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백호는 진지한 목소리로 윤아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그녀가 청룡이라는 성좌에게 선택을 받은 것.
그 성좌가 올림포스의 표적이 되어 쫓기고 있다는 것.
청룡의 신관인 그녀 역시 표적이기에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청룡을 만나야만 이 일이 끝나게 된다는 것까지.
최대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설명해 주었다.
윤아는 충분히 당황스러워할 법한 상황임에도 끝까지 침착하게 백호의 이야기를 쭉 들었다.
“…….”
잠시 생각한 윤아는.
“……악몽 속에서 푸른 눈을 가진 무언가가 제게 계속 경고했어요.”
자신이 꾸었던 악몽을 이야기했다.
어떤 악몽이었는지 자신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얼마나 무서웠는지도…….
그리고.
“악몽은 항상 누군가가 저를 구해주는 모습으로 끝나요.”
“누가?”
윤아는 백호의 물음에 뒤에 서 있던 처용을 빤히 바라봤다.
“나?”
처용이 자신을 가리켜 확인하자 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마도 전철역에서 구해주신 게 기억에 남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윤아가 잘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
‘……왜?’
처용은 윤아의 말에 왜 ‘자신’인지 의문이 들었다.
전철역 사고 당시 윤아를 도와주기는 했지만.
그녀를 도와준 이들은 자신 말고도 또 있었을 것이다.
협회 구출반이라던가, 혹은 병원에 보내준 현아라던가.
물론, 윤아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남았을 수도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를 구해줬으니까.
하지만.
‘청룡…… 그리고 계승자.’
처용은 계승자에 대해 알고 있는 듯 보이는 청룡이 신경 쓰였다.
윤아는 그 청룡의 신관이니, 무언가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용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그리고, 제가…… 세 번째 S급 헌터라고요?”
윤아가 의문을 섞어 질문했다.
백호의 말 중에는 자신이 청룡의 선택을 받아 세 번째 S급 헌터가 되었다는 말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이 알기로는 한국에 존재하는 S급 헌터는 단 한 명.
“사, 그, 커맨더 말고는…….”
심지어 자신이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다.
윤아가 의문을 표할 때.
“처용 님이 두 번째 S급 헌터입니다. 윤아 양.”
태민이 윤아의 의문에 답해 주었다.
“아.”
윤아가 놀란 듯 처용을 바라보았다.
설마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두 번째 S급 헌터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처용은 그런 윤아를 향해 어깨를 으쓱이고는.
“마음 같아서는 네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고 싶지만.”
윤아를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네 성좌가 위험한 이상 서둘러야 해.”
당장 청룡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이상 서두를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렇네요.”
“혹시, 더 궁금한 건?”
처용의 물음에 윤아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연아는 괜찮은 거죠?”
뜬금없이 연아의 안부를 물었다.
이유는 별거 없이 그저 생각이 나서 물어본 것이었다.
“음? 하하.”
설마, 연아에 대해 물어볼 줄은 몰랐던 처용이기에 작은 웃음이 나왔다.
“걘 걱정하지 마, 지금쯤 천만 원을 알뜰하게 쓰고 있을 테니까.”
동시에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연아가 네 걱정 많이 했었어.”
“……그런가요?”
다짜고짜 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하던 친구가 생각난 윤아가 웃음을 지었다.
처음 부탁을 받았을 때는 당황스러웠지만, 같이 지내다 보니 자신을 많이 걱정해 주는 좋은 친구였다.
자신의 악몽을 진지하게 생각해 주는 친구는 연아밖에 없었으니까.
“제가…… 뭘 하면 되나요?”
상황을 전부 파악한 윤아는 진지하게 물었다.
자신이 무엇을 하면 되는지를.
“마음에 드네.”
처용은 나이가 어림에도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윤아가 마음에 들었다.
그때.
-띠릭. 띠릭.
태민의 라이센스가 울렸다.
“이, 이건!?”
정확히는 태민의 라이센스와 더불어.
“올림포스 측 연락입니다!”
이전 메리가 전해준 네잎클로버 모양의 아티팩트.
그것이 공명하여 울리고 있었다.
처용이 태민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연락 받았습니다.”
태민이 마주 고개를 끄덕이며 연락을 받았다.
그러자.
-큰일 났습니다! 지금 데이비드가…….
다급한 제시카의 목소리가 울렸다.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말해 봐, 포세이돈의 신관이 뭐 어쨌는데?”
처용이 네잎클로버 모양의 통신구를 향해 말하자.
