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다음 날.
처용이 나름 좋은 소식을 가지고 커맨더를 만나기 위해 협회로 오자.
“저 망할 새끼가!!”
협회 로비에서 백호의 분노한 듯한 고함이 들려왔다.
“흠?”
처용이 의문을 표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화가 난 사람이 백호만이 아니었다.
-저! 저!
-저 무슨 말도 안 되는 억지를!
협회에서 근무하는 다른 사람들도 분노가 차올라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집중된 곳은 다름 아닌.
-방금 전, 대통령이 중대 발표를 했습니다.
협회 로비에 걸려 있는 대형 스크린이었다.
그곳에서는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들이 긴급 속보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협회가 아무 이유 없이 정부를 공격했다고 합니다.
-국정원 요원들을 아무 이유 없이 협회가 체포해 갔다는 건가요?
“하, 하하…… 하하하.”
스크린을 본 처용의 입에서 긴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긴급 속보의 내용은 짧게 요약하면 이랬다.
테러의 위험이 있는 사람을 잡아내기 위해 출발한 국정원 요원들을 백호가 폭행하고 잡아갔다는 내용.
독도를 조사하기 위해 출발한 올림포스 헌터들을 협회가 방해하고 몰아냈다는 내용.
독도에 나타난 몬스터들의 사진이 올라오며 협회가 몬스터를 지배하는 실험을 했다는 의혹.
협회장이 대통령을 향해 내뱉은 욕설 중 자극적인 부분만 잘라 내보내는 등.
웃기지도 않는 정치공작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처용은 힘줄이 불거질 정도로 주먹을 쥐며 분노하고 있는 백호에게 다가갔다.
“청소가 필요한 건 올림포스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 자네 왔는가.”
백호가 처용을 보고는 일그러진 표정을 풀며 말을 이었다.
“설마…… 저렇게까지 등신일 줄은.”
“커맨더는 어디로 갔습니까?”
처용은 백호에게 커맨더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커맨더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으니까.
“형님이랑 이야기하더니 같이 어디론가 가더군.”
즉, 이 사건이 터지자마자 협회장이 커맨더를 데리고 어디론가로 갔다는 것.
“……조만간 해결되겠네요.”
처용이 팔짱을 끼며 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커맨더가 아무리 사람 좋은 성격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참고 넘어갈 만큼,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아니, 커맨더는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성향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협회장이 커맨더를 데리고 움직였다.
아마도…… 지금의 상황이 일어날 것을 대비하고 미리 준비한 느낌이 들었다.
***
국회의사당.
갑작스럽게 터진 폭탄 같은 소식에 국회의원들이 급히 모였다.
그들은.
-황제일 협회장! 지금 저 소식들이 사실입니까?
-똑바로 해명해야 할 것이오!
단상에 선 황제일을 향해 대답을 촉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이잉.
이 모든 상황을 뒤의 카메라들이 촬영하고 있었다.
현재 국회의사당 내부의 상황은 생방송으로 외부에 전해지고 있었다.
마치 미리 준비했다는 듯이…….
“흠…….”
협회장이 떠들썩한 국회의사당 내부를 한번 쭉 둘러보며 침묵하자.
떠드는 소리가 점점 잦아지더니 의원들이 협회장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제 제가 이야기 좀 해도 되겠습니까?”
협회장이 넌지시 묻자.
“빨리 좀 말해 보시오!”
“이 상황을 어찌할 겁니까!”
몇몇 의원들이 날선 음성으로 협회장을 향해 외쳤다.
“협회장 당신 지금 탄핵감이야 알아!?”
그들의 중심에는 항상 협회장에게 딴지를 걸던 박택진 의원이 있었다.
“이 일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뭐 좀 물어봅시다.”
협회장이 박택진과 자신을 적대하는 이들을 잠시 노려보고는 말을 이었다.
“의원님들은 대통령 말을 모두 믿는 겁니까?”
그 물음에.
-억지가 좀 심하긴 한데.
