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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126화 (126/726)

#126화

미국의 수도인 동시에 올림포스의 성지이자 본부이기도 한 워싱턴.

일행들은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 낙하 승강기에 탑승했다.

“마키, 승강기에 은폐를 걸어 줘.”

-은폐장이 활성화 됩니다.

커맨더의 요청에 승강기 외부가 투명하게 코팅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 봐야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인적이 드문 지상에 착지한 승강기의 문이 열리자 올림포스 성지의 모습이 드러났다.

평범한 빌딩들과 더불어 현대식으로 재구성한 올림포스 신전 양식의 건물들이 그 앞에 나열되어 있었다.

활발한 분위기를 띠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사람들과.

-던전 야영용 숙박기구와 육포, 공간확장 배낭 세트 할인중입니다!

-파이어 해머 공방, 수석 제자가 인첸트 해드립니다!

-몬스터 피라냐 어묵! 한번 맛보고 가세요!

다양한 간판을 걸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성지에는 각성자와 일반인들이 모두 섞여 있었다.

“올림포스 성지…… 맞지?”

주변을 둘러보던 연화가 처용을 향해 넌지시 묻자.

“그럼, 고대 그리스가 재현된 모습인 줄 알았어?”

“……응.”

웃음을 지으며 처용이 한 말에 연화가 솔직히 긍정했다.

연화는 성지(聖地)라는 단어에 담긴 신성한 느낌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것이었지만.

“다 사람 사는 곳이야.”

처용이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성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원래 초기에 나타난 성지들은 연화의 말대로 신을 모시는 신성한 고대 신전처럼 꾸몄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지가 가진 안전성과 유용성 등을 점차 활용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이렇게 고대 양식과 합쳐진 퓨전 도시의 느낌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성좌들 또한 이러한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판단하고 이를 허가했다.

성지를 둘러보며 쭉 나아가자.

워싱턴에서 가장 거대한 신전 형태의 건물, 올림포스 본부가 나타났다.

일행들이 본부 근처에 당도한 순간.

“일찍 오셨군요. 커맨더.”

선글라스를 쓰고 양복을 깔끔하게 갖춰 입은 남자들이 다가왔다.

그리고.

“Welcome To Olympos!”

그들 사이에서 나타난 메리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일행들을 환영했다.

“정문은 사람이 많으니까. 메리가 다른 입구로 안내할게.”

메리가 앞장서서 초대받은 사람들은 인도했다.

올림포스 본부 관계자들만 드나들 수 있는 문을 통해 내부로 들어서자.

“겉은 신전이었는데……?”

연화가 내부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본부의 내부는 현대식 건물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심지어.

-독일의 신전 정리는 어느 정도 진행된 건가!?

-호주에 파견된 헌터들은?

-야! 그쪽보다 여기가 더 급해! 이쪽 먼저 접수해 놔!

이런저런 업무를 보며 바삐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분위기도 회사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많이 바빠 보이네.”

처용이 메리를 따라가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간 벌어진 일들 때문인 것 같았다.

메리를 따라 계속 나아가자 성당의 대문처럼 보이는 문이 나타났다.

-끼이이.

메리가 손을 대기도 전에 문이 자동으로 열렸고.

‘오랜만이네.’

내부를 둘러본 처용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스 신전의 내부처럼 꾸며진 넓은 공동.

중앙의 작은 화로가 있는 원탁과 좌석들.

그 좌석들의 뒤에는 제단처럼 생긴 받침대가 있었다.

그리고 마치 관중석처럼 보이는 좌석들이 외부에 원형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원탁의 가장 중앙에 자리해 있는 제시카가 막 들어온 일행들을 반기듯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제시카.”

커맨더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모두가 자리에 앉은 순간.

-화르륵!

중앙의 화로에 불이 붙으며 신력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지가 연결됩니다.]

[올림포스의 주신이 승인합니다.]

[기계장치의 여신이 승인합니다.]

.

.

시스템의 알람들이 울렸고.

-스스스.

제시카의 뒤에 있는 제단에서는 아테나의 형상이.

커맨더의 뒤에서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형상이 피어올랐다.

각각 신관들이 모시는 성좌의 화신체가 나타났다.

이윽고.

[신법의 대신이 승인합니다.]

-화아아!

처용의 뒤에서 여래의 형상이 나타났다.

그가 나타나자 다수의 화신체들이 긴장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독도의 일과 연관된 이들과 올림포스 측 세력들이 모두 모였을 때.

[청룡은 어디에 있는 건가?]

오케아노스의 화신체가 커맨더와 처용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청룡의 신관은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그 물음에 연화가 입을 열어 답했고.

