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처용이 바닥에 태룡전의 열쇠를 꽂은 순간!
-피이이!
태룡산의 외곽에서 열 개의 빛기둥이 하늘로 솟구쳤다.
동시에.
-쿠구구!
땅이 조금 흔들리며 위로 올라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 뭔 일이? 일어나는 거야!?”
연아가 중심을 잡기 힘든 듯 땅을 짚으며 중얼거렸다.
“땅이…… 늘어나는 건가요?”
마나를 보태며 작업을 돕던 아타가 자신의 말이 맞는지 처용에게 물었다.
성지를 만들기 위해 한 일 중 하나는 태룡산의 외곽에 처용이 만들어 준 결계석을 세우는 것이었다.
처용이 하늘과 땅에 부적을 던지고 그 부적이 각각 결계석을 향했다.
결계석에서 빛기둥이 솟구치고 나자, 산의 면적이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맞아.”
처용이 아타의 물음을 긍정하며 말을 이었다.
“적어도 세 배 이상은 늘어날 거야.”
성지로 선포한 땅이 넓어지는 것.
이것은 성지화의 현상 중 하나였다.
예를 들어 올림포스의 성지가 되기 전 워싱턴의 면적은 170제곱 킬로미터 정도.
그러나 성지가 된 이후에는 250제곱 킬로미터가 넘어갈 정도로 면적이 크게 넓어졌다.
지금의 태룡산도 마찬가지였다.
-쿠구구!
나름대로 면적이 넓은 큰 산이 두 배, 세 배로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쏴아아!
태룡산의 외곽에 물이 차오르더니 넓은 호수를 형성했다.
전체적인 풍경이 마치, 산이 아닌 섬과 비슷한 형태가 되었다.
-쿠구…….
이윽고 땅의 울림이 멈추자.
“끄, 끝난 거야?”
연아가 몸을 일으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아니.”
처용은 연아의 질문을 단호하게 부정하며 대답했다.
“이제 겨우 밑 작업이 끝났는데?”
처용의 말이 끝나자.
-쿠궁!
다시금, 땅이 흔들리더니.
-쩌저적!!
지면의 일부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사, 산꼭대기가 없어지는데!? 저거 괜찮은 거야?”
연아가 산 정상을 손가락질하며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태룡산의 정상 부근이 마치 땅으로 꺼지듯 아래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원래라면 굴러떨어지는 돌들로 산사태가 일어나야 하지만.
산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돌은 하나도 없었고 처용도 이를 태연하게 지켜보고만 있었다.
산 정상이 땅밑으로 무너지던 현상이 멈추고.
-쏴아아.
무너져 내린 산 정상에 물이 차오르더니 드넓은 호수를 형성했다.
마치 제주도 한라산의 백록담, 백두산의 천지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5킬로미터가 훌쩍 넘는 크기의 연못.
그곳에서 차오른 물이 산 아래를 타고 내려가더니.
-촤아아!
폭포를 형성하며 곳곳에 크고 작은 연못들을 만들어 내 흘러내려 갔다.
“와…….”
연아와 어머니가 확 바뀐 태룡산의 풍경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네.’
처용이 산 정상에 생긴 호수와 아래로 흐르는 물을 보며 추억에 잠겼다.
회귀 전에는 태룡담(太龍潭)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연못.
이 태룡담은 단순한 연못이 아니었다.
-쏴아아.
태룡담의 중앙에서 거대한 연잎이 솟아 올라왔고.
그 중앙에서 웅장한 크기의 전각들이 나타났다.
성역, 태룡전에 있는 전각들과 같은 모습의 전각들.
태룡담은 바로 성역, 태룡전과 직통으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물론, 허가를 받은 이들을 제외하고는 저곳에 드나들 수 없었지만.
“이제 건물을 세워 볼까?”
처용이 태룡전의 열쇠를 손에 쥐며 눈을 감았다.
그러자 마치 미니맵처럼, 머릿속에 성지로 변한 태룡산의 모습 전체가 나타났다.
시선을 움직여 태룡담과 가까운 곳, 가족들이 거주했던 건물을 찾았다.
‘이곳을 안식전으로 지정한다.’
처용이 열쇠를 쥐고 명령을 내리자.
-쿠구구!
낡은 건물이 무너져내리고 마치 안개 속에서 나타나듯 무언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안개가 완전히 거두어지고 나타난 것은 바로 안식전과 같은 형태를 가진 건물이었다.
처용이 행한 것은 성지의 기능 중 하나였다.
