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129화 (129/726)

#129화

처용의 요구에 티케가 인상을 찌푸렸지만.

[진지하게 생각을 좀 해 봤다.]

아테나가 작은 미소를 지으며 처용에게 말했다.

[너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올림포스 주신께서 챙겨주는 대가라…… 기대되네요?”

처용이 마주 웃으며 대답했다.

속으로는 아테나의 말을 듣고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생각한 답은…… 이거 외엔 떠오르지 않더구나.]

아테나가 말함과 동시에 허공에 손짓하며 무언가를 불러냈다.

[나와라.]

그러자.

-스릉.

날카로운 소리와 동시에 검은 대낫이 나타났다.

[아테나! 그건?]

티케가 대낫을 보고는 놀란 듯 아테나를 불렀다.

[그건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게-.]

[트라이던트를 만질 수 있는 인간이 과연 평범한 인간일까?]

아테나의 말에 티케가 입을 다물었다.

“정말 그게 대가입니까?”

처용이 아테나를 향해 진지하게 물었다.

아테나가 꺼낸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까.

[오? 이게 뭔지 아는 눈치이구나?]

“그건 ‘스퀴테’이지 않습니까?”

처용은 아테나의 물음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진짜 신물이 아닌 성물인 것 같지만.”

검은 대낫 형태의 무구인 스퀴테.

아테나가 꺼낸 성물, 스퀴테는 과거 올림포스 소속이었던 성좌의 무구였다.

문제는 그 성좌가…….

“올림포스 ‘전전 주신’의 성물을 막 넘겨도 괜찮은 겁니까?”

제우스 이전의 올림포스 주신이었던 성좌.

스퀴테는 시간과 죽음의 신, 크로노스의 무구였다.

[받아.]

아테나가 토스하듯 가볍게 스퀴테를 던지자.

-탁.

처용이 가볍게 스퀴테를 받아냈다.

[아니! 어떻게!?]

티케가 스퀴테를 잡은 처용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역시…… 진짜 트라이던트를 다룰 때부터 예상했지만…….]

스퀴테를 건네준 아테나도 눈을 가늘게 뜨며 읊조리듯 말했다.

[진짜 스퀴테도 다룰 수 있는지 궁금하지만, 그건 내가 꺼낼 수가 없어.]

“분에 넘치는 건 원하지도 않습니다.”

[하하, 성물은 분에 넘치는 게 아닌가 보구나?]

“……해 봐야 알겠네요.”

처용이 스퀴테를 관찰하며 아테나에게 대답했고.

“이것이 저에게 분에 넘치는 대가인지를…….”

스퀴테를 향해 통찰의 눈을 발동했다.

[올림포스 주신, 아테나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성물 스퀴테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스퀴테 / 성물(聖物)]

[등급 : 신화]

[시간과 죽음의 신 크로노스의 성물.]

[신물, 스퀴테의 일부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형상 이식 사용 가능.

-시간의 상처 사용 가능.

-시간의 발걸음 사용 가능.

-확인 불가.

[신력 스테이터스가 성장할수록 성물의 제한이 풀립니다.]

“다룰 수는 있겠네요.”

스퀴테를 확인한 처용이 태연하게 말함과 동시에.

-우우웅.

아공간에서 화염의 절을 꺼내 들었다.

“형상 이식.”

스퀴테의 권능 중 하나인 형상 이식을 발동하며 화염의 절에 스퀴테를 갖다 대었다.

그러자.

-스르르르!

스퀴테가 검은 물처럼 녹아내리더니 화염의 절을 감싸며 스며들었다.

스퀴테가 완전히 녹아 화염의 절에 스며들자 붉게 타오르는 화염의 절에 검은 오오라가 일렁였다.

[아니? 이건……! 이,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야!?]

그 광경을 지켜본 티케가 이마를 부여잡으며 소리쳤다.

[……형상 이식 말고 다른 권능도 쓸 수 있겠느냐?]

아테나가 놀란 듯 살짝 커진 눈으로 처용에게 묻자.

“시간의 상처까지는 다룰 수 있겠네요.”

처용이 화염의 절을 허공에 가볍게 그어 보이며 답했다.

칼날이 허공을 긋고 잠시 뒤.

-……쩌적!

마치 베인 자국처럼 보이는 얇은 균열이 허공에 그어졌다.

[하, 하하하…….]

그것을 본 아테나가 헛웃음을 흘렸다.

[도대체 제자에게 무엇을 가르친 겁니까? 역천의 신.]

아테나의 질문에 여래가 작은 웃음을 보였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이 있지요.]

[……그런가요.]

여래의 대답을 진지하게 생각한 아테나는 말을 흐리며 대답했다.

여래는 원래 인간이었던 자.

그가 자신보다 더 나은 제자라고 처용을 평가했다.

