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처용은 윤아에게 차분하게 설명했다.
곧 완성될 성지와 그에 관련해서 어떤 계획을 짜고 있는지 등.
처용이 자신의 계획을 그녀에게 이야기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무려 청룡의 신관, 심지어 커맨더의 조카였다.
자신에게 호의적인 S급 헌터이기에 그녀가 나름대로 성장할 때까지 보호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너를 청룡과 가까이 두는 게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
신관을 성좌가 가까이 두면 성장이 매우 빠르니까.
원래는 커맨더에게 먼저 이야기하고 그녀에게 말하려 했지만.
누구에게 먼저 말하든 딱히 상관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성지가 완성되면 협회에서도 이득이 될 부분이 많을 겁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태민에게도 자신의 계획에 대해 대략 말을 해주었다.
그때.
“윤아야! 늦어서 미안하다.”
커맨더가 미소를 지으며 방으로 들어왔다.
“분리수거(?) 해야 할 게 생각보다 많아서 말이야.”
“쓰레기 분리수거는 잘 봤습니다. 커맨더.”
커맨더의 말에 처용이 작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후배도 와 있었네?”
“마침 잘 오셨습니다.”
처용이 좀 전에 윤아에게 했었던 이야기를 하자.
“흠…….”
커맨더는 잠깐 고민한 후.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긍정적인 의견을 표했다.
무엇보다 그 역시 성좌인 기계장치의 여신과 자주 접촉하는 헌터였다.
모시는 성좌에게서 직접 교육을 받고 지식을 내려받는 것이 얼마나 성장에 도움이 되는지 잘 알았다.
하지만.
“네 생각은 어때 윤아야?”
커맨더는 당사자인 윤아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여러 사람들이 좋든 말든 중요한 것은 그녀의 의견이니까.
이야기를 듣고 잠시 침묵한 윤아는.
“……연아도 거기에 있죠?”
처용을 향해 물었다.
“그렇지?”
뜬금없이 연아에 대해 물어볼 줄은 몰랐던 처용이 의문을 담아 대답했다.
“그럼 갈래요.”
윤아는 처용의 제안을 수락했다.
자신 역시 청룡과 같이 있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삼촌인 커맨더도 긍정적으로 본다고 했으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연아에 대해 물은 이유는 그냥 궁금해서였다.
친구가 있으면 좋으니까.
“부모님한테도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바로 오라는 게 아니야 성지가 완성된 이후에 오라는 거지.”
처용이 윤아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한국 땅에 생기는 첫 번째 성지라…… 기대되네?”
커맨더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의 성지, 거대 전투 순양함 ‘마키나’는 일반적인 성지가 아닌 이동 요새에 가까웠으니까.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처용이 커맨더의 말에 자신감을 담아 대답했다.
다른 그 어떤 신의 성지보다도 아름답다 자부할 수 있었으니까.
완성만 된다면…….
“아!? 맞다.”
커맨더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처용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후배가 남다른 힐 스킬을 가지고 있다며?”
“그렇죠.”
처용이 커맨더의 말에 긍정했다.
“혹시 보여줄 수 있을까?”
“흠…….”
커맨더가 왜 보여달라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비의 손길.’
처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 방 안에 있는 모두에게 자비의 손길을 걸어 주었다.
찬란한 황금빛이 처용의 손아귀에서 퍼져 나갔고.
“머리가 맑아진 것 같아요. 피로감도 사라진 것 같고.”
황금빛을 받은 윤아가 미소를 지으며 감탄했다.
태민 역시 사라지는 피로감으로 인한 해방감에 미소를 지었다.
반면에.
“이거…….”
커맨더는 경악한 듯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문제라도 있나요?”
처용이 묻자.
“이거……, 이거! 스킬이 아니라 권능이잖아!?”
“……알아보실 줄은 몰랐네요.”
커맨더의 말에 처용이 작은 미소를 지으며 긍정했다.
하지만 솔직히 속으로는 놀람이 일렁이고 있었다.
지금 시기의 그가 권능을 알아볼 줄은 몰랐으니까.
“이거라면……, 혹시 이거라면!”
자비의 손길을 확인한 커맨더가 무언가를 생각하듯 중얼거렸다.
“빛의 신의 회복을 기다리지 않아도-.”
“빛의 신이 사용하는 회복 따위보다 더욱 뛰어나다고 자신하죠.”
처용이 자신감을 담아 커맨더의 중얼거림에 답했다.
엄연히 따지면 빛의 신은 회복에 특화된 신이 아니었다.
그의 회복은 그저 그의 특징인 ‘신성한 빛’을 토대로 한 치료였다.
그러나 보살은 자비의 대신.
그녀는 치유와 보살핌에 특화된 신격을 지니고 있었다.
