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고행탑의 2층. 카투라의 둥지가 있는 드높은 폭포.
-쾅! 콰콰쾅!!
굉음이 울려 퍼지는 그곳에서는 처용과 카투라의 분신이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전처럼 조건을 달성하는 단순 시험의 형태가 아닌.
조건 없이 서로 간의 힘 대결을 하는 전투이자 대련이었다.
처용은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시간에 전철역을 수색하는 것을 제외하고.
전부 카투라와의 대련에 시간을 쓰고 있었다.
[이건 피하는 게 좋을 거야.]
카투라가 말함과 동시에 집게발에서 뿜어져 나오는 길고 가는 물줄기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스으가악!
채찍이 사선으로 휘둘러지자 폭포의 일부분이 잘려나가며 무너져 내렸다.
그녀가 평소 쏘아대던 물줄기 칼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절삭력이었다.
“이건 반탄장으로 못 막겠는데요?”
풍신보와 뢰신보를 적절히 사용하며 채찍을 피한 처용이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막으려 시도했었지만.
금강불괴의 힘과 반탄장이 코팅된 대지의 손이 산산이 조각나는 것을 보고는 포기했다.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닐 텐데?]
싱긋 웃음을 지은 카투라가 남은 세 개의 집게발도 모두 열었다.
-촤아! 촤아! 촤아!
강력한 절삭력을 가진 물줄기 채찍이 한 개에서 네 개로 늘어났다.
-스가아아악!
부드럽고 유연하게 휘어지는 채찍들이 사방을 포위하며 처용을 조각낼 기세로 쇄도해왔다.
뢰신보나 풍신보로도 빠져나가기 힘들 정도로 마치 그물처럼 채찍이 다가올 때.
“팔괴금강문!”
처용을 재빠르게 주변에 부유하고 있던 대지의 손들을 뭉쳐 거대한 문을 만들어 냈다.
-타앙!
아무리 초고속으로 회전하며 절삭력을 높인 채찍이라도 팔괴금강문은 잘 버텨내는 듯싶었다.
그러나.
-우-드드득! 촤아아악!!
얼마 버텨내지 못하고 거대한 문이 조각조각 부서졌다.
“풍신보.”
그래도 팔괴금강문이 버텨준 덕분에 포위망에 작은 틈이 생겼고.
그 한순간을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빠져나왔다.
처용은 포위를 빠져나온 것에 안도하지 않고.
“뢰신보!”
카투라를 향해 달려들며 거대한 해머를 꺼내 들었다.
처용이 달려드는 것을 본 카투라는 다리를 움직여 처용을 쳐내려 했다.
압도적인 질량을 가진 거대한 다리가 다가오고 있음에도.
처용은 오히려 속도를 높이며 스킬을 준비했다.
“파쇄격!”
해머의 머리 부분에 파쇄격의 힘과 마나가 일렁였다.
파쇄격의 힘에 마나가 더해지자, 해머의 머리 부분이 뜨겁게 타오르듯 일렁였다.
카투라의 다리와 처용이 충돌하려는 순간.
“풍신보.”
처용은 공기를 밟고 오른쪽으로 회전하며 카투라의 다리를 가까스로 피해냈다.
그리고 카투라의 다리, 정확히는 다리의 관절 부분이 처용에 옆을 지나가려는 순간.
몸을 회전시키는 회전력을 담아 다리를 내리쳤다.
마나의 힘이 더해진 파쇄격, 거기에 회전력까지 추가된 해머의 일격이 작렬하자.
-콰콰쾅!!
마치 가까이서 지진이 일어난 듯 고막을 울리는 굉음이 울렸다.
그러자.
-쩌적!
절대 부서지지 않을 것 같았던 견고한 갑각의 일부가 갈라졌다.
심지어 처용의 공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힘을 가한 반동으로 인해 해머를 쥔 처용이 뒤로 튕겨 나왔고.
그 회전력에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백 덤블링을 하듯 회전함과 동시에 해머를 굳게 쥐었다.
처용의 시야에 갈라진 갑각의 다리가 다시 보인 순간!
“하압!”
뒤로 회전하던 처용이 해머를 아래에서 위로 강하게 휘둘렀다.
-콰콰쾅! 쩌저적!
그 결과 놀랍게도 다리 관절이 갈라지듯 부서지며 떨어져 나갔다.
그 광경을 마지막으로.
[대련이 종료되었습니다.]
시스템의 알림이 울렸고 약 한 시간에 걸친 카투라의 분신과의 대련이 끝났다.
[대단한데?]
카투라가 자신과 맞선 처용을 바라보며 감탄하듯 이야기했다.
[하루하루가 매번 달라진 모습이잖아? 정말 신기해.]
그녀는 부러진 다리들을 바라보고는 다시 처용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더 나아간다 해도 당장은 이게 한계군요.”
숨을 고르듯 한숨을 내쉰 처용의 말에
[……이거 안 보이니?]