그렇다는 것은 눈앞의 인간이 가진 잠재력은 단순 신력을 가진 것에서 끝날 리가 없다는 것.

“그렇게 신기한가?”

처용이 입을 다물지 못하는 제시카와 메리를 향해 묻자.

“지금 그걸 말이라고…….”

제시카가 표정을 수습하며 말을 흐렸다.

“주신의 성물은 너도 다룰 수 있을 텐데?”

“당신이랑은 경우가 다르지 않습니까!?”

처용의 말에 제시카가 황당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자신은 올림포스 주신, 아테나의 신관 자격으로 성물 아스트라페를 다룰 수 있었다.

하지만, 처용은 자격과 제한 없이 주신의 무구를 자유롭게 다루는 듯 보였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 것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스퀴테는 요긴하게 잘 쓰겠습니다.”

[도움이 됐으면 좋겠구나.]

“도움이 되고 말고요.”

처용은 아테나의 말에 진지하게 대답했다.

스퀴테의 권능인 시간의 상처, 이것의 힘을 잘 알고 있으니까.

스퀴테가 이식된 화염의 절을 아공간에 집어넣은 처용은.

“로스차일드를 네가 신경 쓴다고 한다면.”

제시카를 보며 궁금한 듯 질문했다.

“미국에 뿌리내린 마인들은 누구한테 맡길 생각이지?”

제시카는 처용의 말에 잠시 생각하듯 침묵하고는.

“임무를 나간 에로스의 신관, ‘빌리’가 돌아온다면 맡길 생각입니다.”

올림포스 소속 길드장 중 한 명을 언급했다.

“……그런가?”

잠시 생각한 처용은 제시카의 말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올림포스 길드장 중 강자라고 할 수 있는 헌터는 많았다.

대표적으로 헤라클레스의 신관과 헤스티아의 신관 등.

하지만, 이런 강자 중에서도 ‘대인전의 스페셜리스트’는 따로 있었다.

에로스의 신관을 생각하며 잠시 침묵한 처용은.

“유의미한 정보를 얻으면 곧장 알려주지.”

제시카를 향해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그때.

“잠시만요.”

제시카의 부름에 처용이 멈칫하자.

“그…… 힌트를 알려주신 것은 감사합니다만, 진척이 없습니다…….”

“……아.”

처용은 제시카의 말을 듣고는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그럼 쉽게 거저먹을 줄 알았어?”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습니다만…….”

제시카가 처용의 말에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흐렸다.

처용이 알려준 힌트를 들은 제시카는 신성력을 몸에 순환시키며 마나 명상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가볍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행한 명상의 결과는…….

마치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엄청난 격통으로 다가왔다.

피와 마나가 순환하는 혈관에 돌덩이를 쑤셔 넣고 강제로 통과시키는 느낌.

제시카는 초월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계속 유지를 해 봤지만.

고작 5분을 지속하는 것이 한계였다.

“애초에 신성력은, 인간의 몸에 신의 힘이 부담되지 않도록 가공된 힘이다.”

인간의 몸은 약하다.

아무리 신관이라 해도 그런 약한 인간의 육체에 순수한 신력을 내려받는다면 몸이 버틸 수 없다.

성좌가 강신을 무한히 유지할 수 없는 이유에는 시스템의 제약도 있었지만.

신관의 몸이 오래 버틸 수 없다는 이유도 컸다.

때문에, 신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내려지는 힘은 순수한 신력이 아닌 가공된 에너지인 신성력.

그러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가공된 힘이라 해도 신의 힘은 신의 힘이었다.

조심스럽고 정교하게 다루어야 하는 에너지.

“당연히 고통스러울 수밖에.”

처용이 제시카에게 알려준 방법은 인간의 몸에 신의 힘을 적응시키는 것.

신성력을 가진 신관들만이 가능한 방법으로 이른바 꼼수에 가까웠다.

그러나.

“인간의 몸으로 신의 힘을 감당하는 게 쉬울 리가?”

“하지만, 당신은…….”

제시카가 처용의 물음에 말을 흐리며 반문했다.

신성력을 감당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처용은 순수한 자신만의 신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모든 힘은 육체에서 나온다.”

자리에서 일어선 처용이 오른손을 뒤로 뻗었다.

그러고는.

-우드득!

마치 무언가를 움켜쥐듯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쿠구!

모두가 자리한 이 공간이 조금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하…….]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아챈 아테나가 처용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육체의 힘만으로?]

아테나가 처용을 바라보며 묻자 처용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성기의 처용은 맨손으로 악신들의 결계를 찢어내는 것도 가능했었다.

지금은 이 정도가 고작이지만…….

“아테나 님께서 대가치고는 큰 선물을 주시기도 했으니, 작은 도움을 주지.”