단순 ‘치료’만 따지고 봤을 때, 빛의 신은 보살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후배, 네 권능의 힘이 필요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을 하던 커맨더가 처용에게 말했다.
“공짜로 해달라는 말은 절대로 아니야. 충분히 사례하지.”
커맨더는 그에게 부탁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작은 의문을 품었다.
자신이 모시는 성좌, 기계장치의 여신에게서 처용의 성좌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다.
거대 성운의 선천적 신격들도 함부로 자극하지 않는 자라고…….
그런 무시무시한 명성을 지닌 성좌를 모시는 신관이 누군가를 치료하는 권능을 가진 게 이상했지만.
지금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기에 상관이 없었다.
“……이종족들 때문인가요?”
커맨더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한 처용이 짐작하듯 말했다.
“……어떻게 알았어?”
“짐작이었습니다만, 맞았네요.”
사실 짐작이 아니었다.
처용은 커맨더가 무엇을 부탁할지 분위기를 관찰한 후 확신이 들었다.
그건 회귀 전에도 그가 계속 신경 쓰던 일이었으니까.
그 당시의 커맨더는 정신이 망가진 이종족들을 치료하기 위해 교단에 부탁을 했었다.
당연히 이종족들을 혐오하는 교단은 그 부탁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러나 성자가 빛의 신과 협상을 하여 커맨더를 도와주었다.
교단의 부탁을 들어줄 때마다 이종족들을 빛의 신이 가진 권능으로 치료해 준다는 계약이었다.
물론, 인간과 이종족들을 하등하게 보는 빛의 신이 약속을 똑바로 지킬 리가 없었다.
빛의 신은 다른 헌터들은 처리하기도 힘든 일을 커맨더에게 맡겼고 커맨더는 이종족들을 위해 묵묵히 해내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도와드리죠.”
처용은 커맨더가 빛의 신에게 혹사당하는 것을 절대로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정말 고맙다. 올림포스 본부의 일을 끝내고 한번 날짜를 잡아 볼게.”
커맨더가 처용의 대답에 밝은 미소를 지었다.
“후배가 이종족에 대한 편견이 없어서 다행이야.”
“저희 성역에도 이종족들이 거주하고 있으니까요.”
“아! 이야기는 들었어, 뱀파이어들이라지?”
처용의 말에 커맨더가 밝은 표정을 지었다.
헌터들 중에서도 이종족들에 대해 편견을 가진 이들이 많은 시기였다.
그런 와중에 자신과 같은 S급 헌터가 이종족에게 차별감이 없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아니, 처용은 그것을 넘어서 이종족들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가진 듯 보였다.
“그분들이 협회의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커맨더.”
태민이 추가적으로 이야기했다.
“정말 고마워. 이제야 좀…… 희망이 보이는 것 같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커맨더의 부탁인데요. 하하.”
“보답은 반드시 할 거야! 꼭!”
커맨더가 처용의 말에 진심으로 보답하겠다는 듯 강하게 말했다.
“아,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걸 깜빡했네요.”
좀 전까지 파란만장한 일이 지나갔기 때문인지.
처용이 막 기억이 났다는 듯 말했다.
“네 번째 S급 헌터가 탄생했습니다.”
“……뭐?”
“……예?”
커맨더와 태민이 처용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의문을 뱉었다.
처용이 어제 있었던 일을 말해 주자.
“……한국이 이제 다른 나라나 길드에게 얕보일 일은 적겠네.”
커맨더는 처용이 전한 소식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 처용 님?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것입니다만, 그 해전무신은…….”
무언가를 생각하듯 고민하던 태민이 처용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청룡의 안식처에서 해전무신을 봤을 때부터 자꾸 누군가가 떠올랐다.
커맨더 역시 태민의 질문에 처용의 답을 기다렸다.
그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맞습니다.”
처용이 확답을 내리자.
“하하……, 우리한테 적대적인 성좌만 아니라 해도 좋다 생각했었는데.”
커맨더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는 자신의 성좌, 기계장치의 여신에게 무신전에 대해 들은 말이 있었다.
그들이 모두 역사 속에 존재하던 인물이라는 것 역시도.
“설마…… 그분이셨을 줄이야.”
해전무신의 정체를 알아챈 커맨더가 헛웃음을 흘렸다.
“처용 님의 누이분께서 그분의 신관이 되신 거고요?”
태민이 확인 차 물은 질문에 처용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청룡에 이어서 해전무신까지…….”
처용의 대답에 태민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냥 좋은 소식이 아니라 엄청난 소식이었다.
해전무신은 한국에 호의적인 데다가 전투력 또한 상당했으니까.
“올림포스 본부에 가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해야겠네.”