카투라가 어이없는 듯 ‘부러진 다리들’을 들어 보였다.
처용이 부러뜨린 다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한 시간의 대련 동안 처용이 부순 다리는 무려 네 개였다.
그것도 카투라의 분신이 내지른 모든 공격을 방어하고 회피하면서…….
[지금 세계의 인간들 중에 이 정도 힘을 가진 인간은 없을걸?]
“후, 없지는 않을 겁니다.”
처용이 해머를 집어넣으며 카투라의 말에 대답했다.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몇만 해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역시 재미있는 세상이야.]
“조만간 저 말고도 다른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처용은 자신의 계획 중 하나를 떠올리며 카투라에게 말했다.
헌터로서 그녀의 분신과 모의 전투하는 것으로 많은 것을 얻는 만큼.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아주 많았다.
처용이 카투라와의 대련을 통한 수련으로 얻는 것을 생각할 때.
[레벨이 올랐습니다.]
타이밍 좋게 수련의 결과가 시스템으로 나타났다.
[자연신보의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질풍신뢰의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모든 스테이터스가 5 증가합니다.]
[권능 ‘수호신의 거절’이 재생성됩니다.]
[징벌자를 선택한 영향으로 권능이 변형됩니다.]
[‘수호신의 거절’이 ‘무죄의 선고’로 변형됩니다.]
현재 처용의 레벨은 112.
100레벨에 들어선 이후로는 레벨을 올리기가 정말 힘들다.
그러나 카투라의 분신은 A급, 아니 S급 몬스터를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존재와 고행탑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반복적으로 대련하게 된다면?
A급 던전에서 A급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경험치와 전투 숙련을 높일 수 있었다.
그리고 처용은 이런 혜택을 혼자서만 누릴 생각이 없었다.
‘우선 그 계획을 위해서 성지를 완성해야 한다.’
준비는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었지만, 조금 더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언제 자신의 정체가 완전히 적들에게 노출될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비열한 마인들과 길드들은 분명 가족을 노릴 게 뻔했다.
회귀 전, 놈들이 강한 헌터들을 공략하기 위해 주로 썼던 방법이었으니까.
그러나 성지가 완성된다면 가족들은 거의 모든 상황에서 안전해진다.
신이 직접 영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소인 성지는 지구의 세이프 존과 같았다.
몬스터, 마인, 혹은 다른 위협에서도 가장 안전한 장소.
협회가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전초기지라고 한다면, 성지는 중앙본부라고 할 수 있었다.
처용이 성지에 대한 계획을 생각할 때.
[너한테 줄 게 있어.]
“……저한테요?”
줄 것이 있다는 카투라의 말에 처용이 의문을 표했다.
그러자.
-슈우우- 쿵!
처용의 앞에 물결이 소용돌이치며 뭉치더니 물이 사라지며 무언가가 나타났다.
“이게 뭔가요?”
바위 같기도 하고 무언가의 껍질 같기도 한 짙은 색상의 알 수 없는 물체.
[만 년 전에 벗었던 내 허물 조각.]
카투라가 그것의 정체를 알려 주었다.
“……네?”
그녀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처용이 3미터 크기의 허물(?)로 다가갔다.
그것을 들어 올리자.
‘가볍다?’
너무나도 쉽게 들렸다.
보통 3미터 크기의 바위만 해도 상당한 무게가 나간다.
그러나, 지금 들고 있는 것은 바위와 비교해서 거의 열 배는 가벼웠다.
가벼운 것을 넘어서 마치, 공처럼 가볍게 튕겼다가 받을 수 있을 정도.
놀라운 것은 무게만이 아니었다.
-딱!!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듯 가볍게 쳐 보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견고함이 전해졌다.
“……엄청난데?”
처용이 감탄을 섞어 평가하듯 중얼거리자.
[아무렴, 내 갑각을 이루던 것들인데 땅바닥에 있는 돌멩이들보단 낫겠지.]
카투라가 자랑하듯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물전에 그 아타라는 꼬맹이한테도 몇 개 더 줬으니까. 잘 써 봐.]
“감사합니다만. 갑자기 이걸 왜……?”
궁금증이 든 처용은 그녀가 갑자기 왜 자신의 허물을 줬는지 물었다.
[……여래랑 내기해서 졌거든.]
“그렇군요.”
카투라에게서 뾰로통한 느낌의 대답이 들려오자 처용은 굳이 더 묻지 않았고.
“감사합니다.”
그녀에게 감사를 전했다.
무구에 대한 경험이 많은 처용이니만큼, 그 무구를 구성하는 광물에 대해서도 나름 잘 알고 있었다.
에덴의 천사들만이 구할 수 있다는 오르하콘.
특수한 환경에서 땅의 힘을 극한으로 축적하여 만들어진, 티움 시리즈라 불리는 광석들.
그리고 상위 드워프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들만의 광석, 미스리움 등.
전설적인 광물들에 대해서도 지식이 꽤 깊은 편이었다.