-솔직히 대통령의 말에 정확한 증거는 없습니다.
-거짓일 가능성은 있나?
국회의사당 내부에 있는 의원들이 웅성거렸다.
아무리 욕망에 충실한 국회의원들이라 해도 이들이 전부 바보는 아니었다.
의원들이 대통령의 말을 진지하게 다시 생각할 때.
“지금 대통령의 말을 의심하는 겁니까!?”
박택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그를 따르는 의원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대통령을 변호했다.
그들의 말을 듣던 협회장은.
“그럼 이 자리에는 왜 안 나왔습니까?”
박택진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런 상황을 만든 대통령은 왜 청와대 벙커에서 나오지도 않는 겁니까?”
-탕!
“이 상황을 만든 건 협회장 당신이야!”
박택진이 협회장의 물음에 손바닥으로 단상을 치며 크게 말했다.
“후, 우선…… 이 상황을 설명해 줄 증인을 이 자리에 모시겠습니다.”
한숨을 내쉰 협회장이 침착하게 말하며 누군가를 부르자.
“증인은 무슨! 협회장 당신은 범죄자야! 책임감도 없는-.”
박택진이 협회장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그를 매도하듯 말했다.
그때.
“닥쳐.”
협회장에 부름을 받은 증인이 걸어 나오며 박택진을 향해 일갈하듯 말했다.
“감히 누가 국회의원인 나한테-!”
화가 차오른 박택진이 걸어 나오는 사람을 향해 말하자.
“그 입.”
모습을 드러낸 증인, 커맨더가 박택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닥치라고 말했다.”
살기가 섞인 커맨더의 말에 박택진이 입을 다물었다.
평소 그가 보이던 모습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으니까.
-커맨더가 왜 여기에?
-무슨 일이지?
너무나도 유명한 헌터의 등장에 회의장 내부가 술렁였다.
“제가 지금 화가 많이 났습니다. 그러니…… 말이 조금 거칠어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단상에 선 커맨더가 딱딱한 음성으로 말하자.
“혹시, 커맨더는 이번 일하고 관련이 있는 겁니까?”
의원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원래는 의원들이 그를 향해 건방지다는 등 일갈을 쏟아내야 했지만.
커맨더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도저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에는 평소에 자주 보이는 미소조차도 사라진 상태였으니까.
“관련이 있죠.”
방금 받은 질문에 커맨더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말리아 못지않은 상황이 지금 저에게 일어났으니까.”
“……!!”
커맨더의 말을 알아들은 국회의원들이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의원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질문했다.
모두가 커맨더의 말에 집중했을 때.
“대통령이 제 조카를 납치해서 해외에 팔아넘기려고 했습니다.”
커맨더가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그의 말이 국회의사당 내부를 울리자.
“…….”
“…….”
커맨더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모두가 잠시 침묵했다.
그 후.
-그, 그게 무슨!
-그게 사실입니까. 커맨더!?
혼란의 도가니가 된 국회의원들을 잠시 바라본 커맨더는.
“사실입니다.”
확실하게 한 번 더 말해준 후.
“국정원, 그리고 독도에서 일어난 일 모두, 제 조카와 관련된 일이었습니다.”
좌중을 쭉 둘러보며 조곤조곤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계던전을 막던 자신이 왜 급하게 한국에 왔는지.
대통령이 자신의 조카가 다니는 학교에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등을 이야기했다.
커맨더가 이야기를 마쳤을 때.
“이것을 좀 보시죠. 의원님들.”
협회장이 리모컨을 조작하자 국회의사당 내부에 있던 스크린에 어떤 동영상이 출력되었다.
-대통령 각하의 명령이다!
-전부 끌고 와!
국정원 소속 요원들이 학교 교사들과 학생들을 탄압하고.
-체포해.
저항하는 교장과 다른 교사들을 폭행하는 영상.
학생 중, 한 명이 손목에 착용하는 스마트 워치를 몰래 작동시켜 찍은 영상이었다.
그리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영상의 마지막은 사람들을 해치려는 국정원 요원들을 백호가 막는 것으로 끝났다.
