주변 환경을 바꿀 수 있었지만.
윤아는 주변 환경뿐만이 아닌 한 지역의 날씨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작할 수 있었다.
환경을 조작하는 능력만큼은 그녀가 처용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지금 처용의 머릿속에는 그녀의 능력이 어떻게 활용될지 자동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음…….”
커맨더 역시 처용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 윤아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제 계획에 윤아는 뺄까 생각했었는데.”
처용이 커맨더를 향해 진지하게 말하자.
“성좌의 선택을 받고 S급 헌터가 된 이상, 저 아이도 싸울 운명이었던 거야.”
커맨더가 처용이 하고자 하는 말을 바로 알아듣고는 말을 이었다.
“보호만 받는 것보단,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힘을 갖추는 게 좋다고 봐. 적어도 나는…….”
“……동의합니다.”
처용이 커맨더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윤아를 성지에 데려온 이유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함이 우선이었다.
동시에 성지가 공격받는 등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예비 전력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녀의 클래스인 신룡만신은 생각보다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성지에 처박아 두고 썩히기가 너무나도 아까울 정도로…….
커맨더의 대답을 듣고 생각을 마친 처용은 윤아 역시 본격적으로 성장시키기로 마음먹었다.
***
금방 꺼질 듯한 작은 횃불만이 일렁이는 어둠 속.
-철그럭! 철그럭!
희미한 빛만이 일렁이는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발버둥 치는 듯, 쇠고랑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내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 아테나 네 이년!”
절규와 분노가 가득 담긴 포세이돈의 외침이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거참…… 더럽게 시끄럽네!”
포세이돈의 왼쪽에서 붉은 눈동자가 떠지더니, 짜증이 담긴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어깨까지 늘어져 산발이 된 갈색 머리에 사나운 인상을 가진 붉은 눈동자의 남자.
“하루 종~일 떠들고, 목청도 좋아 숙부?”
그가 포세이돈을 바라보며 비웃듯 말하자.
“조용히 해라, 아레스.”
같은 공간에 묶여 있던 금발을 늘어뜨린 미남자가 눈을 뜨며 말했다.
“큭큭큭……, 타르타로스에는 좀 적응이 되었나 봐? 아폴론.”
사나운 인상을 가진 붉은 눈동자의 남자, 아레스가 아폴론을 향해 비웃듯 말했다.
“머저리 같은 놈.”
아폴론이 아레스를 향해 일갈하듯 낮게 읊조렸다.
“애초에…… 네가 이상한 짓만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일이 꼬이지 않았을 거다.”
아레스의 신전에서 퍼진 대악마의 마기.
그것을 시작으로 준비하고 있던 모든 일이 어그러졌으니까.
“내가 미쳤다고 내 신전에 대악마의 마기를 퍼트리겠냐!”
아레스가 아폴론을 향해 분노를 토했다.
“나도 대악마의 마기가 왜 신전에 퍼졌는지 모른다고 이 새끼야!”
너무나도 억울했다.
아테나의 집권에 불만을 가진 형제들과의 대업을 위해 정말 많은 공을 들인 자신이었다.
그런데, 그 공든 탑이 뜬금없는 사고 한 방에 와르르 무너졌다.
심지어 어떻게 무슨 경위로 발생한 사고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
자신이 대악마의 마기에 쩔쩔매며 운신하는 사이.
이미 아테나는 자신을 배신자로 낙인찍고 타르타로스에 처박아 버렸다.
“성좌가 자신의 신전에 터진 일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
아레스의 말을 들은 아폴론이 아레스를 질책하듯 노성을 내뱉었다.
“몰라, 이 시발놈아!”
아레스와 아폴론이 언성을 높이며 말싸움을 시작하고.
포세이돈이 원통함에 울부짖을 때.
-철컥! 저벅. 저벅.
무언가가 작동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그 주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어두운 밤하늘과 같은, 어깨까지 늘어진 짙은 남색의 머리.
머리 위에 쓴, 달과 별이 조각된 은관.
