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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127화 (127/726)

#127화

정체가 들통난 안드라스가 처용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 계속 발버둥 쳤지만.

[이이! 크으윽!]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아니, 화신체를 해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마치 포식자의 이빨에 물린 먹잇감처럼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안드라스는 자신을 붙잡은 처용을 향해 공격을 시도했다.

[애시드 레이져!]

안드라스의 눈에서 검은 레이져가 나와 처용의 얼굴로 쏘아졌다.

-지이잉!

가까이 붙어있던 탓에 처용의 얼굴에 광선이 적중했다.

이제 구속을 뿌리치고 빠져나가야 했지만.

“발버둥이 너무 하찮은데?”

검은 광선에 적중당한 처용의 얼굴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이, 이!]

안드라스가 당황한 음성을 토했다.

아무리 자신의 화신체가 대악마들 중에는 약하다 하지만.

고작 인간을 상대로 이렇게 압도당한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 본체와 합류하여 도망가야 했다.

그러나 자신의 상태를 정밀하게 확인한 안드라스가.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

처용을 향해 분노와 의문을 드러냈다.

화신체에 점점 힘이 빠지고 있었다.

아니, 화신체에 침투한 무언가가 점점 힘을 갉아먹고 있었다.

심지어 침투한 힘이 본체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상황.

자신을 고통받게 만드는 신살의 힘과는 다른 무언가가 더 있었다.

“파마(破魔)의 신력에 물린 이상.”

처용이 안드라스를 향해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놈이 빠져나가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해.”

-우드드득!

처용이 화염의 절에 더욱 힘을 주어 비틀었다.

동시에 황금빛으로 타오르는 파마의 신력이 도신을 타고 안드라스에게 흘러갔다.

[크으윽! 크어어어!!]

안드라스가 체내에 침투한 힘에 저항하지 못하고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파마의 힘이 화신체의 내부를 불태우며 대악마의 마기를 소멸시키고 있었다.

“이 힘은 오직 네놈들을 죽이기 위해 단련한 것이니까!”

처용이 가진 파마의 신력은 대악마들을 상대하기 위해.

아니, 악신들의 최고 정점에 있는 악의 종주.

그자를 상대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마한 힘이었다.

파마의 신력은 악신들에게 있어서 포식자와 다름이 없었다.

처용이 안드라스의 화신체를 붙잡고 있을 때.

-화아아!

아테나의 옆에서 새로운 화신체가 생성되었다.

천사 날개가 달린 모자를 쓴 웃는 인상의 남자.

[헤르메스, 어떻게 되었나?]

아테나가 새로 나타난 성좌, 헤르메스에게 묻자.

[헤라클레스와 헤스티아 님께서 네일로스를 잡았어.]

헤르메스가 아테나의 말에 답했다.

[헤스티아 님께서 성화를 일으켜서 다시 확인했었는데…….]

올림포스의 대신급 성좌 중 하나, 불과 화로의 신인 헤스티아.

그녀가 성화(聖火)를 일으켜 네일로스의 정체를 파악해 봤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성화가 닿자 놈의 본 모습이 드러났어.]

보고를 하는 헤르메스의 웃는 인상이 일그러졌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은.

“이놈의 본체를 죽이는 건 조금 미뤄 주시죠.”

아테나와 헤르메스를 향해 말했다.

“아직 이놈한테 알아봐야 할 정보가 있으니까.”

말을 마친 처용의 눈동자가 다시 안드라스를 향했다.

“다시 묻겠다.”

-우드드득!

처용이 화염의 절을 강하게 쥐고 비틀면서.

“아르테미스는 어디에 있나?”

차가운 미소를 짓고 다시 물었다.

올림포스에 침투한 안드라스는 분명 배신자들에 대해 알고 있을 테니까.

[크허어어억! 꺼-져라!]

안드라스가 처용을 향해 울부짖으며 대답했다.

이미 본체가 붙잡힌 이상 가망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눈앞의 인간에게 친절히 물음에 답해 줄 대악마가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은.