[해서, 나와 이 아이가 대신 왔소.]

연화의 뒤, 장군복을 입은 해전무신의 화신체가 말을 이었다.

[다 아는 얼굴이군.]

그 말에 오케아노스를 포함한 올림포스의 ‘바다’의 신명을 가진 성좌들이 인상을 구겼다.

이전 포세이돈의 명령을 받고 제주도로 청룡을 잡으러 갔을 때.

해전무신 하나를 이겨내지 못하고 전원 패퇴했었으니까.

선천적 신격들의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구겨지는 일이었다.

“딱히 문제는 없겠네요.”

제시카가 연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본격적으로 회담이 진행되려는 때.

“본론을 말하기 전에.”

처용이 제시카와 아테나의 화신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선 이것부터 돌려드려야겠죠?”

-우우웅.

아공간을 열고 꺼낸 것은 푸른색의 삼지창.

포세이돈의 무구 트라이던트였다.

[어떻게?]

[그때 잘못 본 게 아니었어!]

처용이 트라이던트를 잡은 모습에 올림포스 성좌들이 수군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이걸 곱게 갈아서 포세이돈 앞에 뿌려주고 싶었지만.”

-붕붕붕!

트라이던트를 한 손으로 잡은 처용이 마치 풍차를 돌리듯 빙빙 돌리면서 말하자.

[저게 무슨!]

[이게 가능한 건가!?]

성좌들이 당황한 모습을 숨기지 못하며 중얼거렸다.

신의 무구, 특히 오션 트라이던트는 바다의 대신만이 다룰 수 있는 무구였다.

인간들은 물론, 다른 성좌들조차 다루기는커녕 만지는 것조차 불가능했으니까.

처용은 당황하는 신들의 모습을 구경하다가.

“돌려드리죠.”

아테나의 화신체를 향해 가볍게 토스하듯 창을 던져 올렸다.

트라이던트를 받은 아테나가 신기한 눈으로 처용을 응시했다.

[이 건방진 하계종이!]

[인간이 감히!]

그 모습에 몇몇 성좌들이 분개했지만.

[신기하구나, 성좌들조차 이걸 만질 수 있는 자가 거의 없거늘.]

아테나는 그런 처용에게 불쾌한 감정은 전혀 없어 보였다.

[네가 다룰 수 있다면 왜 계속 가지지 않는 거지?]

궁금한 듯 아테나가 처용에게 묻자.

“권능도 못 쓰고 그저 단단할 뿐인 창 아닙니까?”

처용은 트라이던트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창은 제 주 무기가 아니기도 하고…….”

작은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포세이돈에게 다시 쥐어 줄 생각은 아니시겠죠?”

날카롭게 쏘아보듯 처용이 아테나를 응시하며 묻자.

[하하, 그럴 리가?]

아테나가 작은 웃음을 보이며 답했다.

[올림포스의 물건을 돌려주어서 고맙구나.]

-파지지직!

아테나가 트라이던트를 번개로 감싸더니 사라지게 만들었다.

[음…… 아스트라페도 만질 수 있으려나?]

아테나가 넌지시 중얼거린 말에.

[아테나!?]

아테나의 옆에 있던 티케의 화신체가 놀란 듯 그녀를 불렀다.

“모르죠. 해본 적이 없으니.”

처용이 어깨를 으쓱이며 모른다고 말했다.

그 모습에 아테나는 정말로 아스트라페를 불러내 볼까 하다가 관두었다.

무엇보다도 이 자리는 중요한 이야기를 다루는 자리였으니까.

[우선, 이 이야기부터 하는 것이 먼저겠죠.]

아테나가 모두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포세이돈과 아폴론은 모든 권한과 직위를 패하고 타르타로스에 수감 시켰습니다.]

이 사단을 일으킨 두 성좌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말하기 시작했다.

그 둘은 두 번 다시 성좌로 활동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앞으로 그들이 올림포스의 이름을 쓸 일도 없을 겁니다.]

올림포스 성운에서 완전한 퇴출이 결정되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포세이돈과 아폴론의 휘하 세력들은 모두 주신의 직속으로 이전했습니다.]

“……모두 용서한 겁니까?”

아테나의 말을 들은 처용이 진지하게 물었다.

[죄질이 심한 자는 지금 포세이돈과 말동무를 하고 있겠구나.]

즉, 아테나가 하나하나 검토하고 처리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한 명이 빠진 것 같습니다만?”

처용이 관중석에 자리한 올림포스 측 화신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르테미스는 아직 찾지 못했-.]

아테나는 처용의 말을 짐작하고 말했지만…….

“아르테미스 말고 숨어있는 간자를 하나 잡지 못하셨습니다.”

