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쿠쿠쿵!!
한 번 더 세상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쩌저적!
무언가가 갈라지며 깨지는 듯한 소리가 크기 울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백호가 처용에게 다급하게 다가와 물었다.
“외부에서 이 성역의 결계를 부수는 겁니다.”
“신의 성역을? 그게 가능한가?”
“포세이돈이 직접 강신했으니까요.”
처용이 통찰의 눈으로 살펴보자 성역 외부에 금이 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빌어먹을 놈, 꼴에 바다의 대신이라고…….”
포세이돈이 자신의 무구를 챙겼다는 말을 들은 이상 대충 예상하기는 했었다.
정말로 이렇게 무식한 방법을 쓸 줄은 몰랐지만…….
-쿠구궁!
한 번 더 세상이 크게 울리는 소리가 들렸고.
-쩌저적! 파차앙!
유리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세상이 깨져 나갔다.
그러자, 드넓은 호수로 보였던 청룡의 성역이 점점 사라지고 독도가 드러났다.
“이, 이게 무슨!?”
“어이! 떨어지지 말고 뭉쳐서 중심 잡아!”
백호와 같이 왔던, 현아를 포함한 협회 정예들이 당황했다.
호수로 보이던 성역이 거의 다 깨져 나가자.
청룡과 처용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강제로 독도 위로 이동되었다.
청룡의 거대한 모습이 독도 섬 위에 드러났다.
그리고.
결계를 부수던 적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청룡이 보인다!
-거의 다 뚫었어!
청룡을 확인한 적들이 소리를 지를 때.
[젠장! 이게 무슨?]
해전무신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청룡 옆으로 다가왔다.
[시스템이……!]
“이걸 노린 건가…….”
해전무신의 말을 알아들은 처용은 얼굴을 쓸며 밖에 있는 적들을 노려봤다.
성좌는 성역에서만 본래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성역이 부서지고 있는 상황.
성역이 완전히 부수어진다면, 성좌인 해전무신은 시스템의 제약을 받게 된다.
이곳에서 청룡을 지키는 거대한 전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수계에는 이상이 없는 겁니까?”
처용이 청룡을 보며 물었다.
성역이 부수어지면 청룡과 윤아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싶었지만.
[다행히 이 아이와 나는 문제가 없다.]
다행히 수계에는 이상이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시스템의 제약으로 인해 해전무신이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황이 생겨버렸다.
심지어 더 큰 문제는.
[나는 이 아이와 같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네.]
윤아와 윤아에게 수계 중인 청룡 모두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인가…….]
청룡이 낭패감 어린 목소리로 읊조렸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처용이 눈빛을 싸늘하게 가라앉히며 청룡에게 말했다.
[저들은 시스템의 제약을 피하기 위해 병사들을 이끌고 왔구나.]
청룡이 침입자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포세이돈 역시 신관에게 강신한 듯 보이는구나.]
청룡의 결계를 드러내기 위해서 무슨 수를 쓴 것인지 주변의 바다가 모두 밀려나 있었다.
마치 해일이 몰려오다가 멈춘 듯 바다의 벽이 독도를 중심으로 둘려 있었다.
지금 청룡과 처용이 있는 곳은 서도 쪽.
반면에 동도에는 ‘적’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청룡의 결계를 앞장서 부수는 사람이 있었다.
파랗게 염색된 올백 머리에 광기 어린 표정을 짓는 포세이돈의 신관 데이비드.
아니 정확히는 그 안에 강신한 포세이돈이 성물 트라이던트를 앞으로 내지르고 있었다.
심지어 그냥 성물만이 아닌 진짜 트라이던트의 힘까지 끌어다 쓰고 있었다.
그리고 데이비드 뒤에 보이는 다수의 오션 엠퍼러 길드 소속의 헌터들까지.
문제는 그들만이 적이 아니었다.
“바다 괴수들까지 끌고 왔네?”
처용이 투명한 결계 외곽을 관찰하며 말했다.