-아, 같이 계셨군요. 마침 잘 되었습니다. 지금 데이비드가!
제시카가 다급하게 올림포스에 있었던 일들을 전했다.
포세이돈의 신관, 오션 엠퍼러 길드의 길드장.
그가 휘하의 신관들과 헌터들을 대부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말이었다.
“총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처용이 진지하게 물어다.
-그게…….
제시카가 말을 흐렸다.
협력을 약속하기로 했지만, 올림포스의 전력을 함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명령을 어긴 놈들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추산되지 않았다.
단순 포세이돈의 세력만이 아닌 그와 협력하는 성좌들의 세력까지 합류했으니까.
제시카가 망설이고 있을 때.
“포세이돈 휘하만 움직였다면, 테티스와 케토의 신관을 포함한 S급 여섯일 테고…….”
처용은 올림포스의 세력을 훤히 꿰고 있다는 듯 말을 이었다.
포세이돈의 휘하 성좌 중 여섯은 신관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의 신관들은 포세이돈의 신관 데이비드보다는 약하지만, 그래도 S급 헌터였다.
-그, 그걸 어떻게?
“내가 궁금한 건 그게 아니야.”
경악하는 제시카에게 처용이 말을 이었다.
“포세이돈 세력 말고 다른 성좌가 움직였냐는 거다.”
처용의 말이 끝나자 아테나가 입술을 깨물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생각한 제시카는.
-태양 마차 길드장이 연락이 안 됩니다.
솔직하게 연락이 끊어진 이들을 이야기했다.
이 소식도 태양 마차 길드 한국 지부장, 최민식이 연락해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제시카의 말을 진지하게 듣던 처용은 잠시 생각하다가.
“하나만 더 묻지, 아테나가 너에게 말해줬을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을 건넸다.
“포세이돈이 트라이던트를 챙기고 직접 움직였나?”
정확한 명칭은 오션 트라이던트(Ocean Trident).
포세이돈의 상징이자 그의 무구였다.
-……그렇습니다.
“젠장.”
‘그렇다’라는 제시카의 답변에 처용의 표정이 크게 구겨졌다.
-무엇보다 포세이돈이 청룡의 신관도 찾은 것 같다고 합니다. 그를 보호해야-
“그건 걱정하지 마.”
-……아 다행이군요.
처용의 말을 잘 생각해 본 제시카가 그 뜻을 알아차리고는 안도를 표했다.
-망할 데이비드, 저희도 최대한 빨리 놈을 찾아보겠습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제시카가 통신을 끊었다.
“상황이 좋지 않은데요?”
태민이 제시카의 말을 생각하며 불안한 듯 말했다.
“협회 전체에 1급 비상 대기령을 내리세요. 나는 WHU에 협력을 구해 보겠습니다.”
협회장이 태민에게 명령했다.
올림포스의 주력 헌터들의 세력 중 일부가 사라졌다.
심지어 놈들은 지금 협회에 있는 윤아를 노리는 상황이었다.
포세이돈의 신관이 협회를 직접 공격할 가능성도 있었다.
협회장과 태민이 움직이려는 때.
“놈들의 목적은 여기가 아닙니다.”
처용의 말에 움직임이 멈추었다.
“협회를 공격하려는 게 아닌가요?”
“아닙니다.”
태민의 말에 처용이 한 번 더 단호하게 말했다.
“청룡이 위험합니다.”
처용은 놈들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눈치챘다.
“놈들이 청룡의 위치를 알아냈다면, 포세이돈이 직접 움직일 겁니다.”
“하지만, 성역은 처용 님의 능력이 없으면 들어갈 수도…….”
청룡의 성역에 들어갔었던 태민이 의문을 표했다.
“트라이던트.”
처용은 태민의 의문에 포세이돈의 무구로 답변했다.
“놈의 무구, 오션 트라이던트를 쓰면 성역을 강제로 찢을 수 있습니다.”
포세이돈의 무구, 트라이던트의 능력을 알고 있으니까.
“이 개새끼들이 같잖은 수를…….”
처용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지며 심각한 분위기를 내고 있을 때.
“지금 급한 상황인 거죠?”
분위기를 살피며 침묵하고 있던 윤아가 입을 열었다.
“맞아.”
윤아의 물음에 처용이 대답했다.
지금 그녀가 불안감에 젖어 있다고 해도 고려할 상황이 아니었다.
다행히 윤아는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듯 보였지만…….
“지금 바로 청룡한테 갈 거야. 준비는?”