처용의 말이 끝나자.

[그게 무슨 말인가?]

아테나가 의문을 섞어 말했고.

[혈선의 신관! 지금 뭐라고 한 것이냐!]

[올림포스를 욕보이는가!]

성좌들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처용을 향해 분노를 드러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처용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경은 다 했냐?”

좌중을 둘러보던 처용의 시선이 누군가에게 고정되었고.

“네일로스, 아니.”

네일로스를 향해 싸늘한 시선과 차가운 미소를 보이며.

“안드라스.”

그의 진짜 정체를 말했다.

처용의 말에 제시카와 아테나가 동시에 네일로스를 쳐다보았다.

[하찮은 하계종이 지금 뭐라고-.]

시선을 받은 네일로스가 처용을 비웃을 때.

“판데모니움 서열 63위 불화의 대악마 안드라스.”

처용이 그의 말을 자르고 모두가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말했다.

“쥐새끼처럼 숨어서 지켜보고 있으니 재미있었나?”

그 말이 끝나자.

[네놈이 감히 나한테 뭐라고 하는 것이냐!]

네일로스가 분노를 담은 노성을 질렀다.

[건방진 하계종 놈! 감히 성좌인 나한테-!]

처용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네일로스가 소리칠 때.

[시끄럽구나!]

네일로스의 말을 자른 거대한 목소리가 울렸고.

-화아아아!!

처용의 뒤, 여래의 화신체 옆에 새로운 화신체가 나타났다.

검은 용포를 두르고 안대를 착용한 미륵.

그가 검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네일로스를 응시했다.

[관리자!?]

[당신이 어떻게!?]

그를 알아본 몇몇 성좌들이 놀람을 표했다.

여래와 같이 오랜 시간 동안 모습을 감추고 있었던 성좌가 뜬금없이 나타났으니까.

[더러운 악취가 여기까지 나는구나!]

네일로스를 노려본 미륵이 잿빛 신력을 뿜었고.

[모습을 드러내라!]

검붉은 눈동자가 빛을 내었다.

미륵이 가진 ‘관철의 힘’이 네일로스에게 닿은 순간!

[무슨!? 크허억!]

네일로스의 몸이 크게 뒤틀리더니.

-쩌저적!

이내 갈라지며 그 속에 숨어있던 실체가 드러났다.

온몸이 검은 털로 뒤덮인 올빼미와 비슷한 형태의 무언가.

대악마 안드라스의 모습이 드러났다.

[도대체 어떻게!?]

안드라스가 미륵의 눈빛을 막으려 날개와 같은 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도망쳐야한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어딜 가려고?”

-콰쾅!!

순식간에 다가온 처용이 안드라스의 화신체의 목을 움켜쥐었다.

동시에 신살자의 힘이 섞인 징벌자의 신력을 피워 올렸다.

타인의 모습으로 위장하여 불화를 일으키는 대악마 안드라스.

그리고 그의 권능인 ‘불화의 씨앗’

타인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자신이 침투한 세력 안에서 불화를 일으키는 것.

안드라스의 화신체가 가진 전투력은 다른 대악마의 화신체보다는 약하지만.

본체와 같은 권능을 구사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화신체와 오랜 시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타인을 믿을 수 없게 되고 서로 불신하게 만드는 권능.

회귀 전, 올림포스를 무너뜨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대악마의 능력이었다.

처용이 이 자리에 직접 참석한 이유는 이놈을 잡기 위함이 가장 컸다.

“빨리 이놈의 본체를-.”

처용이 아테나를 향해 말하려는 때.

[당장 성역에 있는 네일로스를 붙잡아라!]

아테나는 처용이 하고자 하는 말과 지금의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는 급히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몇몇 성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화신체가 사라졌다.

그 모습을 빠르게 확인한 처용은.

-스르릉!

화염의 절을 뽑아 들고.

-푸우욱!!

안드라스의 복부에 꽂아 넣음과 동시에 신살자의 힘이 섞인 신력을 흘려 넣었다.

[크하아아악!!]

신살자의 힘은 신격을 살해하는 힘.

마치 혈관에 염산이 부어지는 듯한 고통이 전해지자 안드라스가 울부짖었다.

“아르테미스는 어디로 도망갔나?”

처용이 얼굴을 가까이 데며 읊조리듯 물었다.

[인간 놈이 감히!]

안드라스가 발버둥 쳤다.

빨리 화신체를 해제하고 도망쳐야 했다.

그러나 화신체를 해제하고 싶어도.

[이게 어떻게!?]

어떻게 된 것인지 해제가 불가능했다.

당황하는 대악마의 모습에 처용의 미소가 짙어졌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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