바다에서 사는 가오리와 게 형태 등 각종 해양 몬스터들까지 몰려와 있었다.
해양 몬스터를 지배하는 힘.
트라이던트의 능력 중 하나였다.
그리고.
-쿠르르르!
그들 뒤편, 해일처럼 밀려난 바다 위에서 압도적인 덩치를 자랑하는 해양 몬스터가 하나 있었다.
머리에 뿔이 돋아나 있는 거대한 문어.
바다에 다리가 잠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 높이만 10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
“……크라켄.”
처용이 시야에 보이는 재앙급 몬스터의 이름을 불렀다.
“젠장! 자네가 최악이라고 말했을 때부터 각오하긴 했지만!”
백호가 이 상황을 심각하게 관찰하며 처용에게 말했다.
동시에 결계 쪽으로 뛰쳐나갔다.
“당장 멈춰!!”
백호가 결계 외곽 쪽으로 다가가자 결계를 뚫던 이들도 백호를 알아봤다.
“커맨더를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면! 당장 이 짓거리를 멈춰라!”
백호는 단, 한 번도 커맨더의 이름을 들먹인 적이 없었지만.
지금은 이렇게까지라도 해서 저들을 멈춰야 했다.
데이비드라면 자신을 알아볼 테니까.
그러나.
[그 빌어먹을 년의 신관과 같이 있던 인간이구나!]
데이비드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
강신한 포세이돈이 광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놈도 거슬렸는데 잘 되었구나, 같이 죽여 주마! 이 하계종 놈!]
“이 무슨 말도 안 통하는! 너희들도 같은 생각인가!?”
백호는 뒤에 있는 헌터들에게도 일갈했지만.
[하계종 따위가.]
[어디서 감히 신들을 방해하느냐!]
데이비드 바로 뒤에 서 있는 S급 헌터들 역시 강신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오션 엠퍼러 길드원들 역시 백호를 비웃으며 그의 말을 무시했다.
신들과 함께하고 있는 이상 두려울 것은 없는 듯 보였다.
“이 미친놈들이!”
결국,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백호는 처용 옆으로 돌아왔다.
그때.
[계승자와 인간들은 도망가라.]
청룡이 처용과 백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수계를 중단할 테니 이 아이만이라도 같이 데리고 가 주게.]
결계 밖에 대기하고 있는 오션 엠퍼러 길드원만 약 사백 명에 달했다.
거기에 크라켄을 포함한 각종 해양 몬스터들까지…….
그에 반해 이쪽은 시스템의 제약을 받아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성좌.
그리고 고작 30명 정도의 헌터들 뿐이었다.
[미안하구나, 여기까지인 듯 보이는-]
“전 포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전의를 잃은 청룡에게 처용이 강하게 말했다.
“방법이 있나?”
백호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진지하게 물었다.
“저쪽이 신의 힘을 쓴다면.”
처용의 눈이 붉게 물들며 말을 이었다.
“이쪽도 신의 힘을 쓰는 게 도리겠죠.”
“아!”
백호는 이전 마인들의 아지트에서 봤던 개미들.
처용이 성역의 관리자들이라고 말했던 존재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저 역시 히든카드가 있습니다.”
“……우리는 뭘 하면 되지?”
백호는 진지하게 이 상황을 판단하고 처용에게 조언을 구했다.
지금 상황은 던전의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이 아닌 신들의 전쟁에 가까웠으니까.
“백호 님을 제외한 인원은 전원 방어에만 집중하고.”
처용은 모두가 듣도록 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단 한 명도 죽지 마십시오!”
처용이 마지막에 말한 ‘단 한 명도 죽지 말라’는 말.
회귀 전, 악신들과 싸우기 전 동료들에게 항상 전하던 말이었다.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구나. 내가 앞장서 싸워야 하거늘…….]
해전무신이 침통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병사를 찾아봤어야 했었는데.]
“빈 병사…….”