제시카를 바라본 처용이 진지하게 물었다.

“안정적이지만 오래 걸리는 방법, 지금보다 배는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빠른 방법.”

처용의 말이 끝나자마자.

“후자로 부탁드립니다.”

제시카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처용은 마치 예상했다는 듯 미소를 보이며 제시카에게 방법을 이야기했다.

마침 아테나도 이 자리에 있었으니까.

협력에 대한 대가치고는 넘치게 주는 것일 수도 있었지만.

내부 문제를 해결한 올림포스의 길드장이 성장한다면 분명 미래에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다.

무엇보다 제시카가 신력을 개화한다면 제니퍼에게 살해당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지금 시기에서 제시카가 잘못된다면, 기껏 안정된 올림포스가 박살 날 것이다.

그간의 노력이 허사가 되는 셈…….

그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다.

***

일을 마친 처용이 연화와 함께 태룡사로 돌아오자.

“오셨어요. 용님?”

아타가 처용과 연화를 반겼다.

그녀는 지금 태룡전이 아닌 처용의 본가, 태룡사에 있었다.

“얼마나 진행됐어?”

처용이 아타에게 묻자.

“거의 다 끝났어요.”

아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현재 태룡사의 성지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외부에 결계석을 세우고 지하에 진법을 그리는 등 많은 준비가 필요한 것이 성지화였지만.

노동력 하나는 기가 막힌 개미들이 있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원래는 사흘을 예상하고 작업을 시작했었다.

그러나, 포세이돈과의 전쟁으로 소모된 개미들을 보충하기 위해 아타에게 시간이 필요했다.

때문에, 성지 작업이 예상보다 더 걸렸지만.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고 순조롭게 끝나가고 있었다.

처용과 아타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척척척척척.

여러 박스들을 짊어진 개미들이 일렬로 이동하는 것이 보였고.

그 옆에서 어머니가 작은 상자를 들고 같이 움직였다.

“짐 정리는 다 끝난 건가요?”

처용이 어머니에게 다가가서 묻자.

“이게 마지막 짐이야!”

개미들 뒤에서 따라오던 연아가 큰 소리로 말했다.

성지화 작업을 위해 개미들이 필요한 만큼.

처용은 가족을 포함한, 태룡사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개미와 뱀파이어의 존재를 알렸다.

개미들이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을 때에는 조금 걱정을 하긴 했었다.

인간과 유사하게 생긴 아타는 몰라도 그녀가 다스리는 개미들은 몬스터로 보일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걱정과는 다르게 어머니와 연아는 이종족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좋은 애들(?)이 있었으면, 진작 좀 알려주지.”

어머니는 일을 잘하는 개미들이 매우 마음에 든 듯 보였다.

처용은 계획대로 잘 된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부터 시작해서 태룡사의 유지 보수 작업까지, 모든 부분에서 만능인 개미들이었다.

이들이 어머니의 일을 돕는다면 더욱 편해질 테니까.

태룡사에 거주하는 다른 일반인들 역시 어머니가 잘 설명해 준 덕분인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근데, 짐은 왜 다 빼라고 한 거야?”

연아가 궁금한 듯 묻자.

“집이 있는 부분은 새로 건물을 세울 거라서.”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건물 짓는 동안 우리는 어디서 자라고!?”

처용의 대답에 연아가 따지듯 말했고 그 말에 처용이 피식 웃었다.

“잘못 말했네. 건물을 세운다기보다는 건물이 나타날 거야.”

“응?”

연아가 처용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기울일 때.

“아타, 준비는?”

처용이 아타에게 미리 지시한 것들을 하나하나 물어보며 최종 점검을 했다.

“지시하신 부분은 전부 끝냈습니다.”

아타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럼, 시작할까?”

처용이 말함과 동시에.

“명환부.”

명환부 열 장을 하늘로 쏘아 보내자.

-피이잉!

명환부가 빛 꼬리를 그리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토류부.”

토류부 열 장을 땅으로 던지자.

-스르륵.

토류부가 땅으로 녹아드는 듯 스며들어 사라졌다.

“아타.”

처용이 아타를 부르자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 땅에 두 손을 대며 마나를 흘려보냈다.

“내가 토류부로 지정한 부분에 힘을 더해 줘.”

“알겠습니다.”

아타에게 지령을 마친 처용은.

‘준비되셨습니까?’

성좌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언제든 시작하시면 됩니다. 계승자.]

보살의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옴과 동시에.

[하하하, 성지를 이렇게 빨리 구현할 줄이야.]

이 상황이 즐거운 듯 미륵이 웃으며 말했다.

[시작하거라. 제자야.]

여래의 대답을 들은 처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태룡전의 열쇠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갑니다!”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외침과 동시에 땅에 태룡전의 열쇠를 꽂았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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