“권백호 헌터는 국정원 요원들이 학교에서 부리는 행패를 막기 위해 간 겁니다.”
협회장의 말에 국회의원 중 한 명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그러면 국정원 요원들을 이유 없이 잡아갔다는 건…….”
“거짓말이죠.”
단호함이 담긴 협회장의 대답에 회의장 내부가 크게 술렁였다.
협회장은 그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준비해 두었던 증거들을 하나 둘 공개했다.
불법 아티팩트와 불법 자금을 받은 증거.
정부가 협회의 권한들을 빼앗기 위해 했었던 준비들.
대통령의 목소리가 담긴 여러 녹취록 등.
공개한 증거들이 국회의사당을 넘어 생방송으로 퍼져 나갔다.
그때.
“……끝났어.”
커맨더가 협회장에게 조용히 무언가를 말했고.
“……알았다.”
그 말에 협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막 새로 들어온 증거가 있습니다.”
협회장이 말함과 동시에 커맨더가 USB와 비슷한 무언가를 작동시켰고.
-개! 소! 돼지 새끼들이! 정치에 대해 뭘 아나!
스크린에 어떤 영상이 출력되기 시작했다.
얼굴에 퍼진 검버섯과 주름이 가득한 인상의 노인이 소리를 지르는 모습.
바로 대통령의 모습이 담긴 녹화 영상이었다.
-커맨더의 조카고 나발이고! 일을 조용히 처리했으면 문제가 없었을 거 아냐!!
대통령이 앞에 있는 수행원에게 손찌검하며 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일단! 절대 아니라고 잡아뗄 테니까! 당장! 튀어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 와! 빨리!!
그 말을 들은 사람이 대기실을 뛰쳐나가자.
-이 미개한 개, 돼지 새끼들이!
-와장창!
책상을 엎어버린 대통령이 분노를 담아 욕을 내뱉었다.
그리고.
-후, 황제일만 묻어버리면 끝난다……. 황제일 새끼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듯 내뱉은 말을 끝으로 어디론가로 향했다.
카메라가 그를 추적하듯 따라가자.
대통령이 향한 곳은 사람들이 모여든 청와대의 단상 앞이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청렴! 결백합니다!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아아!!
대통령이 억울함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절규하듯 연설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눈물까지 보이며 호소하고 있었다.
국민의 앞에서는 존경하는 국민.
그러나, 국민의 뒤에서는 개, 돼지라고 하는 대통령.
그 모습이 국회의원들한테 공개되고.
생방송을 통해 나라 전체로 퍼져 나갔다.
재생되던 영상이 모두 끝나자.
“…….”
“…….”
국회의사당에 있는 이들 모두가 입을 떡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문제는…….”
협회장이 충격을 받고 침묵하는 이들을 향해.
“대통령을 돕고 커맨더의 조카를 납치하는데 일조한 이가 지금 이 자리에도 있습니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그 무슨!
-그게 사실입니까?
-어떤 놈이야!
모두가 서로를 의심하거나 소리치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
한 사람 만큼은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
“불편해 보입니다만?”
협회장은 그런 모습을 보이는 의원.
“박택진 의원님.”
박택진을 향해 섬뜩함이 담긴 작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박택진에게 쏠렸다.
“왜, 왜! 내가 뭘! 내가 뭘 어쨌는데!?”
시선을 받은 박택진이 당황함을 숨기려는 듯 목소리를 크게 내며 물었다.
“이 자리에서 해명해야 할 말이 많을 겁니다. 의원님.”
협회장이 작은 USB를 흔들며 말하자.
“…….”
박택진의 안면에 식은땀이 홍수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
생방송으로 퍼진 뉴스를 통해 상황을 지켜본 처용은.
“하하!”
큰 웃음을 터트렸다.
“후-, 미리 준비해 두어서 다행이네요.”
태민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처용에게 다가왔다.
지금 일어난 상황의 절반 정도는 협회장과 태민의 작품이었다.