커맨더가 방을 나가며 태민을 향해 말을 이었다.
“가는 김에 휴가 가신 센터장님도 챙겨 올게요. 과장님.”
“하하.”
손을 흔들며 나가는 커맨더의 말에 태민이 웃음으로 답했다.
“그럼 이틀 뒤에 보시죠.”
처용 역시 아테나가 약속한 차후 대책 회담과 성지를 위한 작업 등.
여러 준비를 위해 태룡전으로 돌아갔다.
***
이틀 뒤.
약속된 회담 날이 다가왔다.
“괜찮겠어?”
게이트를 열고 협회로 온 처용이 자신을 따라온 연화를 보며 묻자.
“문제는 없어. 이젠 충분히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으니까.”
연화가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연화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진짜 청룡의 신관인 윤아를 대신해 가는 것이었다.
그녀의 신관인 해전무신을 통해 청룡의 말을 전해줄 수 있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연화는 이제 약하고 버림받은 헌터가 아니었다.
[이름 : 한연화]
[레벨 : 103]
[칭호 : S급 헌터, 해전무신의 신관]
[클래스 : 해전(海戰) 군주]
[특징 : 파도를 이용해 변칙적인 공격을 구사하는 클래스입니다.]
[바다와 대량의 물이 존재하는 환경에서 압도적인 강함을 보여줍니다.]
[스킬 : 파도의 검, 해류 소환…….]
연화는 신관으로 선택받음과 동시에 100레벨을 돌파했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해전무신과 연화 간의 상성.
서로의 상성은 단순히 좋은 정도가 아니었다.
빛의 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추가로 그동안 선인의 수련을 받으며 육체의 그릇을 더 강하고 단단하게 만든 것도 이유에 한몫했다.
무엇보다 해전무신의 신관이 된 그녀는 커맨더와 같은 ‘군주’ 클래스였다.
군주는 헌터들이 가진 클래스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클래스.
태양신 라의 신관, 라진의 클래스도 ‘태양의 군주’였으니까.
“이제 걸림돌은 되지 않을 거야.”
연화가 각오를 다지듯 말하자.
“하하, 걸림돌일 리가?”
처용이 헛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동시에 수련탑에서 그녀와 대련했을 때를 떠올렸다.
성좌인 해전무신에게 1:1 교습을 받는 그녀를 돕기 위한 잠깐의 대련.
그러나.
‘……장난이 아니었지.’
처용은 확 달라진 연화를 상대해 보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해전무신의 신관이 된 것으로, 그저 날개가 생긴 정도가 아니었다.
그녀는 대붕(大鵬)이 되어 날아올랐다.
심지어 그녀를 하나뿐인 후계자로 대하겠다는 해전무신의 말은 거짓이 아니라는 듯.
자신이 차고 있던 두 자루의 칼 중 하나를 직접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과분한 기대를 받는 만큼, 앞으로 더 노력할 거야.”
-철컥.
연화가 허리춤에 찬 칼을 어루만지며 각오를 다졌다.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 血染山河) / 신물(神物)]
[등급 : 신화(神話)]
[크게 한 번을 휩쓸어 산과 바다를 핏빛으로 물들인다.]
[성좌 해전무신의 신물, 두 자루의 쌍수도 중 한 자루입니다.]
[시스템의 제약으로 성능이 크게 제한됩니다.]
연화의 칼은 성물이 아닌 진짜 신의 무구였다.
다만, 진짜 신물이라고 해도 시스템의 제약을 받기에 그 성능은 성물과 크게 다름이 없었지만.
해전무신이 연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처용과 연화가 협회 옥상으로 향하자.
“왔구나.”
커맨더가 처용을 반갑게 맞이했다.
“독도에서 한 번 봤었죠? 이제야 제대로 인사하네요.”
그리고 연화를 향해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손을 내밀었다.
“영광입니다. 커맨더.”
연화가 그 손을 맞잡으며 마주 웃음을 지었다.
“그럼 가 볼까?”
커맨더가 하늘을 바라보며 말하자.
-후우우!!
하늘의 구름을 해치고 나타난 거대 전함, 마키나가 서서히 내려왔다.
그리고.
-슈우우.
하늘에서 직사각형 형태의 비행체가 협회 옥상으로 날아왔다.
지상에 착지한 비행체, 승강기의 앞면이 마치 엘리베이터처럼 좌우로 열렸다.
커맨더가 가장 먼저 들어가자.
“내가…… 커맨더의 함선을 타보는 날이 올 줄이야.”
연화가 감탄하며 그를 따라 탑승하고 다른 사람들 역시 따라 탑승했다.
‘하하, 나도 정말 오랜만에 타보네.’
처용 역시 사람들을 따라 승강기에 올랐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