처용은 해전무신의 말을 듣고 누군가가 생각이 났다.
성좌의 가호를 잃고 재활 치료 중인 헌터 한 명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위험하다.’
이런 위험한 전장에 가족을 끌어들이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무엇보다 연화와 해전무신이 서로 잘 맞는다는 보장도 없었으니까.
처용은 생각을 접고 눈앞의 적에게 집중했다.
머릿속에 계획을 정리한 처용은.
“우선, 제 계획 좀 들어보시겠어요?”
청룡과 백호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탁!
결계 외곽으로 날아가 데이비드, 그 안에 있는 포세이돈과 마주했다.
“어이~ 포세이돈?”
포세이돈과 마주한 처용은 비웃음을 끌어 올리며 그를 불렀다.
[미천한 하계종 따위가!!]
포세이돈은 감히 자신을 부른 인간을 향해 호통쳤다.
[감히!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
“뭐래, 청룡 잡겠다고 부하들 잔뜩 끌고 온 양아치가. 큭큭.”
대놓고 신을 모욕하는 처용의 말에 신관의 몸에 강신한 다른 신들의 표정까지 경악과 분노로 일렁였다.
[네놈이 감히!]
[신을 모욕하다니!]
처용은 그런 모습들을 여유롭게 관찰하며.
“하, 같잖은 병신(病神)들이.”
더욱 비웃음을 끌어올리고 도발했다.
그리고.
제시카와 메리 앞에서 보였던 것처럼.
“선천적 신격이라는 놈들이 내 성좌님한테 뒤지게 처맞았다면서?”
신살자의 힘을 섞어 자신의 신력을 드러냈다.
-쿠구구!
처용에게서 붉은 기운이 일렁이는 황금빛 신력이 맹렬한 기세로 피어올랐다.
[서, 설마!]
[네, 네놈은 혈선의!]
처용은 당황한 모습을 보이는 데이비드와 S급 헌터들에게.
“어이, 머저리들?”
한 발자국 더 다가가며 말했다.
“쫄았어?”
그 말에 포세이돈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네! 이! 하계종 놈!!]
호통을 내지른 포세이돈이 분노를 담아 외쳤다.
[혈선도 별거 없다! 청룡을 흡수하고 내가 유일신이 되는 순간-]
“등신 새끼.”
포세이돈의 말을 자른 처용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그걸 구경하고만 있겠냐?”
처용의 말에 험악하게 표정을 구긴 포세이돈이었지만.
[크흐흐…….]
곧장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곧 결계가 뚫리면, 네놈을 반드시 죽여 주마!]
그의 말대로 결계가 이제 완전히 깨지기 직전이었다.
결계가 깨지는 순간.
가장 가까이 있는 처용은 집중적으로 공격받을 것이다.
그러나.
“드루와 봐, 머저리 새끼들.”
처용은 아무렇지 않은 듯 포세이돈을 향해 손을 들어 까닥거렸다.
[네 이놈!!]
그 도발에 넘어간 포세이돈이 트라이던트에 더욱 힘을 주었다.
-콰지지직!!
결계가 더욱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콰지직!!
결계가 파편을 튀기기 시작하며 완전히 부수어지기 시작했다.
[네놈을 죽여 주마!!]
포세이돈의 얼굴이 환희로 물들기 시작했고.
“멍청이들.”
처용의 표정 또한 환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를 성공했다는 듯.
-파창창!!
결계가 파편을 튀기며 완전히 부서지려는 순간!
“빙첨격류장(氷尖激流戕).”
-탁!
처용이 손가락을 튕기며 미리 준비했던 함정을 발동했다.
-콰쾅!! 촤자자작!!
폭발과 함께 부서져 나간 결계의 파편들이 날카로운 물줄기와 얼음 줄기로 변했고.
-무, 무슨!? 막아라!
-늦었- 크아악!
-으아악!
결계에 가까이 붙어있던 헌터들과 몬스터들을 휩쓸었다.