“후-, 전 준비 됐어요.”
마음에 남은 불안을 몰아내듯 심호흡을 한 윤아가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대답했다.
그때.
“나도 가겠네.”
백호가 어깨를 풀며 처용에게 말했다.
그리고.
“협회 정예들도 지금 도착했답니다.”
태블릿 알림을 확인한 태민이 말했다.
“던전에서 몬스터를 잡는 거와는 차원이 다른 상황입니다.”
그 모습에 처용이 진지하게 경고했다.
무려 대신의 세력과 맞붙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기껏 안정시켜 놓은 협회의 인력들을 희생시킬 수는 없었다.
“흐흐, S급 헌터들과는 수도 없이 싸워 봤으니 걱정하지 말게나.”
백호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유진이와 나에게 시비를 걸었던 놈들을 한두 번 박살 낸 게 아니었거든, 그리고.”
윤아를 바라본 백호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아이가 위험한 이상 내가 가만있을 수가 없어.”
“아니, 백호만이 아닌 협회 전체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백호의 말에 협회장이 말을 이었다.
“……그런가요.”
처용은 협회장과 백호의 분위기를 살피며 대답했다.
이들이 어떤 말을 하든 거절하고 윤아만 데려가려 했었다.
그러나 이들의 분위기는 가족을 지키려는 것과 비슷한 분위기로 느껴졌다.
윤아가 이들에게 있어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가족에 가까운 관계일 가능성이 높았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위험한 상황입니다. 각오 단단히 하고 오세요.”
“헌터는 언제나 각오가 되어 있어야지.”
처용의 말에 백호가 자신감 있는 웃음을 보이며 대답했다.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처용이 게이트를 열었다.
***
[약속을…… 지켜주었구나. 계승자.]
안식처에 있던 청룡이 황금빛 게이트에서 나오는 처용을 반겼다.
동시에 처용 옆에 있는 윤아, 자신의 신관을 바라보았다.
[흠? 그 인간들은?]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
“저를 돕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청룡 님.”
처용은 빠르게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설명했다.
그러자.
[포세이돈은 제가 막을 테니, 그 안에 수계를 끝내시지요.]
청룡 옆에 있던 해전무신이 청룡과 윤아를 바라보며 말한 후 사라졌다.
“그…….”
윤아는 거대한 크기의 청룡을 올려다보며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은 있었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날 두려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구나.]
“무섭지는…… 않은데요…….”
윤아가 힘없이 말을 흘리며 대답했다.
청룡이 무섭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악몽 속에서 매번 자신에게 경고를 전해주던 푸른 눈동자.
청룡을 마주하자마자 그 푸른 눈동자가 그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저 지금 상황이 잘 실감이 나지 않기에 긴장했을 뿐이었다.
“후-, 제가 뭘 하면 될까요?”
작게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몰아낸 윤아가 청룡을 마주하며 말했다.
[가까이 오거라.]
청룡의 말에 윤아는 각오를 다진 듯 주먹을 불끈 쥐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쏴아아.
청룡이 팔을 들어 올려 여의주를 꺼내었다.
[준비가 되었다면 여의주에 손을 올리거라.]
윤아는 청룡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여의주에 손을 올렸다.
-화아아!
여의주와 윤아의 손이 맞닿자 푸른 빛이 뿜어졌다.
윤아는 마치 무언가에 집중하는 듯 눈을 감고 있었다.
“얼마나 걸릴까요?”
처용이 불안감을 억누르고 청룡에게 물었다.
[이 아이가 이곳에 직접 온 이상 금방 끝날 것이다.]
청룡의 말에 처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 성역이라는 곳은 처음 와 보는구만.”
주변을 둘러보던 백호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처용에게 다가와 물었다.
“이거, 잘 되고 있는 건가?”
“아직은 문제가 없습니다. 이대로 무사히 끝났으면 좋겠군요.”
처용의 말은 진심이었다.
나름대로 준비를 갖추긴 했지만.
이대로 아무 마찰 없이 무사히 끝나는 게 가장 좋은 상황이었으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긴장해야 합니다.”
처용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쿠쿵!!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와 동시에.
[이런!]
청룡이 난색을 표했다.
“무슨 일입니까.”
처용이 청룡에게 묻자.
[내가 펼쳐 놓은 결계에 금이 갔다. 도대체 어떻게?]
청룡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망할 포세이돈 새끼…….”
예상대로 상황이 흘러가자 처용이 포세이돈을 향해 욕을 내뱉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