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처용이 태민과 연락하고 있을 때.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서울 성동구에 있는 고등학교에 나타났다.
“국정원입니다.”
국정원 소속 신분증을 경비에게 들이밀며 학교에 난입한 이들이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들은 복잡한 기계장치처럼 보이는 것들을 여기저기 설치하고는 학교 곳곳에 흩어졌다.
그러자.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학교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교장과 몇몇 선생님들이 나왔다.
“학교에 이렇게 함부로 들어와서 행패를 부리면 애들이 놀랍니다!”
난데없이 난입한 불청객들을 향해 교장이 항의했지만.
“대통령 각하의 명령입니다.”
그들은 대통령의 이름을 들먹이며 하던 일을 계속했다.
“방해하면 공무집행 방해로 체포하겠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이 국정원 소속이라며 학교를 뒤지는 이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국정원 사람들의 리더로 보이는 선글라스를 쓴 사람이 학교 선생님들을 압박할 때.
“실장님, 흔적이 있습니다.”
부하로 보이는 남자가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국정원의 리더, 실장이라 불리는 남자가 그 말을 듣고는.
“지금부터 이 학교를 폐쇄한다!”
학교 안에 있는 사람이 외부로 나갈 수 없게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확실하게 여기 있는 거 맞습니까?”
정장이 아닌 검은 슈트를 입은 헌터가 국정원 실장에게 다가왔다.
“기계가 반응했으니 있을 겁니다.”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참다못한 교장이 국정원 실장에게 다가와 항의했다.
“계속 이러시면 헌터 협회에 신고할-.”
“체포해.”
교장의 말을 자른 국정원 실장이 명령하자.
-퍽!
“어흑!”
검은 정장을 입은 국정원 요원들이 교장을 제압했다.
아니, 제압이라기보다는 폭행에 가까웠다.
쓸데없는 짓을 못 하도록.
“교장 선생님!”
“왜 이렇게까지!”
옆에 있던 학교 선생님들이 다가와 교장을 부축하며 따지고 들었다.
그러자.
“핸드폰도 다 뺏고 어디에도 연락 못 하게 막아.”
국정원 실장은 사람들의 핸드폰을 강제로 빼앗고 부수며 무력으로 탄압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대통령 각하 명령입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십시오.”
쓰러진 사람들에게 경고한 국정원 실장이 선글라스를 벗으며 사람들을 노려봤다.
그때.
국정원 실장을 향해 슈트를 입은, 헌터로 보이는 남자가 다가왔다.
“시간 없어, 헌터 협회에서 냄새 맡기 전에 끝내야 해.”
국정원 실장은 다가온 헌터의 말에 그를 째려보듯 응시했다.
“약속이나 지키십시오. 강오순 지부장.”
국정원 실장은 자신에게 다가온 헌터.
달의 사냥꾼 한국 지부장인 강오순에게 인상을 구기며 대답했다.
국정원이 정보를 받고 이 학교를 급습한 이유는 올림포스의 협력 요청 때문이었다.
올림포스는 협력의 대가로 국정원에 값비싼 아티팩트와 막대한 자본을 약속했다.
그것 외에, 국정원이 올림포스에게 협력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헌터 협회가 가진 권력과 헌터들의 지휘권을 빼앗아 오는 것.
올림포스는 그것을 도와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최종적으로는 헌터 협회가 가진 모든 권한을 국가로 귀속시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었다.
“일개 국가의 국정원 실장 주제에 말이 짧은데?”
국정원 실장의 말에 강오순이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물었다.
두 리더가 기 싸움을 할 때.
“실장님 기숙사에 남아있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국정원 요원 중 하나가 실장에게 다가와 말했다.
“다 끌고 와!”
부하의 말을 들은 실장은 큰 목소리로 명령했다.
이윽고 학교 안에 남아있던 교장과 선생님들.
그리고.
-꺄악!