그 지식으로 판단해 볼 때.
카투라의 허물은 전설적인 광물 중에서도 거의 탑급으로 보였다.
그녀가 엄청난 자원을 준 것이지만…….
문제가 있었다.
“……이걸 어떻게 가공하죠?”
당장 이 허물을 무구로 만들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혹시나 싶어 허물의 원래 주인에게 물어봤지만.
[나야 모르지?]
아무리 태초부터 태어나 오래 살아온 존재라고 해도 모든 것을 아는 건 아니었다.
‘도움을 좀 구해 봐야겠네.’
처용은 우선 조언을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볼 생각이었다.
보물전 안에는 속성석이라는 당장 가공이 불가능한 광석이 있었다.
하지만, 속성석의 경우는 가공 불가라기보다 기술 부족으로 인해 당장 못할 뿐이었다.
내부에 엉켜있는 속성 마나들을 제대로 다루지 않으면, 가공 도중 속성석이 폭발해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카투라의 허물은 기술 부족으로 인한 가공 불가라기보다는.
과연 이것을 변형…… 아니 부수는 것이 가능할지부터가 의문이었다.
처용이 오른손 주먹에 파쇄격을 담아 힘껏! 때려 봤지만.
-콰쾅!!
“흠집도 안 나는데?”
작은 실금조차도 가지 않았다.
결국, 고민을 거듭하던 처용은.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우선 좋은 자원을 준 카투라에게 감사를 전하고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회귀 전, 만났었던 장인들을 다시 만났을 때 고민해 봐도 될 문제이니까.
고행탑을 나온 처용은 다시 전철역들을 순찰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
길고 길었던 별들의 의회가 끝나고.
“하아.”
이번 의회를 주도했었던 아테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멍청한 늙은이들…….”
아테나가 별들의 의회에 참석했던 몇몇 성좌들을 생각하며 작은 분노를 드러냈다.
이번 별들의 의회에서 다룰 주제는 악신들에게 협력하는 성좌들에 대한 대처와 처벌이었다.
아테나는 올림포스 내부 성좌 중 악신과 직접 협력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아레스를 직접 언급했다.
올림포스는 그를 어떻게 처벌했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이야기하며 회의를 이끌었지만.
-우리 성운에는 절대로 없소! 아니! 앞으로도 없을 것이오!
-크흠, 악신들과 협력이라니 있을 수 없는 말이오.
대부분의 성좌들은 아테나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자신들을 그릴 리가 절대로 없다면서 호언장담을 하거나.
-올림포스 주신께서는 제대로 관리를 못하나 봅니다?
오히려 이번 사태가 전부 아테나의 잘못으로 비롯된 것처럼 그녀를 비웃는 성좌도 있었다.
특히, 본격적인 회의 전에 망신을 당했던 태상노군.
그 늙은 성좌는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아테나를 깎아내리는 것에만 몰두했다.
“아테나, 난 그 꼰대 같은 할아범이 정말 싫어.”
아테나의 옆에 자리해 있는, 네잎클로버와 하얀 꽃이 꽂혀 있는 화관을 쓴 여신.
헤르메스의 신관 메리와 함께하는 성좌, 티케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테나가 티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묻자.
“메리가 알려줬어. 저런 못돼먹은 어른을 그렇게들 부르더라고?”
티케가 싱긋 웃으며 말하자.
“하하.”
아테나가 가볍게 웃음으로 답했다.
“슬슬 때가 되었을 텐데요.”
아테나는 길고 긴 별들의 의회가 끝났음에도 곧장 올림포스로 돌아가지 않았다.
아테나와 티케를 포함한 소수는 콜로세움에서 떨어진 이름 모를 장소에 와 있었다.
별들의 의회보다 더 중요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우우웅!
아테나의 앞에 황금빛 게이트가 열렸다.
그곳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올림포스의 주신께서 왜 여기에 계시는지요?”
누군가가 다가오며 의문 섞인 말을 건넸다.
그들은 별들의 의회에 참석했었던 무신전의 성좌들 중 언문과 천문, 그리고 강완의 무신이었다.
“무신전의 성좌분들이야말로 왜 이곳에 오신 겁니까?”
아테나가 다가온 성좌들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는 ‘혈선’과의 대화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장소에 뜬금없이 무신전의 성좌들이 나타났다.
“저희는 태무신께서 부르셔서 이리로 온 것입니다만?”
아테나에게 의문을 건넸었던 언문이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아테나와 언문이 동시에 의문을 가질 때.
-그냥 들어오시지요.
게이트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초대받지 못한 손님은 이곳에 들어오지도 못합니다.
그러자 정식으로 초대를 받았던 손님, 아테나 측 성좌들이 발을 들였고.
그 모습을 바라본 언문도 천문, 강완과 함께 발을 들였다.
모두 초대받은 손님들이 맞았는지 입장이 거부된 성좌는 하나도 없었다.
나 홀로 계승자