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125화 (125/726)

#125화

사람들이 탄 승강기가 함선으로 올라간 후.

-띠링.

엘리베이터 문처럼 승강기의 해치가 열렸다.

마치 SF영화에서 나올 듯한 터널이 이어졌고.

함선 내부를 관리하는 이들인 듯 안드로이드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커맨더가 터널을 앞장서 걸으며 앞으로 나아가자 일행들이 따라나섰다.

곧 일행들 앞에 두터운 철문이 나타났다.

그 문을 향해 가볍게 터치하듯 커맨더가 손으로 두드리자.

-승인되었습니다.

라는 음성과 함께 문이 위아래로 열렸다.

그러자 중앙에 홀로그램 지도가 펼쳐진 함실 내부가 드러났다.

“이곳은 여전하구만.”

고개를 돌리며 사방을 둘러본 백호가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에 새로운 사람들이 온 건 정말 오랜만인데?”

함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헌터.

등 뒤에 쌍검을 채운 남자, 이진호가 손을 흔들며 커맨더를 반겼다.

그리고.

“독도에서 잠깐 봤었지?”

처용과 연화에게도 환한 미소를 보이며 반겨 주었다.

“반갑습니다. 이진호 헌터.”

처용 역시 이진호를 향해 미소를 보이며 인사했다.

쌍검을 이용해 폭풍과 같은 연속 공격을 퍼붓는 근접 클래스 헌터.

회귀 전, 이진호 역시 악신들과 맞서 싸우던 저항군에 속해있었다.

커맨더는 처용과 연화에게 자신의 파티원들을 소개해 주었다.

공격력만 따지면 백호를 능가하는 근접 클래스 헌터, 이진호.

함선 내부에서 커맨더를 돕는 기계 기술자이자 대장장이 클래스 헌터인 레리 로완 등.

그들 모두가 처용과 연화를 반겨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건 처음이네요.”

등 뒤에 저격총을 매고 있는 젊은 여성.

몸매가 잘 드러나는 은색의 슈트를 입은 금발 포니테일 머리의 헌터가 인사하듯 손을 흔들었다.

“샬럿 로스라고 해요.”

그녀의 클래스는 힐러이지만, 등 뒤에 매고 있는 아티팩트를 활용한 원거리 공격수이기도 했다.

“로스?”

처용은 그녀를 마주하자 잊고 있었던, 회귀 전의 기억 중 하나가 떠올랐다.

정확히는 누군가와 했었던 약속.

“왜 그러시죠?”

샬럿이 처용에게 묻자.

“아뇨. 제가 아는 사람이랑 성이 같아서요.”

처용이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그런가요? 제 성이 흔한 편은 아닌데.”

샬럿 역시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듯 말했다.

“어이, 백호 형? 나 170레벨 넘었다? 크크.”

이진호가 백호에게 자랑하듯 말하자.

“오! 축하한다.”

백호는 자신의 레벨을 추월한 이진호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진정한 한국의 ‘2위’ 헌터가 되었구나. 하하!”

마치 이진호를 놀리듯 백호가 웃으며 말했다.

“아씨! 그렇게 되는 건가!?”

자랑을 하던 이진호가 머리를 붙잡으며 인상을 구겼다.

백호와 이진호가 실없는 이야기를 하며 해후를 즐기고 있을 때.

“가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연화가 커맨더에게 궁금한 듯 물었다.

“1시간 정도 걸릴 겁니다.”

“……엄청난데요?”

커맨더의 대답에 연화가 놀란 듯 대답했다.

한국에서 미국까지 비행기를 타면 12시간이 넘게 걸리니까.

“하하, 워프를 쓰면 순식간에 갈 수도 있어요. 그저 에너지 낭비를 줄이기 위해 그냥 가는 거죠.”

커맨더는 자신의 함선이 자랑스럽다는 듯 이야기했다.

모두가 서로 이야기를 하는 와중.

처용은 뜻밖의 인물에게 관심을 받고 있었다.

“혁수 그 친구에게 이야기는 들었네.”

바로 기계 기술자인 로완이었다.

“태초의 생명체의 허물이라고? 그걸 도대체 어디서 구한 건가?”

이전 커맨더가 혁수를 찾아 드워프들에게 갔을 때.

혁수가 로완과 커맨더에게 엄청난 발견이라고 호들갑을 떨며 말했었다.

처용이 건네주었던 카투라의 허물.

대장장이인 로완 역시 그 허물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혹시, 유진이가 독도에 오기 전까지 우리를 지켜줬던 그거랑 관련이 있나?”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백호가 처용에게 넌지시 물었다.

“관련은 있죠.”

“……그런가?”