바로 성역, 태룡전에 구현된 전각의 복제 버전을 성지에 만들어 내는 능력이었다.
그렇게 적당한 위치에 보물전과 수련탑의 레플리카를 만들어 내고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아타, 시작해.”
처용이 아타를 바라보며 말하자.
“알겠습니다. 용님.”
아타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녀가 손을 휘젓자, 마치 명령이라도 받은 듯 개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몇 개미들은 마치 도로공사를 하듯 인도를 깔끔하게 다듬었고.
일부 개미들은 불필요한 바위나 나무들을 정리하며 조경을 다듬었다.
중간중간 형성된 넓은 못과 호수들에서는 다리를 설치하거나 정자를 세우는 등의 각종 건설 작업이 시작됐다.
이 모든 건, 처용이 아타에게 성지가 어떻게 변할지 자세히 알려주면서 사전에 협의한 것들이었다.
개미들이 성지를 관리하기 시작하자 아름다웠던 풍경이 더 깔끔하게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여기가 우리 집이라고?”
입을 크게 벌리고 풍경을 감상하던 연아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어머니 역시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전보다는 훨씬 낫죠?”
미소를 지으며 처용이 말하자.
“……현실감이 없구나.”
어머니가 작은 헛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하루아침에 평범한 사찰이었던, 집이었던 태룡사가 무릉도원(武陵桃源)처럼 변해버렸으니까.
“뭐, 천천히 구경해 보세요.”
“하하……, 오늘 안에 다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처용의 말에 미소를 지은 어머니가 안식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처용은 바뀐 환경을 구경하며 멀어지는 연아와 어머니를 보다가.
“성지에 보호 대상을 지정하겠다.”
태룡전의 열쇠를 쥐며 말했다.
그러자.
[최대 10명의 보호 대상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성역, 태룡전이 성장할수록 최대 보호 인원이 증가합니다.]
시스템 창이 나타나며 알림이 울렸다.
처용이 시스템이 알려준 ‘보호 대상’에 우선 어머니와 연아를 등록했다.
[성지의 거주자 ‘박연수’와 ‘한연아’를 보호 대상으로 지정합니다.]
“일단…… 이걸로 안심이네.”
시스템을 확인한 처용이 작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보호 대상을 지정하는 능력.
다른 신의 성지에는 전혀 없는, 성지가 된 태룡사만이 가진 능력이었다.
보호 대상이 된 어머니와 연아는 한국을 벗어나 해외로 가지 않는 한.
항상 성지의 보호를 받게 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한국 내에서 보호 대상이 위험에 처한 경우.
성역의 수호자들인 금강역사들이 게이트를 열고 나타나 그들을 보호한다.
동시에 성지의 주인들, 처용과 성좌들에게 보호 대상이 위험하다는 상황을 시스템을 통해 알린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기능은 따로 있었다.
바로 처용이 허락하면 즉시 보호 대상들을 성지로 워프시킬 수 있다는 것.
이 능력이 있는 한, 가족들은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다.
‘두 번 다시는…….’
처용이 주먹을 쥐며 속으로 다짐했다.
‘두 번 다시는 잃지 않을 것이다!’
남들은 알지 못하는 미래의 정보를 아는 만큼.
이번에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
“한국에서 성지라니…….”
협회 차량을 운전하고 있는 태민이 읊조리자.
“어떤 모습일지 기대되지 않냐? 태민아.”
옆좌석에 앉은 백호가 그 말에 대답하듯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뒷좌석.
그곳에는 네 명의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윤아를, 하나뿐인 외동딸을 너무 쉽게 보내는 거 아니야?”
커맨더가 자신을 마주 보는, 40대로 보이는 여성을 향해 말했다.
“윤아가 가기로 했으니까, 그리고…… 오빠도 그게 윤아한테 좋을 거라고 말했잖아?”
커맨더와 마주 보는 여성이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커맨더의 여동생이자 윤아의 어머니였다.
“그곳이 저한테는 안전한 곳이라고 청룡 님께서 말해주셨어요.”
커맨더의 옆자리에 앉은 윤아가 앞에 앉은 부모님을 향해 말했다.
“엄마는 그냥 네가 평범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윤아의 어머니가 딸을 향해 복잡한 감정을 담아 말했다.
“각성했다고 해서 모두가 헌터가 되는 건 아니지만, 윤아는 어쩔 수 없어.”
커맨더가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여동생을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나처럼 신의 신관으로 선택받았으니까.”