싸늘한 느낌이 전해질 정도로 차가운 은빛 눈동자.
그리고 위험한 느낌이 드는 장난기 가득한 옅은 미소를 지은 여성.
아폴론과 아레스의 앞에 다가온 여성의 차가운 은빛 눈동자가 반달처럼 휘어졌다.
“이 등신 같은 놈들, 꼴들이 말이 아니네?”
다가온 여성이 조롱 섞인 말투를 내뱉으며 나타나자.
“아르테미스!”
“늦었어.”
아폴론이 그녀를 반겼고 아레스가 인상을 구기며 차갑게 말했다.
“너희 때문에 지금 움직이면 안 되는 이까지 움직였잖아! 이 병신들아!”
아폴론과 아레스에게 다가온 여신.
아르테미스가 좀 전의 지었던 미소를 싹 지운 채 사나운 표정으로 욕을 내뱉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아폴론과 아레스가 그녀의 뒤를 응시하자.
-스르르.
어둠 속에 몸을 감춘 어떤 실루엣이 일렁거렸다.
아마도 아르테미스가 말한 ‘지금 움직이면 안 되는 조력자’일 것이다.
“여기서 꺼내주는 만큼 그 쓸모를 다해야 할 거야. 알았지?”
사나운 표정을 싹 지운 아르테미스가 다시 작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
“나는 대악마의 공격을 받았는데?”
아레스가 아르테미스를 노려보며 말하자.
“그건 대악마의 짓이 아니야. 내가 직접 물어봤거든.”
아르테미스가 아레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섀도우 헌터라는 쓰레기 같은 하계종들이야.”
“……그래?”
아레스가 아르테미스의 말에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떤 새끼가 저지른 짓인지 내 직접 따져주지.”
이를 아득바득 갈고 있는 아레스를 보며 아르테미스가 재밌다는 듯 키득거렸다.
그리고 어둠 속에 숨은 조력자가 손을 들어 올리자.
-철그렁! 철그렁!
아폴론과 아레스를 구속하던 사슬이 풀려나갔다.
“나와, 이 머저리들아.”
아르테미스가 풀려난 두 신을 이끌고 나가려는 때.
“나는 왜 안 풀어주는 것이냐!”
이 상황을 지켜보던 포세이돈이 아르테미스를 향해 외쳤다.
“아?”
그 말에 아르테미스가 고개를 돌려 포세이돈을 바라봤다.
“쓰레기가 하나 있었지 참?”
아르테미스가 광기가 묻어나오는 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무, 뭐라!”
포세이돈이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이젠 대신도 아니고, 트라이던트도 잃었다며? 그럼 쓰레기지.”
-콰직!
아르테미스가 눈을 반달처럼 휘며 포세이돈을 짓밟았다.
“이! 이!”
분노가 차오른 포세이돈이 몸부림쳤다.
아르테미스는 포세이돈을 잠시 내려다보더니.
-스르릉.
등 뒤에 매여 있던, 반달처럼 휘어진 은색의 곡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포세이돈의 머리카락을 움켜줘 들어 올리고는 칼날을 목에 가져다 대었다.
“숙부는 하계종과 같은 쓰레기가 되었으니 쓰레기통에 가야 할 시간이에요? 아셨죠?”
“나, 난! 사, 살려!”
포세이돈이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남겨둔 쓰레기가 그년한테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면 곤란하잖아?”
아르테미스가 넌지시 속삭이듯 한 말을 마지막으로.
-스악!
은빛 선이 길게 그어지며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전리품으로 쓸 사람?”
피를 뒤집어쓴 아르테미스가 잘려나간 포세이돈의 머리를 흔들며 말하자.
“필요 없다!”
“꺼져!”
아폴론과 아레스가 미친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질색했다.
“음…….”
아르테미스는 포세이돈의 잘려나간 머리를 감상하며 잠시 생각하고는.
“가자!”
-툭!
머리를 아무 곳에나 던져버린 다음 뒤돌아 나갔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