-왜, 왜 이러세요……?
기숙사에 남아있던 학생들까지 강제로 끌려 나왔다.
“괜찮아?”
그 안에는 쓰러진 친구를 부축하는 윤아도 있었다.
교장과 선생님들, 학생들까지 모두 학교 공터로 모이자.
“이 안에 테러의 위험성이 있는 사람이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실장이 터무니없는 이유를 들먹이며 말했다.
그리고, 국정원 요원들, 정체불명의 헌터들이 사람들을 끌고 한곳으로 모았다.
“이 안에 있습니까?”
실장이 강오순에게 조용히 묻자.
“어디…….”
무언가를 탐색하는 듯 보이는 기계를 조작한 강오순이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있다. 하, 하하하.”
무언가가 있다면서 환호의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길드에서 비밀스럽게 내린 지령을 완수할 수 있었다.
“하나씩, 피를 뽑아서 확인해 보면 되겠네.”
환희의 미소를 지은 강오순이 말하자, 실장이 국정원 요원들에게 고갯짓을 했다.
-시, 싫어요!
-꺄악!
국정원 요원들과 헌터들이 주사 비슷한 것을 들어 강제로 모여 있는 사람들의 피를 뽑으려 할 때.
“동작!! 그만!!”
-쾅!!
하늘에서 거대한 덩치의 누군가가 떨어져 내렸다.
“이 개놈들이!!”
권백호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학생들과 국정원 헌터들 사이에 벽처럼 자리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그리고는 국정원 요원들과 헌터들에게 분노의 호통을 내질렀다.
“권백호…….”
“이런…….”
그 모습에 국정원 요원들과 달의 사냥꾼 소속 헌터들이 낭패감 어린 표정을 보였다.
“당신이 끼어들 일이 아니야! 권백호.”
국정원 실장이 앞으로 나와 백호에게 소리쳤다.
“이건 대통령 각하의 명령이다. 물러나!”
그가 대통령의 이름을 내세울 때.
“지랄한다. 이 병신새끼야.”
백호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흐, 집행반 버리고 들어간 곳이 대통령 사냥개냐? 김병우!”
백호가 현 국정원 실장, 전 집행반 출신 A급 헌터, 김병우를 비웃으며 일갈했다.
“대통령의 명령을 거스르겠다는 겁니까?”
“미안한데.”
대통령이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은지 비웃음을 끌어올린 백호가 말을 이었다.
“벙커에서 나오지도 않는 쥐새끼 양반이 그리 대단한가?”
백호가 대놓고 나라의 최고 권위자를 향한 조롱을 내뱉었다.
그의 말대로 현 대통령은 절대 좋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었다.
몬스터가 무서워 벙커에서 나오지도 않는 사람.
그럼에도 권력과 재력을 놓지 않는 욕망이 가득한 사람.
그리고 백호가 대통령을 가장 싫어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몬스터들을 처치하는 건 헌터들의 ‘당연한 의무’ 아닙니까?
청와대 연설에서 그가 입 밖으로 내뱉었던 말이었다.
헌터들이 목숨을 바쳐 싸워주는 것을 보고 ‘당연한 의무’라고 말한 것.
그렇게 ‘의무’는 강조해놓고 헌터들의 입지를 키워주고 지원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는 권력자.
정부가 헌터들을 지원하지 않는 건 자신들의 권력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그 이유였다.
그럼에도 헌터들이 벌어들이는 자금과 자원에는 욕망을 드러냈다.
현재의 대통령과 그를 따르는 국회의원들은 모두 꼰대이자 이기주의자들이었다.
협회장과 같은 인물은 이 나라 국회에 있어 멸종위기종.
아니 이미 멸종된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진이가 마음이 약해서 그냥 둔 것도 모르는 것들이……!”
백호가 이를 갈며 읊조렸다.
그렇게 대치 상황이 계속될 때.
“물러나라. 권백호.”