“네가 선택할 건 두 가지야.”

안드라스를 향해 섬뜩한 미소를 짓고는.

“끔찍하게 고통받으면서 소멸하거나.”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니면, 고통받으면서 끔찍하게 소멸하거나.”

둘 다 똑같은 말이었지만…….

어차피 처용에게 잡힌 안드라스는 선택지가 없는 셈이었다.

마지막 말을 마친 처용은 명환부 여덟 장을 허공에 불러내고는.

“팔괴봉마진.”

안드라스를 중심으로 명환부를 퍼트리며 진법을 그려내었다.

명환부가 여덟 방향으로 퍼졌고.

“영멸!”

처용이 말한 시동어(始動語)에 환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으어억! 크어어! 크어어어억!!]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격통에 안드라스가 검은 피를 토해내며 몸부림쳤다.

“1분 남았어.”

처용은 고통스러워하는 안드라스를 응시하며 말했다.

“네놈의 마기가 모조리 분해되기까지 말이야.”

[인-간! 노……옴이!]

안드라스가 핏발 선 눈으로 처용을 노려봤다.

“살고 싶나?”

처용은 안드라스의 눈을 마주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질문했다.

[사, 삼-천마들-께서! 네-놈을……! 처단-할 것이다!!]

안드라스는 처용의 질문을 무시하고 피를 토해내며 일갈했다.

“크, 크크크.”

그 모습을 본 처용이 작게 웃음을 토했다.

“바알도 곧 네놈 곁으로 보내주마.”

처용의 말이 끝나자.

-화아아아!!

팔괴봉마진이 눈부신 빛을 뿜어댔고.

[크아아아!!]

안드라스가 빛에 휩싸이며 무너져 내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대악마의 화신체를 잡은 보상으로 레벨이 올랐다.

그리고.

-후두두두.

안드라스가 마치 바람에 흩어지는 검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투두둑.

바닥으로 검은 덩어리 같은 것들이 떨어졌다.

이전 류마에게 침투한 저주를 정화했을 때 떨어져 내린 저주의 파편.

그것과 비슷한, 대악마의 잔여 마기가 남아 뭉친 것들이었다.

처용은 아공간에 대악마의 파편을 챙겨 넣고는.

“이제 본체를 죽여버리셔도 됩니다.”

아테나와 헤르메스를 향해 말했다.

[…….]

처용을 보며 아테나가 잠시 침묵했다.

[……살려둘 여지는 절대로 남기지 말고 가루로 만들어 버려라.]

침묵을 깬 아테나가 헤르메스를 향해 명령하듯 말하자.

[주신의 뜻대로.]

헤르메스의 화신체가 고개를 끄덕이며 사라졌다.

그러자.

“정보를 얻지 못한 건 아쉽지만, 간자를 처리하긴 했네요.”

처용이 몸을 툭툭 털며 자리로 돌아와 태연하게 앉았다.

[…….]

[…….]

“…….”

그 모습을 지켜본 성좌들의 화신체와 신관들이 모두 할 말을 잃고 침묵했다.

“뭐, 할 말이라도?”

처용이 좌중을 태연하게 둘러보며 묻자.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뭐라고 해야 할지…….”

커맨더가 얼굴을 쓸며 읊조리듯 말했다.

솔직히…… 좀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이들도 많았다.

난데없이 성좌인 네일로스의 정체가 대악마로 드러나고.

그의 정체를 처용과 갑자기 나타난 관리자가 밝혀내고.

심지어 처용이 순식간에 대악마의 화신체를 제압하고 소멸시켰다.

커맨더의 말을 마지막으로 침묵이 이어지고 있을 때.

[방금, 네일로스…… 아니, 안드라스가 완전히 소멸했다.]

아테나가 침묵을 깨며 말했다.

안드라스의 본체를 잡고 있던 올림포스의 성좌들이 그를 소멸시켰다고 보고를 받았으니까.

[우선 이 말부터 먼저 해야겠구나.]