처용은 포세이돈과 마주하기 전 청룡에게서 이 결계의 권한을 양도받았다.
미리 양도받은 이 결계를 자연부를 이용해 강력한 폭탄으로 개조했다.
강한 힘으로 결계가 부수어지는 순간!
마치 수류탄처럼, 날카로운 파편을 외부에 퍼트리는 폭탄으로 변하도록.
포세이돈을 도발한 것은 강한 힘으로 결계를 부술수록 더 폭발이 거세지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퍼져 나간 결계 파편들은 단순한 파편이 아니었다.
카투라에게서 계승을 받고 강해진 수 속성 능력인 절단과 입자 가속.
각 파편에는 그 절단과 입자 가속 능력까지 적용되어 있었다.
무려 청룡의 결계를 제물로 삼고 공들여 개조한 폭탄이니만큼, 그 효과는 아주 훌륭했다.
이윽고 폭발로 인한 물안개가 걷히자.
-으어억!
-으윽!
사방에 번져 있는 피.
파편을 직격으로 맞아 끔찍한 모습으로 사망한 시체.
팔, 다리가 잘려나가거나 깊은 자상(刺傷)을 입고 고통스러워하는 헌터들과 몬스터들까지.
마치 폭격을 직격으로 맞은 군대와 같은 참상이 드러났다.
그리고.
[이! 하계종 놈이!!]
결계와 가장 가까이 있던 데이비드, 포세이돈이 노성을 질렀다.
그는 폭발 직전, 다급하게 창과 팔을 들어 올리고 방어를 했지만.
축복을 내린 갑옷이 망가지고 여기저기 찢어진 상처를 얻었다.
그의 뒤에 있던, 강신 중인 S급 헌터들도 상태가 온전치 못했다.
그리고.
[백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쓰러졌다.]
포세이돈 뒤에 있던 강신 중인 성좌 하나가 침음을 흘리며 말했다.
오션 엠퍼러 길드원 사백 명 중 백이 넘는 숫자가 사망하거나 전투 불능이 되어버렸다.
해양 몬스터들 역시 절반 가까이 쓰러진 상황.
엄청난 피해였지만, 이나마도 포세이돈과 S급 헌터들이 앞에서 막아주었기에 피해가 줄어든 것이었다.
“선물은 마음에 드나 머저리들?”
폭발 직전, 뒤로 미리 피신해 있던 처용이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크, 크크크, 크하하!]
처용의 도발에 인상을 구기던 포세이돈은 돌연 웃음을 지었다.
[발악은 이게 끝이더냐? 혈선의 신관!]
트라이던트를 처용에게 겨눈 포세이돈이 말을 이었다.
[이까짓 병사들은 소모품일 뿐, 네놈의 발악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결계가 뚫린 이상, 압도적인 화력으로 밀어버리면 자신의 승리였으니까.
[네놈은 바다 최강의 생물인 크라켄조차도 막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아 그래?”
처용의 표정에는 전혀 다급함이 없었고.
“내 진짜 패는 아직 꺼내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포세이돈에게 말함과 동시에 누군가에게 전음을 보냈다.
‘카투라 님, 도움이 필요합니다.’
처용이 카투라를 부름과 동시에.
[히히, 재밌겠는데?]
그녀가 응답했고 아껴 두었던 스킬이 발동되었다.
-쿠구구구!!
청룡이 있는 서도 뒤쪽 해일 벽.
그곳에서 독도와 청룡을 감쌀 정도로 거대한 무언가가 솟구쳐 올려왔다.
“바다 최강의 생물? 크라켄 따위가?”
처용이 멍한 표정으로 카투라의 분신을 바라보는 헌터들을 향해 말했다.
크라켄이 재앙급 몬스터들 중에는 상위에 들 정도로 덩치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내 눈엔 그냥 쭈꾸미야.”
행성과 맞먹는 크기인 카투라의 본체를 본 처용에게는 그저 귀엽기만 한 크기였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