백호가 생각하듯 중얼거리며 말했다.

높이 500미터가 넘어가는 초거대 괴수.

당시 워낙 충격적이었기에 그 위용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났다.

심지어 그 괴수는 포세이돈을 향해 ‘꼬마’라며 하대하기까지 했다.

그것의 정확한 정체는 모르겠지만, 성좌들 못지않은 존재임은 분명했다.

다만.

“그 괴수가 자네 편이라면 괜찮은 건가? 포세이돈한테 당해서 사라졌는데.”

백호가 걱정을 담아 묻자.

“문제는 전혀 없어요.”

처용이 정말 문제가 없다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그건 카투라가 만드는 분신일 뿐이니까.

성좌들로 따지면 화신체를 보내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었다.

“아!? 혹시.”

무언가가 기억난 처용은 로완을 향해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거 가공할 수 있을까요?”

처용이 내민 것은 속성석이었다.

대장장이 클래스인 로완은 기계 기술자.

그는 이 함선 시스템의 여러 부분을 총괄하는 전문가였다.

이곳에 있는 최신 기술이라면 혹시, 가공이 가능할까 싶어서 물은 것이지만.

“흐음……음!?”

속성석을 빤히 쳐다본 로완이 눈을 크게 떴다.

“…….”

마치 감정 스킬을 쓰는 듯 속성석을 빤히 응시하더니.

“어이 커맨더! 이리로 와서 이것 좀 봐봐!”

“무슨 일이에요. 로완?”

로완이 커맨더에게 감정 결과를 이야기했다.

“지맥력(地脈力)이요?”

“그래! 이 안에 지맥력이 뭉쳐 있다고! 우리가 찾던 거 중 하나인!”

커맨더의 물음에 로완이 큰 목소리로 침을 튀기며 답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처용이 둘을 향해 묻자.

“뭐라고 해야 할까…….”

커맨더가 이마를 잡으며 고민하듯 말을 흐렸다.

그때.

[안녕.]

처용의 뒤에서 맑게 울리는 소녀의 음성이 울렸다.

모두의 시선이 그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하자.

[하암~]

그곳에는 졸린 듯 하품을 하는,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녀가 있었다.

잿빛으로 흩날리는 긴 머리와 검은색과 회색이 섞인 드레스.

졸음을 쫓아내려는 듯 눈을 비빈 그녀가 은빛으로 빛나는 눈동자를 반짝이며 처용을 응시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여신님. 오늘은 일찍 일어나셨네요.”

커맨더가 갑자기 나타난 소녀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 좀 들어줄래?]

소녀가 커맨더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하자.

커맨더는 잿빛 소녀에게 다가가 익숙하다는 듯 그녀를 안아 올렸다.

그리고.

[으음, 여래……, 관리자…….]

잿빛 소녀가 처용을 향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한처용이라고 합니다. 기계장치의 여신님.”

처용이 자신을 소개하자.

[그래. 한처용!]

미소를 지은 잿빛 소녀.

기계장치의 여신,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화신체가 작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저한테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요?”

처용이 잿빛 여신에게 물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마주할 줄은 몰랐지만…….

자신을 향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눈빛에는 경계심이나 나쁜 분위기가 없었다.

[네가 가진 ‘지맥석’을 나에게 양도해 주지 않을래?]

손을 들어 속성석을 가리킨 잿빛 소녀가 처용에게 말했다.

“지맥석이요? 이건, 속성석입니다만…….”

처용이 의문을 담아 묻자.

[그 이름으로 불리는 광석은 맞지만, 그것을 구성하는 중심의 광석은 지맥석이야.]

잿빛 여신의 말에 처용이 속성석을 다시 살펴보았다.

[속성석 / 재료]

[지맥의 기운을 받으며 속성의 마나가 쌓인 광석.]

[여러 속성의 마나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에 다루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관리자의 눈으로 보면 알겠지만, 그건…….]

잿빛 여신이 처용에게 속성석에 대해 말해주었다.

지맥의 기운을 끌어모으는 지맥석.

그 돌이 끌어모은 속성들이 서로 뭉치고 퇴적되어 만들어진 게 속성석이었다.

[그 지맥의 힘이 필요해, 그러니까 나한테 주지 않을래?]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이 함선을 강화할 수 있거든.]

잿빛 여신이 손을 위로 뻗으며 말을 이었다.

[이 함선은 종말을 대비하기 위해 공들여 만든 작품이야.]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말을 들은 처용은 태룡전이 생각났다.

태룡전 역시 대신들이 종말을 대비해 만든 성역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그거 나 주지 않을래?]

“……대가는요?”