아테나가 처용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다시 한번 올림포스를 도와주어서 고맙구나. 한처용.]

“감사합니다.”

아테나의 감사 인사에 처용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내가 더 있어 봐야 좋을 건 없으니, 난 가보겠네.]

일을 마친 미륵이 손을 흔들며 사라지자.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미륵님.]

처용과 여래가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전했다.

그 모습을 본 아테나가 의문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처용을 바라봤지만.

“저는 말할 수 없습니다.”

처용은 그녀의 질문을 예상하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원래라면 다른 성좌들의 화신체가 그 모습을 보고 건방지다며 길길이 날뛰어야 했지만.

[…….]

[…….]

조금 전, 대악마의 화신체를 압도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인지 딴지를 거는 성좌는 없었다.

[……묻지 않겠다.]

아테나 역시 그 부분은 질문하지 않겠다고 뜻을 전했다.

그 대신.

[네가 신력을 가진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파마의 힘이었을 줄이야.]

처용이 보여주었던 모습을 다시 상기하며 놀라운 듯 이야기했다.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요.”

처용이 아테나의 말에 가볍게 답했다.

[신살의 힘도 그런 방식으로 얻은 건가?]

“……저는 악에 맞서 싸우는 존재입니다.”

아테나의 질문에 처용이 작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끊임없이 싸웠죠.”

처용의 마지막 말을 들은 아테나의 눈빛 속에 대견함과 작은 측은함이 담겼다.

눈앞의 인간이 가진 힘은 하루아침에 기연으로 얻은 것이 절대로 아니었다.

방금처럼, 판데모니움의 악마들과 수도 없이 싸우고 이겨내어 얻은 힘이었다.

처용이 다른 병사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든 싸움을 겪고 이겨왔다는 증거.

그것이 처용이 가진 파마의 신력이라 판단했다.

[오늘 받은 도움은 잊지 않고 사례할 것을, 주신의 이름으로 약속하겠다. 한처용.]

“악신들에게 맞서 싸워주십시오. 그거면 충분합니다.”

[하하.]

아테나가 처용의 말에 작은 웃음을 보이고는.

[올림포스는 최선을 다해서 악과 맞서 싸울 것을 약속하마.]

진지한 목소리고 처용에게 약속했다.

그리고.

“아까 이야기하려 했었는데…… 지금 전하게 되네요.”

제시카가 처용을 잠시 보고는 모두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말했다.

“소식이 끊긴 이들과 아르테미스의 신관에 대해서입니다.”

독도 사건 이후 올림포스는 현장에서 잡지 못한 배신자들을 따로 수색했었다.

메리가 이끄는 나이키 윙 길드가 노력한 덕분에 숨어있던 배신자들을 일부 잡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마인들과 협력한 정황이 있더군요.”

제시카가 얼굴을 쓸어올리며 참담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메리가 보충 설명을 할게!”

메리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제시카의 말을 자세히 설명했다.

마인들의 협력을 받았던 배신자들.

그들이 길드의 눈을 피해 체계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길드의 눈을 피해 숨을 수 있었던 이유 등을 설명했다.

“나조차도 이렇게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다면 눈치채기 힘들 정도였어.”

메리가 작은 한숨을 쉬며 말하자.

“마인들은 악신들의 가호를 받은 놈들이다.”

처용이 메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방금 소멸한 대악마, 안드라스처럼.”

[너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조차도…… 대악마가 숨어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으니까.]

아테나가 메리를 위로하듯 이야기했다.

“안드라스를 봐서 아시겠지만, 놈들의 대부분은 음지에 숨어 모략하는 것이 특기입니다.”

처용은 모두가 들으라는 듯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교를 조심하라는 네 말…… 이번에 조사하면서 뼈저리게 깨달았어.”

메리가 이전 처용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말하자.

“천교만이 아니야.”

처용이 경고를 전하듯 메리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잘 들어, 판데모니움의 악마들은 수도 없이 많아.”

그는 지금까지 싸워왔던 적들을 다시 상기하며 말을 이었다.