이야기를 듣던 두 부부가 커맨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전에 충분히 설명을 듣기도 했고 신관에 대해 이해를 했으니까.
다만, 딸에 대한 걱정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왜 같이 가겠다고 한 거야?”
커맨더가 두 부부를 향해 의문을 담아 질문했다.
원래는 이야기를 전한 후에 윤아만 데려갈 생각이었지만.
그간 있었던 사정을 들은 두 부부가 무언가 생각에 잠기더니 동행을 요청했다.
“큰 은혜를 받았으니 직접 감사를 전해야죠.”
커맨더를 향해 윤아의 아버지가 진지하게 말하자.
“그리고 태룡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곳이기도 하니까.”
윤아의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커맨더가 대답했을 때.
“다 왔는데…… 여기가 맞아?”
창밖을 바라본 백호가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비게이션에 찍힌 지도대로 왔지만, 지도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원래는 산의 입구여야 하는 장소가 거대한 강줄기가 감싸고 있는 섬이 되어버렸으니까.
차량에서 내린 사람들이 모두 멍한 표정으로 풍경을 구경할 때.
-파지직!
“오셨네요.”
번개가 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처용이 나타났다.
“섬? 산? 저게 성지야?”
커맨더의 물음에 처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토류부-바위다리.”
처용이 강줄기에 토류부를 던지자.
-쩌저저저적!
주변에 바위들이 뭉쳐 들더니 넓은 다리가 만들어졌다.
“그럼 가시죠.”
처용이 앞장서 걸어가자, 차량에서 내린 일행들이 따라가기 시작했다.
윤아의 양옆에 자리한 그녀의 부모님들 역시 처용을 따라갔다.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 처용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다리를 거의 다 건너자.
“이~야! 장관이구만?”
깔끔하게 정돈된 길을 따라 펼쳐진 자연환경에 백호가 감탄을 자아냈다.
“올림포스의 성지하고는 느낌이 확 다른데?”
커맨더 역시 주변을 관찰하며 감탄했다.
신선들이 거주하는 선계(仙界)가 실존한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태룡사의 입구를 상징하는 사찰 건물, 일주문에 도달하자.
[주의! 개미를 공격하지 마시오.]
[개미들은 몬스터가 아닌 성지의 관리인들입니다.]
[성지에서 공격 행위가 있을 시…….]
넓은 나무 간판에 새겨진 경고문이 보였다.
처용의 어머니가 설치해 놓은 것이었다.
사정을 아는 백호와 태민 등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개미……?”
현아를 포함한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고개를 기울이며 의문을 표했다.
계속 쭉 나아가자.
-척척척척척.
입구 게시판에서 말한 개미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일부 사람들은 사람 못지않은 덩치를 가진 개미들을 보며 긴장했지만.
개미들은 낯선 방문객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조경을 다듬거나 무언가를 만드는 등, 하던 일을 계속했다.
“소환수를 이렇게 다루는 건가?”
커맨더가 흥미롭게 개미들을 관찰하며 처용에게 물었다.
“엄연히 따지면 소환수가 아니에요. 커맨더, 이들은…….”
처용이 커맨더에게 개미들에 대해 설명했다.
일행들이 서로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쭉 이동하자.
“전에 말했던 손님들이니?”
멀리서 처용을 발견한 어머니가 다가왔다.
그리고.
“오랜만이에요. 연수 씨.”
뒤에 있던 윤아의 어머니가 처용의 어머니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마치, 이미 알고 있는 이를 반기듯이.
“어머, 혜진 씨? 제석 씨까지? 여긴 어떻게?”
처용의 어머니 역시 윤아의 부모님을 알고 있다는 듯 놀람을 표했다.
“아는 사이셨어요?”
처용이 궁금한 듯 어머니에게 물었다.
옆에 있던 커맨더와 윤아 역시 이 상황이 궁금한 듯한 눈치였다.
“역시…… 그때 장례식장에서 봤었던 아들이 맞았군요.”
윤아의 아버지, 이제석이 처용의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그리고.
“저희를 세 번이나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처용과 어머니에게 감사를 전했다.
“……?”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처용이 어머니와 제석을 번갈아 바라봤고.
커맨더 역시 이 상황이 궁금한 듯 자신의 여동생을 바라봤다.
그러자.
“옛날에…… 연수 씨의 남편인 한정민 씨가 저희를 구해주셨었습니다.”
윤아의 어머니, 혜진이 처용의 아버지를 언급했다.
“하하, 이 무슨…….”
운명의 장난 같은 이 상황에 처용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