국정원 헌터들이 학교에서 행패를 부린 영상 역시 태민이 구한 것이었다.
대통령이나 되는 사람이 협회장에게 대놓고 욕설을 들었으니,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다만.
“마지막 영상은 저희가 준비한 게 아니지만요.”
태민이 스크린을 응시하며 말하자.
“흠…….”
잠시 생각한 처용은 어떻게 된 것인지 깨달았다.
‘……커맨더가 ‘옵저버’를 보냈었나 보네.’
옵저버(Observer).
커맨더가 다루는 소환수 중 하나로, 관측과 정찰에 특화된 소형 무인 스텔스기였다.
크기가 작고 상당한 은폐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베테랑 헌터들조차 찾기 힘들었다.
공격 능력은 없다고 해도 정찰과 첩보 능력만큼은 엄청난 성능을 자랑했다.
‘어쩐지…….’
처용이 조금 전 뉴스에서 대통령의 비밀(?)을 폭로한 영상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몰래 촬영한 것 치고는 화질도 선명하고 음질도 아주 좋게 녹음된 것이 이상했었다.
심지어 대통령이 청와대 단상에서 연설한 것은 불과 10분 전.
커맨더는 그 짧은 시간에 대통령을 확실히 보내버릴(?) 수 있는 증거를 수집한 것이다.
아마도 그는 국회의사당으로 출발함과 동시에 대통령에게 미리 옵저버를 보낸 듯 보였다.
“뭐, 평화롭게(?) 잘 끝났네요.”
스크린을 보며 웃음을 지은 처용이 말하자.
“앞으로 정부가 방해할 경우는 일절 없을 겁니다.”
태민이 그렇게 답을 했다. 이다음 당선될 대통령은 협회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 될 테니까.
처용도 태민의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윤아는 어디에 있나요?”
커맨더를 바로 만나기 힘들다고 판단한 처용은 우선 윤아를 찾았다.
전해야 할 말도 있었고 그녀의 상태를 직접 확인할 필요도 있었으니까.
“아 VIP실에 있습니다. 따라오시죠.”
처용의 말에 대답한 태민이 안내하기 위해 앞장섰다.
태민을 따라 윤아가 쉬고 있는 곳에 도착하자.
“안녕하세요. 과장님. 역시 오빠도 오셨네요?”
침대에서 반쯤 몸을 일으키고 있던 윤아가 태민과 처용을 반겼다.
“역시?”
자신이 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한 윤아의 말에 처용이 의문을 표했다.
“오늘은 와주실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윤아가 작은 웃음을 보이며 처용의 의문에 대답했다.
“흠……, 딱히 이상은 없었죠?”
잠시 윤아를 살펴본 처용이 태민에게 묻자.
“정밀검사 결과 특별한 이상은 없었습니다.”
태민이 태블릿에 있는 검사 결과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며 답했다.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고 해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기에 통찰의 눈으로 윤아를 살펴봤다.
[이름 : 임윤아]
[레벨 : 40]
[칭호 : S급 헌터, 신룡의 신관]
[클래스 : 신룡만신(神龍萬神)]
[특징 : 용의 지식을 빌려 다양한 이적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날씨와 주변의 환경을 통제하고 유리하게 이끌 수 있습니다.]
[스킬 : 기상이변, 일기예고, 용의 직감……]
신룡만신.
회귀 전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클래스였다.
아마도 청룡이 발휘하는 힘을 일부 빌려와 사용할 수 있는 듯 보였다.
막 각성한 그녀가 40레벨인 경우도 딱히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보통 성좌의 선택을 받은 신관들은 신의 강력한 축복을 받고 시작하니까.
그럼에도 보통 20~30레벨로 시작하는 다른 신관들에 비해 높은 편이었지만.
윤아는 청룡과 직접 마주하여 수계를 받았으니, 이런 결과가 생긴 것으로 이해했다.
“곧, 우리 본가에 성지가 완성될 거야.”
처용은 윤아에게 자신의 계획 중 일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