“72명이나 되는 대악마 중 고작, 하나 처리했어. 그것도 하위권인.”

처용의 경고를 들은 사람들과 성좌들 모두가 경각심을 가졌다.

그때.

“한처용 헌터.”

원탁에 앉은 이들 중 하나가 입을 열어 처용의 이름을 불렀다.

“상위 서열의 대악마들은 얼마나 강합니까?”

사자의 머리를 투구처럼 쓰고 있는 근육질의 남자.

그는 헤라클레스의 신관이자 스파르타 길드의 길드장, 리차드였다.

그의 말이 끝나자.

[삼천마라는 놈들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다.]

리차드의 뒤에 자리한 화신체.

안드라스를 처리하고 돌아온 헤라클레스가 팔짱을 끼며 처용에게 물었다.

[놈들은…… 강한가?]

그의 눈빛 속에는 투쟁심과 호승심이 일렁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잠시 침묵한 처용이 그의 말에 답했다.

“당신이 이길 수 없을 겁니다.”

단호함이 담긴 처용의 대답이 들려오자.

[그런가…….]

헤라클레스가 눈을 감으며 말했다.

성좌의 입장에서 처용의 대답은 충분히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지만.

[나도 더 정진해야겠군.]

헤라클레스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어 보였다.

처용 역시 그런 그의 성향을 알고 있기에 솔직히 말해준 것이었다.

그리고.

“달의 사냥꾼을 포함한 배신자들이 마인들과 합류했을 수도 있어, 확실한 건 아니고 가능성이지만…….”

메리가 다시 배신자들에 대한 내용을 언급했다.

“저희는 배신자들에 대한 추적을 계속하겠습니다.”

제시카가 메리의 말을 듣고 차후 대책을 이야기했다.

“특히 제니퍼 로스차일드의 행방을…….”

아르테미스의 신관의 이름을 언급한 제시카가 작은 분노를 드러내며 말했다.

[우리 역시 배신한 신들을 계속 추적하겠다.]

아테나가 단호한 목소리로 의지를 드러냈다.

이후 배신자들을 찾을 방안과 차후 대책에 대한 여러 논의가 오갔고.

회의는 점차 마무리를 향해 나아갔다.

***

칠흑 같은 어두운 공간.

그 공간의 중심에서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며 번지기 시작하더니.

공간의 중심에서 두개골 형태의 무언가가 서서히 드러났다.

-화르륵!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거대한 해골 형태의 화로에서 검푸른 불꽃이 뿜어져 나왔고.

-화르륵! 화륵! 화륵!

중앙의 불꽃들이 여러 갈래로 퍼져 나가며 주변을 조금 더 환하게 밝혔다.

벽면에 장식된 72개의 화로에 불이 붙자.

-스르르.

그 위에 있는 대악마의 모습들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넘실거리는 붉은 기운과 푸른 불꽃으로 요사스러운 분위기가 흘렀다.

그 가운데.

-피슈우…….

72개의 화로 중 하나가 꺼졌다.

그러자.

“안드라스가 당했나?”

마치 검은 커튼이 걷어지듯 어둠을 걷으며 누군가가 나타났다.

검은 털이 달린 가죽 망토와 창백한 얼굴 위에 칠해진 붉은 문양.

그리고 이마 윗부분에 솟아난 두 개의 거대한 검은 뿔.

그가 검은 손톱이 길게 자라난 검지를 들어 불이 꺼진 화로를 쓸며 걸어갔다.

그리고.

검은색과 금색이 섞인 옥좌가 나타났고 그곳에 앉는 순간!

-바알 님!!

주변이 확 밝아지며 나타난 악마들이 무릎을 꿇고 그를 숭배하듯 부복했다.

이곳은 판데모니움, 모든 악마들이 모이는 장소인 악의 제전(祭典).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옥좌, 대악마 서열 1위의 자리.

그곳에 앉은 ‘절망의 대악마, 바알’이 눈을 번뜩이며 휘하 악마들을 노려봤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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