-스르릉!
달의 사냥꾼 한국 지부장, 강오순이 칼을 들이밀며 백호에게 경고했다.
“으…….”
문제는 그 칼을 들이민 곳이 바로 끌려온 한 학생의 목이라는 점이었었다.
다른 달의 사냥꾼 길드 헌터들도 각각 학생들에게 칼을 겨누고 있었다.
“허튼짓을 하면 죽이겠다.”
“으흑…….”
인질로 잡힌 학생, 윤아가 눈을 질끈 감으며 공포감이 섞인 침음을 흘렸다.
‘젠장!’
윤아를 본 백호의 눈동자가 찰나의 순간 경악으로 일렁였다.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거라고 보나?”
빠르게 당황스러움을 숨긴 백호가 분노를 드러내며 말하자.
“올림포스가 두려워할 건 없다! 멍청한 놈.”
강오순이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물러나라. 권백호!”
“이 개새끼가…….”
백호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헌터는 총 여덟 명.
혼자서 모두 순식간에 제압하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강오순이 ‘인질로 잡고 있는 학생’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그렇다고 비열하게 처웃는 강오순의 요구를 들을 순 없었다.
백호가 고민하고 있을 때.
“테러범을 상대로 손속을 봐주는 거 아닙니다.”
어디선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그래……. 아르테미스의 똥개 새끼들이 이제야 움직였네?”
화염의 절을 뽑아 든 채 처용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넌 뭐야! 물러나라!”
강오순이 학생의 목에 칼을 더 바짝 겨누며 경고했다.
“흐, 흐흐흐, 하는 짓이 변함이 없어. 이 쓰레기들이…….”
경고를 들었음에도 낮게 웃으며 다가오는 처용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오지 말라고 했다!”
강오순은 다시 한번 경고함과 동시에 길드원 중 한 명에게 눈짓했다.
자신의 협박이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생각.
달의 사냥꾼 헌터 중 하나가 인질로 잡고 있던 교사에게 칼을 휘둘렀다.
“이!”
백호가 낭패감 어린 소리를 내었다.
하필이면 자신과 가장 먼 곳에 있는 인질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인질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려는 찰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처용의 목소리를 듣고 움직이려는 몸을 멈추었다.
칼이 인질에게 닿는 순간에도 처용의 표정은 태연해 보였으니까.
이윽고 칼이 교사에게 닿은 순간!
-팅!
칼은 교사를 베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
거기에.
“으아악!”
오히려 칼을 내리친 헌터의 손아귀가 찢어지며 피가 흘러내렸다.
이 상황을 모두가 이해하지 못할 때.
“내가 네놈들 생각을 모를까?”
처용이 비웃으며 다가오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무 대비도 없이, 그냥 대놓고 왔을까? 크흐흐.”
그러고는 백호를 보며 말했다.
“인질들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네 스킬인가?”
“저를 죽이지 않는 한 인질들은 조금도 다치지 않을 겁니다.”
처용이 백호의 말에 자신 있게 대답했다.
자신이 사용한 권능은 이 자리에 있는 적들이 쉽게 파훼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무죄의 선고]
[징벌자 주변에 있는 지정된 대상을 보호합니다.]
[보호 대상이 받는 모든 피해를 징벌자가 대신하여 받습니다.]
[보호 대상을 공격한 적은 반사 피해를 입습니다.]
[신력 스텟이 성장할수록 더 강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최대 10명 지정 가능.
지정 대상을 보호하는 권능.
본래 수호신의 권능 중 하나였던 ‘거절’이라는 권능이었지만.
징벌자를 선택한 영향으로 ‘무죄의 선고’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아니, 더 강해졌다.
본래의 권능인 거절은 반사 데미지를 입히는 능력은 없었으니까.
물론, 권능을 사용한 자신이 보호 대상이 받는 피해를 대신 받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적들은 처용의 금강불괴조차도 뚫을 수 없었다.