처용이 잿빛 여신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상대가 여신이라 해도 대가 없이 자신의 물건을 주는 처용이 아니었다.

[칫, 그거 하나 정도는 내 선물로 줄 수 있잖아.]

잿빛 여신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하, 죄송하지만, 제가 가진 건 이거 하나가 끝이 아니라서요.”

[음?]

잿빛 여신의 입에서 의문 섞인 음성이 나왔을 때.

-우르르!

처용이 보물전에 쌓아 두었던 속성석의 일부를 쏟아내었다.

[어…….]

그것을 본 잿빛 여신이 멍한 표정으로 말을 흐렸다.

“하나도 빠짐없이 지맥의 기운이 있잖아!”

빠르게 속성석들을 확인한 로완이 외쳤다.

“어떻습니까?”

-샤샥!

처용이 빠르게 속성석들을 다시 보물전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하나만 선물로 드릴까요? 아니면…….”

마치 놀리는 듯한 처용의 말에.

[…….]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무언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부들거렸다.

“대가는 내가 지불할 테니-.”

커맨더가 처용에게 협상을 하려고 할 때.

[이걸 줄게!]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커맨더의 품에서 내려와 처용 앞에 서며 말했다.

그리고.

-우우웅!

허공에 손을 집어넣고 무언가를 낑낑거리며 꺼냈다.

그녀가 꺼낸 것은 성인 남성 크기의 목각인형이었다.

[내가 공들여서 창조한 거야!]

잿빛 여신의 말에 처용이 목각인형을 관찰했다.

[화신의 그릇 / 신물]

[등급 : ?]

[기계장치의 여신,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공들여 만든 작품.]

[확인 불가.]

[확인 불가.]

통찰의 눈으로조차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목각인형.

아티팩트가 아닌 ‘신물’인 것을 보면 그녀가 만든 것은 사실이었다.

처용이 고민하고 있을 때.

[저것을 받아오거라.]

미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저 공주님이 정말로 속성석을 갖고 싶은가 보구나.]

‘저것이 쓸 만한 물건인가요?’

처용이 궁금증을 담아 미륵에게 묻자.

[쓰지도 못하는 돌덩어리들보단 유용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미륵의 말에 처용은 망설임과 고민이 사라졌다.

“직접 만드신 작품을 주신 만큼 더 얹어 드리죠.”

수락한다는 처용의 말에 잿빛 여신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우르르르!!

처용은 좀 전에 꺼낸 속성석의 두 배 분량을 꺼냈다.

[너, 마음에 들어!]

잿빛 여신이 처용을 향해 웃음을 짓고는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위이잉!

허공을 부유하는 드론들이 날아와 속성석들을 들어 옮기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 신난 사람은 한 명 더 있었다.

“하하하! 여기 있는 에너지들만 따로 활용해도, 함선의 원자로를 쌩쌩하게 돌리겠어!”

바로 함선 기술자인 로완이었다.

“여신님의 부탁을 들어줘서 고마워.”

커맨더가 처용에게 다가와 말했다.

“저도 대가를 받았는걸요.”

처용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그래도 더 많이 줬잖아. 이 부분은 따로 사례할게.”

“하하.”

처용은 커맨더의 말에 웃음으로 답했다.

속성석을 더 많이 제공한 이유는 벌 것 없었다.

그저 회귀 전처럼 이 함선이 무너지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태룡전과 같은, 종말을 대비한다는 목적을 지닌 함선.

이 함선의 강화는 분명 미래에 도움이 되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보며 다시 끔, 떠오른 악신이 있었다.

‘아르테미스…….’

처용이 이를 갈며 악신의 이름을 속으로 읊조렸다.

회귀 전, 이 함선이 무너진 결정적인 이유를 제공한 악신.

‘모조리 몰살시켜야 한다! 그 악신의 신관도! 병사들도!’

그 싸이코패스 같은 여신이 본격적으로 성격을 드러내기 전에 손발을 잘라내야 했다.

그녀의 신관, 제니퍼 로스차일드 역시도…….

심지어, 아테나는 이제 더 이상 형제들을 위해 행동하지 않았다.

포세이돈에 이어 아폴론까지 단호하게 처벌을 내렸으니까.

아테나가 더 이상 호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배신자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때문에, 배신자 처리에 더욱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처용이 아르테미스에 대한 대비를 생각하고 있을 때.

“도착했다!”

홀로그램 상황판을 살펴보던 커맨더가 모두가 들리도록 크게 말했다.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그리고 그곳에 있는 거대한 랜드마크.

현대식 건축물과 그리스 양식의 신전들이 고루 섞여 있는 모습의 도시.

드디어…… 올림포스 본부에 도착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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