그리고 처용의 권능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는 이상.
인질들을 함부로 공격하지 못할 것이다.
헌터 중 하나가 반사 피해를 입었으니까.
그렇다면 이다음 놈들이 보일 행동은 뻔했다.
“젠장! 저 새끼부터 죽여!”
강오순의 명령에 주변에 숨어있던 20명의 헌터들이 튀어나와 처용을 공격했다.
‘B급 일곱에 C급 열셋이라.’
처용은 습격해오는 헌터들의 전력을 빠르게 파악하고는 코웃음을 쳤다.
화염의 절을 칼집에 집어넣은 처용이 발도 자세를 취했다.
“질풍신뢰.”
-파지직! 휘이이!
처용의 다리와 팔에 바람과 번개가 동시에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헌터들이 무기를 들이밀며 지척에 다가온 순간!
“검의 비명.”
-샤악! 철컥!
찰나의 빠르기로 화염의 절을 뽑아 한 번 내지른 후 다시 집어넣었다.
그러자.
-삐이이-!
마치 강철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커헉!
-으허억!
처용에게 달려들던 20명의 헌터들이 피를 뿜으며 나가떨어졌다.
힘줄이 잘리는 것을 넘어서 손목과 손가락, 팔, 다리가 잘려나간 이들도 있었다.
회귀 전, 검성이라는 검술의 지존에게 배웠던 발도술인 검의 울음.
그 검술에 보법인 질풍신뢰의 묘리를 섞은 것이었다.
풍신보, 바람처럼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그리고 뢰신보,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칼을 뽑아 내지르는 것.
이것이 처용이 자신에게 맞게 개량한 검성의 검술이었다.
그리고 처용이 내지른 발도술의 간격 안에는 20명의 헌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큽, 으아악!!”
오른쪽 손목이 잘려나간 강오순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인질로 잡혀 공포에 몸을 떨던 있던 윤아가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그 순간.
빠르게 다가온 처용이 왼손으로 윤아의 어깨를 잡아 세워 주었다.
그리고.
“울지 마라.”
눈물을 흘리며 공포에 젖어 있는 윤아에게 작은 위로를 전했다.
지금 공포에 젖은 눈물을 보여야 하는 건 저들이니까.
뒷말을 삼킨 처용이 빠르게 검기를 날려 인질들과 가까이 있던 헌터들을 베어냈다.
처용의 목소리가 들리자 감고 있던 윤아의 눈이 떠졌다.
꿈의 마지막에 들렸던, 낮고 차가운 목소리.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나타나자.
“……꿈?”
작게 의문을 내뱉었다.
눈앞의 적에게 집중하고 있는 처용은 그 작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감히 올림포스를 공격하고도 무사할 것 같나!!”
부상을 입은 강오순이 처용에게 발악하듯 괴성을 질렀다.
처용은 도망치려는 강오순을 향해 화염의 절을 들어 올렸다.
“징벌의 선고.”
-콰아아아!
붉은 기류가 처용과 강오순을 집어삼켰다.
“이, 이건 뭔!”
빠져나갈 수 없는 결계에 갇힌 강오순이 당황할 때.
“난, 암살자만큼은 절대로 그냥 보내지 않아.”
순식간에 지척에 다가온 처용이 조용히 읊조리며 화염의 절을 뽑아 들었다.
회귀 전, 오영철 못지않은 살인마였던 강오순.
악신 아르테미스의 신관의 심복이었던 놈.
절대로 곱게 보내서는 안 될 놈 중 하나였다.
그리고 놈에게서 가장 중요한 정보를 얻어야 했다.
“살고 싶나?”
처용이 강오순을 베기 위해 화염의 절을 위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하늘로 치켜 올라간 칼날이 섬뜩한 예기를 뿜어댔다.
“사, 살려-.”
-스아악!
처용의 칼날은 강오순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아래로 내리그어졌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